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에게,

by 회사원z

안녕, 일교차가 큰 요즘이야. 감기에 걸리진 않았니.

어제는 오랜 친구 예진이를 만났어.

많은 아픔을 견뎌내고 굳은살이 생긴 예진이는 한층 단단해진 모습이었어. 담담하면서도 여전히 따뜻한 얼굴을 보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지 느껴졌어. 그래서인지 괜히 꼭 안아주고 싶더라.


스물일곱의 나는 유약했고, 늘 누군가에게 기대려 했어. 그런데 예진이는 혼자 이별이라는 슬픔과 삶이 주는 시련을 묵묵히 걸어왔더라. 그게 참 부럽고, 또 대단해 보였어.


어제는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어. 그들도 나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을 잊은 지 오래된 듯했어.

웃기지 않아?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결혼할 사람을 고르고, 평가하고, 재단하려 드는 걸까.

어쩌면 그 오만함에 대한 대가로 우리가 끝없이 공허한지도 몰라.


이제야 알겠더라.

사랑은 누군가가 대단해서 생기는 마음이 아니야.

오히려 그 사람의 그늘을 보고,

그걸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더라.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는지도 몰라. 사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빛을 내는 사람인데, 그 빛이 내 시선에서 덜 아름답다고 말했던 건 내 오만이고 편견이었겠지.


삶은 오만한 마음을 꺾을 시련을 주며,

그걸 통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몰라.

조금 더 겸손하게, 따뜻하게 타인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예진이는 여전히 사랑을 믿어.

나도 그러고 싶어.

우연히 스쳐간 사람에게서 ‘내 빈틈을 채워줄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빈틈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

끝이 상처뿐이더라도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후회는 없을 거야. 결국 어린 날의 내가 그토록 충만했던 건, 그런 용기와 끝없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돈이 많다고, 직업이 좋다고, 인정받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은 아니잖아.

나의 삶은 타인을 통해 증명되거나 보상받을 필요가 없어. 그저 하루하루 내가 쌓아온 노력으로 지금의 내가 된 것뿐이야.


삶은 공평해.

오만한 자에겐 굴곡을, 이기적인 자에겐 타인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을 주지. 그러니 나는 다시 사랑을 믿고, 예전의 나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보려 해.


P야, 이 편지가 네 마음에 오롯이 닿길 바라.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는 길은 멀어 보이지만,

그 길 끝에서 네가 평온하게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번민과 슬픔에서 P가 P의 발로 스스로 걸어 나오길 바라. 그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어.


더 원대하고 깊은 사랑을 주는 P가 되기를 바라며,

감기 조심해.


- 2025년의 가을 중턱에서, P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