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25장 샤포라제이(Chapora Jay)

by 만달

2010년 2월

인도, 고아(Goa), 고아(Goa)



샤포라(Chapora)는 북부 고아의 작은 어촌이다. 밤새워 레이브 파티를 즐긴 여행객들에게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을 이른 새벽, 이미 먼바다로 출항했던 고기잡이배들이 어느새 수평선 가까이 내려앉은, 식어가는 태양의 빛으로 물든 부두로 돌아오면, 그곳은 어부들이 갓 잡아 온 물고기와 새우, 오징어, 랍스터 등을 사려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그렇게 즉석에서 열린 시장은 허기진 어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저녁 식사를 위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곧 닫힐 것이니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원하는 사람들은 지금 분주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물론,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한 게으른 여행객들도 섞여 있다.


“Good morning Goa!”(굿모닝 고아!) “Morning!”(모닝!) “Morning! Namaste!”(모닝! 나마스떼!) 그들이 품은 바디워시와 샴푸의 은근한 향은 부둣가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한편, 한쪽에서는 지난밤의 High가 다 가시지도 않았을 텐데 “Boom! Bolenath!”(붐! 볼레낫!) “Boom Shankar!”(붐! 샹카!) 정성스럽게 닦여 반짝이는 고가의 이탤리안 칠럼(Italian chillum)들이 차라스와 대마초가 타며 내뱉는 짙은 연기를 뿜어 올린다. 비로소 샤포라의 냄새가 온전히 채워지는 순간이다.


그곳 샤포라 부둣가의 모든 이들이 신선한 해산물만을 찾아서 모인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무리의 중심에는, 어선들을 묶어두기 위한 대가리가 넓적하고 둥근 말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한 사내가 있다.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몸은 늙고 말랐지만 힘이 넘치고 활처럼 앞으로 굽은 등은 목부터 허리까지 서로 빛바랜 정도나 스타일이 다른 타투로 가득하다. 미키마우스, 단검, 불꽃, 피라미드, 부처의 눈, 십자가, 해골, 빨간 장미, LSD의 분자구조식, 미키마우스를 향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세운 눈알이 없는 뱀 그리고 마치 울고 있는 듯한 여자의 슬픈 얼굴. 서로 어떤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그러한 문신들은 분명 오랜 세월을 두고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살 위 빈 공간을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채운 것이리라. 두상이 울퉁불퉁한 그의 머리에는 단 한 올의 머리카락도 없고 그것은 마치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 못하는 듯 오른쪽 어깨 위로 약 15도 기운 채 굳어 있다.


그는 해산물을 팔기 위해 그곳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상품들은 잠잘 때조차 절대 벗지 않는다는 밀리터리 카모 패턴 카고바지에 달린 여러 개의 주머니와 그에게는 너무 커 보이는 바나나가 그려진 병아리색 초등학생용 책가방에 잘 정리되어 있다. LSD, MDMA, 코카인, 케랄라 산 대마초, 히말라얀 차라스, 엑스타시, 하시시 오일, 버섯, THC캡슐, 버섯캡슐, 케타민, DMT 등. 조금 전 XS 사이즈 흰색 비키니탑과 밑단이 거칠게 찢겨나간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은 유럽 여행객이 그녀가 타고 온 할리데이비슨(Harley Davidson; 오토바이 브랜드)의 시동도 끄지 않은 채 그에게 지급한 약값만으로도 그곳의 나머지 어부들이 부지런히 판매한 모든 해산물의 가격을 웃돌 것이다. 샤포라제이는 고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마약상이다. ‘Trustworthy’(신뢰할 수 있는) ‘Reasonable rate’(합리적인 가격) ‘Wide ranges’(선택의 다양성) ‘Quick delivery’(총알 배송) ‘Easy access’(용이한 접근성) ‘Fast customer feedback’(즉각적인 고객 응대) ‘24/7’(연중무휴) 전 세계에서 파티와 마약을 좇아 온 그의 고객들은 샤포라제이를 믿고 사랑한다.


사람들이 떠나고 다시 적막해진 늦은 저녁의 어둑한 부둣가를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샤포라의 카페거리는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일본, 프랑스, 이스라엘, 터키 등 고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들의 피자, 버팔로 스테이크, 소시지, 스시, 파스타, 타코, 크레페, 후무스, 타히니, 팔라펠 등을 찾는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샤포라 삼거리에 우뚝 서 있는, 수백 살 먹은 바니안(Banyan) 나무는 동네 주민들이 수호신이라고 믿는 ‘성수’(Holy tree)이다. 가장자리가 금빛 레이스로 마무리된 수십 장의 붉은 천들이 거대한 나무의 기둥 전체를 두텁게 덮고 있다. 나무기둥 정면에는 밝은 오렌지색 페인트로 칠한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있고 누군가가 서투른 솜씨로 그려 넣은 두 개의 눈 덕분에 얼핏 보면 원숭이 얼굴을 닮았다. 그리고 원주민들 역시 그 바위를 하누만(Hanuman; 힌두교의 원숭이신)이라고 믿고 경배한다. 해가 진 샤포라에서 가장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역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샤포라제이가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부둣가에 있던 그가 공중 부양 후 그 자세 그대로 이동한 듯한 모습이다. 밤에도 낮에도 그 자리를 지키는, 아주 새까만 밤의 색을 한 얼굴에 아직 흙으로 오염되지 않은 눈처럼 새하얀 백발의 바바 할아버지는 바니안나무의 비공식적인 관리자이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고아의 여행 성수기인 겨울이 지나면 원래 자기의 집인 뭄바이의 고급 아파트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가 샤포라제이를 초대하면 대신 샤포라제이는 그에게 2,500Km 거리의 히말라야에서 공수해 온, 고아에서는 더욱 특별한 차라스크림을 나눠 피운다.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 그곳을 밝히는 건 수십여 개의 꼬마전구들밖에 없어서 밤새 어둡지만, 그들이 피워대는 하시시 향을 맡고, 그들이 외쳐대는 ‘붐!’ 소리를 듣고 필요하다면 누구나 샤포라제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좋은 거 뭐 있어요?”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일부러 그를 아는 척하지 않는 나와는 달리 그는 정말로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거친 얼굴이지만 천진한 눈빛의 그의 표정에는 거짓이 없다. 나이 들고 약에 찌들어버린 그의 두뇌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그 사실은, 상품의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우리 둘의 관계에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사카의 한 야쿠자 조직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오사카에서 유학 중이었던 그의 한국인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유혹했고, 강간했다. 집요한 그를 피해 제주도 집으로 도망쳐 온 그의 어머니는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고 갈등했지만, 그 당시, 사회는 그녀에게 다양한 선택을 허락하지 않았다. 배부른 그녀는 할 수 없이 오사카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를 향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던 카즈오는 기쁘게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고 곧 샤포라제이가 태어났다. 이후 샤포라제이는 청소년기까지 오사카에서 보내지만, 그의 오랜 꿈이었던 동경예대 입학이 예정되었던 그해, 야쿠자 조직의 내부 분쟁으로 카즈오는 살해되고 야쿠자의 표적이 된 그의 장남, 샤포라제이는 어머니와 함께 다시 한번 제주도로 도망친다. 어머니로부터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출생 이후 단 한 번도 오사카조차 벗어난 적이 없던 샤포라제이는 그곳, 그 시절 어머니의 고향에서 ‘왜놈’ 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 최고의 미대 진학이 더 이상 유효한 꿈이 될 수 없게 된 그의 현실은 더 이상 제이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폭력, 절도, 도박, 강간, 마약 등으로 기소되어 30, 40대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모든 형을 마치고 교도소를 나왔을 때 그는 이미 50대 중반의 나이었고 그의 홀어머니는 이미 수년 전 스스로 목매달아 이 세상에 없었다. 교도소에서 발생하였던 폭력 사건에서 척추를 다치며 그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15도 기울어진 채 굳었다. 그의 몸에 있는 문신의 절반은 그곳에서 그가 직접 새겨 넣은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그저 잠깐의 무료한 시간이라도 죽이기를 원했던 다른 동료수감자들의 작품들이다. 가족도 재산도 없는 그가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기에 떠난 여행의 종착지는 공교롭게도 인도였고 인도 내에서도 이미 여러 개의 마약 전과가 있는 그에게 가장 관대했던 주는 고아였다. 그가 고아에서, 특히 북부 고아에서 반공개적으로 마약을 거래하면서도 무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이미 여러 차례 체포하고 잡아 가두었던 지역 경찰들과의 특별한 이해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One and only deal that shall never be disclosed to the world. NEVER!”(절대로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안 될 경찰과 나 사이의 단 하나의 유일한 거래. 절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앞니 두 개가 유별나게 크다. 히피의 가장 오래된 성지인 고아는 전 세계에 마약을 공급하기도 하지만 전 세계의 마약을 수입하기도 한다. 인도의 고아주(Goa)는 간접적으로나마 하지만 상당한 양의 부를 마약사업으로 축적했다. 그들만의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는 해마다 유입되어 그들의 파이를 나눠 가지려는 ‘잡상인’들을 잘 감시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눈과 더 많은 귀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그러한 자신과 고아 경찰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그와 알고 지낸 거의 모든 원주민과 장기간 고아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그를 만나는 모든 경찰이 항상 사복을 입고 마치 일반인처럼 위장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와 그들이 만나는 장소가 항상 어둡거나 은밀한 장소도 아니었으며, 설령 그곳이 경찰서 내부와 같이 은밀한 장소였다 하더라도 그곳에 항상 경찰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과 고아 경찰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믿는 건 결국 샤포라제이 혼자 뿐이다. "좋은 거 있어. 내일 밤에 UV Bar(유비바)에서 보자. 내가 먼저 신호를 주면 오른쪽 스피커 뒤편서 봐. 잊지 마 오른쪽 스피커.”


다음 날, 안주나 UV Bar 싸이트랜스 해변 파티.
“우리 아버지가 무형문화재야. 아무리 무식한 놈이라도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저명한 화백이셔 그러니까 너희 같은 머리 나쁜 약쟁이들도 분명히 알 수 있는 분이란 말이지. 하하하...” 코카인에 취한 그는 자신이 스스로 창조하고 지배하는 왕국의 폭군이 되어있다. 오랜만에 여러 명의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둘러싸인 샤포라제이는 그 무료 해변 파티가 마치 자신만을 위해 성사되기라도 한 듯 특별히 기분이 좋아 보이며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모든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듯하다. 그의 옆에는 뚱뚱하고 기름진 얼굴에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카자흐스탄 여자가 앉아있고 그녀의 동공 역시 그의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확대되어 있다. 인도 남부지역의 전통 의상인 룽기는 남자들을 위한 옷이지만 그것은 마치 여자들의 랩스커트와 같아서 외국인 여행객들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즐겨 입는다. 활짝 다리를 벌린 채 앉아 있는 그녀의 하얀색 룽기 속으로 오랜 세월 다듬지 않은, 불에 약하게 그을린 듯 석탄처럼 새까만 음모와 더 이상 수분이 남아있지 않아 주름이 자글자글한 음부는 마치 외계 생명체 한 마리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기생하는 듯 흉측하다. 그녀의 영혼은 현실 속 자신이 지금 속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그 순간, 수억 광년 거리의 먼 우주의 바다에서 벌거벗고 배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코카인이 생산되는 남미에서 인도까지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운송 과정 중에 수많은 다른 손들을 거치기 일쑤며 그때마다 상품의 순도는 계속 하락한다. 그런 저급한 코카인에 취하면 ‘꼬장’을 부린다. 원래는 욕실 벽에 걸려 있어야 할 물때 낀 거울을 엎어놓은 채 그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흰색 가루를 다시 한번 거칠게 코로 들이마신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훌쩍거렸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들어 테이블 건너편에 서 있는 나를 그득히 바라보았을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Wow!! this cheap motherfucking C is stinging!”(아오! 이 싸구려 코카인 존나 쓰네.)


그때 무리의 뒤편 어두운 구석에서 걸어 나와 그에게 다가온 두 명의 남자. 그들의 과하게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아마도 숨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약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와 100킬로가 넘는 몸집과, 그리고 서로 맞춰 입은 듯, 블랙라이트에 발광하는 형광 초록 민소매 셔츠 그리고 그 위에 검정색으로 커다란 그라피티 ”Fuck you! fucking fuck! Fuck! Fuck! Fucking fuck!” 덕분에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쑥스러워진 그 두 명의 러시안 거인들로부터 돌돌 말린 현금 뭉치를 건네받은 샤포라제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샤포라제이는 그들 중 한 명의 커다란 손에 너무 작아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깊숙이 그리고 능숙하게 찔러 넣었다. 그러자 "Thank you! brother."(감사합니다! 형님!) 그 무엇을 건네받은 러시안 거인은 신약성경만큼 두꺼운 손바닥으로 느끼는 무게감과 촉감만으로도 그들의 신속한 거래에 만족한 듯 그렇게 그에게 말했다. "다바이~ 다바이~"(그래 그래 좋아!) 당연하다는 듯, 쿨한 표정의 샤포라제이는 한편 그렇게 대응했다. 그리고 그는 기분이 한층 더 좋아진 듯하다. “한국에 돌아가기만 하면 내가 상속받을 유산이 최소 몇백억 되는데 이놈의 약 때문에 내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거야. 한국에서의 전과 때문에 지금 당장은 돌아갈 수가 없어. 검찰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로 나를 수배하고 있으니까. 돈이 무슨 소용이겠어! 어차피 다시 감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먼 나라 인도에서 ‘저명한 한국인 마약상’인 자신을 둘러싸고 경이로운 눈으로 그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한국인 여행객들을 향해, 샤포라제이는 십수 여개의 다양한 자신의 일대기들 중 ‘한국무형문화재의 유일한 후손’ 버전을 늘어놓았다. 그러는 내내 그는 조금 전 러시안 고객으로부터 건네받은 돈뭉치를 한 손에 든 채 이유도 없이 흔들어댔다.


2년 전, 2008년 4월.
당시,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한 달도 채 남아있지 않던 모든 나머지 여정을 고아에서만 지내기 위해 난 고아 행 열차에 올랐었다. 영화 ‘본 슈프리머시’, 맷 데이먼의 여자친구가 그들을 쫓던 암살자의 총을 맞은 그 고아.
“Did you just say you’ve got a boyfriend?”(뭐야, 남자친구가 있었어?) 빛바랜 기와가 군데군데 유실되고 깨져있는 지붕 한가운데의 스카이윈도 밖으로 키 큰 망고나무가 서있다. 바람 불면 떨어질 듯 가지 끝에 아슬하게 매달린 늙은 망고에 시선을 고정한 나는 문도 천장도 샤워부스도 따로 없는 욕실에서 햇볕에 가열된 물탱크 덕분에 전혀 차갑지 않은 지하수로 목욕 중인 이나모치에게 물었다. 어젯밤 안주나의 해변 파티에서 처음 만난 그녀와 난 오늘 아침에만 이미 두 번의 섹스를 나눈 이후다. “No, he’s not my boyfriend but it seems he thinks differently. That I met him in a party and had a single night together,”(아니야. 그 사람 내 남자친구가 아냐. 근데 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 사람 얼마 전에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뿐이고 밤새 같이 있긴 했었지만, ) 침실과 욕실 사이에는 벽돌로 대충 올려놓은 허름한 벽 하나만 놓여있을 뿐이다. “But no sex. only a few lines of coke was all that we shared that night through.”(섹스는 없었고, 그저 밤새워 몇 줄의 코카인만 함께 했을 뿐이야.) 변명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일본어로 ‘포카리스웨트’라고 쓰인 커다란 수건을 두른 이나모치가 욕실을 나온다.


“Wake and bake?”(굿모닝 조인트?) 그녀가 샤워를 마치면 같이 피우기 위해 미리 말아두었던 조인트를 들어 보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때였다. ‘부릉 둥둥둥 탁탁탁 탁탁탁’ 커튼 사이로 보이는 창문은 코팅이 되어있지 않았고 그 밖을 바라보자 2 기통 180cc의 마치 장난감 기관총이 내는 듯한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우리가 있는 방 쪽으로 다가왔다. 헬멧은 벗지 않았다. “할로? 곤니치와, 이나짱? 상체만 세우고 침대에 앉아 이미 조인트에 불을 붙인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한 그녀는 여전히 파란 포카리스웨트 수건만 걸친 채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그 사이로 얼굴만 내민 그녀 뒤로 작지만, 곡선이 선명한 엉덩이와 햇볕에 그을려 커피 빛을 띠고 야하게 살이 오른 한 쌍의 허벅다리가 보인다. 그녀의 오른쪽 종아리 안쪽으로 보이는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의 핑크빛 흉터는 오토바이 머플러에 덴 화상의 흔적이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자칫 부주의하면 그와 같은 상처를 입는다. 특히, 고아에 있는 많은 여성 여행자가 그와 정확히 같은 위치에 같은 상처가 있다. ‘Goan stamp’(고아의 직인), 그러한 것들은 일단 한번 인지되면 어쩔 수 없이 자꾸 보이기 마련이다.


“I can’t come with you. I’m with a friend. I just can’t. 스미마센!”(아뇨, 같이 갈 수 없어요. 지금 친구랑 같이 있어서, 안 돼요. 미안해요.) 상처 없이 매끈한 왼쪽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그녀가 선명한 샌들 모양으로 그을린 흔적이 있는 작은 갈색 발로 오른쪽 종아리의 흉터를 쓱쓱 문지른다. 그녀의 발바닥은 바닐라 푸딩처럼 하얗다. “OK no problem then should I come again tonight?”(그래? 할 수 없지. 그럼 이따가 밤에 다시 올까?) 강한 억양의 남자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내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지금 이불속의 나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손가락 사이의 조인트는 쉬지 않고 지글거리며 타고 있지만, 그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가 헬멧 속 녀석의 귀에까지 이를 정도로 크지는 않을 것이었다. “I’m not sure for now.”(글쎄요. 지금은 확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이나모치는, 아직 나에게는 말하지 않은 오늘 밤에 대한 어떤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 “OK! That’s cool. No problem.”(그래? 할 수 없지 그럼.) 그렇게 그가 돌아가는 듯했다.


“By the way, who are you with? what friend? Can I just say hi?”(그런데 친구 누구? 인사만 잠깐 할게.) 그녀의 허락이 있기도 전에 그녀가 잡은 줄로만 알았던 현관문이 아무런 저항 없이 열렸고 그 커다란 헬멧이 침대 위의 나를 수초 간 응시한다. 한편, 내가 본 것은 녀석의 헬멧 실드에 비친 나 자신이었다. 뭐라 묘사할 수 없는 그 모호한 표정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녀석의 갑작스러움과 무례함에 짜증이 났다. 이불을 걷어차고 꺼지라고 소리쳐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녀석의 헬멧에 비친 자신을 보고 마침내 모든 욕구가 사그라든 이불속의 다른 나를, 그 둘 중 그 누구에게도 노출하고 싶지 않았다. “Hey, ” 입 속에 가득했던 하시시의 연기를 천천히 내뱉으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한 것은 그렇지 않으면 그 순간이 두 배로 어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나의 빨간색 수영 트렁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이나모치가 붙잡고 있는 현관문 밑에 볼품없이 말려들어가 있었다. “I wouldn't mind if he comes in because I’m completely turned off.”(괜찮아. 들어오라고 해. 난 이제 완전히 식어버렸거든.) 차라스에 취한 나는 깊게 들이마신 연기를 천천히 내뱉으며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방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난데? 스미마센? Don’t be rude and get out of here now!”(뭐 하세요? 이봐요? 무례하게 이러지 말고 빨리 나가요!) 한 손으로는 몸에 두른 수건을 가슴 위로 꼭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헬멧 쓴 머리를 밀어내며 이나모치가 소리쳤다. 녀석에게 더는 친절하지 않기로 한 듯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 만족할 정도로 차가웠다. “Oh sorry I was just.. Please excuse me and don’t be mad. By the way, I have an offer if you guys are interested?”(아 미안, 미안. 너무 화내지 마. 그런데 내가 너네한테 제안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관심 있나?)


오른쪽 어깨 위로 약 15도 기울어진 머리, 아무것도 입지 않은 깡마른 상체 위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문신들, 잠잘 때도 벗지 않은 밀리터리 카모 패턴 카고 바지.. 다음 날 아침, 같은 자리에서 눈떴을 때 내가 본 것은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의 빨간색 수영트렁크, 그와 함께 엉켜있는 파란색 포카리스웨트 수건, 누군가가 벗어 놓은 커다란 헬멧 그리고 그 실드에 반사되어 보이는 이나모치의 싱글침대 위 여섯 개의 발.. 밤새 까칠해진 입천장을 타고 흘러내린 싸구려 코카인이 녹아있는 콧물 맛은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썼다.


2년 후, 지금.
다시 찾은 안주나(Anjuna) 해변 위, 2 기통 180cc의 마치 장난감 기관총의 그것처럼 '탁탁탁'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를 우연히 듣는 순간 쓴 콧물 한 방울이 입천장을 흘러 혀끝을 적셨다.


"야! 근데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

“오른쪽 스피커. 기억나요?”

”???“

“어제 얘기했던 약이나 주세요.”


그는 여전히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둘의 관계에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