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김장하 문형배
"나와 너" 김장하 문형배
한 사람이 베푼 호의는
한 사람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선한 영향력
문형배 판사의 "호의에 대하여"는 그 '받은 마음'이 한 인간의 내면에서 어떻게 정의(正義)로 꽃피웠는지를 보여준다. 문형배 판사가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은 이 두 책을 잇는 중요한 단서다. 그러나 이 관계를 ‘성공한 장학생 서사’로 읽는 순간, 가장 중요한 지점은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도움을 삶 속에 어떤 방식으로 남겨두었는가다. "호의에 대하여"는 감사의 책이 아니라, 받은 마음에 빚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듬어 온 한 인간의 사유의 기록이다.
김장하의 베풂은 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문형배라는 한 사람 안에서 언어가 되었고, 사유가 되었으며,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어쩌면 어떤 순간에는 헌법을 읽는 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은 현재를 향한 문장이 아니라, 아주 먼 미래를 향해 던져진 말이었을 것이다. 베풂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옮겨갈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장하 선생의 가르침을 문형배 판사는 어떻게 살아가면서 체화했는지 조금 들여다 보자.
“이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것이다.” 김장하 선생의 말씀은 제가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지침이 되었습니다. p5.
우리는 흔히 특별한 영웅이나 강력한 권력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만, 김장하 선생은 이름 없는 평범한 이들의 성실함이 사회를 버티게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문 판사는 이 가르침을 이어받아, 법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법을 아는 사람에게 착하기를 요구할 것인가? 불가능은 아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남는 방법은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다. 그 길만이 나쁜 사람을 지켜주는 도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p21.
법을 아는 나쁜 사람들에게 피해를 보는 건 법을 모르는 착한 사람들이니 착한 사람들이 피해를 덜 볼 수 있게 법을 좀 알자라는 취지의 내용이다. 책 속에는 주의해야할 여러 사항 들이 잘 소개되어 있다. 아무리 조심하고 살펴도 사기 당하는 세상이라 신중하게 법적 계약들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판사가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멀쩡한 사람을 죽일 수는 있다. 선고 전날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산책한다. 내일의 판결을 머리로 그려보고, 결론에 자신 있는지를 검증한다. p47.
자신의 판결의 엄중함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올바른 판단을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을 다하는 판사의 고심이 엿보인다. 조정이나 화해가 가능한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 판사의 결정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오늘의 자네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자네를 도운 게 있다면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p86
사법시험 합격 후 김장하 선생 찾아뵙고 선생 아니었으면 오늘의 본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김 장하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끊임없이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다. 문형배 판사가 말하는 선순환의 공동체는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김장하 선생의 말씀은 자신에게 받은 호의를 사회에 감사하고 또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라는 말씀이신 거다. 이렇게 이어진 호의의 연결 끈이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릴 때 말을 들을 수 없어서 지금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하였다. 아! 대화란 듣는 게 먼저이고 말하는 게 뒤구나. 나는 말을 먼저 하고 남의 말은 나중에 듣는데... p95.
대화의 기본은 우선,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아는 것 아닌가 한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는 원고와 피고측 말을 얼마나 신중하게 들어야 할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문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 전에 피고와 원고를 조정과 화해의 장으로 이끌려고 했던 이유도 서로를 배려하고 경청하게 함으로써 서로에게 명분과 실리를 안겨주기 위함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1.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2.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3.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p108~109
김장하 선생의 독서와 문형배 재판관의 독서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른으로서 올바른 선행을 베풀면서 몸소 가르침을 전하는데 독서가 제대로 한 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듣는 이에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들이었으니...특히 문형배 판사에겐 판사로서 보다 공정하고 올바른 판결을 하기 위해 좀 더 폭넓은 지식과 지혜와 소신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김장하 선생도 문형배 판사도 독서를 하지 않았더라면 선순환 공동체를 꿈이나 꿀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키우기 위해 못 배운 사람이 배우고 또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과정에서 비단 금전적인 지원 뿐만 아니라 김장하 선생과 문형배 판사는 책 나눔을 자연스럽게 실천해 오셨으리라.
김종훈 변호사는 “우리의 스승이자 벗인 한기택 판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년이 되었습니다.”로 시작한 추도사에서 “나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남들이 죽었다고 보건 말건, 진정한 판사로서의 나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고인의 말을 인용하였다. p127~128.
문형배 판사는 한기택 판사를 통해 "지위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법과 양심에만 집중하는 것이 판사의 숙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김장하 선생이 아무 대가 없이 베풀었던 무욕(無欲)의 정신이 법조인의 세계에서는 '공정한 판결'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형배 판사가 승진이나 큰 욕심없이 지방에서 판사생활을 유지해 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열심히 하다보니 문재인 변호사의 눈에 띄어 나중에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자 헌법 재판관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강연 때 계속 하셨던 말씀이 그냥 욕심 부리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하니 나중에 결국 인정 받더라는 것이다.
트위터에 자살을 예고한 사람이 있다는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지금 자살을 생각하시고 계신 분이 있다면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 ‘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만 외치면 어느 순간 ‘살자살자살자…’로 들릴 것입니다. 실패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살에 실패하면 사는 것입니다. p130.
그의 말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벼랑 끝에 선 이가 절망의 언어를 단 한 뼘만 비틀어 삶의 의지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건네는 따뜻한 구원이다. 실패조차 삶의 기회로 승화시킨다. 이는 김장하 선생이 아무런 조건 없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실패해도 괜찮으니 그저 사회에 감사하며 살라"고 했던 무조건적인 지지와 닮아 있다. 판결문으로 누군가의 유죄를 확정 짓는 권력보다, 단 한 마디의 글로 누군가의 생명을 붙드는 호의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함을 문 판사는 몸소 보여준 것이다.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에 관계한다면 나는 기다릴 것이다, 그가 행복할 때까지.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과 무관하다면 나는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연결될 때까지.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나는 맘껏 누릴 것이다. p143.
이는 김장하 선생이 자신의 재산을 "병든 이들과 불행한 이들에게서 거둔 이윤"이라 정의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그 지독한 윤리와 맞닿아 있다. 그의 행복은 '성공'이라는 목표에 있지 않고, 타인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라는 목적에 있다. 결국 나의 행복으로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문형배 판사의 행복론이 엿보인다. 호의를 사회에 베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말이다.
우포늪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11시였다. 자연이 먼저였고 사람은 나중이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 자연의 주인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포늪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가슴속에 각인하였다. p147.
나무를 무척 사랑하고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서 느낀 문 형배 판사는 진주 남강 살리기 등 환경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김장하 선생하고 궤를 같이하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중학교 동창생끼리 언저리산악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산행을 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이름은 정상을 고집하지 아니하고 산언저리에서도 언제든 산행을 멈출 수 있다는 뜻에서 정회장이 붙였다. p152.
"김장하 선생은 평생 어떤 지위나 명예라는 '목표'를 쫓지 않았다. 그저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회의 '언저리'를 지켰을 뿐이다. 문형배 판사는 그 뒷모습을 보며, 판사라는 직업을 '성공의 목표'가 아닌 '공익을 실현할 목적의 수단'으로 삼았다. 정상에 서서 군림하는 판사가 아니라, 법의 언저리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판사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의 삶은 정상을 향한 수직적 상승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살피는 따뜻한 수평적 동행인 것이다."
나무를 좋아한다. 나무는 언제든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그 존재를 잊을 때나 그를 찾을 때나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p158.
많이 알지만 깊게 알지는 못하는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고 했다. p176.
문형배 판사가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무가 김장하 선생과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꽃피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타인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삶.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가는 주목처럼, 김장하라는 나무가 뿌린 씨앗은 이제 문형배라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 우리 사회의 원칙을 지탱하고 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는 말과 함께 백 일 동안 피어있는 꽃이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68.
판사라는 화려한 직위가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백일홍을 보며 권력의 무상함을 경계했던 그는, 지고 마는 꽃이 되기보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버티는 나무가 되기를 택했다. 이는 평생 쌓아온 모든 것을 미련 없이 사회에 되돌려준 김장하 선생의 '줬으면 그만이지'인 비움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세네카에 따르면, 화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화를 늦추는 것이다. 처음부터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기 위해 화의 유예를 요구하라”입니다. (중략)
화에 대한 두 번째 대책은 화가 났을 때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는 것입니다. 거울 속 화난 자신의 얼굴을 보면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p186.
문형배 판사는 직접 코 앞에서 얼굴을 대하고 보니 화를 거의 안낼 것 같은 온화해 보이는 분이셨다. 김장하 선생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많은 분들이 증언한 바 있다. 선한 영향력 선한 얼굴 두 분은 참 닮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살아오면서 많이 부끄러운 대목이다. 힘들 때 좀 더 얼굴을 지키고 살 걸...좀 더 여유를 갖고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며 살 걸...
모스크바공국에서는 절도죄를 저지른 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그래서 모스크바공국에서 절도죄를 저지른 사람은 피해자를 죽였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 나오는 내용이다. p205.
법이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처벌'과 '엄벌'만을 앞세울 때, 오히려 더 큰 범죄와 비극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문형배 판사가 민사에서 단순히 형량을 선고하는 기계적 판사가 되기를 거부하고, 원고와 피고를 '조정과 화해'의 장으로 끌어내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법의 칼날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갈등의 뿌리를 찾아 해결함으로써 또 다른 비극을 막는 것이 법관의 진정한 책무라 믿었던 것다.
나머지 나무 얘기들, 책 읽고 짤막하게 썼던 리뷰들과 법원 이취임사 등은 꼭 책을 사서 읽어 보길 권한다.
그 행간마다 읽히는 고뇌는 우리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할 것이다.
김장하 선생은 살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 했고, 문형배 판사는 그 '남기지 않음' 위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한 사람의 깊은 침묵은 또 다른 한 사람의 당당한 태도가 되었다. 김장하 선생의 '줬으면 그만이지' 했던 그 무심한 호의는, 문형배 판사와 같은 인물의 삶을 통과하며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되었다.
여기서 방점은 문형배라는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 했던 한 사람에게 있지, 공부 잘하고 고위직을 거치며 성공한 판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김장하 어른은 그런 수많은 ‘문형배(보통 사람)’를 사회 곳곳에 풀어놓음으로써, 보다 따뜻하고 단단한 사회 통합을 꿈꾸셨을 것이다. 한평생 아픈 사람과 병든 사회만을 생각하며 자신을 녹여낸 김장하 선생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절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문형배 판사의 강연은 대학교 강단에서 조속히 계속 되길 바란다.
이 두 권의 책은 우리 시대에 참된 어른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 선한 영향력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지탱하는지를 묵직하게 증명한다.
2025년 12월, 문 판사님이 수십 년 만에 겨우 대접했다는 7,000원짜리 해물탕 한 그릇. 그 소박한 식사 한 끼는 두 분 사이에 흐른 장구한 시간을 압축하고, 그 호의가 마침내 아름다운 선순환으로 매듭지어졌음을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장면이었다.
김장하 선생과 문형배 판사는 마르틴 부버가 말했던 또 하나의 완벽한 '나와 너'의 관계를 실천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많이 부족하지만 관심 가져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행복한 성탄절을 보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