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이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겠어

12월 11일 / D-14

by 에린남
11_dec.jpg


스캔센터는 언제나 바쁘다. 매일 새롭게 오는 편지들에 쫓겨 일한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편지폭탄에 깔려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스캔센터에서 일할 엘프를 늘리는데도 계속해서 바쁘다. 우리가 일하는 이 곳의 대부분의 일은 단순 업무다. 하지만 스캔센터에서의 일만 할까. 여기서 하는 일의 순서는 이렇다. 쌓여있는 편지 중 하나를 집어 들고 봉투를 뜯고 봉투 안에 들어있는 편지를 꺼내 그대로 스캔하고 다시 봉투에 넣는 일. 말만 들으면 제법 간편하고 편한 일 같지만,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는 대부분 사람들은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산타에게 편지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산타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직접 그린 그림, 먹다 남은 사탕, 과자, 장난감.. 등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내용물이 봉투에서 쏟아져 나온다. 봉투 안에서 녹은 사탕이 편지에 들러붙어서 잘못했다가는 손이 끈적거리고, 그림이나 사진도 빼놓지 않고 스캔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세배 네 배 해야 해서 번거롭고 귀찮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덜렁 편지만 들어있어도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괜히 빈 봉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의 스캔센터 업무가 시작된다. 각자에게 분배된 편지 상자 안에 담겨 자리로 옮겨진다. 나의 첫 편지는 빨간 봉투에 동그란 초록색 스티커가 붙은 편지였다. ‘산타에게’라고 써진 이 봉투 안에는 엽서 형태의 카드 말고는 다른 내용물은 없다. 조금 아쉽다. 그래도 시작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작부터 끈적하고 달콤하면 곤란하니까. 봉투에서 꺼낸 엽서를 스캔할 수 있도록 테이블에 올려둔다. 흘깃 본 엽서에서 어딘가 낯선 글씨체를 보았다. “어른이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처음 본 어른 글씨체였다. 나는 순간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 걸 어쩌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어른이라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산타에게 보낸 어떤 이도 어른이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움켜쥐고 옆에 선배 엘프에게 다가갔다. 얇은 엽서를 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나를 본 선배가 먼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일에 집중하느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 선배 앞에서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어른에게서 편지가 온 것 같아요.” 내 말을 듣고도 선배 엘프는 꿈쩍도 하지 말했다. “어른 글씨체였지? 사탕이나, 그림 한 장도 없는” “네 맞아요. 확실해요! 어른이 쓴 거 맞죠?” 별일도 아닌데 난리 피운다는 얼굴로 나를 보던 선배가 말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아이들도 꽤 많아. 하지만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크지. 그럴 경우에는 부모나, 다른 어른이 대신 써주기도 해.” 그런 경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이 짧았다. “그렇지. 어떤 어른이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겠어.”


자리로 돌아와 스캔 작업을 시작했다. 빨간색 봉투를 시작으로 두 시간 내내 반복 작업을 했더니 조금 피곤해졌다. 그때 마침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벨소리를 듣자마자 엘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기지개를 켰다. 모두 한 몸이 된 듯 그다음에는 기계 작동을 멈추었고,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산타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쉬기 위해 이동하던 엘프들이 자리에서 멈춰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위층에 있는 산타 사무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편지를 읽기 위해 집중하느라 항상 꼭꼭 닫혀있던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산타가 나왔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는 우리를 향해 말했다. "어른이 나에게 편지를 보냈어! 그것도 처음 듣는 목소리라고!”



From Elf




12월 11일


글/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