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Nope to Maya!
낙엽이라는 것, 낙엽이 의미하는 것은 참으로 쓸쓸한 아름다움입니다. 낙엽은 아마 벌써 오래전부터 그렇게 물들어서, 그 최후의 황폐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떨어져 땅에 묻히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시험에 시달리고, 수예숙제에 시달리고, 입시제도 부활이라는 어른들의 횡포에 시달려서 눈을 뜨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이 날 한꺼번에 나무들이 단풍 들고, 낙엽 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매년 어느 날 갑자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새삼 아! 하고 숨을 삼키면 왜 그렇게 가슴이 싸아하게 아파 오는지요. p98~99.
마야에게 낙엽은 '쓸쓸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삶에 시달려 눈 뜨지 못했던 시간을 깨고, 갑자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발견했을 때 가슴이 '싸아하게 아파 오는' 순간, 마야는 고독의 첫 번째 파도를 경험한다. 이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깨닫는 감정의 진통이었다.
벗은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그가 가장 겸허한, 아니 가장 가난한, 아니 가장 당당한 자세로 겨울과 맞서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떼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떼어내 버린, 가장 본질적인 것 이외엔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난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거듭 태어나는 꿈을 사람이 가질 수 없다 해도, 만약 그 사람이 그에게 주어진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인간이 가진 온갖 약점-다시 말해서 탐욕과 허영 따위의 군더더기를 벗어던지고 인생의 막바지에서 유감없이 다가올 죽음과 당당히 맞서 있을 때, 어쩌면 나목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요. p99.
마야의 사색은 잎을 모두 떨군 나목(裸木)으로 이어진다. 나목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겸허하며, 가장 당당한 존재라고 마야는 생각한다. 떼어낼 수 있는 모든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본질만 남긴 완벽한 아름다움. 마야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인간도 탐욕과 허영을 벗어던지고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할 때, 나목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중학생의 고독이 이렇게 깊은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니 내가 마야한테 반하나 안 반하나...
10월보다 11월에 우리는 좀 더 고독해진 것 같으며, 10월보다 11월에 우리는 좀 더 정신적으로 허기져 있으며, 10월보다 11월에 좀 더 문화행사를 관람하러 쫓아다니며, 10월보다 11월에 우리는 좀 더 늦게까지 깨어있게 되고, 10월보다 11월에 좀 더 책을 읽으며, 10월보다 11월에 더욱 친구를 구하게 되며 10월보다 11월에 좀 더 편지를 쓰게 됩니다. p.103.
가을이 깊어질수록 마야의 고독은 더욱 짙어진다. 10월보다 11월에 더 고독해지고, 정신적으로 허기져 문화행사를 쫓아다니고, 늦게까지 깨어 편지를 쓴다. 허기진 마음을 달래려는 마야의 노력이 가을의 쓸쓸함과 맞닿아 있다.
오래 기다린 첫눈이 왔습니다. 첫눈 오는 날 길을 배회하지 않고, 첫눈 오는 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 배기는 사람이 있을까요? (중략) 그렇지만 내 편지는 항상 별 뾰족한 이야기라고는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라도 끄적이지 않고는 왠지 눈 오는 날의 내 흥분을 가라앉힐 도리가 없는걸요.
p108.
이 고독은 첫눈이 오는 날 절정에 이른다. 첫눈 오는 날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지 않고 배길 수 없지만, 그 편지는 별 뾰족한 이야기가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마야는 고백한다. 이는 고독 속에서 어떻게든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야의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어디선가 인간의 손은 고독한 아메바가 모여서 된 것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싶어 하는가 보죠. 만약 아메바에게도 감정이 있어 고독을 느낄 줄 안다면 틀림없이 고독한 아메바이겠지요. 그렇다면 내 심장도 고독한 아메바가 모여서 된 것인 모양입니다. 거리에서나 버스 속에서 나는 분명히 누군가와 만날 것만 같았습니다. 아주 반가운 어떤 사람을 만나 호주머니에 찌른 손을 빼고 손길을 서로 모아 잡고 다정한 시선을 나눌,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그런 사건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p109.
결국 마야는 그 답을 '고독한 아메바'에게서 찾는다. 인간의 손은 고독한 아메바가 모여서 된 것이기에,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마야의 심장 역시 고독한 아메바가 모여 된 것이라 느끼면서, 거리나 버스 속에서 호주머니에 찌른 손을 빼고 손길을 모아 잡을 아주 반가운 사람을 만날 것만 같은 희망을 품는다. 고독이야말로 인간을 서로 연결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혹 마야는 마음속으로 현태 오빠를 떠올리고 있을지도...
미술관에서는 김 환기 화백 추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미국 체류시절에 그린 작품들의 대부분이 무수한 네모진 공간에 작은 점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비슷한 그림이 하나의 전시실을 꽉 메우고 있었는데, 나는 그 방을 들어서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무수한 점을 찍고 있을 때의 화가의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 네모진 공간에 갇힌 점들은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 같기도 하고, 몹시 추위를 타는 작은 영혼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들 같기도 해서 전율할 수밖에요. 그 무수한 별들과 작은 영혼과 눈들에 갇혀서 그 화가는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텅 빈 덕수궁을 걸어 나오며, 내리는 눈을 맞으며,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기 위해 엄청난 진통을 견디는 예술가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되새겼습니다. p110.
마야의 고독은 미술관에서 가장 고차원적인 위로를 받는다. 김환기 화백의 점화(點畵)에서 마야는 커다란 충격을 느낀다. 무수한 네모진 공간에 갇힌 작은 점들이 별 같기도 하고, 추위를 타는 작은 영혼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들 같다고 해석한다. 마야는 그 점들을 찍어냈을 예술가의 마음과 '엄청난 진통을 견디는 예술가들'의 고통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결정체인 예술을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자신의 고독을 예술가의 창조적 고통과 연결 지어 승화시킬 줄 아는 마야의 성숙함은, 단순한 중학생의 감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깊다. 마야는 고독을 통해 비로소 세상의 아름다움과 창조의 의미를 깨닫는다.
마야에게 고독이란 외톨이가 되는 감정이 아니라, 성장의 가장 중요한 통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험과 숙제에 갇혀 눈을 감고 살았던 마야는, 고독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본다. 낙엽의 아름다움에서 삶의 본질을 읽고, 예술가의 고통에서 위안을 얻으며, 결국 고독한 아메바의 손처럼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마야의 고독은 그녀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열심히 사색하고, 깨어있게 만들었으며, 더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이끌었다. 사춘기, 혹은 외로움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고독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다. 고독 속에서 그들이 나목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로 빛날 수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