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인 듯 성공인 듯 실패 같은 택배 너.
며칠 전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책을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책을 구입하는 일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호주에 살고 있는 나는 신중한 고민 끝에야 구입을 결정할 수 있었다. 다시는 호주에서 '해외 배송'을 하지 않겠다고 했던 나의 다짐 때문에.
얼마 전 우리가 사는 집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해외 배송을 주문했다. 큰 맘먹고 처음 구입한 상품은 털실이었다. 시원한 코튼얀으로 만들어진 뜨개질 네트 백이 가지고 싶었던 나는, 시중에 판매되는 네트백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뜨개질에 뜨도 모르지만 만들겠다는 패기). 시드니에서 최대한 내가 원하는 재질의 털실을 찾아 헤매었지만 찾을 수 없었고, 한국에서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11번가 글로벌 사이트에서 주문한 내 털실은 며칠 뒤 무사히 호주에 도착했고, 내일 아침에 택배가 도착할 거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우체국에서 또 하나의 문자를 보냈다.
문자의 내용은 이랬다. 오늘 택배가 올 거고, 받는 이의 사인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누군가 집에 있다면 '2', 택배를 포스트 오피스에서 찾아가겠다면 '3'을 눌러 답장하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받자마자 재빨리 '2'라고 쓴 답변을 보냈고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를 기다렸다. 하지만 2시가 넘도록 오지 않았다.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 '송장번호 조회'를 해보니, 두 번의 배달을 시도했지만 집에 아무도 없어서 근처 우체국에 콜렉트 됐다는 거다.
"엥 무슨 소리야 나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갔는데! 오지도 않았으면서!"
성질만 내고 있던 나를 보던 남편이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가서 우편함에 있는 카드 하나를 찾아왔다. '포스트 카드'는 택배를 찾기 위해 필요한 카드인데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택배를 찾을 수 있는 카드를 우편함에 넣어 둔 것이다. 나는 집에 있었지만, 집에는 오지 않고, 우편함에 카드만 덜렁 넣어둔 것이 짜증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카드와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을 가지고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받아왔다. 1kg의 박스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보다 덤덤한 기분이었다. 설렜던 마음과 짜증스러운 마음이 중화된 탓일까. 그래, 무사히 내 손에 택배가 들려있으면 됐다. 이제 된 거야.
그리고 한 달쯤 흘렀을까. 엄마가 영양제를 보내주신다기에 보고 싶었던 책 몇 권과, 에코백 하나를 주문했다. 호주로 보낼 때 같이 부탁드리려고 택배비도 보내드렸다. '6.5kg' 무게의 택배 상자를 호주로 보내기 위해 엄마는 국제 배송비용 7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했다. 무게가 무게이니 만큼 그 정도는 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택배는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를 향해 오고 있었다. 자, 이제 무사히 우리 집으로 와주기만 하면 된다. 며칠이 지났다. 이번에는 잘 오겠지? 하는 마음을 가볍게 무시하기라도 한 듯, 안 왔다. 심지어 이번에는 우편함에 '포스트 카드' 조차 없었다. 송장번호 조회를 했더니 또 우체국에 있다고 찾아가라는 거다. 그래. 차분하게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쇼핑몰 안에 우체국으로 갔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1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택배 찾으러 왔고, 카드는 못 받았다고 말했다. 직원에게 내 운전면허증에 적힌 집 주소와 내 택배 상자의 인적사항을 대조한 뒤에 택배를 받았다.
6.5kg가 넘는 박스를 들고 돌아오는데 진짜 짜증이 났다. 더웠고, 택배는 무거웠고, 땀이 났다.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7만 원이나 주고 택배를 부쳤는데 힘겹게 택배를 받으러 와야 한다니. 7만 원은 물론 내 택배의 무게 지만, '배달' 하는 것에 대한 비용도 당연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닌가? 집에 오지도 않은 우체국 배달원이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송장번호 조회 시스템에 리포트한 것이 괘씸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체국에는 나처럼 택배를 찾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 순간부터 우리 동네 담당 택배 기사의 일처리가 상습적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콤플레인 하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렸다가 택배를 받아 들고 조용히 나간다. 그러려니 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 집에 아무도 없어서 퇴근 뒤에 찾으러 온 것일까. 나만 화난 건가. 나만 예민한 걸까? 하긴 나도 그 앞에서는 친절하게 대하고 고맙다고 까지 했으니까. 여기서만 다들 괜찮은 척하는 건가? 진짜 괜찮은 걸지도 모르지. 역시 나만 예민한거야!
나는 무거운 택배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욕을 했다. 그리고 다시는 택배를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굳건한 듯 보였던 다짐은 한 달만에 깨졌고 또다시 택배를 주문해버렸다. 다행히 교보문고 해외 배송사는 '페덱스(FedEx)'였다. 적어도 집 근처에 있는 우체국으로 찾으러 갈 일은 없을 듯했다. 최악의 상황에는 어딘가에 있을 페덱스 사무실로 가서 택배를 찾아와야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페덱스에서는 도착 하기 전날 두 개의 문자를 보내줬고 도착하기로 한 날 아침 우리 집 현관문을 때려 부실 것처럼 두드렸다.
"쾅. 쾅. 쾅. 쾅. 쾅"
소리에 나는 세상 발랄하고 신난 사람처럼 말했다.
"WHO IS IT!!!!!!" (누군지 다 알면서!)
EMS처럼 국적기를 타고 직항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나의 택배는 광저우, 싱가포르를 지나 시드니까지 긴 비행을 견딘 택배였다. 여러 나라를 거쳐왔다고 해서 EMS 보다 더 늦게 받은 것도 아니었다. 무사히 바다를 건너온 책을 집 현관에 서서 받게 되다니 감격스러웠다. '이거지 이게 택배 받는 거지.'
한국에서는 100% 신뢰하는 우체국이지만 호주에서는, 아니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만큼은 우체국은 신뢰도 완전 0%이 되었다.
언제나 안전하고 신속 정확하게 택배를 받을 수 있던 한국이 그립다. 낯선 번호로 걸려오지만 누가 봐도 택배기사님이 분명한 반가운 전화를 받으면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택밴데요- 댁에 계세요?"라는 말이 그립다. 호주에서 해외 배송을 받지 않겠다는 내 다짐은 아직 유효하다. 웬만하면, 해외 배송을 하지 않을 거다. 혹시라고 분실될까, 사라지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
글/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