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작 Oct 11. 2023

이자까, TV 출연하다

순간을 열심히 사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유독 바빴던 항저우 아시안게임 일정이 끝을 향해가고 있었던 일요일 낮, 벨이 울리며 오랜만에 보는 후배작가이름이 휴대전화에 떴다.  이렇게 큰 대회가 있을 때면 후배들은 종종 나에게 전화를 해 섭외가 쉽지 않은 선수들이나 논란을 짚어줄 출연진을 찾는 연락을 해오곤 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그러면서 도움이 돼야할텐데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하더니 대뜸 아직도 방송을 하냐고 묻는다. 여기서 방송이라함은 방송출연을 말하는 것. 당연히 이런저런 방송을 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더니 대뜸 출연 요청을 한다. 살짝 고민이 됐다. 물론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좀 쉬고 싶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재밌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바빴던 일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경기를 보며 항저우 현지에서 취재 중인 피디들과 톡방 회의를 마치면 해설이나 출장으로 비우는 출연진들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연진 스케줄 조정과 대체자 물색을 하루 종일 해야했다. 가끔 녹음을 하고 일찍 퇴근하는 일도, 재택도 역시 불가. 방송시간에 메달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라 무조건 생방,  게다가 하루 하루 어떻게 하면 적절한 출연진 배정을 하고 최대한 변수를 만들지 않는 방송을 할까를 고민하며 선수들만큼이나16일간의 열전을 치른 나였다.  축구, 야구에 배드민턴 안세영의 금메달 장면을 보고 또 보고 했으니 이제 좀 쉬고 싶었기 때문에 방송출연을 고민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오는 일을 마다하면 쓰나, 게다가 TV출연인데, 하지만 일요일에 연휴에,  TV출연인지라 옷매무새에 신경쓰고 나가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TV출연은 공식적으로 처음이라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할까. 그러나 피할 수는 없었고 아니 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감사하기도 했다. 당연히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이야기를 종합해서 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기때문에 (나도 이 부분은 섭외가 쉽지않다.  때론 차라리 내가 하는게 편한데 하는 생각도 들때가 있다) 후배 작가가 찾다찾다 나에게 연락을 했나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앵커(해당 프로그램 진행자) 추천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하는 어떤 방송을 봤을까? 아니면 들었을까? 추측이지만 '들었다'에 한표다. 어쩌면 '봤다'고 해도 맞는 말. 라디오가 요즘엔 모두 유튜브로도 동시 송출되기때문에 일명 보이는 라디오처럼 라디오만 듣는 사람들은 운전자들 뿐일 것이다. 대부분 라디오를 유튜브로 본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주말에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기도 듣기도 한게 아닐까 하는 나름 합리적인 분석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깨달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이렇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나는 정말 적어도 일을 할때 만큼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몰입한다. 가끔 내가 무슨 말을 방송에 했는지도 생각이 안날 정도로 그 상황에 몰입돼 있는 나를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소식을 전할 원고를 직접 쓰고 여러번의 팩트체크를 하며 최대한 말하듯 내 스타일의 원고를 만들고 그걸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을때까지 수정하고 수정한다. 팩트와 나의 생각을 적절하게 넣고 어떻게 표현해야 듣고 보는 사람이 잘 이해할지 최대한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생각으로 원고를 쓴다. 그렇게 원고를 쓰며 정리하다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에 그 활자들이 내 생각처럼 박혀서 방송을 할 때는 굳이 원고를 보지 않아도 내가 전달하려고 했던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내 목소리를 통해서 전달하는 나를 경험한다.  TV도 다르지 않았다. 글을 쓰고 방송을 한 20년이 넘는 그동안의 경험 덕분인지 어느정도 전달해야할 것들이 정리되니 긴장은 설렘으로 바뀌고 분장을 하고 TV조명을 받으며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그 상황들이 행복하기까지 했다. 역시나 뭔가 술술 말하고 나온 것 같긴 한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던 차에, 방송 후 와 있는 많은 톡들을 보고 내가 방송을 망치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비슷한 프로그램을 하는 작가들이 참고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방송을 본 후배 작가가 연락을 해 와 나는 이틀 후 또 TV 출연을 했다.  전해들은 이야기로 작가들이 모여 있는 톡방에 뉴페이스로 등장한 나였다 ㅋㅋㅋ "스포츠를 전하는 여자분인데 말을 잘한다. 음성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등등. 나는 그렇게 TV에 출연으로는 새내기 스포츠전문가가 됐고, 작가들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게 됐다.


그리고 나는 또 일요일에 나의 고향 같은 라디오 출연을 하러 상암으로 향한다.  새삼 나의 일이 고맙고 내가 걸어온 20년 넘는 세월이 뿌듯하게 느껴진다면 너무 신파일까. 그럼 어떠랴. 이 상황을 나는 즐길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기회가 온다면 열심히 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근대5종 정진화 선수의 '다음'을 응원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