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이틀 앞둔 밤, 깜빡이는 눈꺼풀 아래 잠든 딸아이의 작은 몸을 품에 안았다. 오늘따라 더욱 왜소하게 느껴지는 딸아이의 어깨는, 고3 엄마 노릇 제대로 못 해준 것 같은 죄책감과 함께 한없이 애처로웠다. 수원 시내 중학교들을 돌며 롤 케이크를 전했지만, 싸늘한 반응 속에 일찍 돌아온 텅 빈 학교 복도의 잔상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사서 선생님을 비롯한 고마운 분들이 챙겨주신 찹쌀떡과 초콜릿을 바라보던 딸아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엄마, 먹을 땐 맛있고 좋은데 부담스러워!” 평소에는 좀처럼 사 먹지 않던 초콜릿과 엿 봉지를 들고 돌아온 나의 모습 위로, 딸아이의 웃음 뒤에 숨겨진 그늘이 드리워지는 듯했다. 품 안에서 “엄마! 시험 못 보면 이런 호강도 못 받겠지?”라며 올려다보는 딸아이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그윽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제 하나가 더 늘어난 것 같다. 내 자식을 내 뜻대로 키울 수 없다는 것. 물론 부모가 그려놓은 지도대로 순탄하게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걷는 아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때때로 회의적인 물음표가 머릿속을 떠다닌다.
딸의 작은 어깨를 조심스레 주무르며, 문득 올해 졸업하게 될 나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변변한 선물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이들의 모습은 때로는 주책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올해 우리 학교 수능 응시생은 재수생을 포함해 고작 열한 명. 향남면사무소에서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이 담긴 찹쌀떡은, 훈훈한 온기로 메마른 내 마음에 작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수능과는 상관없이 졸업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 왠지 모르게 성적 때문에 힘들어하는 딸아이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딸아이가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과 함께, 졸업생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그들의 능력보다 훨씬 넓게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동물자원과의 최정선 보챙이, 김동인 갈매기, 넉살 좋은 웃음으로 아이들 인물화의 주인공이 되곤 했던 잠 많은 최승락, 늘 수더분한 미소를 짓던 조현수,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던 이명희, 벌써 어른이 되어버린 듯 속 깊은 권오덕, 평면적인 듯 순수한 송수훈, 시를 사랑하는 최정한, 곱슬머리 정귀황, 기발한 패러디를 만들어내던 전왕식, 수려한 외모의 김민종. “왜 너희들은 인간적이지 못하고 동물적일 때가 많으냐?”는 나의 짓궂은 농담에 깔깔 웃기만 하던 아이들의 맑은 얼굴들이 눈앞에 선하다.
식물자원과는 처음 열두 명으로 시작했지만, 3학년까지 자리를 지킨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그대로 열두 명이다. 아침 출근길 직행버스에서 늘 마주치던 정우철. 기계 조립을 좋아하고 욕심도 많던 아이. 눈 때문에 늘 비스듬하게 책을 보던 박중길, ‘소’라는 별명을 가진 순박한 소병국, 장난기 넘치던 이수혁, 붉은 장미처럼 강렬했던 양정열, 수업 종 치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알던 손종철, 책을 좋아하고 아는 것도 많았던 반장 정세영, 일 년에 몇 번 보기 힘든 출고 대장 이승민,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읊던 낭만적인 이상용, 그리고 똥파리라는 다소 짓궂은 별명을 가졌던 원동연. “이 꽃 이름 뭐니?”라는 질문에 괜히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던 아이들. 그들의 반짝이는 눈 속에 담긴 세상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일지라도 실은 몹시 부산스러웠다.
산업기계과 아이들은 단순하고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늘 시를 통째로 외우던 서재용. 밥 먹을 때도, 버스를 타고 올 때도, 축제 무대에서도 시를 읊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노력하는 재용이는 특별히 자랑스러운 학생이다. 영농학생전진대회에서 전국 최우수상을 받았던 윤홍길, 권용창, 홍순택. 학교에서 돌아가서도 마을 어르신들의 일을 돕던, 진정한 농업 후계자들이었다. 순택이는 체구는 작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선생님, 이렇게 무거운 가방 메고 멀리서 학교 다니시기 힘드시죠?”라고 먼저 말을 건네주던 순수한 마음이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있다. 목소리 크고 감정 표현에 솔직했던 한성택, 듬직한 모습으로 앉아있었지만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도근욱. 근욱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스턴트맨을 꿈꾸는 이동근은 노래와 연기에도 재능이 있었고, 합기도도 잘하고, 비 오는 날에도 우산 없이 달리던 활기 넘치는 아이였다. 태조 왕건 최수종 배우의 사인을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작년에 쓴 문학책을 소중히 여기던 김영진, 무엇이든 잘 외우고 활발했던 조명근은 2학년 수학여행 때 끝까지 나타나지 않아 ‘기다림의 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마음씨 착한 현지민의 맑고 깨끗한 눈, 까불거리며 트림을 잘하던 최병훈,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해내는 김홍관, 순박한 최명규,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던 최규동, 인생의 고뇌를 벌써부터 느끼는 듯했던 이규성.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단순하지만, 끈끈한 의리와 깨끗함이 있었다. 산업기계과 아이들과 함께했던 활기 넘치던 수업 시간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복잡하지 않아서 더 편안하고 즐거웠던 시간들.
식품가공과 아이들은 우리 학교에서 손꼽히는 우등생들이 모인 반이었다. 귀엽게 까불던 김현일은 교통사고 이후 조금 달라졌지만, 특유의 붙임성은 여전했다. 이 과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여학생 수가 많다는 점이었다. 신국화, 김보영, 이민희, 이아영, 권성심, 박소영. 해맑은 웃음을 가진 성심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주 안기던 아영이. 가끔씩 나를 피하는 듯한 모습에 오히려 마음 아팠던 적도 있었다. 예쁜 보영이와 학교의 ‘인싸’ 국화, 똑 부러지는 민희는 나중에 ‘민희 베이커리’ 사장님이 되겠다고 했다. 키 크고 세련된 소영이는 건강미가 넘쳤다. 개성 강한 인형들을 모아놓은 듯 다채로운 아이들이었다. 공부를 잘하던 이성민, 안준호, 특히 준호는 시를 쓰는 재능이 뛰어나 기성 작가의 작품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계사 전공생 김광식과 담임 선생님의 안마사이기도 했던 이준성. 2학년 때 다른 선생님의 농담 때문에 준성이를 피해 다녔던 웃지 못할 기억도 떠오른다. 항상 잠만 자던 귀여운 이영선이는 쌍둥이인데, 행정실 심주사님 말씀으로는 영화배우처럼 생겼다고 한다. 영선이와 단짝인 신준섭은 동생이 더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에 괴로워하면서도, 체육대회 때는 학교 축구 대표 선수로 활약하는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엉뚱하고 착한 이종광은 1학기 때 칠판 불을 켜려다 카터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종광이 동생 종도는 2학년 동물자원과 에 다니는데, 형과 똑 닮았지만 서로 질색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빵 만드는 솜씨가 좋은 이명섭은 얼굴도 잘생기고 깔끔하지만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빵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는 김태준, 드라마 ‘야인시대’ 때문에 인기가 많아진 최두환, 반장 하기를 즐기던 오지홍, 키가 큰 정운호, 남자다운 박준, 잘생긴 박건서, 고집 세지만 빵을 열심히 만들던 귀여운 한태봉. 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아직은 어수선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담임도 아닌 내가 교과 시간 잠깐씩 만나 짧은 시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기억만으로도 이토록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의 모습이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 곧 이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문득 서글프게 다가온다. 나를 보고 똥배 나왔다고 웃던 여학생들, 아줌마, 할머니라고 외치던 남학생들. 그들이 자유롭게 흩뿌리던 실오라기 같은 웃음들이 오늘따라 더욱 희고 질기게 느껴진다. 이들이 만들어낼 씨줄과, 공부에 지쳐 잠든 딸아이 같은 아이들의 날줄이 엮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 날줄만으로, 씨줄만으로 만들어진 작품보다는 훨씬 단단하고 질길 것이다. 어렵겠지만, 세상 곳곳에서 귀한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용기만 있다면, 졸업식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을 담은 나만의 서툰 스케치를 송사로 읽어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