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꽂힌 아이템
꽉 차 있던 냉장고가 금세 비워졌다. 텅 빈 냉장고는 우리가 장 본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는 증거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간다. 2년 정도 남편과 둘이 먹고 살다 보니 이제는 구입하는 품목도 정해져 있고 버젯도 비슷하다. 80불에서 최대 120불. (그 이상은 집에 가져가기 힘들어서 못 산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견딜 만큼의 양이다.
처음 우리의 장보기는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뭘 먹어야 할지, 뭘 사야 할지도 모른 채 마트에서 배회하다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들을 샀다. 대체로 일회성 짙은 메뉴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장보기 스킬은 발전해갔다. 집에 남은 재료는 뭐가 있는지 머리에 입력되어있어서 필요한 것들만 쏙쏙 골라 구입하는 합리적인 장보기를 하게 됐다. 싸다고 많이 샀다가 다 먹지 못해 쓰레기만 만들던 지난날과는 다르다. 우리는 프로 장보기 꾼이 되었다.
냉장고 채우기가 어려웠던 것처럼, 생필품 구입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한국이었더라면 집에서 쓰던 익숙한 물건들로 채우거나 주변에서 좋다고 추천받은 것들을 구입해서 썼겠지만, 호주에서는 직접 부딪혀야 했다. 빨래 세제도 그랬고 생리대도 그랬다. 우리에게 '살림살이' 영역은 인생에서 꽤나 생소했다. 그래서 하나씩 사 보면서 경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로 도전정신은 반값 세일 앞에서 생겼다. 반값이니까 별로여도 덜 아깝다는 게 우리의 이유였다.
남편과 둘이 똘똘 뭉쳐 열심이던 우리의 장보기에도 역경(?)이 있었다. 남편과 간혹 장 볼 때 작은 소란을 떨기도 했는데 이유는 이렇다. 나는 전에 먹어 본 적 없는 거라, 궁금해서 먹어 보고 싶은데 남편은 '먹어봤는데 맛없어'라고 해서 사려다가 말았던 과자나 군것질 거리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한국에서 남편에게 그랬었다. '그거 맛없어! 사지 마!') 그러다 언젠가는 반항심에 남편이 맛없다고 했지만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샀다. '나는 맛있을 수도 있잖아!' 한국에서 파는 '오뚜기 스프'를 생각하고 샀던 옥수수 수프는 너무 짜서 몇 입 먹지 않고 통째로 버렸고 과자는 퍽퍽하고 짜고 맛이 없었다. 남편의 말은 대부분 맞았다. 반항심은 수긍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맛없다고 하면 안 산다.
요즘에 남편과 내가 새롭게 꽂힌 상품이 하나 있다. 바로 변기 세척제이다. 몇 달 전, 반값 세일하던 세척제를 호기심에 구입해서 변기에 걸어뒀는데 향도 좋고 물때 같은 것도 끼지 않아서 완전히 꽂혀 버렸다. 그 뒤로 향 별로, 모양 별로, 제형 별로 하나씩 시도하고 있다. 생각보다 생명력이 짧아서 자주 구입해야 하지만 세일할 때 구입해두면 유용하다. 최근에는 주사기형 세척제를 구입했는데 변기에 부착하는 방법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내가 변기 세척제에 관심과 만족감을 갖게 될 줄이야.
매주 해야 하는 장보기가 귀찮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먹고 또 살아가야 하기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장을 본다. 두 손 가득 장을 봐오면 하루 이틀은 안 먹어도 배부르다. 하지만 사흘 나흘이 지나면 언제 가득했는지 모르게 바닥이 보인다. 가끔은 신기하다. 살림도 잘 모르던 사람 두 명이 살면서 굶지 않고 잘 먹고사는 걸 보면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장을 보고 집을 채우고 비워지기 전에 또 장을 보고 집을 채우며 살아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지루하고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잘 먹고 잘 살려면 그 방법이 제일 쉽다.
글/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