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안 먹는 약사
어릴 적에는 무슨 약인지 무슨 증상인지도 모르지만, 온 식구가 아플 때에는 나이와 상태에 상관없이 동네의 어귀의 엄마의 단골 약국인 국도 약국에서 지어온 "마이싱" (나중에 알고 보니 항생제의 일종인 마이신이었다)을 어른들은 캡슐채 삼키고, 아이들은 캡슐을 열어서 숟가락에 물과 함께 녹여서 주셨던 우리 엄마에게 "마이싱"은 만병 통치약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수십 년 후 약사가 된 내가 지금 와서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생각만 해봐도 아찔하고 위험 천만한 의료사고 같은 약물 복용을 우리는 일상처럼 겪어내고 또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그 시절을 잘 견디어 왔다. 다만 웬만한 항생제는 잘 듣지 않도록 몸에 항생제 내성이 생겨나서 진짜 아플 때에는 우리 가족 모두는 꽤나 강하고 긴 항생제 투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40세가 될 때까지도 내가 약사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산수에 능통했던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접한 수학은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우치고, 조기 수포자로서 모든 문과 과목들을 거의 만점 가까이 맞고서야 문과 전공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나였기에 이과 과목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직업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뒤늦은 나이인 40대에 한국도 아닌 뉴질랜드에서 약대에 도전을 한 나에게 충정도토박이 울 엄마께서는 지금 까지도 평생 잊을 수 없도록 큰 울림이 되어주는 말씀을 한마디 해주셨다.
"너도 차~암 가지가지 헌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그 말씀이 결코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굵고 짧은 엄마의 한마디는 참으로 나의 40년 인생 이젠 50여 년 인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가지가지하고 있고, 그러한 인생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귀한 마이싱으로 아이 넷을 건강하게 잘 키워내셨는데, 그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엄마께선 예쁘고 똑똑하다고 자부하셨던 엄마의 애지 중지 막내딸은 30대 초반에 외국땅에서 무일푼 피난소 행까지, 그동안 썩어 문드러지셨던 엄마의 해진 가슴인데, 이젠 또 40이나 먹은 막내딸이 안 봐도 실패의 내리막에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에 올라탄 것 같은 결정인 약사 도전에 어찌 엄마께서 환영과 지지를 보내주셨을 것인가...
힘든 살림살이 중에도 아이들을 위해서, 그 당시 최고의 어린이 영양제 "원기소", 최고의 소화제 "가스 활명수" 그리고 최고의 활력소 "박카스" 혹은 설탕물 그리고 만병 통치약 "마이싱"까지 엄마의 마법의 약통은 때로는 유효기간 표시도 안된 약들마저도 고이 간직되어 있었고, 엄마는 진심으로 믿고 계셨을 것이다.
" 아프지 마라 내 귀한 새끼들아. 엄마가 귀한 마이싱으로 다 낫게 해 줄 테니”
엄마의 애틋하고 간절한 바람과 사랑 덕분이었을까, 우리 여섯 가족은 실제로 그 누구도 아무런 부작용 없이 대부분의 감기 몸살 혹은 배앓이로부터 마이싱과 함께 회복을 하였고, 그리하여 엄마에게 "마이싱"은 역시나 잘 듣는 마법의 만병통치약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상비약이 되었나 보다.
그로부터 40여 년 후 나는 뉴질랜드에서 약사가 되었고, 현재 10여 년째 약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약사인 나는 약을 극도로 꺼리고 되도록이면 피하려 하고 있다. 내가 항생제를 먹은 적은 거의 10여 년 전 손톱을 물어뜯어서 생긴 엄지 손가락의 염증이 너무 심해졌을 때였다. 약을 좋아하지 않아서 오랫동안 복용을 하지 않아서 인지, 퉁퉁 부었던 엄지 손가락이 항생제 한 알을 먹으니 두어 시간 만에 가라앉는 강력한 효과를 보았다. 물론 그 후로 지금까지 항생제 복용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약복용의 장점과 단점 중에서 장점이 더 큰 경우에는 당연히 약을 복용하는 것을 모든 의료진들은 추천한다. 항생제를 받으러 오시는 환자분들 중에 몇 개월 안에 같은 혹은 다른 종류의 항생제 처방전을 가지로 오시는 분들이 꽤나 많다. 항생제를 자주 복용하게 되면, 우리의 몸에는 예방 접종과도 같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들도 내성이 생겨나서, 더 강하고 복합적인 항생제를 써야만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약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웬만하면 몸의 면역 자체로 버티려 노력을 하고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건강한 몸 덕택에 대부분 약의 도움 없이 이겨내고 있지만, 통증이 심할 때에는 안전한 진통제도 있기 때문에, 지시된 사항대로만 복용한다면 부작용 없이 힘든 시기를 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몇 시간 만에 숨이 멎고, 이틀 만에 의사 선생님께서 가망 없다고 하셨던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동네의 작은 의원의 의사 선생님께 매달려서 아이를 낳으신 당일부터 보름동안 핏덩이를 안고 통원치료를 받게 해 주셨던 약물 치료와 절대 포기 하지 않으셨던 엄마의 강한 모성애 때문이라고 또한 믿고 있다.
다만 중년의 내가 별다른 질병이 없고 가끔 겪는 두통이나 감기 증상은 자연 치유시기동안 몸의 면역을 키워주는 수분 섭취, 신선한 과일과 야채 섭취 그리고 아침마다 하는 30분의 스트레칭 그리고 간헐적 단식으로 약을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약이 꼭 필요한 질병에는 반드시 의사와 약사의 지시대로만, 그리고 본인에게 처방된 약만 드시기를 권해 드린다. 가족이나 친구의 약을 같이 드시거나, 전에 먹다 남은 항생제 2-3일 치를 임의대로 드신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삼가시기도 강조해 드린다.
가장 간단한 한마디로 오늘의 글을 요약하자면,
"저는 약을 싫어하는 약사입니다. 그렇지만, 약으로 얻는 건강상의 이득이 약으로 인한 해보다 클 때에는 꼭! 의사나 약사의 지시대로만 드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오늘도 약 없이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미지: Pexel, Pixa 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