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26장 The Ceiling Fan(실링팬)

by 만달

2020년 5월 17일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철컹’

소리와 함께 실링팬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속도가 붙더니 굉음까지 내며 아주 빠르게 회전한다. 그것이 떨어지면서 내 목을 긋는 상상을 한다. 즉사한 나는 내가 죽은지도 모르게 죽은 것이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모두 다 한번쯤은 해볼 만한 생각이다. 이 방의 실링팬은 내가 본 실링팬들 중 가장 날카로운 블레이드를 가졌고 속도 역시 위협적이다. 이 방에는 저것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없다. 오직 내 머리 위 나만을 위한 시설인데 내 뜻대로 조정할 수 없다는 것에 적응이 쉽지 않다.


철장문에 얼굴을 아주 바짝 들이밀고 가능한 가장 작은 각도로 왼쪽을 바라보면 그 꼭대기가 보이지 않아 높이를 알 수 없는 옅은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의 일부가 보이고 그 벽 앞으로는 빨간 벽돌블록의 좁은 보행로가 있다.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주 가끔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꼭 그곳까지만 비추는 햇빛의 밝기가 어제와 다르다. 더 살아있고 더 뜨거워 보인다. 그러고 보니 방의 기온도 높아진 것 같고 오늘 특별히 기운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내가 모르는 사이 계절이 변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몸속을 채우고 있는 피가 조금씩 증발하며 그 무게를 잃어가듯 현기증이 났다. 아직까지도 나를 가두어 두고 있는 이 한 평 반의 공간이 또다시 너무 답답하다.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세발자국 길이의 세로축을 수십 번 왕복했다. 어쩔 때는 과장해서 성큼성큼 굉장히 빨리 걷기도 했다. 세발걸음, 회전, 세발걸음, 회전, 세발걸음, 회전,.. 회전을 할 때도 어쩔 때는 틱이라도 앓는 사람처럼 갑자기 과하게 빨랐다. 그래서 휘청휘청 균형까지 잃으면 영락없는 환자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바이러스 감염자의 정확한 증세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부족했으니 누군가가 그런 나를 멀리서 관찰하기라도 했더라면 콧구멍 바로 아래까지만 덮은 그녀의 140원짜리 마스크에 거대한 분화구를 그리며 비명을 지른 후 도망갔을 것이다. 다행히도 쇠창살 밖에는 이 방을 몰래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처음 끌려들어 온 날, 이미 파악했다.


만약에 내가 처하게 될 상황을 미리 알 수 있었더라면 더티론드리의 책장 안에 앉아있던 John Grisham(존 그리샴)의 ‘#1 Bestseller’ 범죄스릴러 시리즈를 더 많이 읽었을 텐데, 그래서 현재의 상황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지금의 이 불안함과 초조함이 훨씬 덜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존 그리샴을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서양할머니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Agatha Christie(아가사 크리스티)와 존 그리샴을 50% 할인을 받고 교환해가곤 했다, vice versa. 그런 류의 소설들은 여유 있는 노인들의 Timekiller(시간 때우기)라고 믿었고 내용도 항상 비슷해서 그들의 수많은 작품들의 캐릭터들과 줄거리가 기억 속에서 서로 엉켜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분명히 그 책들 속에 있을 것이었다. 심리, 법률, 언어, 과학, 사회, 정치, 심지어 질병에 관한 의학상식까지도...


다가오는 28일에 있을 거라는 Hearing(히어링)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히어링이 대체 무엇인가? 히어링의 주체는 누구인가? 내가 판사로부터 무엇인가를 듣게 될 것이란 건가? 아님 법원이 나로부터 무엇인가를 듣겠다는 건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말로는 ‘경청’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마 히어링이 경청일 것이다. 띄엄띄엄 교회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청중들, 교회목사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판사, 법정에서의 모든 대화를 기록하는 검은색 치마 정장 속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는 커피색 반스타킹을 입은 서기, 그들 사이에 마치 본성은 나쁜 사람이 아닌 듯한 모습으로 서있는 나, 건너편에는 아마도 나를 고발한 프리양카. 상상이 되는 것은 그림뿐이다. 그 그림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나 인물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예상할 수가 없다. 삽화가 그려진 책에서 삽화 말고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수준. 무식한 것은 분명히 죄다. 난 명백한 죄인인 것이다.


Seven days. 그 경찰관의 이 한마디 역시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Seven days는 어쩌면 실제 내가 이곳에서 지낼 시간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난 이미 지난 16일에 이곳에서 나가 지금쯤 서울로 가는 과정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또는 무엇이 상황을 정상적이 아닌 지금의 상황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마치 동물원에 갓 잡혀온 원숭이처럼 내가 허락하지도 않은 사진을 찍히고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한 평 반의 공간에 쑤셔 넣어둬도 당분간은 죽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것을 증거영상과 함께 확인받는 것이다.


악랄한 년, 프리양카가 무슨 짓을 한 것 같다.


나에게서 불법으로 편취한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내게 씌울만한 다른 죄를 찾은 것이다. 그것을 보고받은 검사는 나를 한국으로 보내기 전 나에게서 뭔가 있을 수 있는 다른 죄에 대해 심문할 기회 즉,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프리양카가 찾아낸 사실은 무엇일까? 그녀가 의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가 찾아낸 것은 역시 연주가 위조해 준 가짜비자일까? 나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 나는 특히 영리한 거짓말을 못한다.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거짓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곧 들켜버릴까 봐 자진해서 고백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 거짓말을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또 다른 거짓말을 꾸며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나에게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끊임없이 개발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가 나를 일찌감치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못할 정도로 지능이 모자란 인간이라고 생각이 드니 비참하다. 좌절 직전이다.


그런 나에게 판사가 어떤 질문을 한다면 난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판사가 내 진술에 대한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리 연구하고 준비해 둔 트릭질문 같은 것이라도 있었다면 그 트릭을 준비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난 여전히 내가 한 행동이 심각한 범죄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법정에서 내가 한 행동이나 생각을 숨기려는 행동을 해서 굳이 그들의 불필요한 의심을 사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I did. but I didn’t know it was such a crime. I’m so really sorry. Forgive me, I will repent for life.”(네, 제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쁜 짓인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평생을 반성하며 살겠습니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직접 내 손으로 훼손한 옛날 비자가 붙은 구여권도 있다. 너무 한심해서 그것에 대해 억지로 생각을 덜 하려고 하지만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체포 이후 프리양카는 그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별 것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생각이 불길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니 그 믿음에는 어떤 근거도 없었음을 깨달았다. 이에 대한 그녀의 수상한 침묵은 매우 불길한 징조일 수도 있다. 오히려 다른 이유로 그녀는 비자에 대한 언급을 전략적으로 회피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양어깨 뒤쪽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발칙함이 무섭다. 그런데 혹시라도 내 의심이 의심이 아니라면? 어느새 백색소음화 되어 잊고 있던 초고속 실링팬의 소리가 새삼스럽게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블레이드가 내 목을 긋고 그렇게 열린 동맥에서 피가 콸콸, 시원하게 넘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문제의 구여권을 그대로 그녀에게 건넨 것은 충분히 회피 가능했던 것 아닌가? 나에게는 그 쓸모없는 여권을 아무도 모르게 파기할 수 있었던 1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언젠가는 그 여권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는 방법이나 훼손할 방법을 진지하게 연구해 본 적도 있었다. 고아에 있을 때는 아주 멀리 헤엄쳐서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 버리고 돌아오기, 바라나시에서는 시체가 타고 있는 장작 아래 깊숙한 곳에 몰래 던져 넣기 또는 보트를 타고 갠지스 강 한가운데에 빠뜨리기,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름 없는 마을의 쓰레기 소각장에 던져 넣기, 아니면 꿀 잔뜩 섞은 우유에 적셔서 바둑이 입에 물려주기.. 그 여권을 경찰이나 공무원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영원히 후회로 남을, 한 인생에서 있을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실수가 될 것임을 은근히 나마 이해하며 10년을 살았음에도 내 손으로 직접 그 여권을 파기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녹색 여권은 생각보다 튼튼했고 왠지 쉽게 포기해서는 안될 가치를 지닌 듯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묵직한 여권은 나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 사이에 내가 두려워했던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난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영원히 후회로 남을, 한 인생에서 있을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실수를 진짜로 저질러버렸다. 범죄자가 결국 범죄자로 증명되는 이유는 그들의 지능에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 나 역시 범죄자가 되기에 충분히 낮은 지능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에 얼굴이 붉혀진다. 화가 나서 미치겠다. 멍청한 놈이 화까지 내니 나는 정말 최악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여전히 세로축을 왕복하고 있다. 원, 투, 쓰리 앤 턴, 원, 투, 쓰리 앤 턴, 원, 투, 쓰리 앤 턴,


Hearing(경청)은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뭘 듣겠다는 것인가? 왜 아무도 내가 그날을 위해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안내해주지 않는가? 판사는 영어로 뭐라고 불러야 하나? My honorable judge sir? Sir를 붙이나 안 붙이나? My? 아니면 Your? Your honor? 여성판사에게는 Sir대신 Madam이라고 하던가? 그냥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미쳐버리겠다. 하지만 어쨌든 28일에는 최악의 경우라도 지금의 이 답답함만큼은 사라지는 것이다. 앞으로 내게 그 어떤 다른 시련이 닥치더라도 무지에서 나오는 이 답답함보다는 덜 잔인할 것 같다. 가끔 볼 수 있었던 진짜 정신병자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허공에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에게만 보이는 어떤 무언가에 대고 눈을 무섭게 뜨고 쌍욕을 해대는 것이 막 이해되려고 한다.


“Who made this fraud document and with what intention?”(누가 이 문서를 위조했습니까?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요?) 얼굴이 붉어진 판사는 하지만 침착하게 나에게 다그친다. “Nothing evil in its intention your Honor. A friend of mine only tried to soothe me with that silly joke. We both thought it funny. None of us thought that It’s even actually practical. It was merely a joke. Please do not take it too seriously. Don’t please.”(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친구 중 한 명이 그런 바보 같은 장난으로 저를 위로하려고 그랬던 것일 뿐입니다. 우린 그게 그냥 재미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누구도 그것이 실제로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죠. 그냥 장난이었습니다. 제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판사는 그런 나를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Bullshit’(헛소리) 그녀가 내뱉은 힌디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며 비웃는다. 왜 지금 내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미래의 일들은 이렇듯 그저 어둡고 불쾌한 느낌뿐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생각들은 무겁고 언제나 상식 밖이다.


결국 이 방 공기의 전부가 되어버린 실링팬의 소음이 다시 귓속을 가득 매웠다. 잘 들어보면 살짝살짝 쇠가 깎이는 듯한 온몸의 힘이 빠지게 하는 그런 소리도 있다. 칠판에 분필을 어느 특정 각도로 세워 긁으면 나는 그런 소리. 오늘 특별히 온몸에 기운이 없는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겠다. 철장문에 얼굴을 아주 바짝 들이밀고 가능한 가장 작은 각도로 왼쪽 방향을 노려봤다.


“야! 야!? 이 개새끼들아!!”

“Shut the fucking fan off!!”(팬 좀 꺼!)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