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부초등학교

말괄량이 어린이와의 조우

by 복순이

세월이 흐르며 변한 내 모습만큼이나 선부동 역시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동명아파트는 재개발을 해서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 있었고, 집이나 거의 다름없던 모래밭 놀이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나마 '동명'이라는 이름을 간직한 아파트단지와 그 곁을 지키는 오래된 상가들, 아직 재개발 전인 동명아파트 인근 다른 친구들의 집이 오래된 나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그리고 거기, 아파트숲에 둘러 싸인 선부초등학교가 있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키는 자라지 않아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으로


신호등을 종횡으로 두 번 건너 정문을 지나자 낯익은 수돗가가 보였다. 수돗가에서 물풍선을 채워 친구들과 던지고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방학이라 인적이 드물었지만 오래된 기억 속 학교는 시끌벅적했다.


국민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한 반에 50명 가까이, 무려 14개 학급이 있었다. 넘치는 아이들을 감당하기 힘든 나머지 학교는 오전/오후반을 나눠서 학급을 운영했다. 아마 격주로 오전/오후반을 번갈아 등교했던 것 같다.


나는 오후반 수업을 좋아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TV를 실컷 볼 수 있어서, 그리고 수업을 마친 후 친구들과 함께하는 교실청소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실 바닥은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라 왁스와 마른걸레를 들고 무릎을 꿇은 채 구석구석 바닥을 닦았던 기억이 난다.


창문 곁에서 분필 지우개를 털던 일

겨울엔 교실 한가운데 난로를 들여 땔감 당번을 다녀왔던 일

우유당번인 날에는 친구와 2인 1조가 되어 우유상자를 날랐고

하루는 오후반인 척 배짱 좋게 디즈니 TV만화를 보다가 오전반 수업을 땡땡이 쳤다.

감기에 걸려 골골대도, 가기 싫다고 아무리 떼를 쓰며 울어도 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었기에 엄마에게 자비란 없었고 그날 나는 곤죽이 되도록 혼이 났다. 학교 하루 빠진 게 그리 잘못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숙제로 가족신문 만들기가 주어졌다. 가족의 이야기를 신문으로 만들어 자랑하는 대회였는데 당시 기자로 근무하시던 아빠의 투철한 직업정신 때문이었는지 온 가족이 밤새 매달렸던 생각이 난다. 4절지 종이에 자로 선을 그어 그럴싸한 신문의 형태를 만들고 가훈과 우리 집 이야기를 담은 가족신문

뿌듯한 마음으로 다음날 아침 선생님께 제출하면 언제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웃으면 송곳니가 보이던 김승렬 선생님, 친절하고 예뻤던 홍숙희 선생님

영라, 정은이, 예원이, 지혜, 상훈이, 준회, 의곤이, 지수

일기장을 들춰보면 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가득한데 이들도 나와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2026년 1월 겨울

키는 자랐지만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숨어있던 12살의 내가

선부초등학교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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