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타임!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인다고 했다. 각자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은 힘겹게 시간을 맞춘 뒤 호주에 살고 있는 나의 스케줄도 확인한다. 나도 그 만남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등장하는 타임은 전투적인 식사시간이 끝난 디저트 시간이다.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긴 친구들은 내게 신호를 보낸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 최소한의 예의를 차릴 겸 머리를 반듯하게 묶고 '페이스 타임'을 건다. 연결이 되자마자 화면 안에 내 모습을 보고 황급히 립글로스를 찾아 바른다. "어머 내 얼굴 너무 심한데?"그 모습에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상태는 괜찮은 편이야ㅋㅋㅋ."
"아니 평소엔 어땠다는 거야?ㅋㅋㅋ"
페이스 타임이 연결되자마자 임신 7개월이 된 친구가 배를 보여줬다. 마른 체형의 친구 몸에 배만 뽈록 나와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앞으로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지금 보다 훨씬 커진다고 했다.
"내가 저 배를 실제로 못 보다니!"
임산부 친구를 위해 다른 친구가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포장이 예쁘게 되어있는 백화점 표 육아용품이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같이 고르고 샀을 텐데 하는 마음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부터 시답지 않은 이야기까지. 정말 아무 말 대잔치였지만 장장 두 시간을 꽉꽉 채워 영상통화를 했다. 친구의 아이패드가 배터리 부족으로 꺼지지만 않았다면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그 사이에 다른 메뉴까지 시켜서 또 배를 채웠다. 우리들의 대화는 마치 같은 테이블에서 나누는 것처럼 생생하고 열띠었다. 진짜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호주에 살면서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어서 아쉽다. 쓸데없는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편인 나는, 아주 오랫동안 봐온 친구들의 사사건건을 대부분 연도까지 기억해서 친구들을 괴롭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데, 멀리 떨어져 사는 동안의 순간들을 내가 모조리 알 수 없다. 나의 기억력 속에 친구들을 괴롭힐 좋은 정보가 늘지 않고 있다. 그것만큼 아쉬운 게 어디 있을까.
"내가 다 알아야 돼! 80살 되어서도 너희들의 모든 걸 기억해서 괴롭혀야 한다고!"
+)
대화 중에 기억이 남는 것들 중에 하나는 마이크 쪽 이어폰을 낀 친구의 목소리 보다, 다른 쪽을 끼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 점.(이 친구는 어릴 적부터 좋은 목청을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친구의 임부복을 물려받고 싶어 하던 나와 임신에는 순서 없다며 누가 물려받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미혼의 친구와의 대화.
글/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