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까_2편. 탈향(脫鄕), 새로운 길

음악장편소설

by 김주영

탈향(脫鄕)


미카엘 신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곁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안드레아! 이제야 정신을 차렸군. 자네도 이제는 나만큼 늙었으니 너무 무리는 하지 말게. 우리 나이에는 무리하게 일을 해서는 안 되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단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지만 말이야."


안드레아는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하지만 어렵게 무대에 서 있을 수 있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가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단원들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부님. 이번에도 제가 또 신세를 지게 되었군요. 하나님이 아직 저를 부르시지 않으시는지, 일을 할 수 있도록 제게 허락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모두 신의 축복이지요."


안드레아는 미카엘 신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안드레아! 그런데, 자네가 태어난 나라가 '꼬레아'라고 했지? 오늘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보니, 자네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 났다고 적혀 있더군. 북쪽에서 남쪽으로 대규모 공격을 시작했다고 하던데, 같은 민족끼리의 내전인 것 같기도 해. 짤막한 기사만 적혀 있어서 아직 자세히는 알 수가 없었어. 이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군. 하나님 아버지! 저 불쌍한 꼬레아를 구원하시고 축복하소서!"


안드레아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약 반세기 전에 떠나 온 고향을 떠 올렸다. 소년의 나이에 떠난 고향은 이제 죽음이 멀지 않게 기다리고 있을 노인의 나이가 되어 버린 시간만큼 아득히 멀리 떨어져 버렸다. 그가 가족과 마을을 떠나온 이후 흘러버린 시간들 속에서 무수히 많은 땅을 지나 왔고, 어느새 이 곳 쿠바 하바나에 삶의 터전을 차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동안 고국은 일본인에게 나라를 뺏겨 버린 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었고, 불과 몇 년 전에 끝난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하자 모국은 독립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멀지 않아 남과 북으로 나뉘고 오늘은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 난 것이었다.

"제가 떠나기 전의 꼬레아는 하나였었는데, 이제는 둘로 나뉘어 싸우게 되었군요. 하나님. 저의 꼬레아를 구원해 주소서. 아멘!"


"안드레아는 언제 꼬레아를 떠났지?"


"기억이 정확히 나지는 않지만, 서양력 상으로는 1905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 고향을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나?"


"솔직히 말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 반대편에 있거든요.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기까지 제가 오는데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배도 엄청 오래 타야 했고, 기차도 탔고, 다시 배를 타고...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지요. 일본한테 해방이 되었다고 들었을 때도 다시 꼬레아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감히 들지 않더군요. 하지만, 고향의 모습은 요즘도 가끔 꿈속에서 나오곤 합니다."


"안드레아.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해되네. 나도 젊었을 때 사제 생활을 시작하면서 모국인 스페인을 떠나게 되었지.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군. 죽기 전에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 어릴 적 자랐던 세고비아 지방이라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하늘로 가더라도 여기 하바나에서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네."


"저도 그런 점에서는 신부님과 비슷하지요. 언제라도 아버지의 부름을 받는다면 이곳에서 하늘로 가더라도 후회는 없습니다. "


안드레아는 미카엘 신부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인생의 역경을 말해주고 있는 주름살과 탄력을 이미 잃어버린 살결이 가득한 얼굴을 옆으로 천천히 돌리며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져 버린 고향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안드레아의 본명은 김명학(金鳴學)이었다. 갑신년인 1884년에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기왓장을 얹어 주거나 담벼락, 성벽 등을 수선해 주는 일을 하는 미장장이였다. 명학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어디서 받아 온 이름이었는데, 당시는 신분의 차별이 명확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천민인 그가 이름을 받아 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미장일을 워낙 잘했고 그가 태어날 무렵에 유명한 작명가의 집을 고쳐주게 되었는데, 그 작명가가 아버지의 기술에 탄복하여 감사의 표시로 멀지 않아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지어 준 것이었다.

"자네의 실력은 시대를 잘 타고 났으면 이름난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야. 아무튼 자네 실력이 워낙 출중하여 우리 집이 마치 새 것처럼 고쳐졌어. 내 감사의 표시로 자네에게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는 거네. 태어날 자식의 운명을 보니까, 소리에 호기심이 많아. 그 배움으로 삶이 이어질 것 같네. 그래서 소리를 배운다는 뜻으로 '명학'으로 지었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면 나중에 자기처럼 미장일을 하며 살기를 바랐기 때문에 소리를 배우며 살게 된다는 뜻의 이름인 '명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워낙 유명한 작명가였던지라 할 수 없이 그 이름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몇 달 뒤에 아들이 태어났고 어려서 허약해 병에 걸리는 등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조상이 돌보았던지 용케 살아남아 무럭무럭 커서 아버지가 일을 나갈 때면 연장통을 들고 같이 밖을 나서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훌륭한 미장장이의 자식이었지만 그는 거기에는 그다지 소질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처럼 쓸모 있는 미장장이를 만들고 싶어서 아들에게 일터에서는 혹독하게 일을 가르치곤 했었다.

"이놈아! 결을 잘 손질해서 기왓장을 얹어야지. 너는 매사에 대충하고 있단 말이야. 넌 항상 정신이 어디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구나."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항상 아버지가 가르쳐 주시는 데로 하는데, 마음처럼 잘 안돼요."


"처음부터 잘 하는 놈은 한명도 없단다. 자꾸 하다 보면 잘 하게 될 거야. 근데 너는 몇 번을 해도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구나."


명학은 아버지의 말이 어쩌면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병치레가 많았던 탓에 그의 몸은 그다지 건강하기 못했고 힘든 미장일을 하고 나면, 며칠 동안은 녹초가 되어 밤에 잘 때도 온 몸이 천금만금 같았고 아침에는 잘 일어나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언제인가 어머니와 장에 갔다가 우연히 보고 듣게 된 소리꾼들의 창과 농악대의 악기소리는 그 이후 그의 귓가를 계속 맴돌고 있었다. 아버지와 땡볕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소리꾼이 구슬프게 뿜어내는 소리 구절이며, 배를 잡고 웃을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을 힘 좋게 뽑아대던 목소리, 그리고 쇠를 끊이는 듯이 쳐대는 꽹과리 소리, 그리고 사이사이에 한마디씩 들어와 무겁게 울려주는 징소리, 북소리 들이 소년인 명학의 마음을 달구고 있었다.


열 식구가 잠을 자고 있는 방안은 온갖 소리들로 밤에 가득 차곤 했다, 이불을 뒤척이고 잠꼬대를 하고 코를 고는 소리들이 서서히 고조되어 절정을 다해 갈 때면 명학은 자주 잠을 깨버리곤 했다. 아버지를 도와서 자기들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세 명의 형들의 코고는 소리는 정말 장터에서 들었던 꽹과리, 징, 북, 장구 소리와 흡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푸우. 크르르 흥! 츄~"


이럴 때에 어김없이 들어와 주는 여동생의 잠꼬대 소리는 판소리의 한 구절을 떠올려 주며 어머니가 이불을 덮어주며 막내 동생에게 '자장. 자장"하고 잠결에 하시는 소리는 소리의 추임새로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몇 번 들어 보지 못했던 장터에서의 놀이 소리였지만 계속 운명처럼 명학의 마음을 울려대었고 이내 그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그의 어딘가 깊은 곳에서 이렇게 울려 나왔다.


"그 소리들을 배우고 싶다."


하지만, 마장장이 집에서 태어난 그가 소리를 배운다는 것은 앞으로 많은 어려움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열 식구들이 먹고 산다는 것은 사실상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었다. 식구들을 위하는 길은 어서 빨리 아버지의 절반 정도라도 되는 수준까지 미장기술을 배워 식구들의 밥벌이에 도움이 되는 것이 그로서는 최선의 길이었다. 그나마 형들이 자기 몫은 제대로 해내고 있었던 터라서 다행히 식구들이 모두 밥은 굶지 않고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어중간한 상태에서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다니며 의지하고 지낼 수는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없어진다면 입 하나라도 줄이게 되어서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와 그리고 동생들을 볼 때면, 그러한 마음은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다시 한 번 모질게 마음을 고쳐먹고 다음 날은 더 열심히 배워서 제대로 된 미장장이가 되어야겠다고 느꼈다.


어느 날, 아침부터 산을 세 개나 넘고 도착한 진사 댁의 지붕 위에 올라와서 기왓장을 교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와 수십 장을 등에 지고 지붕에 올라와 한 곁에 놓아두고 지붕 한쪽 끝 편에 와서 그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강하게 내리쬐는 칠월의 땡볕 속에서 마당의 큰 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매미의 소리는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맴. 맴. 맴. 매매매 매매매~"


그런 소리를 내고 있는 매미가 명학은 갑자기 부러워졌다. 그것은 분명히 소리를 만들어 온 마당을 울리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구슬픈 가락이 한 가닥, 한 가닥에 깊숙이 서려 있었다.


'무엇이 소리를 저리도 구슬프게 만들어 줄까?'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 순간 날카롭게 외치는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아! 조심해!"


그가 앉아 있던 기와더미가 우르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마당으로 기왓장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그 매미의 청명하게 구슬픈 가락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다음날 저녁이었다. 밤새 그리고 다음날에도 온종일 그는 사명을 헤매고 있었다. 머리를 부딪쳐 기절을 했지만, 다행히 큰 화를 피할 수가 있었다. 다리가 부러져서 다시 걸을 수 있었던 두 달 동안은 그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하였다. 그저 밥을 축내고 있는 자신이 싫었고 항상 배고파하는 동생들을 하루 종일 보고 있으면 차라리 지팡이라도 짚고 나가서 가마니라도 짊어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생들을 위해서 자기가 먹을 밥을 아껴서 몰래 밥공기에 덜어 주기도 하였다.


그 사건이 있었던 이후에는 아버지는 다친 아들이 미장장이로서 성공하길 바라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나중에 아들이 혼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저한테 맞는 일을 차라리 찾아 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명학의 몸은 차츰 회복이 되어 다시 연장통을 들고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 나설 수가 있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잡아먹고 다시 미장일을 열심히 하리라 생각했지만 쉽사리 그들이 하는 만큼의 일의 양을 따라 갈 수는 없었다. 읍성의 성벽들이 시간이 지나자 허물어지게 되었고, 그 성벽을 다시 세우게 되는 어려운 일들이었고 매일 새벽별을 보고 집을 나가서 밤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 올 때면 자신이 한 일은 형들과 아버지가 했던 일의 십분의 일도 안 되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내 풀이 죽어 버렸다.


그렇게 여러 달이 정신없이 흘러가게 되었는데, 어느 날 이 고장, 저 고장을 떠돌아다니는 소리패들이 옆 마을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마을사람들이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내일이면 옆 마을에 장이 서니까, 명학이 사는 마을 사람들은 하루 밤 자고 옆 마을 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팔러 갈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장에는 소리패들이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 명학은 어머니를 졸라서 다음날 옆 마을 장에 가실 때 같이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성벽을 쌓는 일이 아직 남았을 터인데,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서 거기 일하러 나가지 않고 왜 굳이 장터를 따라 가려고 하냐?"


"어머니. 내일 장에 내다 파실 물건들도 있잖아요? 제법 무거울 것 같은데 제가 내일은 하루만 도와 드리고 싶어요. 성벽일은 제가 하루 빠진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굳이 이렇게 고집을 피운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요새 나도 허리가 아파서 무거운 물건을 들고 멀리 걸어가는 것이 힘들다."


그렇게 하여서 명학은 다음날 옆 마을 장에 어머니와 같이 가게 되었고 시간을 내어 소리패들의 소리들을 원하는 만큼 실컷 듣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 소리패들이 사흘 뒤면 마을을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흘이 지나고 어느덧 밤이 되자, 그는 낮에 몰래 싸둔 보따리를 들고 살며시 방을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마음을 잡은 명학이었지만, 가족들의 발 사이를 조용히 그리고 들키지 않게 가려서 내려놓는 발걸음 한마디, 한마디는 천금만금처럼 느껴졌다. 고이 잠든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들, 그리고 형들과 동생들의 몸들이 잠에 뒤엉켜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길게 한번 보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앚아서 방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마당에 자리 잡은 미루나무의 가지에 걸려 있는 보름달이 그의 이러한 모습을 말없이 비추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남쪽을 향해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을을 나오게 되자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는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고, 산등성이를 돌아가게 되자 보름달에 비친 마을의 전경이 평화롭게 펼쳐졌다. 이제 이 모퉁이를 돌면 더 이상 마을이 보이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는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집을 향해 큰절을 올렸고 잠시 후에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남은 눈물을 소매로 훔치며 모퉁이를 돌아 섰다. 새벽 동이 트기 전까지 계속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잠시 쉬고 난 후 다시 또 걷기 시작했고 몇 시간 뒤에 아는 얼굴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지만 그들도 멀리 일하러 나가서 밤새 꼬박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쳐서인지 그에게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 고개를 넘게 되니, 저 멀리 나아가고 있는 장터의 소리패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길


명학은 그들의 행렬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계속 응시하며 고개 아래쪽으로 뻗어 있는 비탈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리막길로 나 있는 길들은 평소 사람들의 발길에 따라서 생겨난 것이었을 테지만, 조금이라도 소리패들이 나아가는 방향에서 길이 빗겨 나가기만 할 때면 그들을 혹시나 놓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그의 마음은 불안해져 왔다. 잠시 후, 고개를 다 내려와 평지에 발을 디디게 되었지만 이미 그들의 행렬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그러나 굽이굽이 뻗어져 가고 있는 남서 방향의 길은 그들이 밟고 지나간 흔적을 흙 위에 다행스럽게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족적들을 따라서 명학은 걷고 또 걸어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먼 길을 떠나 왔고 그리고 이 방향은 한 번도 가 보려고 생각도 하지 못한 곳이었다. 마음이 점점 두려워 오며, 만약 그들을 놓치게라도 된다면 이제는 정말 영영 갈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이! 시방 안 바쁘면 나 좀 도와주소! 내가 물건을 깜빡하고 놔두고 와서 다시 챙겨온다고 이렇게 늦었당께. 나 혼자 들고 갈 라니 너무 무거워 버려. 잉. 근데 같은 방향이면 나 좀 쬐끔만 도와주소."

멍하게 서 있는 명학을 보고 뒤에서 누가 말을 건넸다. 돌아다보니, 이리저리 짐 보따리를 등에도 지고, 양 손에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근데, 제가 좀 바빠서 그런데... 아니에요. 도와 드리죠. 손에 든 거 제가 좀 들어 드릴게요."


"아따! 고맙소. 내가 일행을 놓쳐서 따라 잡으려면 이 짐을 혼자 들고는 오늘 중으로 안 될 것 같아서 그랬소. 암튼 너무 고맙소."


"혹시, 소리하시는 분들 말인가요?"


"맞소. 그 사람들 봤소?"


"저 고개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저 멀리 가고 있었으니, 아마 반나절이면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제가 여기 길이 처음이라서..."


"길은 여러 번 내가 다녀 본 곳이라서 길 잃을 염려는 마소! 근데, 어디로 가는 중이요?"


"아. 그저 같은 방향인 것 같습니다만..."


"잉. 암튼 잘 되었네. 나하고 일단 같이 들고 갑시다."


명학은 갑자기 만나게 된 왠 낯선 남자와 같이 짐을 들고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거무칙칙하게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자리 잡은 눈썹이 시커멓게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말이 무척 많았다. 쉴 새 없이 내뱉고 있는 말들을 들어 보면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저렇게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으니 분명 몸에 기운이 넘쳐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조금씩 두려운 기색에서 벗어난 명학은 그가 무척 입담이 좋고 재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는 한 세, 네 살 정도 많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아야. 나만 너무 말이 많았지라잉. 지는 봉수라고 하요. 이름이 뭔지요?"


"저는 명학이라고 해요."


"아무튼, 반갑소잉. 좀만 있으면 일행들 만날 것 같은디. 우리 썽님들이 내가 늦게 왔다고 고함 좀 치겄어라잉. 성깔들이 불 같이 지랄 같아서 말이여."


명학은 자기가 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는지 봉수라는 사람에게 얘기를 문득 하고 싶었지만, 입술까지 나온 말들을 다시 담아 버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기 버드나무 아래에 쉬고 있는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자, 봉수는 등에 지고 있는 큰 보따리를 들고 부리나케 그 곳으로 달려갔다.


"아따. 썽님들. 제가 늦어지라잉. 다행히 이것들이 그 곳에 도망 안 가고 얌전히 잘 있었소. 이것들 보자마자 울러 메고 여기로 부리나케 달려왔소."


"야. 봉수 이놈아. 너 그것들 잃어 버렸으면 오늘 밥은 없었던 줄 알아라."


"헤헤. 아. 저기 저 사람이 오는 길에 만났는데. 우리 짐들 좀 들어 주었소. 아야. 여기 좀 오소. 우리 썽님들이 고맙다고 안 하요!"


명학은 봉수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 쪽으로 뛰어 갔다. 그리고는 그들 앞에 가서 다자 꼬자 납작 엎드렸다.


"아따. 갑자기 와 그래요? 더위 먹었소?"


봉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제가 이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여기까지 왔지만, 사실 선생님들을 뵈러 따라 온 것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우리를 뭐 하러 보러 왔는가? 지게골 주막 외상 값 받으러 왔으면, 주모에게 말해 주소. 이제 남은 돈 없다고 말이요. 주모가 나이가 드니,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 한 가보네 그려."


"저는 소리를 배우러 왔습니다."


"소리는 소리꾼에게 배워야지. 우리는 놀이꾼이여. 아. 하긴 우리도 소리하는 놈이 있긴 하지. 근데, 우리를 어디에서 보고 여기까지 따라 왔는가?"


"며칠 전 장에서 놀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따. 젊은 양반. 이것이 말이여. 일단 발 들이면 고생길이여. 평생 떠돌아다니며 살고 말이여. 이것이 뭐가 좋아 따라 왔던가?"


"저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귀에 맴돌며 제 맘을 떠나지 못합니다. 뭐든지 시키는 데로 할 테니, 제발 저를 좀 거두어 주세요! 큰맘을 먹고 선생님을 찾아 왔고, 이제야 뵙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떠돌이 놀이꾼들이야."


"아따. 썽님. 이놈 말하는 거 보니, 뭐 작심하고 온 놈 같소. 우리들 짐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께, 이놈 데리고 다니면서 일 좀 시켜 보입시다."


뒤에서 누가 끼어들며 말을 하였다.


"다음 장날까지 가려면 어서 바삐 서둘러야 하오. 그냥 이놈 데리고 한번 가보소. 이놈이 보기에는 여리여리 하게 생겨 먹었어도 손을 보니 일 좀 한 놈 같소. 아야. 이것도 좀 들어라."


명학은 그 사람의 그 한마디에 쏜살같이 달려 들어 커다란 짐을 등에 울러 메었다. 그리고는 그들을 놓칠세라,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 갔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갈대 숲길을 정처 없이 일행은 바람에 스치듯이 나아갔다. 그가 이전부터 그들과 같이 다녔던 것처럼,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걸음을 이어 갔고, 한 번씩 앞에 선 누군가가 남도가락을 구슬프고 때로는 흥겹게 뽑아내면 뒤에 있는 이들이 추임새를 넣곤 하였다. 명학은 마음이 계속 두근거리며 이 모습들을 지켜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집을 떠나 온지 어언 반년 정도가 흘러간 듯 느껴졌다. 그동안 명학은 그들과 함께 지내며 온갖 굳은 일, 잡스러운 일들을 해 주고 있었다. 막내인 그에게 가장 많은 짐 보따리가 주어졌고, 이동 중에 식사를 할 때면 큰 솥에 밥을 지어서 모두 먹여야 했고, 온갖 악기들이 녹슬지 않게 닦아 주어야 하는 등 하루 종일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그나마 다행히 불호령 같은 고함소리를 겨우 듣지 않을 수 있었다. 얼음장 같은 날씨에 손을 비비며 새벽같이 눈을 떠서 그 날에 필요할 일들을 준비해야만 했다.

"야. 썩을 것아! 내가 이 작대기들 모두 다 챙기라고 했어 안했어? 이거 하나라도 없으면 내일 장터에서 우리 일 못하는 거여! 그러면 쫄딱 우린 굶어 돼지는 거여! 불쌍한 놈 거두어 줬다만 네놈 밥값은 제대로 이제 해야제!"


꽹과리와 소고를 치는 세치 형님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퍼붓고 있었다.


"네. 저기 조그만 보따리 안에 나머지 것들 들어 있어요. 제가 냉큼 가져다 드리게요."


어깨너머로 그동안 그들의 기술을 눈으로 배우고, 몰래 흉내를 내며 따라하고 있었지만, 악기에 손을 대어 보려고 하면, 성을 내기 일쑤였다.


"너는 아직 때가 안 되었어. 일단 말이여. 소리를 많이 들어야 되는 거여. 그 소리에 익숙해져야 된단 말이여."

"그래. 맞는 말이여. 너 맨날 우리 하는 거 기웃기웃 보고 있는 거 다 아는 디, 우리가 치는 장단에 네놈 귀가 열려져 있어야 되는 거여."


장구 치는 칠구 형님이 말을 거들었다. 그러자, 조용히 앉아 있던 소판이 형님이 끼여 들었다.


"그래도, 명학이 저 놈이 소리는 잘 뽑는 거 같어. 내 일전에 심심해서 저놈에게 간단한 거 한번 가르쳐 주고 시켜 보니까, 소리색이 그냥 말할 때와는 달라. 좀 타고 난 거 같아. 제대로 한번 가르쳐 주면 잘 할 성 싶어. 근데, 소리가 너무 고와. 그게 단점이여."


몇 달이 지나자, 형님들은 명학에게 조금씩 악기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꽹과리, 소고, 장구, 북 등이 차례로 배워졌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얻어맞기 일쑤였다. 악기 가르칠 때 형님들의 모습은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아마 그들이 즐기면서 하기 보다는 이것이 그들의 밥벌이라고 여기는 까닭이 아닐까 싶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다니며 미장장이 일을 계속 하였더라면, 지금이면 이보다는 더 능숙해졌을 텐데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집을 떠난 지 이제 일 년의 시간이 흘렀고, 고향이 어느 방향인지 모를 정도로 너무 멀리까지 그는 떠나와 있었다. 그래서 한대씩 얻어맞을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연습을 계속했다. 그동안 그들을 따라 다니며 들은 장단과 소리를 귀가 지치도록 들었던 탓에, 악기를 치는 방법을 터득하는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져 갔다.


"네놈이 제일 젊어서 그런지, 배우는 것이 빠르긴 하네 그려."


평소 고함을 하도 질러 되어서 눈물을 꽤나 흘리게 했던 세치 형님이 오늘은 꽹과리를 가리키며 처음으로 칭찬을 해 주었다.


"근데, 말이여. 이건 그냥 손으로 치는 게 아리랑께. 물이 끊듯이 쇠가 자글자글 끊게 만들어야 하제. 자 한번 봐라."


세치 형님은 시범을 보여 주었다.


"꽤랭. 꽤랭. 꽤래래래 랭."


이렇게 시작하여 계속 이어나가는 쇠의 장단은 한참동안 이어 나갔다. 마치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되풀이 되고 있었다, 정말 쇠가 녹아내릴 것처럼 만들어져 나오는 소리들이 텅 빈 공간을 가득히 채워 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소리가 조금씩 잦아 들기 시작했고, 이어 멈추었다. 하지만, 세치 형님은 한동안 장단의 여운에 취해 있는 듯이 눈을 뜨지 않고 말없이 조용히 있었다. 명학도 조용히 그 소리의 향기에 같이 취한 채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자. 알겄냐?"

세치 형님은 이 한마디만 하고는 그날 수업을 마쳤고, 그 후 며칠 동안 잔소리도 하지 않은 채 별로 말이 없었다.


"세치 저 놈이 너한테 지랄 같이 소리를 질러 되어도, 참 한이 많은 놈이여.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보부상들 따라 전국팔도를 돌아 다녔지. 그러다가 옛날에 역병이 창궐할 때에 그 놈들 다 죽어 버렸고, 저 놈도 어느 물레방앗간에서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돌아가신 우리 할배가 거두어 준 거여. 세치가 용케 살아나긴 했는데, 얼굴에 저리 흉터가 생겼지. 암튼. 저 놈도 어쩌다가 우리 패에 들어오긴 했는데. 기구한 팔자여. 명학이 니놈도 뭔 사연이 있겠지만, 여기 있는 놈들 다 가지고 있는 한들이 있는 거여. 잘 들어 보면 그 한들이 저마다의 소리에 담겨 있어!"


징을 담당하고 있는 제일 맞 형 되는 대치 형님이 말을 해 주었다. 모두들 힘들어 하고 끼니를 굶을 때마다 대치 형님의 존재가 모두들에게 그 고난을 이겨 나가는 힘이 되곤 한다는 것을 명학은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깨닫고 있었다.


해가 여러 번 지나갔고, 명학도 어느새 그들과 장터에서 행해지는 놀이에 끼여 같이 연주를 하게 되었다. 여전히 막내였지만, 그의 실력이 인정되어 형님들이 피곤하여 한 번 씩 쉬고 싶어 할 때면 그들의 빈자리가 되는 악기들을 어김없이 채워 나갔다. 때로는 형님들의 수준 이상으로 연주가 되는 날도 더 많아져 갔다. 그럴 때마다 형님들이 시샘하는 눈치도 있었으나, 이내 그 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넘어가곤 하였다.


"명학이 저 놈이 이제 우리를 능가하는 것 같아. 좀 타고 난 것 같아. 저 놈 아버지가 미장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집에서 저런 놈이 태어날 수도 있네 그려. 참. 저 놈이 우리만 따라 다니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말이야."


"저 놈이 우리하고 계속 다니다간 우리 자리도 뺏길 것 같네. 이번에 남도 쪽 다녀가면서 적당한 때에 저 놈을 이제 떼어 내 버리세. 그동안 우리 식구가 되어 정이 들어 버려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명학이를 위하는 길이여. 소판아! 우리가 내려가는 방향이 그 어르신 사는 곳이 맞냐?"


여러 지방을 다녀 보았지만, 남도 지방의 소리들이 제일 풍성하고 맛깔스럽다는 것을 명학은 알 수가 있었다. 길을 걸어가다 우연히 듣게 된 판소리와 시나위 연주는 그의 귀와 가슴을 사로잡게 되었다. 남도를 이리저리 일행들이 다니던 중에 어느 마을에 거처하게 되었다. 하루는 무리 가운데서 유일하게 소리꾼이었던 소판이 형님이 명학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명학아! 자 이제 여기에서 너는 우리를 떠날 때가 된 것 같구나. 그 동안 우리가 너를 먹여 주고 가르쳐주었으니까, 너도 이제 뭔가 새로 길을 가야지. 내 일찍이 네가 소리에 소질이 있는 걸 알고 있었제. 여기서 고개를 네 개만 넘으면 마을이 하나 보이는데, 거기로 가서 이제학이라는 사람을 찾아 가거라. 가서 내가 보냈다고 말하고, 네가 몇 년 전에 우리에게 찾아 왔을 때처럼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 보거라. 내 말 알겄냐?"


"네. 무슨 말씀이에요? 저 보고 이제 형님들과 헤어지라는 말이에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요? 그렇다면 용서해 주세요."


"명학아. 너무 섭섭지 마라. 다 너를 위해서 그라는 거여. 우리 따라 다녀 봤자, 평생 떠돌아다니다가 언제, 어디서 그냥 죽는 거여. 그리고 네가 이제는 악기마다 너무 잘 해서 우리 형님들, 동생들 자리를 꿰차서 우리가 겁이 난다 말이여. 아따. 말이여. 그건 괜한 소리고, 너는 소리를 잘 뽑을 수 있으니까 그 사람 찾아가서 이제 다시 새로 출발 해 봐라. 좀 지나면 네가 선택 잘 했다고 어쩌면 생각할텐깽. 우리 우두머리인 대치형님하고도 다 얘기를 나눈 것이니까, 나중에 조용히 떠나면 된다."


몇 년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지내던 사이였던 터라서, 다시 보따리를 들고 떠나는 명학은 그들이 머물러 있던 주막을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고개를 넘어 갔다. 몇 년 전 고향을 떠나오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다시 새로운 길을 가야 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두려움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주막 쪽을 바라보고 큰 숨을 들이켜고 고개를 내려갔다. 정말로 고개를 몇 개 넘고 나니, 마을이 나타났다. 내려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서 이제학이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 갔다.

"소판이 그 놈이 너를 보냈다고? 아직 그 놈이 살아 있나 보구나. 이 근처까지 왔으면 찾아와서 인사라도 하고 가지. 인사는 하러 오지 못하고 대신 네놈을 나한테 보낸 모양이구나. 지 놈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나한테 가르쳐 주려고."


처음 보는 이제학 선생은 깡마른 체구에 고집이 센 인상을 주었다. 아마, 그리 좋지 않은 인연으로 소판이 형님과 헤어졌을 거라고 짐작이 되었다. 선생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심을 한 듯이 퉁명스럽게 내 뱉었다.


"마침. 장작 패던 놈이 고향에 돌아 가 버렸으니, 네가 당분간 여기에 머물며 일 좀 해라. 소리에는 네 놈이 재질이 있는지는 차츰 내가 확인을 해 볼 터이니. 어쨌든 소판이 그 놈이 너를 나한테 보냈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여. 근데, 소리 배우는 일이 쉽지가 않지. 너도 이제 내 밑에서 고생할 각오 단단히 해라."


명학은 다행히 이제학 선생의 슬하에 견습생으로 받아지게 되었다. 이제는 그에게 또 다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