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The Bat Girl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한 달이나 두 달 또는 일 년을 초과체류한 불법체류자와 11년을 초과체류하며 편법으로 소득활동마저 하던 나와 같은 불법체류자를 법은 동일시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후자가 훨씬 더 괘씸하다고 주장하고 그것이 나에게 상당히 불리하더라도 내 양심은 그에 대해 반박할 수 없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나이지만 마음속 어두운 곳에 조용히 숨어있던 불안감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엄습하곤 했고 가끔은 하던 일을 당장 멈추고 무작정 Google(구글)을 열어야만 했다. #불법체류 #출국비자 또는 #Overstay #Indian exit visa #인도 강제출국 #벌금 #penalty #overstay #deportation 등 하지만 관련된 어떤 키워드로 검색결과를 살펴보더라도 ‘11년 불법체류’에 해당하는 사례는 단 한건도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답답하고 불안해도 대한민국 대사관에 나의 사례를 직접 문의하는 것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출국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기 전에 나의 개인정보를 미리 노출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최소한 내 이름이나 나이 정도는 알고 싶어 할 것이었다. 이렇듯 나의 문제는 과거나 현재나 나만의 문제, 같이 살고 있는 여자친구나 내가 이곳에서 잘 살고만 있으리라 안심하고 계시는 부모님한테조차 말할 수 없는, 절대로 혼자서만 고민해야만 하는 외로운 문제였던 것이다. 나와 같은 불법체류의 사례는 어쨌든 흔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고 그것은 신속히 이곳을 벗어나길 원하는 나에게 유리한 조건은 아닌 듯하다. 프리양카나 법원의 입장에서도 이와 같이 전례가 없는 사건은 어쩌면 판결에 더 많은 연구와 시간을 소요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오늘로써 체포된 지 정확히 14일째가 되었고 경찰서 유치장에서 이동하여 이 독방에 갇힌 것은 12일 째다. 인간 몸속의 수분은 매 14일을 주기로 한 번의 완전순환이 된다고 한다. 오늘을 기준으로 체포되기 전 히말라야의 맑은 물로 채워져 있던 나의 몸은 체포 후 마시기 시작한 쓰레기 소각장의 불 냄새가 녹아있는 붉은색 물로 대부분 교체되었으리라. 오른쪽 눈이 가렵고 같은 쪽 콧구멍에서 흐르기 시작한 수상한 콧물도 내 몸속을 새로 채운 역겨운 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의심이 들자 더럭 겁이 났다. 그래서 꼭지가 없는 그 수도꼭지에서 졸졸 흐르는 비릿한 피 냄새 섞인 그 물로 또다시 눈을 씻어내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그 더러운 물이 싫어서 다시 그 물로 씻어낸다. 어느새 난 또 그러고 있다.
철장문과 저 높이 달린 쇠창살로 만들어진 창은 내가 내는 모든 소리를 여과 없이 밖으로 전달한다. 기침소리, 신음소리, 똥 싸는 소리.. 24 시간 이 방 주변을 순회하는 갈색유니폼의 간수들은 그들이 교육받은 대로 친절한 목소리를 내고 얼굴에는 가끔 옅은 미소를 머금기도 하지만 그들의 눈은 모든 재소자들의 상태를 분과 초 단위로 지켜보고 있으며 그들의 귀는 어느 방에서 어떤 소리가 새어 나오는지 항상 엿듣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손상된 폐가 내는 메마른 기침은 억지로 제어할 수 없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온 기침 소리를 숨긴다는 것은 특히 이러한 독방의 재소자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 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망할 '차이니스바이러스'보다 강해야만 한다.
이 방에서 나가게 되면 약 20여 명의 재소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막사(barracks)로 이동한다고 했다. 난 단체생활의 경험이 없지 않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적응한 적은 없다. 항상 개인행동의 기회를 찾기 일쑤였으며 단체생활의 규칙을 따르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인내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나는 해당 단체의 문제아, 군대에서는 고문관으로 지목되곤 했었다. 범죄자들, 진짜 범죄자들, 인도의 진짜 범죄자들, 살인범, 강간범, 폭력배, 강도, 절도, 사기꾼... 이 방을 벗어나면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단체생활을 하게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힙합을 듣고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며 대마초를 피우고 그렇게 하이가 되면 옆에 누워서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던 여자친구의 레깅스를 벗겨 섹스를 나누던 나에게... 그런 나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멀지 않은 미래에 이 방에서 벗어날 것임은 명확한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이렇듯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논센스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방을 벗어나는 것이 허가되었다는 것은 내가 Covid-19의 증세가 발견되지 않은 건강한 재소자이며 동시에, 예를 들어 전화통화와 같은 활동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사관 담당변호사와의 통화가 가장 시급하다. 대한민국 대사관이 내 사건을 인지하고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만으로도 많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고 그제야 난 이 shithole(똥통)에서의 첫 번째 큰 숨을 쉴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내 사건의 진행 방향과 구체적인 일정까지 알 수 있게 된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지와 정보부재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큼 무섭고 아픈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방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가지고 있던 소설책은 최대한 읽지 않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일 전에 완독 하였다. 작가의 생일과 이력, 그녀의 수상작들, 출판사 이름과 주소, 책의 발행일과 무게. 책 속과 겉에 쓰인 모든 것을 읽어 내었다. 그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이란 세로축 왕복 걷기와 생각하기 또는 세로축으로 왕복 걷기를 하며 생각하기 이외에는 없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나에게 닥칠 두 종류의 미래에 관한 생각을 반복한다. 밝은 미래와 어두운 미래. 오늘같이 덥고 공기가 무거운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어두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무게가 그렇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크기를 압도하고 머릿속을 독점한다.
이곳에서의 또 하루가 저물 즈음이면 밝은 미래, 즉 조속한 석방과 강제출국 등에 대한 나의 기대는 오늘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최종 확인하고, 그에 대한 실망에 비례하는 만큼 제한된 머릿속을 대신 차지하는 것은 어두운 미래, 다시 이방에서 맞이할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쩌면 정말 불법체류란 것은 심각한 범죄일 수 없고 따라서 내가 이 똥통에 머무를 시간은 아주 잠깐 뿐일 것이라는 내 최초의 믿음은...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대사관 측에서도 최만우 씨의 사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며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현재 팬데믹으로 인해 인도 내 모든 관공서의 업무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미 이해하셨겠지만 전례가 없던 이러한 글로벌 팬데믹은 우리 정부나 인도 정부 등의 힘으로도 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며 현재로서는 사태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따라서 저희로서도 많이 안타깝지만 당장은 최만우 님이 원하시는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마시고 기운 내시고 특히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더 궁금하신 것 있으실까요? 없으시면, 그럼. 언제든지 다시 연락 주십시오.”
이 방에서 벗어나면 가장 먼저 대사관에 전화를 할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 가득 나를 괴롭히는 저 불쾌한 상상은 사실이 아니었음을 증명받을 것이다. 지금 내가 경험하는 고통이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사실은 날 한없이 무기력하게 한다. 며칠 전 프리양카의 경고가 그저 날 겁주기 위한 헛소리가 아니었다면, 내 상상 속 대사관 변호사의 변명에 혹시라도 일리가 있다면... 씨발, 결국 이 모든 것이 바이러스 때문이란 말인가?
뻔뻔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접시에 올려진 박쥐를 쳐 먹는 중국 유튜버의 모습이 보였다.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찢긴 날개를 씹으며 오물거리는 그녀의 머리를 낚아채 이미 한쪽 날개가 뜯겨 나간 박쥐 위에 힘껏 쳐 박았다. 기절한 그녀를 테이블 위에 눕혔다. 산 채로 튀겨진 박쥐의 한쪽 날개가 그녀의 피투성이 얼굴을 꼭 반만 덮었다. 거꾸로 붙은 박쥐의 모가지를 꺾고 키스했다. 그녀의 목구멍 깊숙이 말려들어간 혀를 찾아 뽑았다. 이제야 그녀가 숨을 쉰다. 키스했다. 더 많은 산소를 찾아 가쁜 숨 쉬는 그녀의 검은색 미니드레스를 배까지 걷어올리고 스타킹과 그 속의 하얀 팬티를 한 번에 벗겨 발목까지 내렸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레 팬티만 입혔다.오줌을 지린 것 같다.
그녀가 신고 있던 초록색 하이힐 한 짝이 테이블 밑에서 뒹군다. 집어서 그녀의 왼발에 신겼다. 한 짝만 신고선 걸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시 보니 그녀의 앞니 한 개가 반쯤 깨져있다. 매력 있다. 네 손가락으로 그녀의 다리 사이를 보듬었고 즉시 체액이 느껴졌다. 약지와 중지를 넣자 그녀가 낮고 짧은 신음소리를 낸다. 매력 있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눈으로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깜짝 놀라며 투명한 눈꺼풀을 바르르 떤다.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흐른다.
검지 손가락도 넣었다. 그리고 눈 감은 그녀가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하는데, 잘 안 들린다. 더 깊숙이 넣은 세 개의 손가락들은 한참을 빼지 않은 채 그녀의 체액이 손가락들 사이의 두 골짜기를 타고 손바닥까지 적시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다리는 이미 한참 전부터 자유인데 스스로 벌린 두 다리 사이로 한껏 부푼 나를 강하게 쑤셔 물렸다. 뺐다. 물렸다. 뺐다. 다시 깊숙이 넣고 기다린다. 결국은 두 눈을 번쩍 떠 상대를 예의 바르게 응시할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Eat up! Eat it up! Eat the fuck up! bitch! A bat virus sucking cunt!”(먹어, 먹어, 쳐 먹어. 이 씨발년아! 박쥐바이러스나 씹어 먹는 이 더러운 창녀야!) 아무런 효과 없이 저항하던 그녀의 두 손은 어느새 그놈의 엉덩이를 꽉 감싼다. "Fuck me! Fuck me up—fuck! Fuck... fucking fuck me. Harder! Harder! God, no! Fucking yes... yes! Harrrderrr!"(먹어, 날 먹어, 쳐 먹어! 세게, 더 세게! 아니! 더! 그래! 더! 더 세게!!!)
길고 가느다란 그녀의 두 다리가 흔들하더니 이내 털썩 아래로 주저앉는다. 그녀 얼굴, 박쥐의 눈 없는 모가지가 애원한다. “Fuck me up, I’m bad. Fuck me good. Fuck me. Don't stop, please.”(날 먹어, 난 나빠. 더 세게. 날 먹어. 멈추지 마, 제발 부탁이야.)
두 번
눈을 세게 깜빡거리자 곧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졸
졸
졸
졸
졸
…
언젠가부터, 수도꼭지 밑 겨자기름 양철통에 물이 넘쳐 얼룩덜룩한 변기 속으로 졸졸 흘러 들어가고 있다.
오늘 좀 뜨겁다.
물로 좀 식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