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in Sydney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코 끝 시린 겨울도 없고, 펑펑 내리는 하얀 눈도 없다. 연말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호주는 지금 한 여름이니까.
따지고 보면 네 번째 맞는 호주의 12월이지만,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올해는 변덕스러운 날씨도 한몫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집중성 폭우가 쏟아지고, 거대한 비구름이 맑은 햇살 사이를 요란하게 지나다니다 우박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갑자기 30도를 웃도 운 더운 날씨였다가 10도대로 뚝 떨어지기도 했다. 날씨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집안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축축해졌다. 이런 크리스마스라니.
도저히 어느 곳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채우지 못하자 올해는 거실에 작은 트리를 만들어뒀다. 어둑해질 때쯤 라이트에 불을 켜 두면 반짝반짝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난다. 이제 허전했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채워지는 듯하다. 머리맡에서는 에어컨이 나오고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느끼러 크리스마스 장식을 예쁘게 해 둔 동네를 찾아갔다. 매년 찾아가서 비슷한 사진을 찍어낸다. 조금씩 달라지는 걸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가면 유일하게 번쩍이고 북적이는 집을 찾을 수 있다. 내 기억으로는 작년에 이 집 주변의 다른 집들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번쩍거렸었는데, 올해는 전통 있는(?) 이 집만이 유일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8시 반이었는데, 이제 막 어두워지기 시작한 때여서 반짝이는 조명 장식을 보기에 딱 좋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대부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었다. 어른들은 사진 찍기 바빴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까르르 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이 집의 조명 장식들은 규칙 없이 늘어져있지만, 내 취향을 정말 저격한다. 알록달록, 반짝반짝. 이 집은 마당에서 보이는 창가에도 예쁘게 장식해 두었다. 동화 속에 나 있을 법한 겨울 마을을 꾸며 놓았는데 그것을 보려고 사람들은 차례차례 순서를 기다리며 질서 있게 둘러보았다.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겨울 마을을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이 집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작은 축제를 즐기러 약속도 하지 않고 찾아온 낯선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 덕분에 낯선 이들은 즐거운 구경을 하고 예쁜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아무도 '이 구경'에 욕심부리지 않으며 다른 이에게 피해 주지 않도록 질서 있게 행동했다. 모두가 말 그대로 이 작은 축제를 즐길 뿐이었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첫 번째 집 근방에 있는 다른 스트리트이었다. 이전 집이 있던 스트리트와는 다르게 스트리트 전체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며둔 집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작년과는 또 다르게 좀 더 화려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카메라에 열심히 담으며 스트리트 전체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한 집이 아니라 전 스트리트 전체가 축제 같았다. 집주인들은 마당에 나와 질문하는 사람들에서 설명도 해 주었고, 이웃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누군가는 커피를 내려 팔기도 했고, 누군가는 반짝이는 야광 아이템을 팔기도 했다. 우리 같은 방문객들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즐길 수 있었다. 사진으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콘셉트로 꾸며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집은 아기 예수 탄생을 인형으로 재현해 두기도 했고(아래 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집은 알록달록한 네온사인이 교차로 반짝거려서 왠지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참 귀엽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나씩 모으고 구매해서 어디에 어떻게 걸을까 계획하며 집을 꾸미는 것이 말이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 텐데, 단지 즐거움을 함께 나누기 위함일 뿐일까? 나에게 꾸며보라고 재료비를 준대도 이렇게까지 해 놓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하다. 콘테스트를 해서 1등을 하면 1년간 전기세가 무료라는 혜택이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덤벼들기는 힘들 것 같다.
몇 년 살아본 결과, 호주는 참 지루하다. 한국처럼 매 주말마다 열리는 다양한 축제도 없고, 소비하고 싶은 콘텐츠의 양도 적다(물론 한국과 비교했을 때). 나뿐 아니라 호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어디선가 들은 소문으로 구경할 거리를 찾으러 다니고, 작은 것에도 즐거워한다. 사실 남의 집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는 게 뭐 그렇게 대단할까. 하지만 정성스럽게 꾸며놓은 장식들과 그것을 뿌듯해하는 집주인들, 또 예쁜 걸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분하게 충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 이유 때문 에라도 비슷한 장식을 매년 보러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