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비례선발제 떡밥에 물려버렸다.
필자는 학군지인 목동에서 초중고를 졸업했고, 덕분에 적당한 수준의 대학교에 진학, 적당한 수준의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10년이 넘어 요즘의 교육과정과는 다소 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겠지만, 입시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다는 건 장점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인 슈카월드에서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지역별 비례선발제"라는 주제가 나왔었다. 여기에 대해 찬/반을 설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표성은 다소 부족할지라도 개인의 현실적인 사례를 통해 생각의 폭이 넓어지면 좋겠는 바람이다.
* 해당 이슈노트에는 한은의 공식의견이 아닌 집필자들의 의견임이 명시되어 있다.
보습(공부를 도와주는 행동)도 충분히 가치는 있으며 필자가 생각하는 보습의 범위는 아래와 같다.
학생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숙제를 주기적으로 내주고, 검사하고, 피드백해 주는 역할과 주변 학교들의 시험문제나 수준별 문제집, 주요 대학들의 수시 문제 등 방대한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부분인데 굉장한 전문성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효과는 유의미하게 있다.
15년 전 물가 기준으로도 고등학교 때는 1과목당 한 달에 4~50만 원 정도가 들어갔는데 국, 영, 수 3개 과목만 하더라도 숙제 피드백과 자료제공만으로 해당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다소 비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이에게 맞는 +a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교육기회인지가 사교육을 늘릴지 말지에 대한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런 고민이 없을 정도로 충분한 경제력이 있다면 상관이 없긴 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꽤 괜찮은 +a로 생각하는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 좋은 친구 : 학군지에서는 반의 괜찮은 친구들은 대부분 학원을 다니며, 학원을 같이 다닌다는 것은 교우관계에서 꽤 많은 영향을 준다.
- 보편적이지 않은 학습 니즈 : 일반 교육과정은 인강으로도 충분히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림피아드나 토론식 수업 등 일반 교육과정 이상의 학습 니즈가 있다면 충분히 학원에 갈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 원포인트 레슨 : 필자는 비문학은 괜찮았던 반면 문학이 정말 어려웠는데, 문학을 사랑하는 과외선생님을 만났던 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배경설명을 자세하게 해 주신 것 자체도 중요했겠지만 진심으로 문학을 좋아하고 그 좋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이 전달이 되었던 것도 영향이 컸다.
문제는 위와 같은 니즈들은 사교육 소비자 입장에서의 장점일 뿐, 사교육 공급자 입장에서는 수요가 불안정하고, 교섭 과정에서 갈등의 소지가 있으며, 교육을 준비하는 난이도도 더 높다는 단점들이 있다. 이러한 단점은 수요가 충분히 많으면 상당 부분이 커버가 되는데, 학군지에서는 수요가 확보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괜찮은 +a 교육을 제공하는 시장이 형성되기 유리한 조건이 된다.
(요약하자면 사교육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학군지가 남아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위에서 언급한 문학 과외와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실패 사례도 있다. 필자는 나름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고 사교육의 영향으로 고1 때 고3까지의 수학 교육과정을 전부 훑어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고2~고3 기간 동안 더 발전된 수학교육을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
고2 초반정도에도 고3 수학 모의고사를 풀면 80점대 정도는 나왔으나, 이 점수를 100점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계산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테크닉들을 연습하고, 실수를 줄이고, 더 꼬여있는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는 연습을 2년간 반복했다. 고3 때는 대부분의 모의고사에서 90점대가 나왔고, 해당 반복에 현타를 느끼기도 했지만, 수능이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이 반복을 끊어낼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물론 학군지인 덕분에 이러한 고민에 대해 공감을 해주는 친구들을 만나고, 평가원 출제위원이었던 수학 선생님과 친해져서 문제를 같이 만들어보면서 유니크한 생기부 이력이 생겼다는 장점 정도는 있다 (하지만 내신이 워낙 별로였어서 정시로 대학을 갔다). 하지만 역시 비용을 고려하면 성공사례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필자의 사례를 조금 일반화해보자면, 문제점은 입시의 과목별 깊이가 사교육이 제공할 수 있는 부가가치에 비해 너무 낮다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과목별 깊이가 낮아진 이유를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요즘 사회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의 지식을 연결시키는 것과, 자신만의 독창성을 갖는 것의 가치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행정력이나 사회적 합의는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사교육이 학생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장점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고급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는 비용 대비 효율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 단기간 내 해결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찾아야 할 텐데,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와 같은 사교육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방향의 조정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행도 사교육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저런 아이디어를 냈을 뿐, 보고서에는 기존 교육의 "다양성 부족"에도 비판적인 의견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특화된 인재를 육성하면서도 지역별로 비교적 평등한 입시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별로 교육 특색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싶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라면 영어교육에 특화를, 큰 공장이 있는 지역이라면 공학 특화와 같이 실습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을 갖는 지역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은 의료, 보건분야에서 유명한데 그 이유 중 하나로 대학 주변이 슬럼가라 연구 대상이 많다... 라는 소문이 있다.)
다른 관점으로는 기숙사 등 교육 인프라를 짓기가 조금 더 수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비례선발제가 잘 정착한다고 하더라도, 주민들의 반대라던가, 권한/책임/형평성과 같은 논란이 실무자들의 발목을 잡는다면 부모님들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된 현재 상황에서 지방에서 실질적인 교육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싶다.
필자가 중학생 때에는 평준화와 공교육 강화라는 키워드가 유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들었던 말 중에 "수업시간에 가르쳐 준 대로 수학 문제의 풀이과정을 써라"가 있는데 어른이 된 지금 돌아봐도 정말 최악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은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인데 사고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다니... 개인적으로는 정말 용납이 안 되는 가르침이고 생각하고, 실제로 요즘은 학생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시 형평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논의되는 것 자체는 동의하지만 과거와 동일한 방식의 평준화로 돌아가는 건 반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