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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구이 할머니와 한판승

같이 한 일곱 시간

by 나탈리


| 70년대 방과 후 |



내가 여섯 살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일 학년인 오래전 그 당시에는 수업이 저학년들은 12시경이면 끝마쳤었고, 학교 앞에는 문방구, 떡볶이 집부터 많은 군것질 거리의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그날 처음 뵙는 감자구이 할머니이셨다. 한 할머니께서, 아궁이 하나위에 놓인 작은 프라이팬에 삶은 감자를 요리 저리 돌려가며 굽고 계셨다.


연탄불이라 시간도 오래 걸렸었지만, 감자를 한쪽으로 돌리실 때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감자의 모양과 고소한 냄새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목욕탕 의자 같은 작은 통 위에 앉으셔서, 종일 감자를 굽고 계셨고, 실상 다른 자극적인 불량식품에 가까왔던 간식거리에 비해서, 꽤나 건강했던 통감자 구이는 어린아이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어서인지, 잘 팔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 집에 그만 가거라 |


내가 학교가 끝나서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가, 할머니를 발견한 후, 감자를 구우시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할머니 앞에 바로 자리를 잡고, 나도 쪼그려 앉아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었다. 할머니께서는 나의 엄마처럼 충청도 분이셨다.



" 이제 그만 보고, 집에 가거라, 엄마 걱정하신다"


" 괜찮아요 할머니, 엄마 아모레 아줌마 일 가셔서, 집에 아무도 없어요"


한 시간이 흘렀다.


할머니의 프라이 팬에는 열개 정도 되었었던 감자 중에 아직도 예닐곱 개는 남아있었다. 고소한 감자구이 냄새와 20센티 정도 바로 앞의 실물 감자구이에 나도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었지만, 집에 가도 딱히 할 일이 없던 여섯 살의 나에게는 집보다는, 감자를 구우시는 할머니를 보고 있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기에 허기정도는 참을만했었다.


손님이 오면, 할머니께서는 구워진 감자를 나무젓가락에 꽂으시고, 종이에 감싸서 주시곤 하셨는데, 정말 재미있고, 감자는 또 정말 먹음직해 보였다.





|할머니 전 괜찮아요|


세 시간이 흘렀다.


"이제 이만 집에 가~, 늦었어. 집에 가서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고, 울메나 할 일이 많아~"


"아니에오 할머니, 저는 괜찮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할머니를 그토록 부담스럽게, 바로 코 앞에서 자세히 관찰하며 귀찮게 해 드린 것 같아 너무 죄송하다. 왜 그렇게나 고집을 부리고 하루 온종일 할머니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인지...



다섯 시간이 흘렀다.


나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물을 한 사발 들이켜시고, 문방구 안쪽에서, 국에 밥을

대충 말아서 후루룩 급히 드신 할머니께서 다시 나오셔서, 식은 감자를 다시 굽기 시작하셨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종적을 감추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할머니께서는 남은 감자를 퇴근하고 가는 손님들에게라도 팔고 가실 작정이셨던 것 같다.




| 어? 손님 없어요 할머니 |


여섯 시간이 흘렀다.


할머니께서 감자 중에 가장 작은 것을 몇 번을 더 바삭하게 구우시더니, 한 개를 들으시고는 갑자기 나무젓가락에 꽂고 계셨다.



"어 이상하다, 손님이 없는데, 할머니는 왜 감자를 나무젓가락에 꽂으시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그 감자를 나에게 건네주셨다.


"이제 이거 묵고 어서 집에 가, 어둑어둑 해지자네, 어쩌, 부모님들 걱정하실 테니 어여"


" 할머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 이거 여기서 먹고 갈게요. “





| 너 왜 여기 있어? |


나는 할머니와 되도록이면 더 오래 있고 싶어서, 작은 감자를 아기 생쥐처럼 아주 조금씩 베어 먹고 있었고, 날은 그 사이 조금씩 더더욱 어둑해져서, 방과 후 일곱 시간이 지나 저녁 일곱 시가 다 돼 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영아, 너 이렇게 늦었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집에도 안 가고?"


엄마께서 아모레 일을 마치시고, 장을 보셔서 집으로 가시려고, 초등학교 앞으로 지나시다가, 감자 할머니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신 것이다. 나는 먹다가 반쯤 남은 내 감자를 엄마께 보여드리며,


"엄마, 할머니께서 이 맛난 감자를 주셨어, 나한테"


"아이코, 꼬맹이가 왠종일 여기 앉아서 집에도 안 가유, 다리도 아플 건데"





| 할머니의 감자 팝업 스토어|


엄마는 할머니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다 못 파시고 남은 감자를 다 팔아 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궁핍하셨던 상황에서 감자를 삶아 가지고, 연탄 하나 가지고 오셔서, 감자 구이 장사를 하셨을 할머니이셨을 텐데, 그 귀한 감자를 나에게까지 하나를 주셨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의 친한 동생은, 그 할머니가 참 고마우신 분이시기도 하지만, 일곱 시간 버티고 바로 앞에 앉아서, 결국 감자를 얻어먹고야 만, 한판 승의 여섯 살짜리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며, 크게 웃었다.


근데 절대로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할머니께 다시 가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었는데, 팝업스토어 형식이셨는지, 아니면 혹 그날 이후 나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셨는지 다시는 감자할머니를 뵐 수가 없었다. 생각지 않게 감자 할머니께 큰 폐를 끼친 거나 아닌지...




"할머니, 저 감자 얻어먹으려고, 하루종일 할머니 앞에서 감자구이 하시는 거 구경한 거 아니었어요. 엄마랑 말씀하시는 것도 똑같이 정겨우시고, 한 번도 가까이 지내보지 못했던 꼭 우리 할머니 같아서, 그냥 옆에 있고 싶었어요. 그때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구이 감자를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글쓰기 매직 |


글쓰기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왜냐하면, 몇십 년도 훌쩍 넘은 그 상황으로 드라마처럼 우리 자신만의 타임머신처럼, 그리고 순간이동처럼 어떤 시간이던 공간이던 우리를 마술처럼 데려다 놓으니 말이다.




갑자기 어두운 밤에 "선영아"라고 부르시며 나타나신, 천사 같은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의 엄마를 방금 보고 온 기적도 경험했다. 그래서 서툴지만, 계속 쓰고자 한다.


오늘은 감자 할머니 그리고 엄마를 보고, 기억하고, 만나게 해 준 감사의 글쓰기 날이다.



**이미지: Pexel,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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