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에 대한 구별 없이, 차별 없이, 편견 없이 살아가는 방법
아침 8시 반, 옆집에 사는 중국인 아이들의 등교시간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는 영어를 주고받으며 아침부터 투닥거린다. 아이들을 따라 두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려는 부모나, 조부모가 함께 집을 나선다. 그들의 입에서 투닥거리는 아이들을 향해 중국어가 나온다. 특유의 까랑한 소리의 중국어를 아이들에게 뱉는다. 그 뜻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아이들이 그 말에 조용해진 걸 보면, '아마 조용히 하고 내려가자.'라는 말인 것 같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오고 옆집에 중국인이 사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도 모르게 '시끄럽겠다'라고 생각했다. '중국인은 시끄럽다'는 학습된 편견 때문이었다. 편견처럼 시끄러울 때가 있었지만 중국인이여서 시끄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 아이들이 오고 갈 때 들리는 잠깐의 소란 정도였다. 그 외에 그들은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다. 문을 여닫을 때도,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조심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중국인이 시끄러운 게 아니라 단지 중국어 특유의 무드가 시끄러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호주의 집들은 방음이 잘 안 되는 구조라 들으려 하지 않아도 문 밖의 소리가 잘 들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호주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다. 집 안에만 있다 보면 그 사실을 종종 잊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창 밖을 내다보더라도 길을 걷는 다양한 인종의 행인을 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혈혈단신 호주로 이민 온 이민 1세대이거나, 부모님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 더 올라가서 증조부에서부터 시작된 이민자이라는 거다. 내 경우에는 이민 1.5세대인 이민자와 결혼한 이민자일 테고.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영국은 호주로 죄수들을 이송시켰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이유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호주에 이주했고, 정착하며 살게 되었다. 호주는 원주민인 애버리진을 제외하고는 모두의 뿌리는 이민자인, 이민자의 나라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살다 보니 그만큼 다양한 문제도 생겨나는 것 같다. 서로의 이해도 부족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테니까. 이를 경계하는 호주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의 인종에 대한 이해를 위해 '멀티 컬처 데이' 같은 날을 만들어 다양한 인종에 대해서 아이들이 서로 배울 수 있도록 한다. 과연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편견 없이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 사촌 조카들을 보더라도 학교에서는 인종에 대한 편견 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중국인, 영국인, 한국인이 아닌, '친구'로. 하지만 문제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워킹홀리데이 시절, 한국인이 운영하던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때 있던 일이다. 학원에 다니는 한국인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인도 사람 진짜 싫어요."
"왜?"
"아빠가 인도 사람이랑은 놀지도 말랬어요. 엮여서 좋을 거 없다고."
서툰 한국말을 하던 아이가 어찌나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이라고 하지만 결국엔 아버지의 의견 인)을 말하는지, 이 말을 듣던 미술학원 원장님은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여기 학원에 인도 친구들도 다니고 있잖아. 그냥 사람마다 다른 거지 인도 사람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야."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 인도인과 놀지 말라고 했을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어떤 인도인에게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모르지만, 아이에게 '모든 인도인이 그렇다.'는 식의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것은 꽤 위험한 일인 듯했다. 적어도 다민족 국가인 호주에 사는 이민자로서는 아이에게 말하기엔 조금 위험한 발언이 아니었을까. 원장 선생님은 벌써부터 아이에게 생겨버린 인종에 대한 편견에 대해 걱정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인종에 대한 구별 없이, 차별 없이, 편견 없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만, 정작 하교하고 돌아온 집안에서는 편견을 강요하고 주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렵다. 만약 내가 인도인에게 또는 다른 나라 출신의 누군가에게 큰 사기를 당했다면, 아니 그 나라 사람에게 갖고 있는 편견 때문에 싫어한다면, 아니 그냥 어떤 인종 자체가 싫다면, 호주라는 다민족 국가에서 살아갈 아이에게 '그들과 놀지 말라', '멀리하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거다.
노력할 뿐이다. 계속해서 내가 가진 편견을 지워내고, 아무런 구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도록, 이미 학습된 '인종에 대한 편견'들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노력하겠다. 언젠가는 모든 이를 그냥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날을 기대하며.
글/그림 은실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