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이어주는, 그리고 나를 이어주는
동명아파트를 기준으로 한 어린 시절 나의 이동 반경은 아마도 500m 이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걸어서 15분 내지 2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골목과 거리들이 내 세상의 전부였으리라
그리고 그 작디작은 세상의 중심에 목욕탕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주 일요일이 되면 목욕탕으로 향했다. 디즈니 만화영화가 끝난 일요일 아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목욕탕에 갔던 듯한데 성당의 기억은 아주 희미할 뿐 어째선지 목욕탕에서 보낸 시간만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엄마는 항상 탕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씻기 전에 사용할 공용바가지와 의자부터 깨끗이 세척했다. 나와 동생은 입식 샤워부스에 가서 간단하게 샤워를 한 후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신나게 놀았다. 나는 쑥탕을 참 좋아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가 좋았고 사람이 많지 않은 점도 좋았다. 은은한 쑥향도 좋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쑥탕을 좋아했던 건 아닐 거다. 아마도 내 발의 아토피에 좋을 것이라는 엄마의 판단과 권유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새 내 맘을 사로잡았던 게 아닐까 싶다.
엄마는 우리를 세신사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두 딸의 때를 밀어주었다. 너무 빡빡 밀어서 시뻘게진 몸을 보며 아픔이 두 배가 되는 듯 한 설움에 때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엄마도 힘에 부치고 나도 사춘기 소녀 부끄러움 때문에 등을 제외하곤 스스로 때를 밀었던 것 같다. 시원하게 때 빼고 광을 낸 후 나른한 발걸음으로 집에 가면 일찍이 목욕을 끝낸 아빠가 먼저와 치킨을 주문하고 우릴 기다렸다. 당시 아빠 혼자 남자였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아빠는 대충 씻는 것 같다며 우리 세 모녀는 아빠를 흉보곤 했다. 목욕탕에서 치킨으로 이어지는 주말마무리는 우리 가족의 전통이었고, 나는 이 전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목욕탕을 찾아가려니 상호명도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던 탓에 어디쯤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떠오르는 건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는 로터리를 지나갔다는 것과 목욕탕까지 걸어 다녔다는 게 전부지만,
막연하게 목욕탕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인근 마을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지도앱에서 목욕탕을 검색해 보고
터줏대감으로 보이는 어르신께 목욕탕의 행방을 여쭤도 보고
이 골목 저 골목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아무래도 보이지 않았다.
터줏대감 어르신께서 알려주신 곳은 오래된 장소가 분명해 보였지만 말로만 들었지 엄마와 간 적 없는 목욕탕이었다. 엄마는 그 목욕탕이 멀기도 하고 너무 커서 사람이 많아 별로라고 했었다. 게다가 우리가 가지 않던 그 목욕탕은 지도에만 흔적이 남아있을 뿐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30년이 지난 지금 얼떨결에 소문의 목욕탕이 있던 대형상가를 발견했을 뿐인데 그날 엄마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는 것이다.
목욕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실망감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혹시나 싶어 의심 가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가보자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그곳에서도 찾지 못할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초조해졌다. 오랜만에 '제발'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되뇌었다. 새로워진 동명아파트를 보았을 때도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리도 목욕탕에 집착하는 걸까?
눈앞에 등대처럼 생긴 큰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섬광처럼 무언가 뇌리를 스쳐갔다. 그렇다. 목욕탕 옆에는 꼭 저런 건물이 있었다. 고개를 틀어 등대 건물의 좌측을 보니 삼각지붕에 '욕탕'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추위 때문에 굳어있던 표정은 풀리지 않았지만 마음은 녹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건물에 당도하여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아쉬운 대로 문틈 사이를 빼꼼 들여다보니 오른쪽에 간이초소 같은 벽과 창문이 있었고, 그곳은 우리가 목욕탕 입장표와 수건을 받던 곳이라는 게 떠올랐다. 지금은 교회의 사무실로 바뀌었지만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사우나의 쑥탕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우리의 목욕탕은 지도앱에서도 건물에서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정확히 내가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흔적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찾아서 기뻤다.
그리고 알아볼 수 있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