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뿌리내리지 못한 나.

어느 호주 이민자의 이야기

by 에린남
wis.jpg


한국에서 한국적인 삶을 넘치도록 살던 27살의 내가 호주에 처음 왔던 것은 해외 출장 때문이었다. 유난히 강도 높았던 스케줄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그때, 호주에 머물던 열흘 밤 내내 생각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


분명히 호주는 멋진 곳이었지만, 나에게는 퇴근 없이 일해야 하는 곳일 뿐이었다.(상사들과는 같은 호텔을 쓰고 있었고, 우리의 일은 매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호주 출장 두 달 전에 갔던 LA 출장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었다.


"먼저 가세요! 저는 아직 못 가본 곳이 많아서요. 이대로는 한국 못 가요! 안돼!!"


4박 6일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보낸 LA 출장의 끝은 '미국병(미국에서 살고 싶다 병)'이었지만, 호주 출장의 끝은 홀가분 그 자체였다. 호주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탈 때가 돼서야 퇴근하는 느낌이 들었다. 호주에 대한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다시 이 나라에는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지금 호주에 살고 있는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28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그리고 비자 기간인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을 사랑해서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슬프지만, '이렇게는 못 살겠다'였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워홀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었다. 치열하게 돈을 벌어 여행을 다니겠다는 목표도 없었고,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호주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돈만 벌기 위해 하는 힘든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싫었다. 결국 나는 도망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호주에서 살 일은 없겠다고.






그 후, 남편과 나는 1년을 넘는 시간 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은 여름과 겨울에 한국에 왔다.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사랑이었다. 우리는 꽤 많은 돈을 썼고, 몇 번을 반복하다가는 거지꼴을 면치 못할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절대 살 일 없을 것 같던 호주에 다시 오게 됐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일은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결혼생활에 만족했다. 하지만 나의 삶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반쪽 짜리 인간이라고도 말했다. 한국에 반쪽을 두고 온, 완전하지 못한 나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걱정과 관심은 온통 한국에 있는 것 같다. 마치 두 집 살림을 하는 기분이다.


나는 과연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있을까. 아니면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이 땅에 적응하는 중인 걸까? 어쩌면 뿌리내릴 생각조차 없는 것 아닐까. 그리고 판단했다. 이 땅에 뿌리내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이 건 호주의 문제도, 누군가의 문제도 아니다. 이 것은 온전히 내 문제였다.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뿌리내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로서 살기로 했다. 여행자라고 하면 여행하는 나인채로, 이방인이라고 하면 이방인인 나인채로, 그냥 이대로 붕 뜬 채로.



사실은 제대로 살고 싶다. 반쪽이 아닌 완전한 나로서, 붕 뜨지 않고 단단하게 설 수 있는 곳에서 미래를 그리며 살고 싶다. 그곳이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남편과 한국에 가서 사는 계획을 세워본다. 남편에게는 역이민일 테고, 나에게는 돌아가는 일이다. 나 혼자라면 편도 티켓을 끊고 룰루랄라 '우리 집'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지만, 하나의 가정이 호주에서 한국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살아야 할 집도 필요하고, 일자리도 필요하다. 당장은 즐겁겠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될 남편의 허전한 마음도 걱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한다. 아니 목표 일지도 모르겠다.






찬 공기가 콧등을 스칠 때, 달력이 얇아져갈 때, 첫눈을 기다리는 설렘을 느끼고 싶다. 남편과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고 싶다. 아침이 되면 밤새 쌓인 눈 때문에 짜증이 날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글/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