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27장 Kandi Ravers(캔디레이버)

by 만달

2000년~2003년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BC), 밴쿠버(Vancouver)



엄마는 장남인 내가 원하는 건 결국 뭐든지 해주시는 분이다. 그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그녀를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했는데 거절당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봐서 그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조건 엄마의 의견을 따르신다. 아버지는 엄마의 생각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믿으시는 분이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직접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믿음처럼 엄마의 결정이 항상 옳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꼴찌의 성적으로 겨우 입학할 수 있었던 반도체공학과는 나와 맞지 않았다. 학교 근처까지는 갔지만 수업을 들어간 날은 많지 않았다. 당구장에서는 죽빵을 쳤고 PC방에서는 하루 종일 스타크래프트를 했다. 대학로, 신촌, 홍대 앞, 종로, 강남역, 청담동, 건대 앞, 신천, 압구정동… 수업은 안 들어갔지만 과친구들과는 열심히 어울려 잘 놀았다. 미팅에 나갈 때마다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났다. 그런 미팅은 3주에 2번 정도 있었고 그러한 미팅은 얼굴형이 역삼각형인 과대가 주선을 하곤 했다. 여러 여자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자 대학에서의 첫 해는 이미 끝나있었고 난 2학년이 되더라도 강의 중 대부분을 재수강해야만 했다.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새 학기에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었기에 휴학을 했다.


어차피 가야 하는 곳인 군대를 가기로 했지만 굳이 지원을 하지는 않았다. 영장이 나올 때까지 바, 레스토랑, 카페, 클럽에서 유흥비를 벌어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유흥에 탕진했다. 영장이 나왔고 주저 없이 입대했다. 총 6주 간의 신병훈련이 끝나던 날, 각 진 전투모와 가슴에 커다란 독수리마크를 단 군인은 10명의 특별히 선발된 훈련병들을 집합시켰다. 그는 자신이 사단 수색대의 장교라고 소개했고 눈동자와 입술만 움직이며 물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모두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 중 ‘나는 수색대에 절.대.로. 갈 수 없다.’ 하는 훈련병 조용히 거수합니다.” 내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먹이를 포착한 굶주린 올빼미처럼 홱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장교의 눈동자가 잠시 확장되는 듯싶더니 곧 원래대로 돌아갔다. “훈련병 641번, 여기 나머지 9명의 서로 목숨으로 맺어진 전우들 앞에서 떳떳하게 왜! 641번 훈련병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정예 수색대에 갈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머지 9명의 훈련소 동기들은 모두 오늘 처음 보는 사이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답했다. “수색대는 가장 위험하고 힘든 곳이라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곳은 저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 내가 설명하는 동안 그 장교의 두 눈동자는 팽창과 축소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641번 훈련병은 옆으로 열외 합니다.” 이제 막 자대에 배치되는 훈련병들 앞에서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정예 수색대의 중령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믿는 듯한 그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최소한 십 수명씩 커다란 트럭에 올라타고 이동한 다른 훈련병들과 달리 모든 훈련병들이 떠난 후 맨 마지막에 남은 나를 태운 작고 초라한 트럭 짐칸에는 나 혼자 뿐이다. 트럭의 정면에는 박쥐가 그려져 있다. "와 우리 애만 이래 혼자 있노! 내 금쪽같은 자석을 대관절 어데로 델꼬 가는 기냐고!" 천천히 출발하는 트럭의 뒤를 쫓으시며 울부짖는 큰아버지의 부산사투리가 들렸고 난 사단 정찰대라는 곳으로 향했다. “뭐라카노? 대관절 게 뭐꼬?” 해병대의 자부심이 대단하신 큰아버지도 사단직할정찰대라는 곳을 좋아하시지 않으셨다.


군대에서의 20여 개월의 시간은 마치 한 밤의 긴 악몽이었던 듯 별 추억 없이 지났고 난 곧 학교로 돌아갔지만 복학은 입학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리석은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한 셈이다. 전속력으로 달려 높이 날아올라 과거의 나를, 똥만 가득 찬 녀석의 파랗게 염색한 머리통을 힘껏 걷어차는 상상을 해본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지금 이 순간 진짜로 두통이 느껴진다. 마치 오래전에 머리를 다쳤었던 것처럼..

광고회사를 다니는 것이 자유로울 것 같았고 업무도 덜 갑갑할 것 같았다. 게다가 회로이론이나 물리수학 같은 것을 알 필요도 없었다. TV드라마 속 쿨한 주인공도 반도체회사 다니는 경우보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다. 편입공부를 시작했고 그 몇 개월은 아직까지도 내 인생 중 공부에 가장 진심이었던 시간이 되었다. 합격은 못했지만 큰 실망은 없었다. 어차피 그 학교의 광고홍보학과에 모집정원은 한 명뿐이었다. 단 한 번도 1등이란 것을 해본 적 없는 나이지 않은가.


[Teen Died In State Authorised Rave Festival]
[주에서 허가한 레이브 페스티벌에서 십 대 청소년 사망]


광고홍보학과 특별 편입전형 시험 문제 중 예문으로 제시된 영자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 주의 한 댄스파티에서 지난주 일요일 오전 고등학생 한 명이 사망했다. 원인은 신종마약의 과다 복용으로 의심되지만 자세한 결과는 부검 이후에나 밝혀질 전망이다.’

‘엑스타시라는 신종마약은 단 한 정의 복용으로 8시간 동안 춤을 추게 만든다. 과다복용 할 경우 탈수증세나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마약이란, 좀비, 얼굴은 해골처럼 퀭하고 피부는 검게 썩어가는 인생의 낙오자들, 허공의 자신에게만 보이는 악령들과 밤낮 가리지 않고 울고불고하는, HIV바이러스가 묻은 주삿바늘을 자신의 신체에 직접 꽂아 복용하는 것인 줄만 알았던 내게, 사진 속의 그토록 예쁘고 멋지고 행복하게 웃는 친구들이 물과 함께 삼킨 것은 마약이 아니었다. 어린이용 영양제를 닮은 단 하나의 알약을 삼키면 그것만으로도 8시간 동안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캐나다에 대한 관심은 그 이후로 조금씩 깊어져만 갔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는 일단 한번 거절하셨지만 “네 아버지가 허락하신다면,” 하시며 이내 허락하셨다. 다운타운 Robson St.(롭슨스트릿)의 고층아파트에서 살며, 여름에는 UBC(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누드비치에 내려가서 그들과 함께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스킴보드(skimboard)를 탔고 겨울에는 휘슬러(Whistler Mt.)에 가서 스노보드를 탔다. 그 모든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파란색 혼다 시빅도 있어야 했다. 엄마는 장남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주셨다.


부담스러운 하중을 견디며 용케 피부에 잘 붙어있는 메이크업을 하고 핑크색 긴 머리를 두 갈래로 묶어서 높이 세운 Amy(에이미)는 일본이민자 2세이고 보라색 단발머리의 Ash(애쉬)는 인도이민자 2세이다. 우윳빛 피부의 에이미는 모카커피색 메이크업을 모카커피색 피부의 애쉬는 우윳빛 메이크업을 했기 때문에 키가 비슷한 그 둘이 같이 서있으면 서로의 머리와 몸이 바뀐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무지개색 펄이 가득한 아이라인과 마스카라, 컬러렌즈 덕분에 과장된 초록색 눈동자, 귀, 입술, 혀, 코에는 플라스틱과 메탈로 만든 피어싱들, 양팔에는 Glow in the dark(야광) 플라스틱 구슬을 꿰어 만든 20 여개의 팔찌, 하이힐만큼 굽이 높은 새하얀 운동화 그리고 역시 무지개 형광의 두꺼운 신발끈, 라임색 핫팬츠, 핑크색 미니스커트, 보라색과 하얀색 망사스타킹. 호루라기가 달린 목걸이, 아기용 고무젖꼭지가 달린 목걸이. 그녀들이 말할 때는 언제나 강한 민트향이 번졌다. Kandi Ravers(캔디레이버).


어느 날 우연히 찾은 West Hastings(웨스트 헤이스팅스)의 1불 피자 가게는 한국인 모자가 주인이었고 그 아들은 자신을 스스로 ‘Rudra(루드라)’라고 칭했다. 자상하신 그의 어머니가 잠시 가게를 비울 때면 우리는 현관문에 손으로 바늘을 움직일 수 있는 종이시계와 ‘Will Be Right Back’(곧 돌아오겠습니다.)이라고 쓰인 팻말을 걸고 쓰레기 컨테이너들이 있는 건물 뒤편에서 두꺼운 조인트를 나눠 피웠다. 에이미와 애쉬는 루드라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우리 넷은 만날 때마다 대마초를 피웠고 대마초를 피우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는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에이미의 초록색 PT Cruiser(피티크루저)의 탑을 연 채로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레이브파티가 있는 곳이다. 편입시험문제 예시에선 본 ‘10 대를 죽인 댄스파티’와 같은 종류의 파티이다.


“YO! Yoyoyo here Rudra YO! n we go!(요! 요요요! 여기 나 루드라! 그리고 우리가 간다!)

The tub is legal but d drugs Ain’t. Ah Ain’t.(파티는 좋아. 하지만 마약은 안돼, 응 안돼.)

Eee EVERY o yous hit da pills n they know NO. Nono. So’s da COPS. fuck yeh. so’s da cops. YET they’d only paa-tend ey Do NOT, kNOw. NONO. EM sell da paamit to da or-ga-nai-za n da or-gai-nai-za suu’ve paid… ”(어이, 니들 전부 약에 취해 있잖아. 걔들도 다 알고 있어. 아니라고? 아니, 경찰들도 다 알아. 씨발, 경찰들도 다 안다고. 근데 걔들은 모르는 척 연기만 할 뿐이야. 절대 모를 리가 없지. 경찰들이 그 '허가증'을 행사 기획자한테 팔아먹었고, 기획자는 이미 뒷돈을 찔러줬으니… )


한국말을 할 때 오히려 더 어색한 루드라는 스스로를 래퍼 Ja Rule(자룰)이라고 믿는다. 머리털의 힌트만 보일 정도로 짧은 헤어컷, 심슨가족의 호머처럼 툭 튀어나온 눈과 유난히 두꺼운 입술을 보면 자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던 나였지만 그도 분명히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조인트에 취한 루드라는 정말로 자신이 자룰이라고 믿었고 더욱더 갱스터래퍼처럼 말했다. 난 녀석이 조인트에 취해있지 않은 적을 본 적이 없다. vice versa.


운전대에 바싹 붙어 앉은 채 며칠 전 새아빠한테서 18살 생일 선물로 받은 초록색 피티크루저를 운전하는 초보운전자 에이미는 고속도로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끔 “yeh” “yo” “baby”“word” 등을 연발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이미 한 시간 넘게 남쪽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고속도로를 에워싼 풍경에는 큰 변화가 없다. 남쪽으로 갈수록 산이 낮아지고 가끔 보이는 건물들의 수도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눈치챌 수 없게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하얗고 깨끗한 구름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모습을 바꾸었고 자세히 보면 대기권 밖의 우주가 보일 듯 하늘은 완벽하게 진한 파란색이었다. 여름하늘은 내가 밴쿠버에서 중독되어 있던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였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작은 마을에 들어서자 묵직한 베이스사운드로 실내를 가득 매운 채 질주하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Almost there.”(거의 다 왔다.) 옆에 앉아있던 애쉬가 운전석 아래로 숨어버린 운동화 한 짝을 찾아 신으며 말했다. 클럽의 이름인 줄로만 알았던 ‘Garage(개러지)’는 도착해 보니 말 그대로 그냥 초대형 창고였다. 그 주변에는 그와 정확히 같은 모습의 다른 창고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다. 에이미와 애쉬가 양팔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팔찌와 비슷한 팔찌를 찬 남자와 여자들이 그들 중 한 창고 앞에 한 줄로 늘어서있다. 그들은 소리 지르고 춤추고 웃고 얘기하고 목에 건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유니폼을 입은 경찰들이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있고 이따금씩 짧은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천천히 순회하지만 경찰도 군중도 서로에게 큰 관심은 없어 보인다. “Why not pop it now.”(지금 먹자.) 주차된 차 안에서 루드라가 제안하자 “Hell yeh!”(좋아!) 에이미가 추임새를 넣었다. “What’s your flavor? Pick it!”(취향대로 골라봐.) 애쉬가 투명한 지퍼백을 흔들어 보였다. 난 하늘색 알약을 집어 들었다. “Choose the pink one and you will be enlightened and understanding what you are truly made of or rather choose the sky blue and the exact same shit will happen to you,”(핑크색 약을 삼켜. 넌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너 자신이 진정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이해할 테지. 아니라면 하늘색 알약을 집어 그러면 정확히 똑같은 일이 너에게 벌어질 테니, ) 그녀가 설명했다. 핑크색 약에는 튤립이 하늘색에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Cheers!”


층고가 높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그 창고는 여전히 해가 지지 않아 밝은 바깥과는 달리 밤처럼 어두웠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공간은 파란색 레이저 불빛으로 가득하다. P.L.U.R.(평화, 사랑, 화합, 존중)를 외치며 서로 반기는 사람들의 확장된 동공들이 밝게 빛난다. “It’s normal when you are very first time. It will come, eventually.”(괜찮아. 원래 처음에는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결국은 느끼게 될 거야.) 약 먹은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초조해하던 나의 다리 위에 누운 채로 애쉬가 말했다. “By the way, you look so beautiful you know?”(그런데 너 진짜 예쁘다. 알아?) 눈 전체를 덮어버린 그녀의 거대한 동공에 빠졌다. 마치 소화불량에 걸린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배를 문지르며 속삭이던 그녀를 들어 올려 하늘색으로 물든 그녀의 작은 혀를 찾아 키스했다. 그녀의 하얀색 망사스타킹은 허벅지 가장 높은 곳에서 끝이 났다.

“Wait! Something’s flowing in me.”(잠깐만, 뭔가가 느껴지는 것 같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만큼 나의 숨 쉬는 리듬에 변화가 생겼다.
“Let’s get some fresh air.”(나가서 바람 좀 쐬자.)


내 한쪽 팔을 양손으로 꼭 끌어안은 애쉬와 함께 창고를 나와 파티오(patio)에 들어섰다. 그곳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Sup?”(안녕?) 의자가 없는 테이블 옆에 서있던 키가 큰 미키마우스가 활짝 두 팔을 벌리며 나를 불렀다. “Jeff. Hongkonger. How you doing?”(홍콩에서 온 제프라고 해. 어때? 즐기고 있어?) 벌써부터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그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I’m still waiting for the kick man. It’s been already over an hour. I want to feel what you feel. You know what I mean?”(나 여전히 약발이 설 때를 기다리는 중이야. 한 시간이 지났어. 나도 너처럼 하이가 되고 싶다. 내 마음 알겠어?) 내 절실함에 감동한 미키마우스의 커다란 두 눈이 날 동정했다. 그는 정말로 나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Chillax bro. Worry not. I will share what I feel. I will let you see what I see. Take one of these and just wait. You will be good and alive in heaven in no time.”(괜찮아. 편안하게 있어. 너에게 나의 느낌을 전달해 줄게. 내가 보는 것을 너도 볼 수 있게 해 줄게. 이거 하나 입에 물어 그리고 기다려. 넌 곧 천국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테고 모든 게 좋아질 거야.) 손가락이 네 개뿐인 그의 손바닥 위에는 어느새 담배 한 갑이 놓여있었다. 초록색의 말*로 멘솔, 그중 한 가치만 골라서 집기에는 그의 손가락들은 너무 두꺼웠다.


멘솔의 차가운 연기가 몸속에 가득히 퍼지는 것이 마치 내 눈에도 보이는 것 같았다. 창고 안에 가득했던 레이저 사이에 떠다니는 안개와 같은 색이다. 미키마우스가 활짝 웃었고 그의 커다란 웃음을 보니 나도 저절로 행복해졌다. 핏속에 산소가 배로 불어난 것 같았고 덕분에 내 몸은 가벼워졌다. 몸이 충분히 가벼워지자 난, 원한다면 공중에 둥실 뜰 수도 있게 되었다. 난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잊고 지냈던 사실들, 예를 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이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옆에서 웃고 떠들고 춤추는 사람들이 그토록 아름다웠다는 사실. 살짝 정신을 놓으면 어느새 너무 높이 날아올라버릴 것만 같은 지금의 기분을 언제든지 다시 소환하려면 배와 가슴 어디쯤에 있는 그곳을 생각으로만 살짝 조정만 하면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술은 굳이 학습할 필요가 없는, 마치 숨 쉬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듯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갖춘 능력이라는 사실 등. 수많은 진실된 정보들이 사정없이 머릿속을 채우고 채우고 넘치고 넘친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이 사랑스럽고 그들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들에 대해 사랑이 아닌 다른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도대체 불가능하다.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어깨와 뒷목에서 쉴 새 없이 가벼운 전류가 흐른다. 가끔 그것이 특히 강한 순간들이 있는데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소리라도 질러야 할 것 같다. “P.L.U.R. Welcome to heaven my friend!”(P.L.U.R. 천국이야. 환영해!) 미키마우스의 하얀 구두는 쉴 새 없이 앞뒤로 미끄러지며 춤을 추고 있다. 아무리 자세히 봐도 두발은 바닥에 꼭 붙은 채인데 그는 쉴 새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음악에 이끌려 다시 창고 안으로 빨려 들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스웨이, 스웨이. 스르륵, 슛... '. 음악이 나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부터 난 혼자였을 것이다. 레이저 줄기들 사이에서 그림이 펼쳐지는데 그 그림은 살아있다. 그림의 일부가 되어 앞으로 계속 달리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장애물은 두 팔을 활짝 벌려 가볍게 날아올라 피한다. 가끔 출현하는 악당들은 다섯 손가락에서 발사된 레이저빔을 쏴서 물리치고, 주변에 가득한 동지들 중 누군가와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자연스레 서로 나도 널 좋아한다는 텔레파시를 교환한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굳이 깨달아야 할 필요조차 없다는 사실을 또다시 깨닫는 순간들이다. 인간은 이미 우주의 모든 진실을 완벽하게 이해한 채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우리가 깨달음이라 착각하는 것은 평생 잊고 있던 기억의 소환일뿐이다. 우리가 진실을 잊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진실을 기억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로 잔뜩 오염된 현실 때문이다. 진실이란 그토록 단순한 것이어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인간은 어느새 그 진실을 하찮게 생각하고 곧 잊고 마는 것이다. 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다시는 이 진실을 잊고 살지 않으련다. 지금 이후로 행복하지 않은 순간을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행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8시간을 달렸다.


하지만 몸속의 엑스타시가 일단 완전히 연소하면 그날 찾은 ‘우주의 진실’을 다시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간의 감각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만족을 알게 된 나에게 그 기쁨 없이 지내는 인생은 무의미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쓴 그 사탕 없이 난 두 번 다시 행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꾸만 빨았다.


그렇게 4년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