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 D-16
긴 밤, 의미 없이 이어지는 꿈속을 헤매다 눈을 뜨니 아침 10시 반이었다. 주말이니까 늦게까지 자려고 했는데 허무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더 자고 싶었는데...” 일찍 일어난 게 억울해서 괜히 옆에서 잘 자는 남편을 건드렸다. 주먹 쥔 손을 억지로 펴서 깍지를 껴보기도 하고, 양 볼을 늘어뜨려본다. 하지만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안 일어나는 걸 보면 아마도 어젯밤 드라마 시리즈를 보다가 새벽 4시쯤에나 잔 것이 분명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괴롭히고 싶었지만 그냥 더 자게 놔두기로 했다. “봐줬다.” 깊은 잠에 빠져있어 듣지도 못할 남편에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나는 거실로 나갔다.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꺼냈다. 찬 우유를 좋아하는 노란색 컵에 담은 뒤, 전자레인지에 넣고 10초를 데웠다. 데우는 동안 코코아 가루를 꺼냈다. 이 코코아 가루는 얼마 전에 새로 나온 코코아로, 프로모션으로 반값 세일하는 걸 아무 기대 없이 산 것이었다. 뚜껑을 열고, 입구에 붙어있는 알루미늄 커버를 반쯤 뜯어냈다. 달콤한 코코아 향이 순식간에 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어느새 다 데워진 우유에 코코아 가루를 듬뿍 넣어 숟가락으로 휘휘 저은 뒤 식탁에 앉았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니 다시 잠이 온다. “아, 따뜻해." 반쯤 떠 있던 눈이 스르르 다시 감기려고 했다. 따뜻한 컵 하나가 내 몸을 나른하게 만든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서 정신을 차린 뒤 코코아를 ‘호로로' 마셨다. 그런데 이 코코아 진짜 맛있다.
맛있는 걸 혼자 먹기엔 아쉬워서 남편이 마실 코코아도 만들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갔다. 사실 내 목적은 맛있는 걸 함께 먹자는 좋은 허울 뒤에 숨어있는 남편 깨우기였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 근처에 아무렇게나 놓인 테이블 위에 코코아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남편이 누워있는 쪽 침대 위에 살짝 걸터앉았다. “자기야 맛있는 코코아 가져왔어. 일어나서 마셔, 아니면 내가 다 마신다~”라는 귓속말로 본격적인 남편 깨우기를 시작했다.
그 어떤 시간보다 길었던 5분이 지났다. 남편은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에는 일어났다. 이로써 나의 목적을 달성했다. 갓 일어난 남편의 얼굴 표정에서 짜증이 느껴졌기에 나는 빨리 이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남편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따뜻한 코코아를 남편 앞으로 대령했다. “진짜 맛있어서 혼자 먹기 아쉽더라고”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다행히 남편은 맛있다며 잘 마셔준다.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코코아를 다 마신 우리는 다시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혹시라도 잠이 온다면 다시 잠에 들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우리 둘은 이불속에서 얼굴만 쏙 내밀고서는 잠든 사이에 서로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젯밤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밤 사이에 화장실을 몇 번 갔다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내가 말했다.
“어제 우리가 산타한테 보낸 카드 말이야. 잘 도착할까?”
“그 거 아마 우체국 집배원이 어디 한데 모아 두지 않겠어? 반송될 우편물이나, 폐기될 우편물 같은 곳 말이야.” 어쩌면 남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산타에게'라고 쓴 주소도 없는 카드가 우체통에 넣었다는 이유로 산타에게 도착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12월 9일
글/ 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