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기울어진 시계와 반짓고리

(소중한 엄마의 유품, 손 때 묻은 엄마의 반짓고리)

by 박선유


한 동안 건강이 허락하질 않아 외손녀들을 보지 못했다. 흰머리가 솟기 시작하니 영낙없는 할망구가 되어 버려 거울 보기가 두려울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버티고 버티다 죽은 머리카락도 살린다는 생장술을 보유한 딸동네의 미용실에서 꼭 염색을 하고 싶어졌다. 그 행위는 전혀 삶과 죽음이 연결되지 않는 고리인데도 감정을 중시하는 나의 자신에 대한 사랑법이라고나 할까.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며 두 아이들 수발에 힘들어 할 딸을 위해 제주 월동무로 깍두기도 담갔다. 어미가 되어 책임감을 지게 되면 축쳐져서 곧 죽을 것 같은 육신이 어디서 힘이 났는지 거짓으로 꾀병을 앓는 사람같이 변신하곤 한다.


외손녀들이 목청껏 외치던 작고 귀여운 함성 "할머니 다시 해봐요!"에 신명이 난 나는 온힘을 다해 허리가 삐걱대는 것도 잊고 즐겁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좁은 공간에서 빠른 걸음과 날쌘 동작으로 술래잡기를 하다 돌아와 침대 모퉁이에 가만히 앉았을때, 그새 늘어난 바지 허리춤에 붙어 있겠다고 달랑거리던 단추가 힘없이 떨어져 나가 방바닥으로 스르르 풀려나갔다. 그 감각은 어느새 색바랜 마른 나뭇잎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내 모습으로 전이되었다. 문득, 가슴을 텅 비운 그 자리에 단추 구멍 같은 눈을 뜬 친정 엄마의 슬픈 얼굴이 가득 차올랐다. 한참을 그렇게 엄마의 잔상을 좇다,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반짓고리를 꺼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동생들에게 집이며 모든 것을 넘기고, 유일하게 내가 챙겨온 엄마의 물건이었다. 엄마가 아끼시던 금장 시계는 엄마의 뜻과 달리 큰 남동생이 제사를 핑계 삼아 올케에게 줘야 한다며 가져갔지만, 엄마를 잃은 마당에 나는 이 낡은 반짓고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가 남기신 금장 시계가 내게 오지 못하고 큰 남동생의 아내에게로 기울어져 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제사를 모시는 맏며느리에게 돌아가는 것이 집안의 관습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엄마가 그토록 아끼시던 시계를 장녀인 내가 받기를 은근히 바라셨다는 것을 알기에, 그 기울어진 시계는 아직까지도 내 마음 한 켠에 작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장례식장에서 막내 여동생은 "언니, 오빠들 보란듯이 차고 있으소!" 하면서 그들의 인정을 의식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극이 되어 장례식이 끝난 후 바로 그 문제가 불거졌다. 여동생도 그들의 행동에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반면,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정갈한 반짓고리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아 소각을 기다리고 있던 물건, 물질적인 가치로 따지면 시계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이 작은 나무 상자 안에는 엄마의 삶의 흔적과 노고와 따뜻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울어진 시계가 채워주지 못한 엄마와의 연결고리를, 나는 이 낡은 반짓고리를 통해 다시금 확인하고 붙잡는 것이다. 어쩌면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 엄마의 유품은, 빛나는 금장 시계가 아니라 이 손때 묻은 반짓고리인지도 모른다.


평생을 공장에서 일을 하며 검게 탄 얼굴의 엄마가 곁에 앉아 내 머리를 어루만지듯 기습해 와 눈앞을 흐려올 때, 몇 번이나 열어보았던가. 자그마한 나무 상자를 열자 낡은 바늘과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실타래들이 울퉁불퉁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버짐이 핀 얼굴의 자식들이 찬없는 밥상에서 그래도 맛있는 것을 골라 먼저 많이 먹기 위해 검은 눈동자를 빛내던 순간의 나름 질서를 지키던 거친 숨소리도 그 속에 숨어 있었다. 거기 그곳에 엄마의 자상한 온기가 그대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닳고 닳은 은색 골무, 빛바랜 헝겊 조각들, 그 속에서 엄마가 머리카락에 가로세로로 쓱 부비며 바느질의 시작 행위를 알렸던 뭉툭한 바늘 하나를 집어 챙겼다. 귀가 큰 그 바늘은 15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눈이 어두워 실꿰기가 쉽지 않았을 엄마의 나이, 그 나이의 내가 실을 꿰는 작은 구멍에 실 넣기를 몇 번 시도한 끝에 겨우 통과시키고, 떨어진 단추를 바지에 붙여 조심스럽게 꿰매기 시작했다. 바늘 끝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 실이 천을 통과하는 사각거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엄마와의 시간을 되돌려 그녀의 뭉툭하고 열없는 사랑을 연결하고 있었다.


엄마는 참 여리고 순한 분이셨다. 험한 세상 풍파 속에서도 모진 일을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면서도 꼿꼿하게 자식들을 키워내셨지만, 당신은 정작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셨다. 술을 좋아하고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3남 2녀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늘 묵묵히 집안일을 하시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자식들 먹을 것은 항상 먼저 챙기셨다. "나는 너가 공부 잘하는 것만 생각하면 힘이 나분다. 잉" 여수에 내려가면 잊지 않고 담가주시던 깻잎 김치의 향긋한 내음이 그 말씀과 함께 아직도 코끝에 선하다. 그때 그 정성을 나는 가지고 있을까. 엄마의 사랑은 그보다 훨씬 진했었다.


그런 엄마가 62세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 온 가족은 절망에 빠졌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이전의 순하셨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기선을 제압할 존재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10년 동안 통반장을 하시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적극적인 모습으로 동네 일에 참여하시고 당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셨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시간을 억눌려 분출하지 못했던 정서를 지닌 당신을 다독이며 사셨을 것이다. 반짓고리 속 바늘에 실을 실타래에 붙여 되감으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엄마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본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묵묵히 희생만 하셨던 젊은 날의 엄마, 병마와 싸우면서도 꿋꿋하게 통반장 일을 하셨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까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다 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시큰해진다. "울 엄마, 진짜 짠해부러야" 막내 여동생의 울먹임도 섞인다.


일년에 몇 번 쓰지도 않는 이 낡은 반짓고리는 어쩌면 엄마의 분신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엄마의 고단했던 삶의 흔적, 자식들을 향한 따뜻한 사랑, 그리고 애틋한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다. 단추 하나를 꿰매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나는 엄마와 다시 연결되는 듯한 깊은 감동을 느낀다. "엄마, 보고 싶어요. 당신의 딸로 태어나 당신의 속깊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저는, 당신이 남겨주신 이 작은 반짓고리 안에서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며 살아갈 거예요."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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