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주공 1단지

낯선 동네

by 복순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나의 부모도 맹자의 부모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엄마와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선부동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사를 결심했고,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이사를 갔다.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개학일자에 맞춰 이사한 부모님의 배려 덕분에 서울생활에 비교적 빨리 녹아들 수 있었다.


새로운 집 개포주공 1단지는 이제 막 6학년이 된 초등학생에게 정말 컸다. 커-다란 단지에 5층짜리 아파트가 가로, 세로로 뒤죽박죽 섞여있는 데다 숫자도 갑자기 13동에서 20동으로 휙휙 바뀌어서 이사하고 며칠 동안 혼자서 집을 찾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집까지 가는 길을 익힌 이후로는 단지 안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던 것 같다.


개포동 첫 집은 22동이었다. 이번에도 5층에 살게 되었는데 '어떻게 또 5층이야?' 하며 신기하게 물어봤다. 그땐 원하는 곳 어디로든 맘대로 이사 갈 수 있는 줄로만 알고 부모님이 5층을 좋아한다 여겼다. 엄마, 아빠는 정말 5층을 좋아했던 걸까?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지금은 차라리 5층을 진짜 좋아하셨나 봐라고 믿고 싶어진다.


22동 집은 화장실이 매력적이었다. 부엌 옆 불투명 유리로 된 미닫이 문을 열면 가로로 길고 좁은 화장실이 나오는데 오른쪽 좌변기가 있는 공간은 마치 몰래 숨겨둔 방인 양 비좁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세면대를 사용해 본 곳이기도 하다. 작은 화장실이었지만 더 조그맸던 나와 동생은 종종 같이 씻곤 했는데 샤워기를 주거니 받거니 장난을 치고 있으면 엄마가 그만하고 빨리 나오라며 문을 두드렸던 게 생각난다. 한 번은 벌레가 내 코에 앉은 걸 보곤 둘 다 까무러치게 놀라 얼굴을 벅벅 문댄 적도 있다. 벌레의 습격을 당하고 한동안 계속해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엔 바로 옆에 있는 종합상가에 자주 갔었다. 학교 맞은편 상가입구에는 방과 후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분식점이 있었고, 이것저것 잡동사니 파는 곳을 지나 후미진 곳에 이르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책방이 있었다. 나나, 명탐정 코난, 21세기 소년, 어린 시절 기억을 채워주는 상상 속 친구들이다. 그리고 상가 2층 혹은 옆 건물에 학원이 즐비해 있었다. 초등학생 땐 영어학원, 중학생땐 영어와 과학을 상가에 있는 학원에서 배웠다. 6학년 때였다.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이 답을 읽어보라고 시켰다. 의기소침하게 "핸갱" 소리 내어 읽었다. 교실에 있던 아이들과 선생님이 웃기 시작했다.

"야, 누가 한강을 '핸갱'이라고 해. '한 리버'지!"

선부동에서 온 나는 한강이 뭔지도,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도 몰랐다. 기분이 팍 상한 나머지 그날부터 영어도 학원도 싫어졌다.


1단지 바깥을 벗어나면 구마을이라는 곳에 식당과 마트가 있는 상가들이 밀집해 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구마을 지하에 있는 오락실에 들러 테트리스와 DDR을 하느라 바빴고, 게임이 끝나면 그 옆 '연금매장'이라는 마트에서 군것질을 했다. 연금매장의 왼쪽으로 가면 맥도날드가 있었는데 초등학생일 때 거기서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워 질투가 날 정도였다. 중학생이 되고는 학원 가기 전 잠깐 들러 300원짜리 소프트콘과 감자튀김을 먹으며 '학원 가기 싫다', '누가 누구랑 사귄다더라' 하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도 맛있게 나눴다.


재개발로 거듭난 개포주공 1단지는 살기엔 좋을지 몰라도 겉으로 봤을 때 조금은 삭막해 보였다. 미로 같았던 단지 사이사이의 꽃과 나무들도 보이지 않았고 네모반듯한 고급 아파트가 높이 더 높이 자라나 있었다. 22동 우리 집은 형태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엔 개현초등학교가 생겼다.


곳곳에 흔적이 남아있지만 어쩐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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