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 D - DAY
“나 이상한 꿈 꿨어."
크리스마스 아침, 남편이 일어나자마자 나를 보더니 했던 말이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꿈이 무엇인지 잘 알 것 같다. 나도 남편이 꾼 꿈을 똑같이 꿨으니까.
어제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우리는 둘만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미리 주문했던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달콤한 샴페인 평소 좋아하는 메뉴들로 파티를 꾸몄다. 서로에게 준비한 선물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두었다. “지금 열어보면 안 돼?” 남편이 말했다. 남편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선물을 두자마자 당장 뜯자고 성화였다. 사실 나도 남편이 준비해준 선물을 당장이라도 뜯어보고 싶지만 참았다. 지금 열어버리면 내일 아침에는 할 게 없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열어보자. 크리스마스는 내일이라고!"
캐럴을 틀고 분위기 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둘이서 샴페인 한 병을 다 비워내니 약간 알딸딸한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생각했던 것보다 달콤했고, 식사도 완벽했다. 식사 후에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기로 했지만 둘 다 살짝 눈이 감겨있다. 나는 아쉬웠다. 오늘 같은 날은 기분 좋게 취하고 싶기도 했지만, 더 마셨다가는 크리스마스를 숙취로 시작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 마시기로 했다. 술은 됐고, 계획대로 영화를 보자며 러브 액츄얼리를 틀었다.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먼저 남편이 곯아떨어졌다. 나도 점점 눈이 감겨와서 억지로 두 눈을 부릅떠 보려고 하지만, 쏟아지는 잠을 참기도,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버텨내기에도 나는 나약했다. 얼마 후 우리 둘 다 소파에서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깨우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파에 기대 자고 있던 나는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인기척이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눈 앞에 산타가 있었다. “자.. 자기야.. 일어나 봐.” 나는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처음에는 미동도 없다가 내가 격렬하게 깨우니 눈을 번쩍 뜨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왜.. 무슨 일이야..?”라고 말하며 남편도 자신 앞에 서 있는 산타를 보았다. 산타는 우리 쪽으로 허리를 굽히더니 말했다. “Merry Christmas!”
남편과 내가 의심반 기대 반으로 썼던 편지가 산타에게 닿은 듯했다. 우리가 산타에게 받고 싶었던 선물이 바로 산타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산타가 이렇게 내 눈 앞에 와 있다. 실제 하는 산타가 내 눈앞에 와있는 것도 믿을 수 없었지만, 우리가 보낸 편지가 산타에게 도착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선물이었던 산타가 소원을 들어준 것도... 모든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산타가 우리 앞에 와 있는 이 순간, 믿어지지 않는 상황 같은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 산타를 꼭 껴안았다.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다. 남편은 낯선 듯, 아니 믿기지 않는 듯 몸이 얼어붙었다. 산타가 자신을 향해 양손을 내밀자 이끌리듯 산타에게 다가갔고, 산타의 손을 잡았고, 산타의 품에 안겼다. 잊지 못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산타는 다른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했다. 짧은 만남의 순간이 아쉬웠지만 내 욕심을 위해 산타를 붙잡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도 내가 지금 받은 행복과 기쁨과 그 이상의 마음을 꼭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왜 나는 산타를 잊고 살았을까. 왜 진작 그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남편과 나는 어젯밤 잠들었던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어볼 생각도 못하고 어젯밤 일을 다시 곱씹어 본다. 그래 확실히 꿈이 아니었다. 완벽한 현실이었다. 현실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현실이었다. 산타를 만났고 그때 엘프가 우리 집에 왔던 것도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거야 말로 완벽한 크리스마스다. 엘프를 만나고, 산타를 만나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우리는 산타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슬프겠지만 언젠가 또 산타가 잊힐 순간이 올지 모른다. 그런 순간이 오기 전에 나는 매일 어제를 추억할 것이다. 산타에게 안겼을 때 느꼈던 포근함, 산타가 우리의 편지에 응답해준 것, 절대로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준 것들을 계속해서 꺼내 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산타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이 세상에 남아주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아서.
-마침-
12월 25일
글/그림 에린남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후기(?)로 찾아올게요.
Merry Christmas!
연말 잘 보내시고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