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크리스마스 즈음 되면
마음이 조금 무겁습니다
작년에는 부족한 저의 실력에
재작년에는 소속감 없는 공허함에
그 전 해에는 인간관계의 복잡함에
머릿속이 시끄러웠습니다
또 그 전 해에는
코로나 무력감 그 어디 즈음이었을 겁니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성장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리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어요
감사하게도, 과분하게도,
그런 저에게 여전히
산타가 찾아옵니다
2021년에는
성취라는 산타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원하던 기회들이
제게 많이 와줬어요
2022년에는
헌혈이라는 산타가 찾아왔습니다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을 어떻게 이겨내나
고민하던 중에
지인의 헌혈 인증 게시물을 봤어요
힌트를 얻었죠
이로운 일을 하면
비어있는 마음이 조금은 차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헌혈하러 갔는데
헌혈 그 자체를 넘어서 큰 선물을 받았어요
그 자리에 온 절 칭찬해주던
헌혈의 집 선생님들 덕분에
학습지 잘 풀고 과자 하나 받은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어요
헌혈과 칭찬의 콜라보로
비어있던 제 마음은
꽉 차다 못해 넘치게 됐죠
2023년에는
가까운 이들이
제게 주는 애정을 크게 느꼈어요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저와의 전화를 위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이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하니
반갑다며 바로 전화를 걸어왔죠
3분쯤 지나니 헥헥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점심시간이 5분 남았음에도
저와 조금이라도 더 통화하고 싶다고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걸어올라가던 거였어요
힘듦을 공유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그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서
의도치 않게 위로를 느꼈습니다
고민 상담하러 전화를 걸었던 선생님도
제 고민을 더 깊이 들어주겠다고
10층이 넘는 집까지
통화하며 걸어 올라가셨어요
2024년에는
인터뷰이들의 피드백이 찾아왔습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제 인터뷰에서
저의 최선을 느꼈다는 그들의 반응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받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스스로 산타가 되어보려 했습니다
한참 알아본 끝에
정기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제게 과분한 금액을 기탁했습니다
산타가 되기는 무슨.
오히려 그 충족감이
제게 더 큰 산타가 되어 돌아오더라고요
올해는 이상하게도
산타가 더 많이 찾아왔습니다
지난 23일
신발부터 바지, 양말까지 다 젖으며
열심히 취재하러 다니던 도중 탄
어느 버스였습니다
신호 대기 중이던
버스 기사님께서
몇 없는 승객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우산 없으신 분 계세요?
제가 우산이 하나 남는데 빌려드릴게요."
저는 우산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조건 없는 그 호의가
너무나도 과분하고 감사해
눈물이 한 방울 흐르더군요
크리스마스 당일인
오늘 아침에는
진짜로 산타가 왔다 갔습니다
앞 집에 걸려 있는 선물을 보며
어떤 마음씨 고운 사람이 걸어 놓았을까
부러워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저희 집에도 걸려있더라고요
현대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따수운 마음씨의 이웃이 남기고 간
선물이었습니다
익명으로
답례를 보내고 왔습니다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배는
글씨체가 궁금하다는 제 말에
마음이 깊게 담긴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크리스마스 뿐만이 아닙니다
그냥 올해는 산타의 해였어요
아침 러닝이라는
새로운 습관을 선물해 준 친구
덕분에 저는
무너지려 할 때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울타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아무도 못 보던
검정색 바지와 검정색 신발 속 검정색 발목 보호대를
알아봐주던 친구
저보다 더 멋진 그 친구 덕에
저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났던
10월의 어느 날
선생님께서는 그러셨어요
"세연아 정말 많~이 컸다!"
성인이 돼서 만난 선생님이었고
2년 만에 만난 상황이었지만
그냥 딱 봤을 때
성숙해졌구나, 내면이 단단해졌구나
느끼셨다고 하셨어요
과분한 애정을 받으며
제 스스로를 되돌아 봅니다
칭찬에 기대어
자만했던 스스로를 반성합니다
저를 지키는 법은 터득했지만
솔직해지는 법을 알아갔지만
타인에게 힘을 주는 것에는
아직 미숙한가 봅니다
가까운 사람, 소중한 사람을 향하는
행동, 마음,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
그걸 내년 목표로 잡아볼까 합니다
올해는 제가
누군가에게
산타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내년에는 꼭
산타가 되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