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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샤 Dec 18. 2023

무속인, 마조히스트 무당 (심의 판정 불가 주의 요망)

#7 청소년은 읽지 마세요.

나에게 무속인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제일 짜증 나는 것은 민물고기를 ‘용왕’님 운운하며 같이 안 먹어준 것이다. 나는 산천어 매운탕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녀는 내가 만난 여자 중 TOP 3에 들어갈 정도의 미모를 소유했었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기에 매우 주관적인 부분이다. 객관적으로 가장 예뻤던 사람들은 따로 분류되어 있기에 혹시라도, 만에 하나 주인공인 그녀가 이 글을 보게 되어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의기양양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공주 콤플렉스(?)가 있는 나는 공주 같은 그녀에게 퐁당 빠졌다. 프릴 스커트에 롱부츠, 오버 사이즈 마르지엘라 재킷, 손목 부분 빼꼼 나온 레이스 블라우스는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환상적인 모습으로 타로를 봐주던 그녀는 얼굴 또한 귀엽고 깜찍하여 나의 완벽한 이상형에 가까웠다. 손님 입장에서 다짜고짜 실례를 범할 수 없기에 ‘어떻게 꼬시지?’ 발을 동동 구르면서 타로를 봤던 터라 내용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혹시, 법사님 아니세요?’라고 헛다리를 짚은 그녀가 귀여워서 미쳐버릴 지경이었고, 그래서 계산하다가 영수증에 사인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을 살피면서 하트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녀가 ‘피식’하는 것을 포착하고는 바로 명함을 대뜸 내밀었다.


나에게 받은 명함을 쥐어들고 90도 인사를 박아버린 그녀는 내가 가게에서 나와서 주차장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 만에 ‘실은 법사님 맞죠?ㅎㅎ’ 이런 식으로 헛다리를 또 짚었다.


(참고로 나는 무교이고, 우리 집안에는 사촌형이 신부님이라는 것 외엔 특이사항이 없었다)


차에 타서 그것을 보고 나도 어디 한 번, 헛다리를 짚어봐도 되겠다 싶어서 ‘당신, 맞는 거 좋아하죠?’라고 답장을 했다. 한참 동안 답장이 없던 그녀는 내가 담배를 한대 다 피우고 나서야, ‘어떻게 알았어요..?’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캐치했는지는 나의 영업 비밀 + 그녀의 프라이버시 보호상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하게 언급할 순 없다. 하지만 내가 사디스트로써 가진 감각 중에서, 상대방 목을 조를 때 실핏줄이 터지지 않도록 ‘잘’ 조를 수 있는 섬세함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 언급하겠다.)


결국, 자신의 성적 취향을 그 짧은 시간 동안 캐치한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마조히스트는 내가 알기론 없기 때문에 그녀는 나에게 이따가 일 끝나면 커피 한 잔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나는 ‘됐다!!!’ 싶은 안도감에 타로 카페의 영업 마감 시간까지 2시간 이상을 기분 좋~게 차에서 기다린 끝에, 그녀와 단둘이 커피 타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커피를 마시면서 나눈 우리들의 대화 주제는 도대체 자신이 마조히스트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었다. 나는 나랑 사귀면 가르쳐주겠다고 하찮은 입방정을 털면서 그녀를 꼬시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녀의 외모는 나에게 이상적이었고, 덩치 크고 사납게 생긴 남자를 좋아하던 그녀 또한 나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거기다가 남들에게 창피해서 말 못 하는 이 몹쓸 성향을 애써 숨길 필요가 없고, 철저하게 죽이 잘 맞는 공격수와 수비수인 우리의 속궁합은 귀찮은 몇몇 짓거리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매우 좋았다.


굳이 물기가 잘 보이는 회색 면 타이즈를 입혀놓고 엉덩이를 때려서 밑이 젖나, 안 젖나 테스트를 할 필요도 없고, 상대의 머리채를 잡는 것만으로 발기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식의 진품 명품 검증(?) 과정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예쁘고 몸매도 좋은 데다 살에 흉이 잘 안 지고 매우 빠르게 멍이 빠지면서 아물어버리는, 살성까지 좋은 보물이었다. 나 또한 운동선수 출신으로 일반인에 비해 체격 및 체력이 뛰어나며, 방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 뺨을 후려쳐도 생채기 하나 남지 않도록 세심하게 잘 패주는(?) 상당히 뛰어난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귀인이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근데 처음 만났을 때 타로 카페에서 일을 하던 그녀가 무속인이라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된 내용이지만, 경제적인 풍요로움에 매우 집착했던 그녀는 돈을 얼마나 벌고 싶은 것인지 무속인으로서의 일과 함께 타로 카페 운영도 겸업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그녀와의 인연도 여행지에서 밥 먹다가 싸운 것을 끝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래서 나는 속궁합이 가장 중요한 것인 마냥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혀를 차게 된다.


(그저 나의 수준에서 하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현재 나는 서로의 음식 취향이 잘 맞는 것이 남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쓰다 보니까, 이 글은 괜히 썼다 싶다. 이쯤에서 그냥 다음 여자로 넘어가야겠다. 다소 쓰기 부담스러운 이 연대기를 언제 또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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