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의 너무 많은 '나'

by 박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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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쨍쨍했지만, 내 마음은 잿빛이었다. 식목행사라는 이름 아래, 흙 대신 잡초를 뽑아야 하는 아이들의 불만은 곧 나의 속삭임이기도 했다. 몸소 실천만이 해답이라 믿으며 묵묵히 풀잎을 뜯었지만, 실은 나조차도 의욕이라곤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제각기 흩어져 놀거나, 어설픈 손길로 풀을 뽑거나, 혹은 시끄럽게 웃고 떠들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낡은 모자를 눌러쓰고, 곁의 아이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억지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때, 교무부 박세윤 선생님이 화장실 근처에서 놀던 아이를 데리고 왔다. 잠시 후, 그분이 다시 다가와 던진 한마디, “장균하 선생님이 하신 말 잊었냐? 선생님만 모자를 쓰고 있으면 어떡하냐. 저기 새로 오신 선생님을 줘야지!”라는 말은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빗장을 건드렸다. ‘새로 오신 선생님께, 윗분들께 책망 듣지 않도록 포장에 나갈 때 양산 대신 모자를 쓰라고 일러주라는 뜻 아니었나?’ 되뇌어 보니, 그 말을 곱씹는 나 자신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순간,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누구 얼굴은 얼굴이고, 누구 얼굴은 얼골이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예전처럼 웃으며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걱정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고, 그 의도 또한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언짢은 감정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문득, 지난 3월 학기 초에 왔던 총각 선생님이 떠올랐다. 내 업무를 맡았던 그는 겉보기에 너무나 가냘프고 섬세해 보였다. 시간을 쪼개어 최대한 자세하게 업무를 알려주려 애썼지만, 3일 만에 그는 많은 업무에 짓눌렸는지, 교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고향으로 떠나버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방에 모두가 당황했고, 젊은 의지의 박약함에 혀를 내둘렀다.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은 그의 이탈 원인 중 하나로, 내가 준비되지 않은 그에게 너무 빨리 많은 업무를 넘기려 했던 점을 지적하며 웃곤 했다. 나름 최선을 다했기에 그저 흘려듣고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갓 대학을 졸업한 여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 이전의 총각 선생님보다 겨우 세 살 많을 뿐인데도, 어딘가 모르게 더 여리고 불안해 보였다. 송경주 선생님께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했던 지난날의 미안함이 떠올랐다. 두 사람 모두 연약해 보였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도시 학교와 달리 열악한 환경과 짧은 계약 기간 때문에 임시 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우리 학교 사정을 알기에, 교무부 선생님들이 새로 오신 선생님께 미리 배려를 부탁했던 것이다. 알아서 잘 해낼 텐데, 과도하게 걱정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평소 친분이 두터웠기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땀방울이 맺힌 채 억지로 풀을 뽑던 순간, 박세윤 선생님의 말은 자꾸만 가슴에 걸렸다.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 섭섭함은 대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래,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답답함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토록 힘든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여인천하’의 문정왕후나 경빈처럼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며 속삭였다. ‘무어라… 메라…’. 내 무의식 속에 아무렇지 않게 밀어 넣어 두었던 어떤 조각난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3일 만에 떠나버린 선생님에 대한 묘한 책임감, 다른 선생님들이 그 일을 전제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 나는 괜찮다고 애써 믿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 원초적인 불안이 섭섭함이라는 감정을 빌려 터져 나온 것이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며 쉽게 털어냈다고 생각했던 짐 속에, 아직 버리지 못한 무거운 부담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부담이라는 속옷 위에 섭섭함이라는 겉옷이 덧입혀져, 나는 꼼짝없이 갇힌 채 짜증 섞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다. 평소 긍정적이고 활발하며, 쉽게 화를 내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오늘 하루 종일 굳어진 내 표정과 날카로웠던 말투는 나조차 감당하기 힘들었다. 단잠에 빠져 있을 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길에 본 아파트 입구의 벚꽃이 너무나 아름답다며, 밤 9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나와 보라고 성화였다. 부스스 눈을 뜨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바람에 꽃잎비가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고, 문득 올려다본 벚꽃 핀 하늘은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화려함 속에 감춰진, 진정으로 화사한 마음을 가졌던 그분의 말씀이 꽃비처럼 쏟아져 내려와 메마른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혼자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친구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는 그분. 학교에서 돌아오는 친구들의 얼굴을 슬쩍 보며 부끄러워 숨어 다녔지만, ‘나는 커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하며 가슴 부풀어 올랐다는 이름 모를 그분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이 승화되어 타인을 돕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는 그분은, 현재 ‘겨자씨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운영하며 소년원 출신 아이들과 장애아 등 소외된 아이들을 보듬고 있었다. 여러 성공적인 변화 사례를 이야기하며 마지막에 쓸쓸한 표정으로 던진 그분의 한마디, “그래도 말 잘 듣는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요. 90퍼센트의 아이들은 말도 안 듣고 곁길로 가는 아이들이에요.” 그 말을 들으며 얼마나 공감하고 웃었던가.


우리 학교 아이들을, 아니 우리 아이들을 떠올렸다. 모든 아이들이 겨자씨를 틔울 옥토는 아닐지라도, 몇몇 아이들의 작은 변화가 내 마음을 붙잡고 교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자식을 키우며 사소한 일에 감동하고 그 소소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작은 씨앗을 발견하고 도와줄 수 있는 교사라는 직업은 분명 은총 받은 직업일 것이다. 이 세상에 이토록 의미 있는 매개적 직업은 흔치 않다는 생각에,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리라 다짐해 보았다.


하지만, 버려야 할 짐을 여전히 움켜쥐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는 아직도 내 속의 수많은 나를 먼저 챙기고 있으며, 바람만 불면 메마른 가지들이 서로 부딪히며 울어대는 가시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또다시 유행가의 흔한 가사처럼, 마음을 정리하여 옷장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려 애썼지만, 여러 핑계를 대봐도 결국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짜증이 났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래서 꽃비 속에서 환하게 웃던 그분의 모습이 더욱 아련하게 떠올랐고, 그것은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인생은 결국 모자람으로 끝나는 것임을 깨닫게 했다. 우리 아이들보다 더 힘든 아이들도 사랑으로 변화되는 이야기를 수없이 보아왔는데. 내 안에 너무 많은 내가 버둥거려 힘든 나는, 아직 사랑을 나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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