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호의에 대하여 1

"나와 너" 김장하 문형배

by 행복이

줬으면 그만이지 호의에 대하여

"나와 너" 김장하 문형배


줬으면 그만인 마음이 사람들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다시 사회를 만든다

— 선순환의 공동체




김주완의 "줬으면 그만이지"와 문형배의 "호의에 대하여"는 서로 다른 결의 책처럼 보인다.

하나는 한 지역의 독지가를 기록한 취재기이고, 다른 하나는 한 법관이 써 내려간 사유의 에세이다.

그러나 이 두 책은 사실 하나의 이야기다.

한 사람의 조용한 베풂다른 한 사람의 삶의 태도건너간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두 책을 나란히 비교하기보다, 김장하 선생과 문형배 판사 사이를 오간 마음의 궤적을 따라가 보려는 시도다.


"줬으면 그만이지"에 등장하는 김장하 선생은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기부자’의 얼굴과는 좀 다르다.

그는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 했고, 선의를 설명하지 않으려 했으며, 감사 인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장학금을 주면서도 성적을 묻지 않았고, 왜 도와주느냐는 질문에는 늘 말을 아꼈다.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그의 말은 겸손한 미덕의 표현이라기보다, 베풂관계의 우위도덕적 권력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우선, 김주완의 기록은 이 삶을 감동적인 미담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김장하 선생의 침묵과 거리두기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액수도, 업적도 아니다.

끝내 말로 정리되지 않는 태도, 도움을 주고도 물러서는 방식, 그리고 상대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윤리다. 그래서 “줬으면 그만이지”는 '착한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기록에 가깝다.


전체 적인 내용은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것이 나을 것이고 여기서는 책 속의 내용들을 조금 소개해 볼까 한다.

“내가 배운 게 없으니 책이라도 읽을 수밖에.”(중략)

박노정, “누가 뭐 ‘이 책 좀 가져가겠습니다’ 하면 그건 뭐 당연히 가져가라고, 안 된다는 소리 안 하시죠.”

김장하,“안 빌리는 사람 바보, 빌려 가서 갚는 사람 (더)바보.”(일동 웃음) p28.

김 장하 선생은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얘기하지만 책을 통해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해오며 사회에 어른으로서의 덕목을 하나씩 쌓아간 것 같다. 그리고 평생 나눔을 실천해 온 선생은 책 나눔부터 남달랐다.

책도 돈봉투 건네듯 쉽게 줘버린다. 이 역시 '줬으면 그만이지'다.


이 날 참석자 중 한 명은 약간 뜬금없이 남성당한약방 응접실의 오래된 찻잔과 다기(茶器)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찻잔과 그릇은 애정이 있어서 그걸 쭉 쓰시는 겁니까?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라도?”

이에 대한 대답도 김장하 선생다웠다. “안 깨지데?” (중략)

인터뷰가 이뤄진 장소는 남성당한약방 그 응접실이었다. 학생기자들이 찍어 게재한 사진을 보니 그 때의 소파와 차탁이 2022년의 바로 그것이었다. 최소 35년은 넘었다는 얘기다. 이 또한 물어봤다면 선생의 대답은 이랬을 게 뻔했다. ‘안 부서져서.’ 그래서 굳이 묻지 않았다. p31.

할아버지는 일찍이 ‘사람은 마땅히 올바른 것에 마음을 두어야지 재물에 얽매여서는 안된다’고 가르쳤고, 손자 장하는 ‘우리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을 뿐 저의 뜻에서 나온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오늘날 김장하의 철학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있다. p36.

이 밖에도 평생 걸어서 출퇴근 하시고 필요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사용하고 계시는 낡고 오래된 옷과 물건들을 보건대, 김장하 선생의 검소함은 단순히 '아끼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는 지독할 만큼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선생만의 철학이 담겨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옳은 일에 마음 두고 재물을 나눠주는 것 또한 모두 할아버지 영향으로 돌리고 본인은 한없이 겸손하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가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48세, 1991년 8월 17일 명신고등학교 국가 기증 선언 및 이사장 퇴임식에서 김장하가 한 말이다. p105.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 선발 기준은 오로지 가정 형편이었지 성적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문형배 판사가 장학금을 받은 것 역시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였다. 항간에 나쁜 루머들이 없진 않았다 한다.


나에게도 이런 스승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김장하 선생을 만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선생의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다. 그분은 나에게 대학교까지 장학금을 주셨지만 내가 받은 것은 가르침이었다. (중략) 진주지원장으로 부임했으니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하여도 공직자와 식사하는 게 불편하다며 거절하는 분, 내 삶이 헛되지 않다면 그 이유는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중략)

문형배 재판관은 결국 진주지원장 임무를 마치고 진주를 떠날 때에야 겨우 밥 한 그릇을 대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선순환이 되면 공동체가 아름다워진다’라는 블로그 글 아래에서 추기로 올라와 있다. p135.

2025년 12월 10일(수) 오후 2시경부터 부천 아카데미 플러스라고 부천시 전 직원 대상 명사초청 특강에 문형배 (前)헌법재판관이 참석하셨다. 난 거의 제일 앞에 앉아서 경청하다가 그 식사대접에 대해 질문을 했다. 해물탕 7,000원짜리 겨우 대접하셨는데 문형배 판사님의 감회가 어땠을지 꼭 들어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기분을 꼭 직접 듣고 싶었다. 정말 좋았다고 한다. 김장하 선생은 베풀기만 할 줄 알지 받는 것에는 아주 인색하신 분인 걸 알 수 있었다. 김장하 선생이 문형배 판사에게 준 장학금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가르침이었다고 문형배 판사는 강조한다. 그리고 항상 마음속에 뭔가 품고 공부에 전념했으리라 생각 된다.


저는 사실 김장하 선생이 안 계셨더라면 판사가 못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가는 것은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것, 그것을 유일한 잣대로 살아왔습니다. p140.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문형배 후보자가 한 말이다. 김장하 선생은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고 또 어떻게 살라고 조언은 안 하지만 도움 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배운다.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김장하 이사장은 교사와 직원 채용에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친인척이나 지인은 쓰지 않겠다. 둘째, 돈을 받고 채용하지 않겠다. 셋째, 권력의 압력에 굽히지 않겠다. p162.

사립학교 비리는 돈과 권력에만 관심있는 이사장들에게서 비일비재하게 터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사립학교 지원 교사에게 기부금 명목으로 몇 천만원을 내라고 한다든지 외부 권력자의 청탁을 받아 자격 미달의 교사를 채용한다든지 등 사립학교 이사장들의 비리는 끝이 없는 실정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한 김장하 이사장 덕에 진주 명신고등학교에 비리는 애초에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훌륭한 학교마저 국가에 헌납한다. 거의 100억 가까운 학교를...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에게 김장하 선생은 어쩐 존재일까?

“한겨울에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이 몽롱할 때 정수리에 퍼붓는 한바가지 찬물 같은 분이죠. 정신이 혼미하거나 제가 중심을 못 잡을 때 그분이 마치 뒤에서 두 눈 부릅 뜨고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리저리 휩쓸리고 이리저리 계산하다가 제가 그 방향을 잃었을 때 또는 판단이 흐려져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막아주는 브레이크 같은 분이 김장하 선생님이죠.”p244.

진주의 토종 서점인 진주문고(대표 여태훈)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2번에 걸쳐 5,000만원씩 지원해 주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여태훈 대표에게 김장하 선생삶의 나침반 같은 분이셨을 것 같다.


김장하 선생의 지원은 언론, 문화, 시민사회, 학술, 여성, 농민은 물론 앞서 김임섭 씨가 이야기한 노동단체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데가 없었다. p273.

돈 벌면 금뱃지 욕심 다들 부리는 요즘 세상에 완벽한 깔때기 같은 분이지 않나 싶다. 일단 들어오는 돈은 엉뚱한 데로 전혀 새지 않고 고스란히 한 곳(선생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곳)으로만 흘러들어가게 하셨으니... 진주 지역든든한 버팀목이자 참 어른이셨다.


김장하 선생은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 대학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만큼 기대가 높은 것이다. 경상국립대 남명학연구와 남명학관 건립에 13억 원을 기부한 것도 모자라 2021년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재산 34억 5,000만 원을 경상국립대에 기증한 것만 봐도 그렇다. p278~279.

결국 수십억 남은 재산마저 기부하고 2022년 5월 남성당한약방을 폐업하고 60년만에 은퇴하셨다. 나중에 김장하 선생 몰래 비밀리에 감사의 장을 마련한 것은 감동 그 자체였다.


“버렸으면 미련없이 버려야지. 줬으면 그만이지. 감사패 그거 뭐하려고….” p281.

경상국립대 수증증서 전달식에 관한 얘기다. 자신을 드러 내는 걸 무척 싫어하는 선생은 계속 거절만 할 수 없어 결국 허락은 했지만 못마땅한 눈치다.


김장하 선생이 하신 훌륭한 일은 워낙 많아서 다 열거하지 못했고 간략히 책 속에 인상 깊었던 내용만 설명했다.


“호의에 대하여”에 관한 내용은 다음 편에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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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를 찾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