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나의 일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들

by 소근


2020108

늘 좋아하는 레이어드에 들어섰다.
달콤한 향과 내 취향의 노래, 특유의 노란 조명과 시끄러운 이야기 속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늘 먹던 레몬 파운드케이크가 없었다. 남은 세 종류의 케이크 중에 그나마 상큼함이 느껴지는 빅토리아 케이크를 골랐다. 위에 얹어진 체리의 형태가 선명한 붉은 잼 때문이었다.

단 케이크에게만 허락된 뜨거운 차를 후루룩 마셨다. 음료의 차가움과 뜨거움은 날씨와는 큰 연결고리가 없다. 바깥이야 어떻든 이 카페 안은 늘 쾌적하니까. 중요한 건 안주와 술, 치즈와 와인, 디저트와 커피의 관계성이다.

만족스럽게 먹어치운 후 하얀 접시에는 부스러진 가루들과 흩어진 크림들, 늘 남는 그 크기의 케이크 덩이가 흉측하게 놓여있다.
나가기 전에 화장실을 들리기로 한다.

화장실 문에 붙은 잡지의 글들을 무신경히 읽는다. 기다림이 지겨워질 때 즈음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두드린다. 소리에 묻은 짜증에 답하듯이 조금 센 대답이 돌아온다.

누구인지 얼굴을 한 번 쓱 봐주고는 안에 들어간다. 특유의 화장실 방향제 향과 밖보다 더 노란빛, 그리고 내가 들어섬과 동시에 이 공간에 들어온 거울 속의 나.
문이 닫히고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먹먹하게 멀어진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생리대를 꺼낸다. 들키면 큰일 날 듯이 숨겨진 것은 가방 속주머니 지퍼에 끼여있다. 낑낑대며 한 판 씨름을 한다.
찢듯이 열어서 꺼낸 생리대 귀퉁이는 지퍼에 찝혀 쥐가 갌아먹은듯하다.

변기에 앉는 순간 몸속의 것이 쏟아진다.
아까 카페에서 화장실을 간다고 일어난 순간도 그랬지만, 혹시 넘쳐서 샜을까 봐 다시 일어나 거울에 뒷모습을 비춘다.
상체를 겨우 비추는 것에 어떻게든 보겠다고 까치발을 들고 이리저리 몸을 비튼다.

다시 앉아 바지를 내리고 붙어있던 생리대를 살핀다. 속옷에 혹시 샜는지 설마 겉옷에 묻은 건 아닌지 염려한다.
하얗고 폭신한 천에 묻은 새빨간 피
방금 흘린 피인지 눈이 아플 만큼 붉었다. 어쩐지 아까 먹은 체리 잼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역겹다고 생각할까?

생리대를 죽 당겨 떼어냈다. 돌돌 말아 휴지로 감아낸다. 은근한 무기와 뜨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무엇에서 오는 건지 몰라도 여간 불쾌하다.

그건 옆에 두고 새 생리대를 뜯어낸다. 예전엔 안 그런 것도 몇 개 있어서 한 번에 겉 스티커를 떼어 내는 걸 굳이 광고도 하고 그랬었는데.
겉 포장지도 옆에 고이 놓아두고 때어낸 생리대를 속옷에 붙인다.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정 중앙에, 접힌 자국 없이 제대로 붙여야 한다.

맞춰 붙인 후 날개를 접는다. 늘 날개를 대충 접어서 생리대가 움직여 문제를 야기한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나를 옭매는 청바지와 스타킹이 문제지 붙이는 내가 문제겠는가.

휴지로 말아둔 생리대를 잡고 새 생리대의 포장지로 다시 한번 만다. 아직 남아있는 마지막 스티커로 마지막 이음새까지 완벽하게 처리한다.
꽤나 그럴듯한 포장이 되었다.

휴지통에 처박는다.
내 피들이 처박힌다. 절대 들켜선 안 되는 더러운 것이 되어, 저 속에 처박혀버린다.

바지를 올리고 손을 씻는다. 문득 마주친 거울 속 내가 묻는다.
내가 평생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게 된다면 저 피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그 순간 불임클리닉을 다니던 전 직장 언니가 스친다. 난 단 한 번도 내가 임신을 원할 거라 생각한 적 없어. 근데 내 선택으로 안 하는 거랑 못 하는 건 다르더라. 아이가 갖고 싶어.

손을 꼼꼼하게 씻고 페이퍼 티슈에 손을 닦는다.
손도장이 찍히는 종이를 대충 구겨 쓰레기통에 넣는다. 누가 알겠어, 내 미래를.

그 순간 신경질적인 노크소리가 들린다.

나가야지.

가방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