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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팀장 Aug 20. 2024

오기 서린 눈 (4)

공명심과 인간다움, 그 사이


#. 최소한의 양심     

죄의 결과물이 누군가의 이익이라면 그 이익을 받은 사람이 회복을 시키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아프게 하는 것이 정당화되거나 미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우린 ‘최소한’이라는 이름으로 이해의 공간을 만들고 그렇게 이해를 해가기 마련이다. 수배자가 가족을 위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더 나아가 피해자에게 선처를 구하는 것이 그 최소한의 양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딸을 위하는 마음 외에 피해자에겐 그 어떠한 가책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형벌을 피하기 위한 거짓과 위선으로 일관하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그렇게 위선을 떨고 싶었을까, 뜻 없는 웃음과 거짓말을 해 대는 자신이 얼마나 창피했을까?


그에게도 세상의 아버지들이 절대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그 이유와 같은 이유로 거짓을 품어대고 있었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넘어져 보지 않았던 자들은 이런 말들을 해 댄다. '한 번쯤 넘어질 수 있고, 다시 일어서면 되지'


그런데 그런 위로는 앞으로 기회가 많이 남아있는 자들의 전유물이다. 늦은 나이에 사업이 망가지고 가족이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을 온몸으로 막아내다 결국  튕겨져 나가 도망자 신세가 된 수배자에게는 여기가 막다른 길이라고 좌절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좌절 아니었을까. 

그는 온갖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을 것이다. 그게 거짓말이든 위선이든 다시 일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의 한 조각일 뿐이었을 것이고 다른 조각엔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놈도 조용히 있었을 것이다.


그는 위선의 조각을 드러내서라도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그간에 버팀이 되었던 가족들과 좋은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 회환          

수사관의 일상은 매우 바쁘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하나의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가 없다. 수십 건의 사건을 동시에 굴려야 하기 때문에 항상 일정표를 달고 산다. 그러다 시간배분에 실패하면 여지없이 민원을 맞고 더 심하면 담당이 교체되는 치욕과 마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빡빡한 시간에 예고 없이 끼어든 수배자가 수사관의 일정을 흩트려 놓기에 충분했고 어렵게 잡은 누군가의 조사일정을 미뤄야 했다. 단순하게 보면 그저 잡혀야 할 사람이 잡혔고 처리 시한이 있으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은 수사관의 당연한 업무겠지만, 그런 수배자가 뻔한 사실을 극단적으로 왜곡하고 죄 없는 이를 끌어 드릴 땐 필연적으로 수사관과 충돌과 반목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보다는 적개심만 남아 그 결과는 항상 극단으로 흐른다.


수사관의 미성숙한 감정과 수배자의 위선이 그 짧은 시간에 가감 없이 충돌하자 수사관은 공명심과 적개심을 섞어 그를 벼랑 끝까지 내 몰았고, 수배자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갇힘을 쓰고 있었다. 수사관은 그의 입장과 상황을 동의할 수 없었고 오히려 반감이 강화되어 그의 변명을 무참히 깨어가는 수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1,500만 원이라는 크지 않는 돈으로 구속까지 되는 처참함으로 이어졌다.



         


# 공명심이 사람의 본질을 넘지 않도록 경계하자     

수사관과 수배자는 서로에 대한 적개심으로 주어진 절차를 최대한 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 안에는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위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양심의 소리는 누구도 아닌 수배자의 딸이 내고 있었고 딸의 수고와 끈질긴 의지에 감화되어 결국엔 재판과정에 고소가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사법절차를 통해 누군가를 구속한다는 것,  입감 되는 자 입장에선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경험 일 것이다. 비록 그가 지은 죄에 대해 사회의 극단의 평가라고 하겠지만 그 평가 속엔 수사관 개인의 성향과 사건마다 느끼는 그때그때 감정들도 상당 부분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구속하고 처벌하는 기준이 늘 한결같도록 마음이 정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사관은 필요이상의 감정적 적개심과 수사관에게 대놓고 거짓말을 해대는 사람은 반드시 단죄하고 말겠다는 오만한 공명심만을 내 세우다 보니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불구속을 하더라고 그는 향후 검찰수사와 재판을 받았을 것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마음이 급해진 가족들이 기민하게 움직여 조금이라도 변제가 될 상황이 될 수 있었음에도 경직된 적개심과 공명심 때문에 처분의 유연함을 발휘하지 못했고 조금 더 현명한 길도 있었음을 보지 못했다.


3일 밤을 새우면서까지 지켜야 할 신념이라면 그 신념은 언제나 합리적이며 사람을 지향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받아들이는 자의 수긍과 납득이 가능하고 결정에 힘이 실릴 것이다. 그러나 이번 수배자 구속은 정당했지만 차가웠고 사람을 향하진 못했다. 공적 영역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수사관일수록 그런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포기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


구속에 대한 판단기준을 스스로의 절제와 옳음에 두지 않고 자신을 증명하고픈 우월한 감정과 공명심에 두고서, 사업을 하던 중 의도치 않는 부도를 내고 어쩔 수 없이 가족을 떠났고 어떻게든 현재 상황을 모면해 보고자 했던 이런저런 사소한 거짓말에 과도하게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어차피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라면 회복할 기회를 너무 일찍 닫아버린 것이 아니었나..... 이런저런 회한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수사관은 이런 회한을 느끼며, 격랑과도 같이 날 선 말들과 오기로 가득했던 눈빛을 내려놓고, 따뜻한 오전 햇살을 소독 삶아 마음을 정화하고 있다. 수사관은 늘 이렇게 마음의 소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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