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들
습관처럼 보던 인스타그램에 갑자기 낯선 게시물이 올라왔다.
예쁨과 행복 사이에서 너무 이질적인 그것은 우울증을 고백하는 긴 글이었다.
어찌 보면 특이하고 어찌 보면 단단하다고 생각되는 후배였다. 학번이 낮은 후배였나? 나이가 같았던가? 잘 모르겠다.
조금 까무잡잡한 건강한 피부에 눈동자가 까맣고 컸던 게 기억이 난다. 몸은 단단하고 가늘었다.
태권도를 오래 했다고 하며 술을 물처럼 넘기는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했던 것 같다. 말에 높낮이 폭이 적고 수다스럽지도 않아서 '단단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의 입학 오리엔테이션 후 사 년이 지나고 1년을 휴학한 나는 그녀와 함께 졸업공연 연습을 했다.
그때도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감상이 들었다. 사 년 전보다는 조금 더 편안해 보였지만 여전히 예의 있고 강직했다.
그 후 그녀의 소식은 인스타그램에서 마주했다.
연주활동과 함께 운동도 하고 여러 활동을 하는 것 같아 보였고, 취미가 많고 활기차 보였다.
난 그녀의 웃는 얼굴이나 눈을 감고 노래 부르는 모습만 기억하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녀의 근황을 묻는다면 "안 친해서 잘 모르는데, 인스타에서 보니까 잘 살던데?"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 글에서는 그녀의 불안과 우울한 심리가 어떠한 비유나 은유 없이 직설적으로 쓰여있었다.
그 글이 얼마나 이상하고 이질적이었는지, 나는 스크롤을 내려서 다른 글들을 기웃거리고 다시 그녀의 글로 돌아갔다.
"나는 그런데 감성글 쓰는 사람 제일 싫어."
친구가 했던 말이었나? 아니, 내가 내뱉었는지도 모른다. 불행을 전시하는 일은 힘들다. 남의 관심이 필요해 쓴 글이었기 때문에, 따뜻한 관심 이면에 이런 가시들까지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행복을 전시하는 것은 쉽다.
나는 한참이나 그 글을 봤다.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고, 그 글 말머리에 붙은 우울증 관련 트리거 주의해달라는 말 때문이었다.
그녀가 정말 그 지옥 같은 우울감에서 벗어나고자, 살고자 그 글을 올린 게 느껴졌다. 그게 그녀가 처음으로 올린 진짜 본인이 느끼는 현실을 반영한 글이었던 것 같다.
그 글을 지나쳐 내려가자마자 온갖 행복하고 아름답고 부러운 것들이 쏟아져온다. 어쩐지 먹먹해진다.
현실과의 괴리감이 뼈아프게 느껴져 더 이상 다른 글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핸드폰을 껐다.
남의 전시된 행복을 보는 것, 전시된 불행을 보는 것 그중에 뭐가 더 나에게 우울함을 주는가?
나는 둘 다인 것 같다.
어쩌면 나 외의 타인들을 너무 깊게 알아버리는 것, 혹은 내가 겪은 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정립한 타인을 마주하는 것이 모두에게 힘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