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발에 억지로 발을 욱여넣지 않아도 돼요.
나는 발이 크다. 255mm 사이즈라는 여자 치고는 꽤 큰 발을 가지고 있다. 170이 넘는 키를 가진 만큼 발이 큰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항상 큰 발이 스트레스였다. 발이 큰 것 자체만으로도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 신발을 사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니커즈나 운동화를 신을 때는 괜찮다. 하지만 문제는 여성화라고 불리는 구두나 샌들, 부츠 등을 살 때 일어난다. 나 같은 왕발은 한국에서 여성화를 사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여성화는 크게 나와봤자 255mm 사이즈까지가 최대치여서 발볼까지 넓은 나는 255mm의 구두는 줘도 신지 못한다. 어떤 구두 브랜드에서는 친절하게 발볼을 넓혀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주지만 편할리 없다. 안 맞는 걸 늘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발 사이즈가 크면 신발을 구입할 때도 누구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야 했다. 지하상가나 로드샵에 저렴하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신발이 널렸는데도 나는 살 생각도 못한다. 당연히 내 발에 맞지 않을 거니까. 결국 나는 내 발에 맞는 구두를 사기 위해서 이태원을 뒤져서 내 발에 맞는 구두를 찾는 여정을 떠나기도 하고, 구매대행 사이트를 이용해 해외에서만 판다는 260mm 사이즈의 신발을 웃돈을 더 주고 사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구매한 구두도 잘 맞지 않아서 신지도 못한 채 신발장 구석에 처박아둬야 하는 귀찮고도 짜증 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누구 탓을 하겠나. 이게 다 내 발 크기 때문인 것을. 구두를 사야 할 때마다 이렇게 생겨먹은 내 발이 미워질 뿐이다.
하지만 호주에 살면서 내 발 크기를 미워하지 않게 됐다. 어딜 가나 내 발 사이즈보다 크고 넉넉한 것들이 널려있기 때문이었다. 호주는 다양한 민족들이 사는 만큼 다양한 체형이 보편화되어있는 나라여서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팔고, 다양한 사이즈의 신발을 판다. 예를 들어 구두를 사러 갈 때 '제일 큰 구두 사이즈가 몇이에요?' 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매대에 신어볼 수 있도록 올라와있는 신발이 최소 3가지 사이즈가 나와있고, 아무거나 골라 집어도 내 발에 맞는다. 심지어 클 때도 있다(웬일이야). 구두를 신고 발가락이 움직일 정도의 넉넉한 기분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내 발에 맞는 사이즈보다도 더 큰 사이즈가 최소 3개는 더 남아있다. 사이즈 때문에 곤란한 일이 없는 쾌적한 쇼핑시간이 된다. 내 발이 커 보이는 게 싫어서 큰 신발을 안 사는 것뿐 못 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쇼핑할 때 제일 좋은 점은 평균이 아니어도 된다는 거였다. 신발을 사러 갈 때마다 '발이 조금만 작았더라면.'라는 식의 쓸데없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됐다. 억지로 작은 옷이나 작은 신발에 내 몸을 욱여넣지 않아도 됐다. 사실 호주가 쇼핑하기에 좋은 나라는 아니다. 물가가 저렴한 것도 아니고, 보기 힘든 브랜드가 있어서 꼭 쇼핑을 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소비하기 아주 좋은 나라다.
호주를 떠나게 되면 그리울 것이 하나 더 늘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에 하나 더, 신발 사이즈에 대한 고민 없이 쇼핑할 수 있는 것 말이다.
글/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