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이민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3년 3개월 짧지만 길었던 나의 이민 생활이 끝났다.

by 에린남

2016년. 2년 반 동안 연애를 해온 남편과 결혼을 하기로 했다. 동시에 나는 인생에서 또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살고 있는 호주에서 살지,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살지를 말이다. 남편은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나는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호주행을 결정했다. 물론 아직 학생이던 남편이 학교를 끝마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유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호주로 이민을 떠나게 됐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찾아올지 가늠도 못한 채.


한국을 떠나던 날, 가족과의 헤어짐 앞에서 나는 너무도 나약해졌다. "1년에 한 번씩은 올게"라고 말했지만 우리 모두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나서 한참을 울었다. 가족이 아프거나 다쳐도 나는 당장 갈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비행기로 10시간이나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에 덜컥 겁이 났다. 돌이킬 수 없었다. 제발 다시 만나는 날까지 모두가 건강하길 바랄 뿐이었다.


서른 살, 뭔가를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평생 동안 살아왔던 나라가 아닌 곳에서 처음부터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도, 언어도, 낯선 것들 투성이인 나라에서 나는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한국에서의 서른은 모든 것에 익숙한 나이였다. 사람과의 관계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일을 처리하는 방법도 제법 능숙했다. 하지만 '0'의 상태가 된 이민생활에서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고, 좀처럼 나아가질 못했다. 나는 언제나 남편 뒤에 숨어있었고, 사회적인 인간이라고 자부했던 나는 비사회적인 것이 편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 내 모습조차도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답답했다. 호주라는 나라가 아니라 내가 답답했다.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서 행동하지 못했고, 시도하지 못했다. 계속 한국에 반쪽을 두고 온 기분이 들었다. 한국이 그리웠고, 한국에 있는 나의 사람들이 그리웠고, 한국에서 살던 내가 그리웠다.


2년 정도가 지나자 폭풍 같던 나의 타향살이에도 안정기가 찾아왔다. 호주가 익숙해졌고, 호주가 좋은 나라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 한 면에서는 여전히 아쉬운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이민 생활을 하는 동안 인간으로서 나는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 불안했다. 나는 단지 인간인 나로서 성장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남편은 한국으로 가서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제안이었다. 일생의 반 이상을 호주에서 살아온 남편은 나를 위해 큰 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저했다. 갑자기 한국에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들었다. 호주로 이민을 가는 것을 고민하던 시간보다 몇 배의 시간을 들여서 고민했다. 한 달, 두 달,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결정을 미루다 보니 어느새 나는 조금 변해있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이 달라져있던 나는 한국에 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힘이 생겼다. 어디서든 우리 둘이서 면 잘 살 수 있다고 확신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나와, 우리를 믿어보기로 했다.


한국으로 가는 것에 주저한 이유는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을 미워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좋아했다.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은 내가 한국에서 떠나올 때인 3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일종의 자격지심이다.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3년의 시간만큼 성장해있었고, 나는 계속 멈춰있었다. 그냥 이방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도망치듯 한국으로 가는 것의 모양새가 별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나를 딸로서, 누나로서, 친구로서 반겨주는 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서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무책임함이 한국으로 가는 결정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린 뒤, 감사하게도 호주에서 지내면서 조금씩 해나갔던 것들이 하나둘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3년 동안 쓰고, 그리고 뭔가를 만들던 것들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또 나는 힘을 얻어본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것들을 성실히 헤쳐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2019년 10월, 호주에서의 짧지만 길었던 3년 3개월 간의 이민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가족이 된 남편과 내가 맞이할 또 하나의 도전이자, 우리의 인생에서의 또 하나의 챕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앞으로 또다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겠지만, 지금은 걱정보다는 기대를 해보려고 한다.


글 Erin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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