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연하다 Dec 30. 2021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걷기

초등학교 때 우산을 안 가져왔는데 갑자기 비가 오면 다들 엄마가 와서 우산을 쓰고 데리고 갔다.

우리 엄마는 맞벌이를 하였기에 올 수 도 없었고 딸이 넷이라 누구 한 명에게 가는 것도 난처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누가 오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지 않고 바로 신발주머니를 머리에 이고 막 뛰어갔다. 그러다 팔이 아프면 그냥 뛰었다.

그게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근데 막상 비를 맞는다는 것이 그리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때는 어려서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가출을 하여 그 친구 엄마가 우리 집까지 찾아온 일이 있었다.

비가 오는 날 그 어머니가 불안한 얼굴로 찾아왔는데 우리 엄마는 내 딸은 그런  아니라며 면박을 주어 너무 죄송하고 창피했었다.

일단 최대한 알아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시라고 하고는 주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금정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가서 만났다. 그 친구 말고 두 명의 친구가 더 있었다.


나: “너네 엄마 지금 엄청 속상하셔 빨리 지금 가자.”


친구: “됐어!! 나 가면 얘는 어쩌라고, 너도 같이 있자. 돈 떨어지면 들어갈 거야.”


나: “야!! 쟤네도 집에 가면 되지 아니면 우리 집으로 가든지.”


친구: “됐어 너 우리 있는 곳 얘기하기만 해. 배신자!!”


나: “진짜 안가?”


친구: “안가, 짜증 나니까 같이 있을 거 아니면 빨리 꺼져.”


일단 집에는 돌아갈 거라고 확답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우산은 있었지만 쓰기 싫었다.

금정에서 비산동까지 2시간 정도의 거리를 멍하니 걸었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있고 싶었지만 그때 내 생각은 가출이란 행동 자체가 이해가 안 갔다. 정작 난 잘못한 게 없는데 갑자기 배신자가 되었다.

친구 어머니께는 있는 장소를 알면서 알려 주지 않은 천하의 나쁜 아이가 되어버렸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옳은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 그냥 비를 맞고 걸어가면서 엉엉 울었다. 그러다 보니 먼가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의 기분 나쁜 감정들이 비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문득, 주변을 보니 다들 우산을 쓰고 지나가면서 우산을 들고 비를 맞고 가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구역의 또라이는 나야.... 하하하 갑자기 이런 용감함이;;;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 있는 난 다른 때 같았음 바로 우산을 썼겠지만 그날은 그대로 집까지 갔다. 그리고 다행히 이틀 후

약속한 대로 친구들은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다 인연이 끊겼지만 어디선가 각자 잘 살고 있겠지)


그 후로 답답한 일이 있으면 아주 가끔 비를 맞고 뛴다. 뛰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비를 맞으면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맑아진다 그러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낀다.

비 오 날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천막에 빗소리 떨어지는 걸 듣다가 중간에 나가서 비도 맞고 그러다 술자리가 끝나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뛸 수 있으니까. (또라이 출몰 주의!!)


비가 올 때 반드시 우산이 필요한 필수품이 아니듯 힘든 일이 있을 때 꼭 우산 같은  보호막보다는 온몸으로 체험하고 지나가야 좋은 일들도 있다.


지나고 보니 모든 힘든 상황들이 모두 나에게 나쁘게 적용되는 건 아니란 걸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 살면서 잘했다고 생각한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