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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팀장 Oct 02. 2024

길거리 민주주의(1)

수사관 시선으로 바라본 집회 현장


#. 아스팔트 열기를 삼킨 사람들


11월 어느 날, 자욱한 안개 사이로 부슬한 새벽비가 내린 광화문 한복판에는 비리한 땀냄새와 바닥에 베인 그을림 자국들이 이국적인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다. 온갖 정치구호가 난무하게 적힌 플랜카드와 선전 광고물들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불에 타 앙상하게 철제 뼈대만 남은 기동대 버스가 도심 한복판의 번화함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굵은 밧줄에 묶여 처참하게 자리하고 있다.


온밤을 새워가며 함성과 구호로 자리를 지켰던 수많은 군중들과 기동대 경찰관들은 마치 약속대련이라도 치렀던 것처럼 순식간에 광장을 빠져나갔고, 부슬비와 시작된 새벽의 정적은 아스팔트 위의 처참함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묵묵히 공허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새벽 5시, 서울시청 청소용 특수차량들이 일사불란하게 진입하고 그들의 전문적인 손놀림은 1시간 만에 도시의 기능을 온전하게 정상화시켰다. 지난밤을 지배했을 연대의 힘과 함성들이 뭐든 상관없다는 듯 그들의 도시 회복기능은 가히 특공대급이다.


그날의 아픈 시간들을 묵묵히 받아내며 치열했던 시위현장을 누볐던 수사관은 이제 시위 장소가 아니라 사건현장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중앙 도로에 서서 우리의 도시가 얼마나 회복력이 좋은지를 실감하고 있다.




수사관은 어젯밤에 시위 상황을 시간순으로 이미징 하기 위해 광화문 사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역사박물관 건물 옥상에 홀로 올랐다. 그저 편안한 밤을 보내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어젯밤의 극한 대립으로 100여 명이  검거되고 수십 명이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수십대의 기동대 버스가 불타버린 비 내리는 거리를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함성과 열기의 시간 속에 흘러가는 진실들을 모두 복기하여 완성된 사실체를 엮어내야 만 했다. 그렇게 거칠고 힘들었을 장면들이 그저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과정이라면 더더욱 생생하게 재현하고 법률적인 정당성이 지켜졌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사명을 위해 역사박물관 옥상을 올랐던 수사관은 이번 집회를 기획하고 현장을 이끌었던 사람들에게 꼭 묻고 싶었다. ‘과연 이렇게까지 폭력적인 대립이 있어야 할 말을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우리 공동체에서 어떤 우위를 점하고 싶었는지를...' 




  - 그날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권리보장 지표가 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 직접적인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실현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인 집회와 시위를 하기 위해서는 관할 경찰서에 집회신고라는 사전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물론 집회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표현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신고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편안한 삶도 최대한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소음과 질서를 잡아보자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이를 다른 말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의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편안한 삶 그 모두를 최대치로 보장’ 해보자는 것이다.


집회신고를 받은 경찰서에서는 그 집회의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고, 법률과 사회적으로 용인받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런 과정에 양측은 치열한 정보력을 발휘한다. 경찰은 그 집회가 당시 사회현상과 결합하여 극렬집회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예측하고, 주최 측도 예상되는 경찰 활동을 파악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어떤 방법으로 관철시킬지 최고조로 고심하고 준비한다.


이번 집회도 그런 탐색전이 있었고 벌어질 모든 상황에 대비하며 치열하게 준비했다. 비가 부슬하게 휘날리는 당일 오후가 되자 수십 개 단체가 그들의 상징인 깃발을 내세운 채 도심 한복판을 누비며 각자의 목소리로 사전집회를 하고, 늦은 오후가 되자 수만 명의 군중들이 광화문광장 주변으로 속속 집결하여 마치 종로를 모두 날려 버릴 것 같은 함성으로 준비한 본 집회가 진행되었다.


서로의 연대의 힘을 확인한 그들은 이내 상황을 변질시켜 주요 도로인 세종로 사거리에서 종로 3가, 청와대로 향할 수 있는 내자로터리등을 순식간에 점거하여 교통소통과 정상 보행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오로지 청와대를 향해 진격을 시작하였다.


이쯤 되자 경찰도 경비, 정보, 수사가 주축이 되어 기민하게 상호대응을 시작하였다. 집회의 진행방향과 속도에 따라 정보 및 경비경찰관이 배치되었고, 수사에서는 현장상황에 적용가능한 법률검토와 호송과 조사 대책을 촘촘하게 수립하여 검거된 자를 관리하느라 대응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속한 호송체계를 만들었다.




  - 서로를 향한 막대한 타격


이런저런 목적을 가지고 치러지는 시위현장에서 경찰과 시위참가자들은 원래라면 적대적일 리가 없는 관계이다. 그들은 어떤 인연도 없이 각자의 세계에선 없는 사람들이였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광화문 광장 세종문화회관과 미국대사관을 연결하는 마지노선상에서 극한의 힘을 쓸 준비를 마치고 긴장된 얼굴로 서로를 응시하며 불만 붙이면 바로 튕겨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대치가 시작되자 경찰 방송차에선 “시민 여러분, 법을 벗어난 방법으론 여러분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부디 서로의 안녕을 위해 질서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방송을 한다. 거창한 말 같지만 사실은 질서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간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를 이끄는 거대한 마이크에서는 ‘돌격, 앞으로’를 연신 외치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흥분된 감정을 상승시켜 세상 어떤 방패라도 뚫어버릴 것 같은 기세로 극강의 힘을 끌어 모았다.


그때였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어느 한 지점에서 “가자, 부숴버리자”라는 외마디 외침과 동시에 수만의 군중들이 마치 폭발하듯 튕겨나가며 괴력을 모아 기동 경찰관들을 밀어붙여 압박했다. 이에 밀리지 않으려는 고도로 훈련된 기동대원들이 안간힘을 써가며 초기 공격을 겨우겨우 힘겹게 막아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기세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고 있었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어 마치 훈련으로 조직화된 군대 같았다.


그렇게 공격과 수비가 치러지자 잠시 휴식기가 왔다. 그런 막간을 이용하여 경찰 기동대원 뒤로 약간의 공간을 만들더니 기동대 버스가 순식간에 들어와 차벽을 설치하였다. 이렇게 되자 차벽을 등진 기동대원이나 차벽을 넘어야 할 시위대나 모두의 긴장은 살벌할 정도로 고조되었고 2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1차 때와는 그 힘이 사뭇 다르다. 차벽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경비 경찰관들에게도 심리적이며 물리적인 마지노선이 되었고 서로가 더 이상 물러날 곳도 마음도 없어졌고 공포스러운 충돌이 몇 차례 더 오고 가자 접점에서 방패하나로 버티던 40대 경비경찰관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쓰러졌다.


서로 극한에서 대치하고 있는 대열을 흩트려 뜨릴 수 없던 기동대는 쓰러진 경찰관만 차벽버스 밑으로 쓰윽 밀려 나온다. 그에 얼굴은 공포감으로 일그러져 있고 눈은 초점이 흐려져 있다. 곧장 호흡을 안정시키는 응급조치가 시작되고 구급차에 실려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그곳이 극도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는 전쟁터이다.




  - 전선의 마지막


오늘은 마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이 거칠고 험한 말들과 정제되지 않는 정치구호들이 온밤을 새며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 기세들을 모은 시위 참가자들은 대오를 분산하여 광화문 광장뿐만 아니라 서울지방경찰청 앞 내자로터리, 종로경찰서 부근 안국로터리, 헌법재판소 근처 재동로터리까지 시위를 확대해 가며. 최종 목표인 청와대 턱밑까지 포위작전에 들어갔다.


확대된 시위는 필연적으로 공격과 방어가 되풀이되면서 수위가 높아졌고 차벽으로 이용하던 기동대 버스를 밧줄로 묶어 당기고, 공사장 각목까지 동원하여 단체의 힘으로 밀어붙이며 궁극에 이르러서는 버스가 불타는 극도의 혼란상태가 되자 경찰에서도 물대포와 체류액으로 대응하는 극한상황에서 밤새 100여 명이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그날 검거되었던 그들은 하나같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말을 하면 들어주지도 않을 것 같아 오늘 여기에 모인 사람들과 힘을 좀 합쳐 이런저런 말도 하고 정치하는 사람들 정신 좀 차리게 하겠다”는 의도밖에 없었고 기동대 버스에 밧줄을 걸어 당기고 불태운 것도 “경찰이 국민들의 정당한 집회를 탄압하며 특정 정치세력들 보호에만 몰두하고 있어 경고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을 뿐이었다”며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검거된 자들의 항변


사회현상은 늘 불균형이라는 이중성을 띄고 있고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할 말이 많다. 세상 사람 누구나 욕망이 있고 인류가 만들어낸 지금의 사회 구조로는 모든 이들의 욕구를 백퍼센트 채울 수 없으니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 정치적 우위나 경제적인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 대다수의 소시민들은 오늘밤 이뤄낸 역사적인 소명의 현장에 동참했음을 기억하고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의 감정에 휘말려 군중 속에서 버티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법적 책임까지 수반되는 것이라면, 그저 집회의 취지가 좋아 소소한 신념을 펼쳐 본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뜻하지 않게 형사 입건이 되는 상황에 놓였다면 그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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