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세상은 말로 가득 차 있다.
말, 이야기, 대화, 회의, 의논, 논쟁, 말다툼, 귓속말, 험담…
말하기에 능한 어떤 이들은 그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고, 말하기에 서툰 그 누군가는 그 압박감에 지쳐갈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 쓸데없고 불필요한 대화로 스스로에게 힘든 인생을 부여하는 사람이었다.
친하지 않은 혹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고자, 어색한 대화 속에서 억지로 공감대를 만들고, 나도 모르게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며, 나의 감정은 무시하거나 잃어버리는 일들도 많았었다. 그 결과, 돌아서는 순간 곧바로 밀려드는 " 하지 말걸, 괜한 말을"이라는 후회가 밀려오곤 했었다.
어떤 이들은 조용하면서도 그 존재감을 눈빛, 태도 그리고 그들의 침묵으로도 강인하게 나타내고는 한다. 그들의 침착함 속에는 자존감, 자신감과 나름의 자신만의 뚜렷한 관계의 경계가 공존하는 듯하다.
나는 꼭 배우고 싶어 졌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하였다. 조용하고 침착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그런 강단 있는 사람으로 다시 리셋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나는 침묵하기로 했다.
말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일단 다 듣기를 우선시하기로 하였다. 필요 없는 대화는 피하고, 먼저 나의 현재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들을 자아 성찰의 기회로 값지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으로 지속해 보는 "침묵" 속에서 당연히 더욱 어색함과 불편함이 밀려오겠지만, 차라리 나는 그 조용함과 어색함, 그리고 불편함을 기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차라리 강인한 고요함으로 나를 무장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더 깊게 생각할 여유가 생겨날 것이고 ,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상대에게 내가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지보다 우선에 둘 수 있는 현명함도 배우게 될 것이다.
꼭 필요한 순간에만 하는 나의 말들은 다른 이들에게 더욱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조금 늦었지만 깨닫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위안한다. 그래서 나의 진심이 중요한 순간에 정확히 "말"로 잘 전달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평소 조용하고 침묵하는 사람의 말은 더 큰 힘을 지녀서, 누구나 더욱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질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남들에게 처음에는 조금은 까칠해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리하여서 후에 나와 가까운 사람이 되게 된다면, 나와의 관계를 더욱 존중하게 될 것이고, 그 관계에 더욱 귀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아지처럼 누구나 환영하고 반기는 쉬운 사람의 나는 어제부로 지구에서 소멸시키기로 하였다. 사람들에게 굳이 적대적일 필요까지는 없으나,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지인 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 확실한 경계를 적립하는 것이 우선 가장 필요한 시작이다.
나는 이제는 침묵하는 일상 중 여러 번 심사숙고 후에 말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이제 "조용하고 말 수가 적은 침착한 사람"으로 나를 알아가고,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 그런 프로퍠셔널한 관계가 되기를 원한다.
나는 이제 꼭 필요할 때만 말하기로 하였다.
쓸데없이 분위기를 이끌면서도, 정작 꼭 필요한 경우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어젯밤 사망한 자신으로부터 배우기로 하였다. 지금보다는 침착하고 차분하게 또 천천히 소리 내어서 말할 것이고, 그 말속에는 여러 겹의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더 이상 쉽게 공격하고 쉽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침묵은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속에 담긴 진심과 나의 순도 백 프로의 감정으로 귀한 사람들과의 신뢰는 더욱 쌓여 갈 것이다.
나는 어제 나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
다정한 수다쟁이, 분위기 메이커,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강아지 같은 사람, 인심 좋고 다 퍼주는 사람, 그리고 쓸데없는 말도 자주 하곤 하였던 나는 어젯밤에 심해바다에 던져졌다.
앞서서 다른 이들의 일까지 도맡아서 도와주고는 하는 나의 선한 의도는 감사함보다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은, 결국은 안 해도 될 그 "말"때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 내려진 사망선고를 겸허하게 수용하기로 했다.
오늘 나는 침묵으로 무장한 더욱 강한 내면을 지닌 나로 새로 태어났다.
**이미지: Pexel,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