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장편소설
배에 오른 명학은 갑판에 나와 있는 다른 조선인들을 둘러보았다. 들려오는 말씨들로 봐서는 제물포와 가까운 지역의 억양이 많았기 때문에 조선 팔도 전역까지는 묵서가로 일하러 가는 길이 있다는 소문이 그리 많이 퍼지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경상도, 함경도, 전라도 사투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조선 팔도 전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었구나! 어쩌면 내가 이 배에 타기를 잘 한 건지도 몰라. 하긴 다른 더 좋은 길이 있었을까?'
가족들과 온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있으려 하고, 주위를 경계하며 쳐다보았다. 자기처럼 혼자서 배에 오른 이들도 있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은 아는 무리들과 같이 머나먼 땅으로 한 몫 잡으러 떠나기로 작정하고 여기에 왔던 사람들처럼 같이 모여서 이리저리 사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구경도 하며 주위를 살피기를 반복하다가 그는 다리가 아파서 갑판 한 구석에 주저앉아 버렸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양을 급하게 도망 나오며 제물포까지 와서는 '이제 살았구나!'라고 생각이 들며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이런 배에 타 버렸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여기까지 쫓아 왔다고 해도 이제는 사람이 다 탔다고 하니까 배에 올라오기도 힘들 것이며, 배에 올라 와서 자기를 찾는다고 해도 사람들 속에 숨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배는 고팠지만, 배고픔보다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무릎에 머리를 박고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누군가 다리를 걷어차는 바람에 그는 갑자기 단잠에서 깨버렸다. 수염이 가득한 덩치가 큰 서양인이 뭐라고 외쳐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서양인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두려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갑판에 있던 많은 조선인들은 이제 보이지 않아서 어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서양인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큰 손으로 어떤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하였다.
'저 쪽으로 가라는 말이었구나!'
명학은 그 쪽으로 일어나 걸어갔다. 철문이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철 계단이 보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갔다. 밑에서는 조선인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이 하는 제마다의 목소리였으므로 말뜻을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조선말이었다.
'아까 보였던 사람들이 이 아래로 다 내려갔던 모양이네.'
그는 계단을 다 내려와 아래층의 바닥에 도착하니, 다시 왼쪽으로 길이 이어졌고, 거기를 들어가니 아주 큰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짐을 싣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아주 넓은 방이었다. 언제부터 여기서 지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곳이 자신들의 집이 된 것처럼 저마다의 공간은 정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누울 곳을 찾아야 했다. 사람들 틈을 헤쳐 나가며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 임마! 거기는 내 자리야. 비켜라.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 처음 보는 놈이네."
빈 곳을 겨우 찾아서 앉으려니, 누가 뒤에서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딱 봐도 싸움질 좀 하게 생긴 사내가 노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는 거기에서 다시 움직였다. 가족들이 같이 오게 된 사람들은 자기들 주위로 중요하지 않은 짐 보따리를 놓아두었고, 마치 떠나온 고향집 담벼락처럼 경계를 만들었다. 초저녁이었는데도 벌써 자리에 누워 잠든 이들도 보였다. 배안에 이미 자리 잡은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오랫동안 자리를 찾던 명학은 마음이 초조해 왔다. 항아리 속에 있는 콩나물처럼 모두 빽빽하게 사람들은 그곳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눈은 멍해져 왔다.
"여보게. 젊은이! 여기 우리 옆에 와서 자리 잡아."
오른쪽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딸과 부인을 데리고 배에 탄 듯 한 한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이리 무심하지. 원래 배에 탈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날이 갈수록 마음들이 각박해져 가네."
그 사람은 한쪽에 놓아두었던 큰 가족의 짐 보따리를 옆으로 밀치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부인과 어린 딸아이는 그러는 아버지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자리 잡기가 너무 힘들였는데, 이렇게 마음을 써주셔서 이제야 저도 자리를 구했습니다."
"자네는 배에 언제 탔기에 아직 자리도 못 구했는가?"
"오늘 타게 되었습니다."
"혼자서?"
"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 사연이 있겠지. 그러면 밥은 먹었는가?"
"아니오. 아직요. 밥은 언제 주는가요?"
"아침과 저녁되기 전에 밥을 주는데, 오늘은 벌써 지났어. 배고프겠는걸!"
"아니오. 괜찮습니다. 뭐. 한 끼 못 먹는다고 죽기야 하겠습니까? 우선 이렇게 잠자리도 생겼는데, 이걸로 족합니다."
"우리 집이라면 남는 밥이라도 주겠는 디. 여기는 뭐 그럴 수가 없으니까 배고프더라도 내일 아침까지 좀 참고 견디게."
자리에 앉은 명학은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피곤함에 정신이 멍해져 왔다. 그러다가 그 남자가 건네는 말에 정신이 돌아 왔다.
"짐도 하나도 없이 탔구먼! 그래. 아주 먼 길을 가는 사람치고 배짱이 대단한걸."
"혹시 얼마나 배에 있어야 하는지 아시나요?"
"확실히 몰라. 몇 달 걸린다고 하던데. 우리도 이 배에 탄지가 며칠 지났는데, 아직 배 떠날 생각을 하지 않네. 자네가 오늘 배에 탄 걸 보니, 사람을 더 태워 가려나 보네."
"제가 마지막으로 탔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이제 배에 오르는 조선인은 더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 그러면 배가 멀지 않아 떠나겠구먼."
일포드호는 그 후 일주일 넘게 더 지체를 하다가, 드디어 출항을 위해 닻을 올리게 되었다. 제물포를 이제 떠난다고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갑판 위로 올라와서, 사년 후에 보게 될 것으로 생각되는 조선 땅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었다. 배는 서서히 항구에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울기 시작하였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 올 날에는 돈을 많이 벌어 와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보였다. 조금 배운 듯 한 이들이 어쩌면 우리가 돌아올 조선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조선왕조가 위태롭지 만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조선에 다시 돌아 올 생각이 없는 듯 여겨졌다. 명학은 그러는 그들 틈에 끼여서 서해안의 해안선이 저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을 같이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들과 같이 묵서가에 가서 돈을 벌어 오면,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 부모님이 살아 계시기를 바랐다. 배는 며칠을 더 항해하다가, 다시 육지에 도착하였다. 거기는 조선 땅이 아니라, 일본 땅이었고, 이름이 요코하마라고 하였다. 그 곳에서 묵서가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주 큰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라고 하였다. 오랜 항해를 위해 다시 물건을 싣는 것 같았다. 며칠 뒤에 일포드호는 요코하마를 떠났고,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들어갔다.
어느 날 아침에 밥을 먹기 위해 식당 칸으로 이동하다가 그는 누구와 부딪치게 되었다. 상대방이 그를 잡아 일으켰다.
"괜찮소? 내가 여기 서 있는 거 못 봤소? 어라. 이거 누구여? 명학이 아니던가?"
명학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나며 상대방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어. 봉수형. 여기 배에 탔군요?"
"와! 세상이 넓은데, 또 억수로 좁구만! 암튼, 반가워 버러! 아따. 이거 얼마만이여?"
"그때 남도에서 헤어진 후 몇 년 만이네요. 한참 지났죠. 근데, 다른 형님들도 혹시 같이 배에 탔어요?"
"아리랑께. 나 혼자여. 자네 떠난 지 이년쯤 지나서 우리 엄니가 아프셔서 내가 고향에 돌아갔지. 그러다가 엄니 장례 치르고, 다시 형님들 찾으러 다녔는데, 못 찾게 되어 버렸어. 찾다가, 찾다가 위로 올라 왔는데, 이 일 저 일 하다가 영 신통치 않았지. 그런데, 묵서가로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소문을 듣고 제물포까지 오게 되었어. 암튼. 억수로 반갑다잉!"
"저도 봉수형 다시 보게 되어 너무 반가워요. 이제 우리 헤어지지 맙시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요. 봉수형!"
"어따. 명학이 이놈. 많이 변했네. 이제 억수로 맘이 찡한 말도 하고 말이여. 그래 이제는 우리는 진짜 형제여. 형제! 같이 오래 지낸 놈들은 여기서는 우리 둘 밖에 없지 말이여."
명학은 봉수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어따. 아그야. 그만 울어라. 나도 눈물이 이제 찔끔찔끔 나려고 그런다."
그날 밤 봉수는 짐 보따리를 들고 명학이가 자리 잡은 곳으로 옮겨 왔다.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봉수는 넉살 좋게 주위 사람들을 어르며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아따. 지는 봉수라고 합니다. 요기서 오래 살고 계신데,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십년 만에 헤어진 우리 동생을 오늘 이 배에서 만났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형제들 있어서 이 심정 아시지 않겠소? 그래서 내가 저쪽 칸에 살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 동생하고 절대로 안 떨어질라고. 여기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좀 맘 좀 푸시고, 이해 좀 해 주소!"
봉수의 입담어린 사설에 근처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네는 진짜 배에 타기 잘 했네 그려. 여기서 십 년 전 헤어진 동생을 만나고 말이여. 이제는 그래. 절대 헤어지지 말아야지. 여기 와서 이제 살게."
"고맙습니다. 모두 복 받으실 거요."
오랜 항해가 계속되어 가자, 배안의 조선인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땅에 가서 사년만 지내고 다시 조선에 돌아와서 팔자를 고치고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힘들어도 버텨 내고 있었다. 하지만, 좁은 화물칸에 천명 넘은 사람들이 비좁게 살고 있었던 탓에, 오물이며, 땀 냄새 등으로 갈수록 매일 지내는 곳은 불결한 곳으로 변해 갔다. 조금씩 병이 생겨나고, 어쩌다 몸에 두드러기라도 생기는 사람이 있으면 선원들이 찾아내어 갑판 위로 데리고 가 버렸다. 다행히 올라갔던 사람들은 며칠 뒤에는 나아서 다시 내려 올 수 있었지만, 영문도 모르게 쉬엄쉬엄 앓는 이들은 마땅히 약도 없었다. 혹시 배안에 탄 조선인들 가운데서 병을 고치는 일을 했던 사람이 탔으면 좋으련만, 그런 이는 찾을 수가 없었고, 급하게나마 민간에서 내려온 방법대로 치료를 해 보았으나. 배 멀미나 체한 경우 이외에는 병이 낫 지가 않았다. 명학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바로 옆의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던 것이었다. 부인은 어느 날부터 아파서 누워 버리더니, 눈이 휑해지며 설사를 며칠이고 하고, 먹는 음식은 토해 버렸다. 옆에서 남편과 어린 딸이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앙앙. 오빠. 우리 엄마 죽으면 어떡해!"
명학은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었다.
"언년아. 엄마는 안 죽을 거야. 내일 아침이면 다 나아서 건강하게 다시 일어나실 거야!"
그 후 며칠이 지나도 부인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이 소식을 들은 배안의 일본인 의사는 조선인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내려와서 진찰을 하고 가지고 왔던 약을 주었으나, 부인은 물을 삼키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날 밤은 부인의 헛소리가 계속되어 주위의 사람들은 잠을 이루질 못할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일어났을 때는 부인은 평안히 잠든 채 이미 죽어 있었다. 남편과 딸아이는 시신을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아이고! 자네 여기서 가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제 저기 묵서가에 가면 따뜻한 음식과 집이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말이야. 이 어린 딸 나한테 남겨 두고 자네만 혼자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면 나는 어쩐단 말인가?"
"엄마. 일어나! 엉엉! 엄마!"
부인의 죽음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통역하는 조선인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직접 와서 시신을 확인한 후 배 위로 올라가서 서양인들에게 보고를 하였다. 그러자, 의사가 내려와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였고, 얼마 후에 선원들이 큰 포대자루를 들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부인의 시신을 자루에 넣고 위로 다시 올라 가려고 하자, 남편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덩지가 큰 서양인들을 가로 막았다.
"이놈들아! 우리 마누라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고 하냐?"
"배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여기 놔두면 안 된다고 합니다. 시신이 썩을 경우 역병이 돌면 모두가 병에 걸립니다. 저도 좀 이렇게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앞으로 항해를 더 해야 하기 때문에 시신을 바다에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뭐야. 이놈아. 너희들은 어미 애비도 없냐?"
남편은 통역하는 조선인 사내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호통을 쳤다. 사내는 멱살이 잡힌채 저항을 하지 않았다.
"너. 이놈들에게 당장 말해라. 내 마누라의 시신은 절대 바다에 버릴 수 없다고 말이야."
옆에 있던 조선인들이 거들고 나섰다.
"맞는 말이여. 이거 너무 하지 않는가? 오늘 아침에 죽었는데, 어찌 이렇게 무심하게 일을 해치운단 말인가?"
통역하는 사내와 서양인 선원들은 갑자기 사나워진 조선인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자, 당황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그는 선장과 다시 얘기를 나눈 후 저녁 무렵 다시 내려 왔다.
"선생님. 제가 중간에서 진짜 고생하며 얘기를 저 서양인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저도 조선 사람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에 시신을 계속 두고 이렇게 더운 날씨에 오래 항해를 하는 점에는 선장도 절대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선에서는 사람이 죽을 경우 최소한 삼일은 장례식을 치른다고 말하여 겨우 설득을 시켰습니다. 그 이후에는 저들이 부인의 시신을 수장할 것입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다시 언성을 높였지만, 사내의 멱살은 이번에는 안 잡았다. 사내의 말하는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딸을 돌아다보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시신을 지키며, 조선인들은 하나둘씩 모여 들며 가족을 위로 하였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목수일을 하였던 조선인들은 배안에서 나무를 구해 관을 만들어 주었다.
사흘이 끝나기 전날 밤에, 명학은 봉수에게 말을 하였다.
"봉수형. 내일 부인 출상을 할때 상여노래를 부를테니 형님이 알아서 사이사이에 추임새 좀 넣어 주세요."
"명학이. 너. 남도에서 소리를 배웠지? 상여노래도 그때 배웠냐?"
"아니오. 저는 판소리를 선생에게 오래 배워서 씻김굿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가족 분들 덕에 배에 올라온 이후에 여태까지 잘 살았는데, 은혜를 갚아야죠. 씻김굿은 하지 못하지만, 심청가 중에서 심청이 어머니가 죽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중에서 상여 나가는 대목 뽑으려고 합니다.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가시는 부인 분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일 겁니다."
"그래. 알겼다. 내가 소리는 하지 못했어도, 많이 들었으니, 명학이 네가 부르면 내가 알아서 추임을 넣어 줄텡께. 내일은 한번 오랜만에 소리 좀 내어 보자."
다음 날, 갑판 위에 조선인들이 모여 들었다. 사내들은 조선인 목수출신들이 급하게 짠 상여를 들고 서서히 배 위를 걷기 시작했다. 남편과 딸아이는 대성통곡을 하며 상여를 따라 갔다. 명학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상여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명학의 노래 중간 중간에 봉수는 명학이가 가르쳐 준 추임을 적절하게 넣어 주었다.
"영이기가
왕즉유택
재진견례
영결종천
관음~보살~
어어어어허허허~
어이가리
넘차 너와넘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저 건너가 안산이~
북망이로구나
어어어어허허허~
물가 가재는
뒷걸음 치고
다람쥐 앉아서
밤을 줍는디
먼산 호랑이
술주정을 하네
너놔넘
현철하신
곽씨부인
불쌍하게 떠나셨네
어 넘차 너와넘
현철하신
곽씨부인
불쌍하게 떠나셨네
어 넘차 너와넘
인제 가면은 언제나
올라요
오시난 날을
일러주오
어 넘자 어 넘자 너와넘
새벽 종다리
쉰질 떠
서천명월이
다 밝어 온다
어 넘자 너와넘
어러 어러
어이가리
넘차 너와넘
아이고 여보
마누라~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딜 가오
산첩첩
지극 먼길
다리가 아파서
어이가며
일침침
날은 저물고
주막이 없어서
어이 가리
부창부수
우리 정분
날과 함께
가사이다~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여보소 친구네들
세상사가 허망하네
자네가 죽어도 이 길이오
내가 죽어도 이길이로다
어허~ 어허~ 어허~
어기야~ 영차~
너와넘~
아 하 아 하
으~이 으~이
..."
명학은 상여가를 한참 동안 구슬프게 뽑았고, 상여는 어느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는 조금 뒤에 부인의 관은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함께 태평양의 바다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 모든 관경을 서양인 선장과 선원들은 위에서 침묵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물포를 떠난 지 꽤 시간이 흘러갔다고 그는 생각이 들었다. 날짜를 계산하지 않아서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 달은 족히 넘은 것은 확실했다. 조선일 들 사이에서는 이제 며칠 후면 묵서가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묵서가라는 말은 한자로 적은 것이어서, 멕시코라고 소리 내는 것이 정확하다고 조선인 통역사로부터 들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서서히 조선인들 사이에는 머지않아 배가 육지에 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자 지배적이었다. 거기에서 사년만 지내면 다시 고향으로 부자가 되어 갈 수 있다고 희망에 들떠 있었다. 사년의 세월은 그들이 살아 왔던 시간에 비하면 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언년이 아버지. 멀지 않아 묵서가에 도착한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언년이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부인이 죽고 난 후부터 말수가 거의 없어져 버렸던 것이었다. 언년이도 기가 많이 죽어 버려서 명학은 그들을 보면 딱하기 짝이 없었다.
"언년 이를 봐서라도 힘을 내셔야죠."
"그지요. 힘을 내야지 않겠어요. 우리가 있응께. 너무 걱정 마소. 새 땅에 가서 다시 움직이면 괜찮아질거에요."
봉수도 명학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 내가 언년이를 봐서라도 힘을 내야지. 그런데, 마누라가 바다 속에서 얼마나 추울꼬? 묵서가까지 데려 가서 거기 땅에 묻으면 어땠을까?"
그때 낮잠을 자던 언년이는 아버지의 무릎을 다시 베고 몸을 돌아 누웠다. 그렇게 또 잠들어 버린 어린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언년이 아버지는 딸의 머릿결을 손으로 빗겨 주었다.
나흘 뒤에 일포드호는 드디어 육지에 도착하였다. 항구로 들어가는 배위의 갑판 위에 모여든 조선인들은 멀리 보이던 항구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며 뚜렷해지는 도시의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배가 항구에 접안되자, 조선인들은 제물포로부터 가져 온 짐들을 들고 배를 내려 왔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밟아 보는 땅이었다. 배에 타고 있었을 때처럼 땅에 서 있어도 마치 땅이 출렁출렁 움직이는 듯 했다. '원래 묵서가는 이렇게 땅이 흔들리는가?'라고 생각이 처음에는 들었지만, 배를 오래 탄 적이 있던 조선인들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고, 조금 있으니, 그런 이상한 기운이 정말 없어져 버렸다. 조선인들은 육지에 기다리고 있었던 현지인들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갔다.
"여기 흙을 보니, 조선과는 달라. 농사 짓기는 힘들겠는걸. 이거 물기가 전혀 없잖아. 산을 보아도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이 많아. 여기 사람들은 뭐로 먹고 살지?"
그들은 계속 걸어가며 새로운 땅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이들은 흙에 유달리 관심을 보였다. 어느덧 천명이 넘는 조선인들의 행렬은 넓은 모래사장과 같은 곳에서 멈추었다. 거기에서 하룻밤 야영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모포가 음식과 함께 나누어졌다. 음식은 처음 먹어 보는 딱딱한 빵과 물이 전부였다.
"어따. 이거 뭐여. 목에 잘 넘어가지도 않네. 보리밥에 된장을 비벼서 정말 먹고 싶네잉.~"
"여기서는 밥으로 이런 거를 먹나 봅니다. 조금씩 떼어서 먹으니 좀 넘어 가네요."
"근데, 혹시 이런 걸 사년 동안 먹어야 되는 거 아니여?"
야영을 시작한 조선인들 사이사이에서 음식에 대하여 탄식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제물포에서 들고 탔던 된장, 고추장들은 벌써 없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뭐. 여기도 조선에서 자라는 비슷한 것이 있겠지. 알아서 우리가 만들어 먹어야겠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또다시 빵을 먹은 후, 천명이 넘는 조선인들은 서서히 이동을 시작하였고, 두 시간 정도 걸은 후에 도착한 것은 기찻길 근처였다. 거기서 기차를 탄다고 하였다. 묵서가의 뜨거운 태양은 땡볕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지치게 하였다. 일부는 그늘을 찾아서 햇볕을 피해 있었지만, 대다수는 무시무시하게 내리 쏟는 열을 그대로 받은 채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어느 순간에 저 멀리서 기차가 도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커먼 기차는 연기를 뿜으며 천천히 그들 앞에 멈추었다. 화물칸이 열리자, 조선인들은 나뉘어져 기차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명학은 언년이의 몸을 잡고 화물칸 안으로 올려 주었고, 먼저 타고 있던 봉수는 그녀를 받아 언년이 아버지 옆에 놓아 주었다. 화물칸 안은 그늘이어서 몇 시간동안 땡볕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그들을 잠시나마 위로해 주었다. 천명 넘은 조선인들이 탄 기차의 화물칸은 배안에서의 생활을 떠올려 주었다. 빽빽이 자리를 차지한 곳에서 몸을 돌리기도 쉽지가 않았다.
"이걸 언제까지 타고 가야 하노?"
경상도에서 올라온 한 사내가 짜증스럽게 말을 내 뱉었다.
"기차를 처음 타 봐서 저는 좋은디유. 근데, 너무 좁네유."
"우리가 뭐 소, 돼지들도 아니고. 이거 너무 하는 거 아이함!"
온갖 불평들이 팔도의 말투로 이어져 왔다.
명학은 어린 언년이가 혹시나 어른들 사이에 끼여서 다칠까봐, 자기 옆에 꼭 데리고 있어야 했다. 언년이 아버지도 새로운 땅에 도착한 이후에는 긴장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오히려 그런 긴장이 부인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잊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명학은 생각이 들었다.
기차는 하루에 두세 번씩 정지하였는데, 그때마다 조선인들은 화물칸에서 내려서 바람을 쐬고, 대소변을 해결하고, 현지인들이 나누어주는 옥수수, 빵을 받아먹기를 되풀이 하였다. 일주일이 조금 못 되자, 기차는 드디어 멈춰 섰다. 그들이 당도한 곳은 '베라끄루쓰'라는 항구라고 하였고, 그들이 배에서 처음 내렸던 항구는 '살리나끄루쓰'라고 하였다. 이름을 발음하기도 쉽지가 않았는데, 조선인 통역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또 배를 타야 된다고 덧붙였다.
"뭐여? 또 배를 타야 된다고라이? 미치겄네. 이번에는 그 놈의 배를 타고 얼마나 오래 가야 된단 말이여?"
봉수는 통역사에게 쏘아 붙였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메리다'라는 곳이에요. 그런데, 여기에서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훨씬 가깝다고 합니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유카탄이라는 땅인데, 우리 조선처럼 바다에 뻗어 나온 땅이더군요. 지도를 보니까요. 그리고 제물포에서 멕시코까지는 큰 바다를 건너야 해서 오래 걸렸는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바다는 작더라고요. 그래서 진짜로 며칠 지나면 '메리다'에 배가 닿을 것입니다."
배를 또 타야 된다고 하는 말에 흥분한 조선인들을 통역사는 있는 힘껏 외쳐대며 안심시키고 있었다.
"어따. 그래요? 그러면, 이제 거의 다 온 거네."
통역사의 말대로, 그들은 다음날 배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틀 후에 '프로그레소'라고 하는 항구에 도착하였다. 배에서 내린 수많은 조선인들은 항구에서 걸어 나와 도시의 조그만 광장에 모이게 되었다. 광장에는 파란색, 붉은색, 흰색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 기다란 천들이 묶여져 있었고, 이곳의 글자인 듯 한 글씨들이 큰 흰 천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는 "쿵쾅~ 쿵쾅~ 뿡 뿡 뿡 뿡~ 꿍짜라~"하는 음악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광장의 중앙에 위치한 단상에 올라 온 백인은 뭐라고 연설을 하는 듯 했다. 통역사의 말로는 조선인들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라고 하였다.
명학은 처음으로 이곳 현지 음악을 듣게 되었다. 조선에서 자신이 배운 악기들과는 매우 다르게 생긴 것들이었고, 몇 번 이리저리 휘어진 쇠를 들고 입으로 열심히 불어대고 있었다. 열 명 조금 못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생긴 악기들을 들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장단과 소리 구성이 조선과는 아주 다르다고 그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씩 큰 북을 치고 있는 사람이 장단의 시작과 끝을 알려 주는 듯 여겨졌다. 통역사의 말대로라면 오늘 도착하게 된 조선인들을 메리아시에서 환영해주는 자리라고 하니까, 저 소리들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여겼다. 소리들의 장단에 힘이 세차게 들어 가 있는 게, 손님을 맞을 때에 사용되어지는 음악인가 보다 짐작이 되었다.
환영행사가 끝난 후에 조선인들은 다시 기차를 타고 몇 시간 후에 메리다에 도착하였다. 마지막 도착지라고 들었던 메리다에 드디어 온 것이었다. 들떠 있는 조선인들은 다시 어느 큰 건물까지 이동하였고, 건물 뒤편의 공터로 돌아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분위기는 달라졌다. 현지인들의 표정이 굳어졌으며, 조금이라도 자기들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고 심지어 몽둥이까지 휘둘러 대었다.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조선인들은 몇 줄 횡대로 길게 늘어서야 했다. 그리고는, 누군가를 기다려야 되는 듯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말을 타고 나타난 백인 사내들이 그들 앞으로 지나갔다. 그들이 쓴 모자의 테두리는 아주 넓었으며, 권총과 채찍을 말에 달고 있었으며, 일렬로 늘어서 있는 조선인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움직여 지나가기를 되풀이 하였다. 한 번씩 말을 멈추고, 그 앞에 서 있는 조선인을 손으로 가리키면, 옆에 따라 다니던 현지인들은 그 조선인들을 줄에서 끄집어내었다. 해가 저물도록 그런 사내들이 수십 명도 넘게 나타났고, 그럴수록 줄에 서 있는 조선인들은 한두 명씩 사라져 갔다.
"지금 저 자들이 뭐하고 있는 거야?"
"아마, 자기들 농장으로 데려갈 사람을 골라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인들은 시간이 지나자 지금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서 같이 온 가족들은 헤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 시작하였다. 조선인 통역관에게 달려가 사정을 하여 가족들과 이별하지 않으면 천만다행이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가족들은 최대한 가까운 농장으로 가도록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다되어 갈 무렵, 백마를 타고 나타난 사내는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는 봉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이. 통역사 양반. 여기 서 있는 내 동생도 같이 좀 데려 가 달라고 하소."
통역사는 사내에게 뭐라고 말하였으나, 사내는 명학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음 줄로 이동을 하였다. 메리아까지 와서 봉수와는 다시 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명학은 생각을 못 했지만,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밤이 어두워지자, 공터에 서 있는 조선인들은 이제 몇 백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낮 동안 나타났던 농장주인 들은 마음에 드는 조선인들을 뽑아서 몇 십 명 단위로 데려 가 버린 뒤였다. 나머지는 내일 나타날 농장주들이 데려 갈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농장주 두, 세 명 정도가 나타났는데, 늦게 온 자신들이 운이 없다고 말하는 듯 무슨 말을 내뱉으며 남아 있던 조선인들을 나누어서 데리고 갔다. 명학은 다행히 언년이 가족과 같이 헤어지지 않고 같은 농장주를 따라 가게 되었다.
그 농장주는 남아 있는 조선인들에게 노래를 시켜 보았다. 그리고는 명학을 선택하였고, 명학은 자기 옆에 있던 언년이 가족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농장주에게 애걸하는 눈빛을 보내자, 그 사내는 언년이 가족도 덤으로 같이 데리고 가버렸던 것이었다. 배에서 내려 며칠 동안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