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까_3편. 소리의 바다, 제물포

음악장편소설

by 김주영

소리의 바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자, 서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칼날 같은 기운을 뿜기 시작했고, 산을 오르내리는 명학의 손과 발은 시퍼렇게 차가워지기 일쑤였다. 겨울을 나려면 부지런히 장작을 채워 넣어야 했다.


'아! 내가 여기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까? 고향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들, 동생들은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오늘 패온 장작더미를 지게에 지고 당장이라도 고향땅으로 달려가서 방안이 후끈후끈하게 끓도록 불을 지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하루였다.


"저기 있는 아이는 명학이가 아니더냐? 이제 슬슬 고향생각이 나는 모양이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집으로 가거라."


선생이 외치는 소리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다.


"아닙니다요. 제가 잠깐 얼이 빠져 있어나 봅니다. 선생님. 조금만 계십시오. 저녁을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선생은 그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돌아서 걷다가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소판이 형님의 말로는 선생이 소리를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몇 달 동안 지내면서 소리를 배우러 오는 이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간간히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가서 밤늦게 돌아 올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은 어디 가서 선생이 소리를 가르치고 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명학은 작정을 하고, 기회를 보다가 선생에게 여쭈었다.


"선생님. 어제 나가셔서 늦게 오시는 것을 보니, 소리를 가르치시고 오셨나 봅니다."


그가 느닷없이 툭하고 던진 말에 선생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헛기침을 하고는 그에게 돌아 섰다.


"너는 평소 내가 어디 가는지 궁금했나 보구나?"


"아닙니다. 가끔 늦게 오실 때면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걱정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잉. 네 놈 얼굴을 보니, 그게 궁금해서 물어 본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오늘은 눈이 이렇게 오니, 네가 산에 갈 일은 없겠구나. 이제야 너의 소리를 한번 들어 봐야겠다."


명학은 순간 긴장이 되며, 침이 입안으로 꿀꺽 삼켜졌다.


"나를 따라 해 보거라. 아~어~어어~ 이이이~이"

그는 선생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 해 보았다.


"아~어~어어~이이이~이"


이어서 계속되는 선생의 소리 구절구절을 하나씩 따라서 목청껏 뽑아 보았다. 선생은 그가 내는 소리들을 다 들은 후에 잠깐 눈을 감으셨다.


"소판이 한테 소리를 배운 적이 있느냐?"


"배우고 싶었으나, 다른 악기를 터득하느라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것을 따라서 계속 불러 보곤 하였습니다."


"너는 소리색깔이 고운 편이구나."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판이 놈은 소리가 굵고 우렁차지. 그 놈한테는 그 놈 색깔이 있는 것이고. 너는 너의 색깔과 결이 있으니, 그 결대로 가꾸면 되느니라. 소리를 오래 하면 목청이 바뀌어서 거칠어지고 쉰 목소리가 나는 편이다. 그런 소리가 명창이라고 다들 얘기는 하지만, 나는 솔직히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기 남도소리는 다른 지방과 다른 점이 많다. 동쪽의 소리는 기교가 적은 반면, 정직한 맛이 있지. 여기 서쪽의 소리는 더 맛깔스럽게 들리지만 한이 사무쳐 있는 것이다. 그 한을 소리에 녹이지 못하면 제대로 소리를 한다고 할 수가 없다. 오늘 첫날인데, 너무 말을 많이 했구나. 오늘은 여까지 하자꾸나."


명학은 그 날 밤잠이 오질 않았다. 왜냐하면, 낮에 들었던 선생의 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귀에 각인되어 밤새도록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었다. 잠이 쉬 오지 못하여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저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바다의 물결 위에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파도소리와 자갈소리, 그리고 귀에는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달빛은 바다에 쏟아져 산산이 부서지며 아득하게 눈부신 소리의 바다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그는 너무나 선명하게 듣고 볼 수 있었고, 그는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 해 겨울은 너무 추워서 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은 흘러서 어느덧 땅 위는 온갖 풀과 꽃들로 덮이기 시작하면서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을 알려 주었다. 몇 달간 배운 소리대목들은 거듭거듭 쌓여서 판소리의 한마당을 이루게 되었다. 봄부터는 북을 다루는 법도 선생에게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소리를 할 때는 북을 쳐주는 고수가 있는데, 소리꾼과 고수가 따로 역할이 있지만, 나는 소리하는 자도 북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그 장단에 익숙해 질 수가 있는 거다."


여름이 되어 가기 전까지 진양, 중머리, 증중머리, 잦은몰이, 휘몰이, 엊모리, 엇중모리 등 판소리의 기본이 되는 장단을 북으로 치는 법을 그는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었다. 가을이 되자, 소리와 아울러 아니리, 발림 등의 여러 기법이 추가로 보완이 되었고, 다시 겨울이 되자, 판소리의 다른 여러 마당들에 대하여 하사받는 기회가 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봄, 가을, 여름, 겨울이 되는 시간들이 몇 번 더 흘러가게 되었다.


"그 동안 내 밑에서 배워 오는 라고 고생이 많았구나.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 타고난 것이 나는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내가 너를 계속 옆에 두고 가르친 것은 너에게 그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한테 배울 수 있는 기술적인 것은 이제는 거의 다 배웠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는 거기에 너의 삶이 녹아 있어야 하는 거다. 남도 소리들이 맛깔쓰럽게 들려도 한이 서려 있다는 것을 너도 많이 들었을 꺼다. 그 한을 어떻게 전달하는가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것이야. 지난주에 뵈었던 어르신은 그 한을 구슬프게 소리에 담고 계신다. 나도 그렇게 소리를 뽑아 왔지만, 옛날에 소판이 그 놈을 가르치고 나서는 조금씩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 놈은 슬픈 심정을 소리로 뿜어도 이상하게 흥겨운 가락으로 바꿔버리는 소질이 있었지. 그렇다고 그게 구슬프게 안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흥겨운 장단과 소리 속에서 맘이 짠해 오고 있었다. 소판이는 자기 나름의 흥에 미쳐 버려서 여기를 떠나고 말았지. 그리고는 그 놈들과 같이 정처 없이 팔도를 떠돌아다니게 되었지."


선생은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지난 이야기들을 명학에게 조용히 들려주었다. 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기 전까지는 소판이 형님의 소리 색깔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방금 선생이 말씀해 주신 것을 들으니 비로소 그 소리의 참맛을 알 수가 있었다. 오히려 그의 소리는 부잣집 대감의 사랑방에서 부르던 판소리 창보다는 장터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였고, 그래서 마을 주민들에게 더 다가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끼니를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마당패들과 어울려 팔도를 흘러 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몇 달 후에 선생은 옆 마을로 가신다며 의복을 갖춰 있고 나가신 후 돌아오지 않으셨다. 사람들에게 선생이 어디에 계신지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선생이 태어나신 지리산 어느 자락으로 들어가셨다는 말도 있었으나 그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명학은 앞이 캄캄해져 왔다. 몇 해를 여기 이제학 선생에게 거처하면서 오로지 소리만 배워온 것이 다여서, 이제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몇 달을 더 그 집에 기거하면서 선생을 기다리다가 그도 이제는 거기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향을 떠나오고 또 소리패들을 지난날에 떠나 왔 듯이, 다시 기약 없고 앞길이 불분명한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가 된 것이었다. 선생의 방에 놓여 있는 북을 어깨에 메고 며칠 간 먹을 것과 옷들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서서히 집을 나오기 시작했다.



"호호호. 영감. 오늘도 저희 집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명월이 자네가 장사는 한번 대단하게 하지. 내 자네를 보러 오늘도 들른 거야."


"무슨 말씀을 이리도 기분 좋게 하셔요. 우리 집에 새로 온 애를 보려 오신 거 다 알아요."


"으흠.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흠흠."


밤이 되자 주색의 향연이 가야금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선의 국운은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의 경쟁 속에서 서서히 기울고 있었지만, 한양의 세도가 집안의 남자들은 오늘도 명월관에 모여 술에 취하여 옆에 앉은 기생들과 밤이 깊도록 노닐고 있는 중이었다.


"자. 이제 술도 깨실 겸 소리 한번 들어 보시와요."


"요즘은 너희 기생들도 창을 배워 소리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디 한번 들어 보자꾸나."


"자. 얘들아. 준비를 어서 하여라. 영감님들 기다리신다."


방문이 열리자 명학은 북을 들고 들어와 구석에 앉았다. 술에 취해 이미 눈이 풀려 있는 몇몇 양반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그는 일부러 바닥을 보며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탁! 탁! 타악 타타!"


그는 북으로 시작을 알리며 소희라는 기생이 창을 시작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소리하는 도중에 온갖 기교로 발림을 하여 양반들의 애간장을 녹여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창이 끝나자, 사내들은 소희에게 달려 들어 손을 잡았고, 일부는 끝난 장단과 소리가 아시운지, 춤을 계속 추어 대었다.


"한 곡 더 뽑아 보도록 하여라."


영감들은 그녀에게 재촉하였다. 그런데, 소희는 영감들에게 애교 섞인 눈빛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감님들. 제 소리를 듣고 싶으시면 내일도 다시 오시는 거죠? 제 목소리를 오늘은 고이 보관해서 내일 더 잘 들려 드리게요. 대신에 저기 앉아 있는 사내가 사실 고수가 아니라 소리꾼 이예요. 남도에서 올라 왔는데, 그 소리가 아주 들을 만합니다."


"뭐! 저기 앉아 있는 예쁘장하게 생긴 놈 말이냐? 저 놈이 소리도 제법 한다고 했느냐? 어디 한번 뽑아 보거라. 네 놈이 우리를 낙담시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 고운 소희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네놈의 소리를 듣게 되었으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명학은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한양 내에서도 주색잡기로 이름이 나 있는 양반들이 지금 같은 방에 있었고, 그들은 술이 취하면 아주 짓궂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이들로 기생들 사이에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소희 저 여자 때문에 그는 오늘 제삿날이 될 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소인이 가진 재주가 이 하잘 것 없는 소리이온데, 오늘 귀하신 영감님들 앞에서 한 곡조 뽑게 해 주시니, 감개무량하오며 이 주신 기회에 제대로 응답하도록 힘쓰겠나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북을 치면서 천천히 소리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상황으로 보아서 춘향가 중에서 사랑타령 대목이 제일 어울릴 듯 하여 최대한 구성지게 그는 뽑아 보았다. 한참을 소리를 하다 북으로 장단을 잦아 들게 하며 서서히 멈추었다. 소리 하는 도중에 즉흥적으로 스스로 추임새를 넣기도 하였는데, 저 양반들 구미에 맞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https://youtu.be/SXvEm0IJ1fc


"야. 그놈. 소리 한번 제대로 하는구나. 역시 창은 남도 쪽이 풍성하지. 네놈이 나이는 어려도 소리는 남다르구나. 근데, 네놈은 전라도 말씨가 아닌데, 어째서 남도에서 소리를 배운 거냐?"


"칭찬해 주시니 소인이 얼굴을 들지 못하겠나이다. 소인은 어려서 이 지방 저 지방을 떠돌며 소리를 배워 왔습니다. 어쩌다가 남도까지 흘러가서 그 곳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누구한테 소리를 배웠느냐?"


"이제학이라는 자에게 배웠습니다."


"아무튼 소리를 한번 제대로 배웠구나."


명학은 칭찬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소희 때문에 벌어진 소동에서 큰 봉변을 당하지 않게 된 것이 오히려 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까 왜 그러셨어요? 심장이 철렁해서 정신이 아찔했었습니다. 그 영감들이 어떤 분들이지 아시지 않아요?"

"어머. 호호호. 생각한 것보다 소심하시네요. 설령, 분위기가 험악해졌어도 제가 누구예요? 영감들 다루는 것은 애기들 다루는 듯 하는 게 저 소희 아녜요. 다 책임지고 벌인 일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다음에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정말 어제는 제가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호호. 이렇게 마음이 여리시니, 꼭 계집애 같네요. 그러고 보니 살결이 뽀얗고 눈이 이렇게 예쁘시니 제 맘을 설레게 하네요."


명학은 소희의 농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이만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기생들은 둘 사이의 대화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깔깔대고 웃어 대었다.


선생의 집을 나와 이곳 한양에까지 당도하게 되었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계기로 하여 여기 명월관이라는 기생집에서 풍악을 담당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명학의 나이가 스물 살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였고, 이목구비가 확실한 그의 외모는 기생들의 환심을 그 집에 들어온 순간 이미 잡아 버리고 있었다. 그녀들의 추파와 유혹은 젊은 명학에게는 즐거움일 수도 있었지만, 기생들 모두가 적어도 한명씩의 영감들을 끼고 있었으므로 그녀들의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녀들의 장난과 유혹이 심해질수록 명학으로서는 외다리 줄타기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희라는 기생의 유혹은 계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수위는 점점 더해져 갔다. 자기 방에 물건을 가져 오라고 하며, 속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곤 하였다. 그러던 소희가 나중에 한양에서 돈이 많기로 소문난 영감을 잘 꼬셔서 그 집에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학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소희의 유혹은 조금 지나자 다시 시작되었다.


사건은 어느 날 벌어지게 되었다. 소희는 영감을 부추겨서 집안에서 판소리를 듣기로 하였다. 여러 소리꾼들을 불러서 잔치를 열었고, 한양 내에 이름난 여러 세도가들도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소리를 끝낸 명학은 뒷간에 가려고 마당으로 나왔는데, 이를 기다리고 있던 소희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아. 정말 왜 이러는 거예요? 영감이 알면 어쩌려고요?"


"지금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 나는 거 안 들려요?"


그러더니, 갑자기 소희는 명학을 자기 품으로 안아 버렸다.


"자기를 한번이라도 이렇게 안고 싶었어."


명학은 당황하여 한동안 어쩔 줄을 모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떨쳐 버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밤늦게 명월관으로 다시 돌아 왔지만 소희가 자기를 안고 있었던 그 장면이 자꾸 되살아났다. 이리저리 잠자리를 뒤척이다 어느 순간 겨우 잠이 들었다.


"명학아. 일어나라! 어서 빨리. 아니면 너 죽을 수도 있어."


기생 중에 제일 고참인 명월이라는 여인이 그를 급히 깨웠다.


"너 어제 그 영감 집에 가서 무슨 일 있었니? 소희 그 년이 너가 지한테 추행하려고 했다고 영감에게 일러 바쳤다고 하더라. 나는 그년이 평소 너한테 계속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년이 거짓말로 꾸민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년이 그런 년이야. 너 살려거든, 지금 빨리 줄행랑을 쳐라."


명학은 잠결에 들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다. 그리고는 번개같이 옷을 챙겨 입고, 급하게 명월관을 빠져 나왔다. 어디로 가야할지 경황이 없었지만, 그 영감 댁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고, 있는 힘을 다해 뛰어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제물포


영감 댁에서 보낸 사내들에게 잡히는 날이면 영락없이 봉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은 불 보 듯이 뻔한 일이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미 매 맞아 죽어 버리거나 병신이 된 뒤에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알려진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명학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영감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돈과 더불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잔혹한 질투심으로 이미 눈이 멀었고, 그들에게 눈곱만큼도 못 한 상대인 명학이 양반의 첩을 건드렸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용서될 수 없는 하극상을 보는 것이었다.


정처 없이 뛰고 걷다가를 반복하다 도착한 곳은 나루터였다. 온 몸에 땀이 흠뻑 젖어 있는 그를 늙은 뱃사공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젊은 사람이 이 대낮에 무슨 일로 이렇게 뛰어 왔는가?"


"어르신. 배가 언제 떠나는지요."


"아직 떠나려면 멀었어. 강 아래로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모여야 가는 거야."


"제가 지금 좀 급해서 그런데, 좀 일찍 출발하시면 안 되는지요?"


"자네 혼자만 태우고 떠나면 내가 뭐가 남는단 말인가?"


"그러면,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드릴 터이니, 한번 좀 생각 해 주세요."


그는 명월관을 나설 때 급하게 챙겨 온 돈을 수중에서 모두 꺼내어 뱃사공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받고 떠나면 다른 사람들이..."


"어르신. 돈이 적은가요?


"그게 아니야. 돈은 충분해 보여. 그런데, 아래로 내려가려고 온 사람들이 배가 없으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해서 그렇지."


뱃사공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나루터 기둥에 묶여 있던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젊은이. 어서 타게. 내가 내려갔다가 물길이 잦아 들면 다시 거슬러 올라 와야겠어. 조만간 막내딸 시집보내야 해서 돈이 모자랐는데, 이거 보태야겠어. 사람들이 이해할 테지. 뭐."


명학은 노인의 나룻배에 올라탔고, 노인은 노를 저어 물길의 아래쪽으로 배를 서서히 저어가다 물길의 중간정도에 와서는 돛을 활짝 펼쳤다.


"자네가 운이 좋군 그래. 바람이 강 아래로 불기 시작했어. 근데, 왜 이리 성급하게 구나?"


그때 저 멀리 나루터에 건장한 남자들 다섯 명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멀리서 보이자 명학은 배의 난간에 몸을 파묻고 움츠러들이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노인은 갑자기 벌어진 경황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어진 모습이었다.


"자네가 무슨 죄를 저지른 모양이군."


"아닙니다. 누명을 뒤집어 쓴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화를 피하고 볼 일입니다."


"누명을 썼다고? 허허. 곱상하게 생긴 놈이 무슨 일에 휘말렸기에? 쯧쯧. 어찌되었건 나는 자네에게 이미 돈을 받았네. 그리고 나는 이 돈이 필요해. 그러면 된 걸세. 자네와 저 멀리 서 있는 놈들 간에 얽힌 일은 내 알 바가 아니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돛을 팽팽하게 만들며 배를 강 아래로, 아래로 쑥쑥 밀어내었고, 노인은 노를 잡아 배의 갈 길을 일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강줄기는 점점 넓어져 갔고, 몇 번을 굽이 흘러 돌더니 한양의 모습은 이제 아득히 사라져 버렸다. 뱃사공은 배가 순풍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가자,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뭐라고 중얼중얼 하더니, 타령을 구슬프게 불러 대었다.


"저기 저 멀리 떠가는 구름은


누구의 모습을 닮았는고?


살아생전 고생만 하다 가신


우리 엄니의 고운 얼굴인가?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다 가신 우리 엄니


다음 제사상에 한번 오시오


밥과 고기로 엄니에게 제대로


대접하리다. 불쌍한 우리 엄니


이 배로 저어, 저어 가서


언제가 엄니 계신 저 세상에서


만나고 싶소. 어~ 어~ 어~"


어느 지방에서 내려오는 타령인지는 몰라도, 주름이 가득이 자리 잡은 노인의 창은 이 세상의 어떤 노래보다도 아름답게 들리고 있었다. 배는 한참을 더 내려가다가 바다로 이어지기 전의 강 하류의 포구에서 멈추었다.


"나는 물살이 세어지기 전에 좀 있다 다시 올라가야겠네. 자네 인생도 나만큼이나 기구하게 보이네. 암튼. 살아생전에 효도 많이 하구. 몸조심 하게나. 그리고 자네가 준 돈은 생각해 보니까 내가 받아야 할 돈보다 많은 것 같단 말이야. 배에 탈 때 나한테 돈을 다 준 것 같은데, 자네 돈 한 푼도 없이 앞으로 어쩔 텐가? 여기 나머지 거스름 받게."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명학은 배에서 내리며 노인에게 몇 번이고 인사를 하였다. 처음 와 본 강의 하구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저 멀리 보이는 예성강 하구 일대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남도에서 바라다보던 바다의 모습과는 다르게 여러 강줄기들이 흘러 와서 여기 바다로 모이는 광경은 그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여흥은 조금 뒤에 서서히 사라지면서, 그는 걱정에 휩싸였다.


'일단 목숨을 부지하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하지? 일단 사람들이 배에 내려서 가는 방향으로 따라 가보는 게 좋을 듯 해.'


그는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고 있는 쪽으로 따라 걷기 시작했다. 깜깜한 밤이 되 버리자, 지금 들어 와 있는 마을의 주막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하루 묵을 방을 구하고 난 후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주모에게 밥을 시켰다. 주모가 가져다 준 뜨거운 국밥을 허겁지겁 먹었더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이만 방으로 들어가려니, 옆에 앉아서 아까부터 그를 흘깃흘깃 보고 있던 웬 사내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어이. 형씨. 보아하니 강하류 쪽 사람은 아닌 것 같소? 혹시 제물포로 가려고 온 거요?"


"저는 심부름으로 강 아래로 내려 왔습니다. 근데, 제물포는 여기서 가까운 지요?"


"제물포야 여기서 멀지 않소. 무슨 심부름 가는 길이오?"


사내의 계속되는 질문에 명학은 당황해 왔지만 이내 짜증이 생겼다.


"내야 심부름이 있으니까, 가는 거지. 근데, 왜 자꾸 캐묻는 거요?"


"내가 성가시게 했다면 미안하오. 딴 뜻이 있어서 물어 본 건 아니요. 근데, 형씨는 하와이라고 들어 봤소?"


"들어 봤소이다. 거기 우리 조선인들이 몇 년 전에 일하러 가지 않았소?"


"맞소. 거기 가면 돈도 많이 벌고 팔자 고칠 수 있소. 근데, 요즘은 중국 놈들, 일본 놈들도 마찬가지로 거기 가려고 방해를 해서 조선인들은 지금은 하와이로 가는 길이 좀 쉽지 않소."


"조선 땅을 떠나서 살면 고생길이 훤할 텐데, 정말 소문대로 팔자가 펴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소?"


"그러면, 형씨는 조선 땅이 그리 좋소? 어려서는 상것들이라고 무시당하고, 커서는 이리저리 나라에서 일 시키고 세금 바치고 해서 우리가 뭔 희망이 있소?"


명학은 그의 계속되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이 모두 맞다 생각이 들었다.


"이번 달에 제물포에서 묵서가(멕시코)로 가는 배가 떠나오. 거기로 가서 사년을 일하면 큰돈을 벌어서 조선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소."


"묵서가는 어디에 있는 거죠?"


"미국 아래에 있는 나라라고 들었소. 거기에 있는 농장에서 일하면 여기 조선보다 돈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고, 집과 밥도 공짜로 준다고 하오. 혹시 형씨도 관심이 있소?"


"그런 곳이라면, 저 말고도 가려고 하는 조선인들이 많을 터인데, 제가 거기에 끼일 수는 있는가요?"


"이번에 제물포에서 떠나는 배는 굉장히 큰 배요. 그래서 조선인들도 천명 넘게 타고 간다고 하오. 하와이에는 불과 몇 백 명 정도 갔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요.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거요."


"벌써 사람들이 다 찼을 것 같은데요?"


"아니오. 아직은 가능하오. 일본 놈들이 만든 대륙식민합자회사라는 곳에서 모집 중인데, 가족들을 태워 가는 것을 더 좋아하긴 하는데, 팔도 전역에 소문을 내어도 천명 넘게 가족들을 채워 넣을 수가 없었소. 그래서 지금은 혼자서 배에 타려는 사람도 모집 중이오."


"묵서가로 가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어요?"


"가서 농장에서 농사일 하는 거요. 조선에서 일한 사람이면 거기서 하는 일은 편할 거요.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나머지는 자유롭게 지낸다고 하오."


"형씨 말을 들이면 과연 거기가 극락인 것 같네요."


"잘 한번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까지 나한테 말해 주시오!"


명학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한참동안 얘기를 나눈 사내와 헤어져 방으로 돌아 왔다. 호롱불을 끄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방이 충분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방을 쓰고 있는 낯선 사내 두 명은 이미 잠에 취해 정신 모르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중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이후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생각을 해 보았다.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소리를 배워 왔지만, 온갖 구박과 설움, 그리고 배고픔으로 고생길이 이어진 시간들이 흘러왔던 게 사실이었다. 더구나 저 낯선 땅인 묵서가로 가면 펼쳐질 일들이 눈에 보듯이 선하였다. 수많은 조선인들과 같이 그 곳으로 떠난다고는 하지만, 홀연 단신으로 떠난다면 옛날에 고향을 떠나온 것처럼 또 다른 종류의 고난이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이 섰다. 뭐 하러 또 그런 고생을 할 것인가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그가 처한 입장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멀리 아주 멀리 떠나면 모르겠지만, 어중간한 곳에 머물다가는 나루터에서 서성대던 건장한 장정들에게 언젠가는 잡힐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려면 진짜 아주 멀리 그들이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도망가야 할 것이었다. 만주로 도망 가 버릴까 생각도 들었지만, 아까 그 사내가 말한 묵서가라는 땅이 어쩌면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그는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왔고, 어제 밤의 낯선 사내는 방문을 열고 마당에 나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폈다.


"잘 주무셨어요? 제물포는 언제 가시렵니까?"


사내는 기지개를 마저 펴치 못한 채, 명학의 갑작스런 말에 깜짝 놀라며 돌아다보았다.


"아. 그래. 작심했소? 아주 잘 생각한 거요. 형씨는 이제 팔자가 펼 거요. 자. 좀 이따 슬슬 떠나 봅시다."


명학은 그를 따라 주막을 나섰고, 저녁이 되자 제물포에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 와 본 제물포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중국인들, 일본인들 그리고 서양인들이 적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서양인들의 저택에는 온갖 국기들이 걸려 있었다.


"여기 잠깐 계시오. 내 잠깐 이 집 안에 들어갔다 올 테니."


사내는 일본 국기가 걸려 있는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어떤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그는 서양식 안경을 끼고 서양 의복을 입은 조선인이었다.


"그래. 이 사람에게 얘기는 간단히 들었지. 자네는 운이 아주 좋아. 지금 배에 탈 사람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때마침 사람을 잘 구해 왔네. 안으로 들어와서 간단히 종이에 이름을 적고 이후에 내가 안내해 준 사람을 따라 가면 되는 거요."


주막에서 만나 명학을 여기까지 바래다 준 사내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형씨. 내 덕분에 저 배에 타게 된 줄 아시오. 그리고 묵서가로 가서 돈 많이 벌고 무탈하게 조선 땅으로 오시오."


멀리 사라져 가고 있는 사내를 보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상하게 생긴 글씨로 적힌 종이들에 이름을 적고 건물을 나와서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서 제물포 거리를 한참 걸어 나왔다. 오르막길을 다 올라가니, 항구가 내려다 보였고 거기에 생전 처음으로 본 큰 배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배는 '일포드'라는 영국배요. 저것이 조선인들을 묵서가로 데려다 줄 거요."


배는 온통 쇠로 덮여 있었고, 남도 지방이나 한강에서 봤던 나룻배와는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배에 세워져 있는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워 올라오고 있었다. 배 위로 실려져 올라가는 꾸러미들을 보니, 꽤 오랫동안 항해를 할 것으로 짐작되는 배였다.


"언제 떠나는가요?"


"며칠 내로 출발할 거요. 형씨는 일단 저 배에 지금 타야 될 거요. 저 안에서 먹여 주고 재워 줄 거요."


"한 푼도 돈을 안내었는데,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 준다고요?"


"돈은 이미 묵서가에 있는 농장 주인들이 지불했다고 들었소."


"그러면, 묵서가로 가면 농장 주인들에게 갚아야겠네요?"


"너무 많이 묻지 마시오. 나도 이 이상은 모르오."


명학은 배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다가섰다. 계단 옆에는 커다란 서양인이 조선인과 같이 서 있었다. 그들은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서양인은 그에게 다가와서 아주 기쁜 듯이 통쾌하게 웃으며 악수를 권했다. 얼떨결에 서양인의 큰 손안에 그의 손이 맡겨진 채 아래위로 움직여졌다.


"이건 서양인들의 인사 방법이오. 이 분은 존 마이어 씨라고 하는 신사분이오. 이번에 조선인들을 많이 태우고 묵서가, 정확하게 말해서 멕시코로 일꾼들을 데려가는 일을 맡은 총 책임자가 되시는 분이오. 당신이 이 배에 오르면 존 마이어 씨가 데려 갈 머리수를 모두 채우게 되는 거요. 그래서 이분이 축하를 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직접 나오시게 된 거요."


서양인의 옆에 서 있는 조선인 통역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존 무어라고 잘 기억도 안 나는 이름의 서양인은 계속 싱글벙글 웃는 게 아주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들을 묵서가로 데려가면 무슨 큰 돈방석에라도 앉게 되는 표정이었다. 배에 타게 될 조선인들 한명 한명이 그에게는 모두 돈으로 보였을 것이며, 명학이 배에 승선하면서 이제 묵서가로 가게 될 조선인 1,033명의 머리수가 채워졌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