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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차~암 가지가지~헌다!|

-엄마 마음-

by 나탈리


| 어쩌다 엄마의 아픈 손가락 |


우리네 결코 길지 않은 인생동안 우리는 참으로 별의 별일들을 다 겪으며 살아가고는 한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한번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아도, 나의 인생의 여정길에는 정말 다양하고 흔히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 그리고 선뜻 갈 수 없는 막다른 길목들 까지도 아주 가지가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제일 세상에서 잘해주고 싶고,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가장 자랑스러웠던 딸인적도 물론 있었었지만, 결국엔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리기도 말았다.


게다가 늘 멀리 타향에 있었기에, 엄마에겐 너무 보고 싶고 그리운 딸이기도 하였고, 편찮으실 때 그리고 정말 딸이 필요한 그 순간에도 옆에서 돌봐드리지도 못했었기에, 늘 너무 죄송스럽고 또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이 아프기만 한 불효녀가 되어버렸다.






| 너도, 참 가지가지 안다|


평탄치 못했던 나 홀로 해외살이 중 온갖 풍파를 겪고 살다가, 나는 나름 큰 각오를 가지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평생 할 수 있는 직업, 외국인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안정된 전문직을 갖고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었다.


40살인 내가 그것도 뉴질랜드에서 약대에 입학하기로 하였다고, 한국에 계신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말씀드렸었다.


엄마께 말씀을 드리니, 몇 초간 아무 말씀을 안 하시다가 하신, 그 한마디에 정말 그동안 나의 어른 시기 20년이 다 담겨 있었다.


참고로 나의 엄마는 충청도 분이시다. 엄마의 충청도 사투리와 억장 터지시는 그 억양, 그리고 사이사이 큰 한숨소리까지 살려서 들으면, 그 누구라도 훨씬 크게 뇌에 바로 한마디 한마디가 선명하게 꽂힐 것이다.



'너도, 차~~~~ 암 가지가지~~~~ 허언다... 잉?"








| 그냥 편히 살아라 |


그렇다. 이 세상에서 엄마만큼 나를 잘 아시는 분도 없으실 테고, 내가 생각해 봐도 정말 너무도 많은 가짓수의 엄청난 일들을 벌이고, 또 그 벌려놨던 일들을 수습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그 모든 과정들을 다 보신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신 나의 엄마이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엄마에겐 가장 마음이 쓰이셨던 사랑하는 막내딸이 그 멀고 낯선 이국땅에서 그것도 홀로,


더 이상 "도전"이라는 이름하에 고생 좀 그만하고,

그냥 지금 그 자리에서라도 편안함과 만족을 찾고 살았으면 하셨던 모든 근심과, 우려와 그리고 한숨이 섞인 짧지만 아주 묵직한 한마디이셨다.






| 역시 돈키호녀 |




그동안 나온 대학만 12년간 세 군데, 그리고 대학 외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받은 교육과정을 길게는 9개월 짧게는 5개월 정도 수료 후 받은 자격증도 넘쳐나는 나였던 것이다. 테솔자격증과 통역사 자격증 과정도 뉴질랜드에서 마쳤으며, 한때는 부동산 중개업 자격증 그리고, 보험회사에 근무할 당시에는 보험과 금융 관련 자격증까지 다 따서 모았었다.



그렇지만 그 다양하고 많은 공부들과 그동안 내가 일했었던 직종들은 다들 들으면 의아할 정도로 서로 연관성이 없었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직종으로 옮길 때에는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시작해야 할 만큼의 새로운 모험의 분야가 펼쳐졌었다.


나의 별명이 왜 "돈키호녀" 인지가 살짝 힌트가 깃들은 경력과 경험이라고나 할까.....







| 글쓰기 새내기 |


46세부터 약사가 되어서 10년째 약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2달 전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였고, 감사하게도 3번의 도전만에 2024년 8월 27일, 브런치 작가의 합격 메일을 받았다.


약대 합격과 버금갈 정도의 기쁨과 감사함에 벅찼고, 그리고 감동의 눈물도 흘렸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우리의 한국어로 나의 마음속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쓰는 데에는, 26년이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꼭 걸어 잠가 둔 소심한 나와의 깊은 대화 끝에 드디어 조심스럽게 열기로 한 나의 방문이었다.







| 오늘이 가장 어린 날|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시작하는 데에는 늦은 때는 없다고 믿는다.


글쓰기와 함께 다시 최근에 시작한 공부는, 현재 7 개월째 독학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는 일본어 공부이다. 일본에 몇 번을 여행을 한 후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쿄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도 있기에, 일본어 언어 능력시험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날 중에서

가장 어리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시작하기 제일 좋은 날"








| 소심한 큰 용기|



다른 기존에 많은 책을 내고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작가님들도 브런치 작가로서 많이 활동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처음에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었기에 나의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미숙한 나의 글들을 덜컥 내놓기가 의기소침해졌고 많이 부끄러워졌었다.


그러다가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는, 작가가 본업이 아니신 다른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시면서, 글을 쓰시는 분들이 더 많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의 직업, 인생 그리고 사람관계와 삶에 대한 각각의 다양한 시각들의 글들을 보고 싶었고, 또 해외에서 생활하시는 작가 분들도 많으시기에, 브런치에서 메가진 "이색 직업 해외 브런치 작가의 삶"을 발행해 보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지난 27년간 섬나라, 뉴질랜드에서 또 그리고 나만의 마음의 섬에서 고립되어 살아왔던 나의 내면에는 너무도 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또 추억과 아름다운 기억들이 사진첩처럼 내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음을 글을 쓸 때마다 나 자신도 놀라는 요즘의 날들이다.







|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나|



약사로 일하고 또 생활하면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 건강과 삶 이야기, 또 글쓰기 신생아로서 처음에는 기고, 걷고 또 나중에는 뛸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과정과 일대기를 같이 나누고 싶다.



나의 느낌, 생각 그리고 기억들을 나의 부족한 표현력과 필력으로 적어 내려가고 있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나"라는 인생의 테마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이미지: Pixabay, 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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