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엄마, 아빠
논현동 영동시장골목에 위치한 작은 상점 '유성상회' 그리고 가게 바로 뒤편에 위치한 작은 단독주택의 셋방,
엄밀히 따지면 내가 태어나서 머문 첫 집이다. 갓난아기시절부터 미취학아동인 5~6살까지 그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나보다는 빛바랜 앨범 속 사진이 나의 어린 시절을 더 잘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 속 유성상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유성상회는 다양한 잡곡류를 판매하는 방앗간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붉은 고무대야에 검은콩, 팥, 기장, 수수 같은 다양한 곡물이 담겨 있었고 손님이 오면 할머니는 사각형의 나무 됫박으로 한 되, 두 되를 세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건넸다. 당시 나는 검은콩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움큼 손으로 쥐거나 콩 속에 손을 넣고 휘적이곤 했다. 자잘한 곡물보다 크고 소리가 나는 콩이나 팥을 보면 유독 손이 먼저 나갔던 것 같다. 호기심 많은 어린이라면 다들 이렇게 만져보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빨간 팥, 검은콩, 대야 가득 노란 기장을 지나 문을 열고 가게 안에 들어서면 우측에 도정기(혹은 정미기계)가 2~3대 있었고 좌측에는 마대자루에 담긴 쌀포대가 쌓여있었다. 기계와 쌀포대 사잇길로 몇 걸음 안 되는 위치에 높은 구들장이 있는 조그마한 방 한 칸이 있었는데 그곳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안방이자 거실, 손님들을 위한 사랑방이었다.
할머니는 주로 문틀에 걸터앉아 TV를 보았다. 그 때문에 현관문 역할을 하는 미닫이문은 항상 열려 있었는데 유리문 너머로 가게 밖 손님이 보이면 할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손주들이 "할머니"를 부르며 찾아드는 주말에는 버선발로 마중을 나왔다. 할아버지는 근처 어딘가에 있다가 우리가 온 것을 알고는 "똥강아지들 왔어"라는 말과 함께 가게로 돌아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세간살이라곤 커다란 옷장과 스탠드 옷걸이, TV와 수납장이 전부였다. 수납장 위, 아니 방바닥에는 금전통과 유선 전화기가 있었다. 할머니의 방을 떠올릴 때면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가득 담긴 공깃밥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언제나 구들장 아랫목 가장 뜨끈한 곳에 공깃밥을 놓고 그 위를 이불로 덮었다. 스탠딩 옷걸이 밑 공깃밥 주차장은 늘 따뜻해서 추운 겨울엔 이불 밑에 손과 발을 집어넣고 이따금씩 공깃밥이 잘 있나 확인하며 TV를 보는 게 좋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방이 너무 조그만 탓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언제나 손주들과 할아버지, 아빠가 먼저였고 할머니와 엄마의 식사는 나중이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항상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는 엄마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걸까 궁금해진다.
방 바깥쪽 좌측에는 아궁이가 있었고 그곳이 할머니의 부엌이었다. 나중에 아궁이 옆에 LPG 가스통을 연결한 가스레인지를 들여놓았고, 그 바로 옆에 오래되어 갈라진 나무 도마와 가스레인지 뒤편에 작은 냉장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부엌은 사람 하나 겨우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고 어두웠는데 할머니는 그곳에서 가족을 위한 끼니를 차리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집안을 따뜻하게 보살폈다.
쌀가게와 시장은 가끔 놀이터로 변했다. 도정기에서 장난치다 손가락을 다친 적이 있는데 그 일로 내 오른쪽 검지는 뼈가 옆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할아버지가 태워주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을 누빈 사진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친구인 중외약국에 가서 요구르트를 얻어먹기도 하고, 쌀가게 맞은편 건물 2층에 삼촌이 살아서 "삼초온"하고 부르면 창문너머로 바라보던 삼촌의 모습도 흐릿하지만 기억난다.
명절날에는 인근에 사는 할아버지의 친척집에 세배하러 갔었다. 할아버지는 무조건 아침 9시 이전에 제사와 식사를 끝내야 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절을 하는 둥 마는 둥,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먼저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는 그의 급한 성미를 참지 못하고 얼른 친척집에 인사하러 가야 한다며 우릴 재촉했고, 우리는 투덜대며 할아버지 꽁무니를 졸졸 쫓았다.
영동시장은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갔다. 이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장사를 그만두고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신도시 아파트 생활이 편하고 좋다며 쌀가게를 접길 잘했다는 투의 말을 종종 꺼냈었다. 그 말속에 담긴 지난 세월의 고단함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시 찾아간 영동시장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하여 많이 변해 있었다. 시장 터는 옛 모습을 잃지 않아 골목을 알아보기란 수월했다. 특히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중외약국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예전처럼 넉살 좋게 들어가서 요구르트 하나 얻어먹을까 싶었지만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기로 했다.
유성상회 자리에는 과일가게가 들어섰다. 입구에 진열된 과일들 위로 콩과 잡곡이 담긴 고무대야가 겹쳐진다. 구부정한 자세의 할머니가 나를 보며 밖으로 나온다.
내 손을 잡는 할머니의 손에서 공깃밥의 온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