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년 동안의 생각과 마음들.
1.
작년 10월에 한국에 돌아왔으니, 벌써 일 년이다. 3년 남짓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호주에서의 어리숙한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오자마자 느꼈던 것은 '역시 나는 지독한 한국 사람이구나'였다. 어느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는 한국 어디서나 익숙하고 노련했다. 내 몸이 한국을 기억했다. 그럼에도 처음 한 두 달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버튼을 찾고(호주에서는 신호등 버튼을 눌러야 보행자 신호가 바뀐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오른쪽을 살폈다(호주는 운전석이 오른쪽). 늦은 시간 까져 열려있는 쇼핑몰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더 바빠지는 이 곳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작 타국 생활 3년 만에 낯설어진 한국이의 모습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완벽하게 익숙해졌지만.
2.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우리가 한국으로 온 지 1년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1년 진짜 빠르다. 특히나 지난 1년은 너무도 허무하게 지나간 것 같아서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허무해하는 나에게 1년 동안 많은 것을 해냈다면서 격려해줬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내가 호주에서 3년 동안 살면서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이뤄냈다. 지난 5월에는 책을 출간했고, 프리랜서로 일도 하게 되었고, 그것들로 수익도 생겼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만족과 감사함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어쩌면 호주에서의 3년은 긴 훈련의 시간들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한국에서 조금씩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고.
반면에 고대했지만 아직도 하지 못한 일이 많다. 한국에 오면 남편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나 페스티벌, 연극, 뮤지컬, 전시 등 문화적 결핍을 잔뜩 채우고 싶었다. 그 날만을 고대하며 거의 3달 동안 한국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며 일상을 정돈시켰다. 정신을 차려보니 1월이었고, 이제 좀 누려보자 했더니 바이러스 시대를 맞이해버렸다. 기약 없이 미뤄진 소망들을 하나씩 마음에 다시 묻어 두었다. 좋은 날이 다시 찾아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 날은 꼭 올 거니까.
3.
미세먼지를 걱정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우리가 호주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다 이곳에 오면 힘들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말 심각하고,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가 많다고. 미세 먼지가 많은 날에 한국의 하늘을 기사 사진이나 지인들이 보내 줄 때는 미안함마저 들었다. 이곳의 하늘과 이곳의 공기를 보내 줄 수만 있다면 보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 오자마자 뿌연 하늘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기억한다. 근처에 있는 커다란 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목은 쾌쾌했고 온 몸에서 찝찝함이 묻어 나왔다. 아직 미세먼지의 절정인 봄이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다가올 봄이 설레기는커녕 두려워졌다. 그런데 웬걸 미세먼지 대신 다른 것이 찾아왔다.
바이러스 시대는 우리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몰아넣었다. 마스크 없이 사람을 대하고 접촉하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모든 이가 불행해졌지만, 하늘은 맑았다. 영문 모르게 맑은 하늘의 이유가 점점 명확해졌다. 바이러스의 위험으로 사람들은 일을 하지 못했고, 공장의 가동이 줄었다. 모든 이유가 아닐지 모르지만, 이 때문에 우리는 맑은 하늘과 전과 다른 자연을 돌려받았다. 처음에는 맑은 하늘을 마냥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지금, 피할 수 없는 두려움과 행복을 그냥 다 받아들였다.
쉴 새 없이 비가 내리고 몇 개의 태풍이 연달아 우리나라를 지나치던 여름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하늘은 파랗고 맑았다. 원 없이 맑은 하늘과 상쾌하고 청명한 가을 공기를 마음껏 누렸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어 집안을 환기시키고 숨을 들이마신다. 맑은 하늘과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이 행복이 '어떤 대가' 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자연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