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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Aug 28. 2024

우리 엄마는 아모레 아줌마셨어

엄마귀에 선영인 종일 울고 있었어


그 옛날에는 화장품 매장이 없이, 화장품 판매 아주머니들이 화장품을 들고 직접 집집마다 방문하여 판매를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시절, 우리 엄마는 제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했었던 아모레 아줌마이셨습니다. 무려 15년간이나.


저는 완전 늦둥이로 태어나서 우리 큰오빠가 11살일 때 태어났고,  위로는 8살 터울의 언니 그리고 6살 위의 작은 오빠가 있습니다. 아직 어렸었던 저 외의 삼 남매가 모두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당시 30대이셨던 저희 엄마는  넉넉지 않았었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하시지 않으면 안 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네의 이웃 할머니에게 약간의 용돈을 드리고 3살 베기 아기였던 저를 맡기시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일을 가셨어야 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말을 너무 빨리 배워서,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제 돌잔치에 오시는 모든 분들의 손님  직접 배웅을 직접 다 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인의 생일이니 당연한 것이겠지요...


아무튼  저의  엄마께서는 어린 저에게  

“엄마가 얼른 가서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선영이 맛있는 거 많이 사 올게”라고 하시면, 

3 살베기 아가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거리며 방실 방실 웃으면서 엄마를 일단 보내드렸다고 합니다..


당시의 저희 가족이 살고 있던 집은 서대문구 홍은동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걸어 내려가시는 모습이 위에서 다 보이는데, 어느 순간 엄마가 아기의 눈앞에서 사라지면, 고래고래 세 살 베기 아기 선영이가 울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도 울면서 일을 가셨어야만 했었는데, 하루 종일 저의 울음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고는 맴돌아서 내내 가슴이 찢어질 듯 또 시리도록 아프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라는 동안 늘 그때 말씀을 여러 번 하시고는 하셨는데  또 그러실 때마다 엄마의 큰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셨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14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저는 여전히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고, 사무치도록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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