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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팀장 Aug 19. 2024

오기 서린 눈 (3)

3일 만의 귀가, 구속이 부른 눈물


#.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핑계 대기           

아무리 휘어지고 구부러져도 결국 동쪽으로 향한다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이 있다. 주변 모든 불리한 상황을 왜곡시켜도 결국 시간은 진실을 향하고 있듯 모든 진실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수사관은 1,500만 원의 진짜 종착지를 찾아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에게 또박또박 질문을 한다. "1,500만 원의 진짜 용도가 뭔가요." 그러나 그는 수사관을 쳐다보지도, 더 이상의 말도 없다. 더 이상 진술을 들을 수 없게 되자 주어진 자료와 증거만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결국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 입감이 되었고, 수사관은 단숨에 구속이 필요로 한 사유를 적어 검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수사관은 사무실 구석에 앉아 마음에 열기를 식히며 결과를 조용히 기다린다. 그렇게 3시간 정도 흘렀을까, 검사는 보완수사를 전제로 하여 신청을 기각했다. 역시나 1,500만 원의 최종 사용처가 발목을 잡았다.


검사는 그 돈의 사용처를 알아야 영장 청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실무상 당연했다. 사람을 구속하고 나면 검사는 10일 이내에(연장 10일 가능) 재판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경찰 수사단계에서 모든 조사가 다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제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48시간이 되려면 앞으로도 13시간 정도 남았으니 그동안 보완수사를 통해 증거가 확보되면 구속영장을 재신청할 것이다.(체포 후 48시간 내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못하면 석방해야 한다.)


재 조사가 시작되었다. 단시간에 1,500만 원의 사용처를 찾아야 하는데 쉬울 리가 없다. 그도 검사가 기각한 이유와 48시간 내에 석방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사에 협조할 리가 없다. 조금만 버티면 석방된다는 기대감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가는데 충혈된 눈은 초점을 한두 번씩 놓치고 있고, 머리는 멍한데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피의자를 만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들었던 말과 보았던 행동을 다시 상기해 보니 아차 싶었던 게 떠오른다. 바로 가족이었다.


사실 그의 부인과 딸은 피의자의 변명을 위한 자료를 가져와 제출까지 했었는데, 그 누구도 피의자의 고소내용과 앞으로 어떤 처분을 받는지와 석방여부를 단 한 번도 묻지 않았고 그저 담담했다. 가족은 1,500만 원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그들이 아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사관은 피의자와 다시 마주하였다. "최소한 회사 영업과 회계장부를 다 확인했지만 그 돈이 회사로 유입된 흔적이 없습니다. 귀하는 이 돈을 솔직히 어떻게 사용하였나요?" 회사를 배제한 채 압박을 가하자 그는 긴 한숨만 연거푸 내뱉더니, "죄송합니다. 제가 솔직할 수 있는 건 이 돈을 회사에 쓰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런 경우 그가 지키고자 하는 건 대게 두 가지다. 그 돈의 사용자가 공범일 가능성과 아니면 민사상 청구권이 그 사람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다 충족하는 건 아주 가깝거나 자신보다 그의 안위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누구인지는 뻔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면서도 수사관에게 피의자인 남편과 아버지의 석방 여부를 묻지 않았던 가족임이 틀림없다. 수사관은 또 다른 고민을 한다. 당장 가족을 불러 압박할 것인가 아니면 피의자를 다시 추궁하여 그가 사기로 취득한 돈을 가족들에게 숨겼다는 수사관의 판단이 이 사건 결정선상에 있는 검사와 판사들에게도 의심 없이 받아드려 질 거라는 피의자에게 고지해 가면서 압박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족의 결기는 대단했다. 피의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고, 가족들은 수사협조에 모두 불응했다. 이쯤 되면 한번 해보자는 거다. 결국 조사과정에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 의도를 나름의 논리로 추론하여 도주우려와 증거인멸, 재범의 우려까지 조금 더 세심하게 작성된 구속영장을 재 신청하였고, 검사는 48시간을 1시간 남기고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였다.



              

#. 구속이 부른 눈물     

그렇게 2일 밤을 꼬박 새 가며 서로에게 고단한 시간이 무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10시간 정도 법원의 검토를 걸쳐 그는 결국 구속되었다.


그리고 그의 구속은 이런 일들을 불러왔다. 먼저 또 다른 피해자들의 등장과 추가 고소장이 들어왔고, 가족들의 긴 한숨과 부도나기 전 함께했던 회사 직원들의 한숨 섞인 눈물, 그리고 시골경찰서에서 마주쳤던 여인의 늦은 시간이라도 면회를 부탁한다는 간곡한 부탁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딸의 등장이었다.


그의 딸은 유치장 면회를 마치고 곧장 수사관 사무실로 찾아와 1,500만 원을 대신 갚을 테니 고소인을 당장 만나게 해 달라며 화를 낸다. 이미 아버지가 고소인의 연락처를 알고 있으니 스스로 고소인에게 연락하고 변제하도록 안내하자, 딸은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말을 연거푸 던지며, 한참을 울고 나서 사실, 그 돈은 자신의 유학자금이었다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그렇게 비협조적이던 딸이 갑자기 그 돈은 유학자금이니 자신이 변제하겠다고 하는 모습 속에서 뭔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선 실제 유학자금으로 사용된 흔적을 요청하자 환전이력과 그간의 과정을 기록하여 제출하였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결정했을 때 아버지가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유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터라 경제적인 사정은 안중에도 없이 2,000만 원을 들여 1년간 일본 유학을 가야겠다고 우겼고, 그런 딸의 바람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누군가를 속여가면서까지 가장의 역할을 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젠 자신이 아버지를 구해내야 한다며 고소취소를 받아오겠다는 결기를 눈물로 보여주었다. 결국 약간의 변제가 이루어졌고 고소인도 취소까진 할 수 없지만 선처를 구한다는 식의 진술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궁극적으로 대부분이 그렇듯 고소인도 처벌보다는 돈을 받고 싶은 심정뿐이었을 것이다.




#. 3일 만의 귀가     

이런저런 사연과 사연으로 점철된 피의자의 삶에서 수배자로 전락되고, 이후 빚쟁이 신분으로 도망 다니다 결국 검거되고 구속이 될 때까지 총 3일이 걸렸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젊은 수사관도 퇴근을 하였다. 습하고 꿈꿈 한 반지하 방이다. 형광등 불을 켜자 그동안 방을 차지했던 쥐들이 쥐똥 몇 알을 남긴 채 잽싸게 냉장고 뒤로 숨는다. 그렇다고 쥐를 잡을 힘도 맘의 여력도 없다. 그저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발로 차자 싸인을 알아듣는 듯 열어놓은 문을 통해 밖으로 도망친다.


3일간의 피로를 온몸에 담은 채 방바닥에 구부리고 앉아 거울을 바라보니, 갈아입지 않는 와이셔츠는 누렇다 못해 거무튀튀하고 눈은 시뻘게 충혈이 되었지만 그도 흠칫 놀랄 정도의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곤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어딘가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퇴근을 하고도 독기가 빠지지 않았고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그대로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 3일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수사관이 수배자를 조사하고 구속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어떤 땐 소명을 잘 수행했다며 가벼운 소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구속은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찜찜한 기분과 감정으로 어색한 마감을 한 것 같았다.




사람이 구속을 피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과 온갖 변명이 밉지 않은 경우가 있다. 대게 그런 경우엔 그 거짓말들이 선량한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개입시키지 않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번 수배자는 담당 수사관이 매수될 수 있는지 여부를 떠봤고, 거짓을 숨기기 위해 부정한 일을 하였으며, 피해회복을 위한 마음 또한 보이지 않는 채 오직 구속을 면해 보려는 얕은 술수만 드러냈다.


그런데 자금 사용처가 딸의 행복을 구하는 유학자금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한편으론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딸이 받을 상처와 비난 그리고 혹시 모를 민사상의 문제까지 고려하다 보니 그는 사실을 왜곡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엉성한 변명들을 내뱉고 때론 비열한 눈빛도 보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1,500만 원의 사용처를 사실대로 말하고 당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했다면 수사관은 구속이라는 극약 처방은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수사관에겐 여전히 남아있는 오기와 알 수 없는 감정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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