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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하다 Dec 29. 2021

살면서 잘했다고 생각한 일

끊임없는 배움과 성장

어영부영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직장을 들어갔으나 조직의 말도 안 되는 강압적인 위계질서와 여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커피 심부름과 함께 날아오는 성희롱 가득한 말들로 난 두 번의 직장에서 모두 쌈닭이 되어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일반 회사는 가고 싶지 않아 찾다가 혼자 돌아다니면서 일을 할 수 있는 학습지 선생님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누구의 터치도 안고 거의 99프로 여자 선생님들로 이루어진 직장에서 안정되고 즐겁게 업무를 했다.

다행히 유난히 아이들이 나를 좋아했고 나도 돌 지난 아이부터 7세까지의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닥분에 소개도 많이 받고 회원도 많이 늘려 승진도 초고속승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국장 자리는 내 자리가 아녔을까? 아님 그 자리가 두려워서 도망을 갔던 걸까? 

20대였던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만나기로 한날 새벽에 이상한 꿈에서 깼는데 전화가 왔다. 내일 만나자고 약속을 한 친오빠 같은 분이 교통사고로 멀리 떠났다는 것이다. 그 뒤로 난 바로 사표를 쓰고 3개월 정도 아무 일을 못하고 술만 먹었다.(지금 생각하니 그 자리를 회피하고 술 마실 핑계였던 것 같다.)

딸만 넷인 집에서 자란 나에겐 정말 친오빠 같은 분이었기에 그 충격이 너무도 컸고 그렇게 3개월 폐인처럼 지내고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왔다. 통장에 돈이 떨어져 내가 생활고에 시달리게 생긴 것이다. 

역시 현실 문제가 닥치니 바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학원으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집 근처의 학원을 알아보고 초등 전문 샘으로 입사를 했다,

난 전공이 수학, 영어, 국어가 아니기에 전과목 선생님으로 들어갔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자연스럽게 학교 얘기가 나왔다. 나만 전문대이고 모두 인 서울 전공과목 4년제를 나온 샘들이었다.

왠지 모를 창피함과 그동안 왜 공부를 안 했을까 하는 속상함과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뒤엉켜 어딘가에 숨고 싶었다.


내 안의 열등감이란 것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래 난 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잖아 내 실력을 키우면 할 수 있을 거야. 해보자’라는 맘으로 집에 책을 다 싸가지고 가서 12시, 1시까지 공부하고 출근이 2시 반까지 였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또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이해하고 암기를 할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수업 때 아이들의 반응을 좀 더 주의 깊게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ㅎㅎㅎ)


아이들이 왜 집중을 하고 있는지, 딴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눈빛인지, 이 수업을 즐겁게 참여하는지를 파악했다. 비록 내 열등감에서 시작했지만 그 효과는 나와 아이들 모두를 긍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이들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하다 보니 그 아이들의 기분이나 심리 상태까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학원은 담임제가 있었기에 우리 반 아이들부터 1:1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유심히 관찰한 덕에 어떤 얘기를 할 때 반응하는 것을 알았기에 어느 정도 좋아하는 것을 알아서 좋아하는 얘기부터 시작하여 공부가 어느 부분이 막히는지 왜 흥미가 없는지 특히 어느 과목에서 그러는지를 파악하여 함께 계획을 짜고 설루션을 제공하고 1주일 후 상담을 통해 개선할 부분과 잘하고 있는 점을 칭찬하며 아이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지냈고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은 당연히 너무도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를 통해 내가 상담하고 관찰하는 심리학적 부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나도 더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막연히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해 내가 배워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니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하여 학점은행제에 등록을 하고 늦깎이 공부를 시작하였고 그리고 아이들을 성취감을 통해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초등부 팀장이 되어 내가 초등부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어 아이들이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같이 성장하는 시기였다.

그 당시 내가 좀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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