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까_5편. 아시엔다, 치유의 소리

음악장편소설

by 김주영

아시엔다


메시다에서 헤어진 조선인들은 자신들을 데리러 온 대농장의 마차들에 올라탄 채 유카탄 반도의 곳곳에 위치한 각자의 농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유카탄의 태양은 그들의 머리 위로 강렬히 내리 쬐고 있었으며, 모자를 거의 쓰고 있지 않았던 탓에 그 따가운 열기를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했다. 마부는 테두리 창이 기다란 둥그런 모자를 머리에 푹 눌러 쓴 채 말을 몰아갔다. 메시다를 벗어난 이후 인적이 드문 벌거숭이 땅들은 끝없이 펼쳐져 가고 있었고, 어느 지점부터 현지인들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조선인들처럼 황색의 얼굴이었지만, 생긴 모습이 약간은 틀린 것 같았다. 들려오는 말씨도 조선말은 아니었고, 중국말이나 일본말도 아니었다. 농장에서 일할 때 사용하는 듯한 도구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끝이 날카롭고 줄기가 긴 나무를 자른 후에 그것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옮기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마차에 탄 조선인들과 그들처럼 얼굴빛이 황색인 현지인들은 서로를 신기한 듯이 번갈아 가며 쳐다보기를 되풀이 하였다.


명학은 언년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인가 봐요. 우리 조선인들 닯았는데, 여기 햇살이 조선보다 더 세어서 그런지 얼굴이 우리보다 더 탄 것 같아요."


"그려. 아까부터 나도 쭉 보고 있었어. 내 생각으로는 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 우리가 하게 될 일일 꺼야."


농부였던 그는 직감적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지를 눈치 채고 있었다. 수레용 마차 위에서 털컹거리며 몇 시간을 이동하는 동안에 언년이 아버지는 마카탄 지역의 흙과 식물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근데, 우리가 여기서 쌀농사를 짓는 건 아닌 게 분명해. 이런 땅에서 벼가 자라기도 어렵지. 흙이 너무 메말랐어. 자네도 봤겠지만, 저기 무슨 괴수처럼 생긴 나무가 먹으려고 키우는 것은 아니고. 무슨 다른 이유 때문에 저걸 키워서 잘라 가져가는 것 같아."


"저게 뭐죠? 조선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이런 메마른 땅에서는 저렇게 생긴 놈들이 잘 자라는 것 같아. 저게 땅주인들에게 돈이 되는 모양이네. 저걸 팔아서 이 땅 주인들이 사는 게 분명해. 우리처럼 생긴 저 사람들은 저걸 키우고 잎사귀를 낫으로 자르는 게 하는 일일 꺼야."


같은 마차에 탄 다른 조선인들은 언년이 아버지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농사일을 하지 않았던 이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앞으로 사년동안 펼쳐질 인생을 미리 듣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메마른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나절을 달린 마차는 어느 지점에 세워져 있는 큰 울타리를 지난 후에 큰 저택의 입구에서 멈췄다. 농장 주인처럼 보였던 그 사내는 그 저택으로 들어갔고, 하인들이 나와서 그를 맞이하였다. 저택에서 나온 그의 가족들이 그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하며 그를 안아 주었다. 백인 가족들인 그들은 마차에서 내려온 조선인들을 멀리서 구경하고 있었다. 농장주인은 웃으며 가족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때 조선인들의 뒤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그 쪽을 쳐다보니까 모자를 눌러 쓴 얼굴에 검은 색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말에 탄 채 조선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라고 외쳐대고 있었지만, 통역하던 사내가 이제는 없었던 탓에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눈치가 빠른 조선인 한 명이 '고함을 지르고 있는 저 사내가 있는 쪽으로 모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말을 탄 그 사내에게 모두들 다가가니 정말 그 뜻이 맞았던지, 그는 화를 내는 것을 중단하고, 말을 몰고 앞장 서 갔다. 모두들 그의 뒤를 따라서 줄지어 이동하였다. 저택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만큼 한참을 걸어간 후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여려 채의 집이 있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유카탄 땅에서 나는 것들을 이용하여 지어 놓은 듯 한 엉성한 오두막집들이었다. 이곳에서 자라는 나뭇잎들로 얹은 지붕에 흙으로 바른 벽으로 이루어진 움막 수준이었다. 4명 정도의 단위로 움막이 주어졌고,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움막이 정해지자 그 안으로 일단 들어가서 짐을 내려놓았다. 조선에서 가난하게 살아온 이들에게도 이런 비참한 집은 고향의 정겹던 초가집을 생각나게 하며 잠시나마 눈물을 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년의 시간 후에는 다시 조선에 돌아 갈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만한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에서 부자로 살지는 않았지만 어엿한 자기 집을 가지고 있었고,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떠나온 이들은 움막을 보는 순간부터 현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움막 속에서 부인들의 울음이 들려왔고, 그들을 이 머나먼 땅으로 데리고 온 남정네들은 움막 밖으로 나와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년아. 이제 여기가 집이야. 집이 좀 그렇긴 해도, 살면 좀 나아질 거야."


명학은 언년이의 손을 잡아주며 말을 걸었다.


"오빠. 여기서 우리 이제 살아야 돼? 같이 놀 친구들도 없고 말이야. 너무해. 앙. 앙."


훌쩍이는 어린 딸을 아버지는 보고 있다가 움막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의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져 가는 것 같았다. 배에서 객사해 버린 마누라가 이런 현실을 차라리 보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며, 그는 조선인들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앞으로 펼쳐진 유카탄 농장에서의 생활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속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 맞을 거야."


"네? 이제야 겨우 농장에 도착했는데요. 앞으로 살면서 알게 되겠죠."


"이 놈들이 우리를 세상 반대편에서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은 우리가 예뻐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그동안 개, 돼지처럼 여기까지 태워오며 먹여주고 재워 주었지만, 그 돈을 이놈들이 다 내었던 건 말이야, 우리가 앞으로 일해서 그 보다 더 큰 돈을 벌게 해 줄 수 있으니까 그런 거야. 조선인들이 이곳에서 뼈 빠지게 일하든지, 아니면 이 땅 주인들에게 평생 노예로 살게 될지도 몰라. 조선에서처럼 말이야."


얼굴이 굳어진 채 말하고 있는 언년이 아버지를 명학은 쳐다보며, 앞으로 펼쳐질 이 곳 농장생활이 그러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조선인들처럼 생긴 현지인들은 마야인 이라고 나중에 들었는데,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멕시코 땅에 살아 왔던 인디언들의 후손이라고 했다. 그들의 피부 색깔과 외모가 어떻게 하여 우리와 비슷한지 궁금하기도 하였으나 지금 처한 상황으로서는 한가하게 그 이유를 알려고 할 수가 없었다. 농장에 도착해서 처음 봤던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감독을 하고 있는 듯 했고, 그의 지시대로 농장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가 지시했는지 마야인 들은 움막마다 돌아다니며 포대자루를 넣어 주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옥수수들이 들어 있었다. 허기에 지친 그들은 움막에 놓여 있는 큰 냄비에 옥수수를 넣고 삶기 시작하였다. 배가 고픈 언년이는 계속 냄비 속을 기웃 기웃거렸다.


"언년아. 조그만 참아. 자꾸 들여다보면 옥수수가 빨리 익지 않지. 오빠가 먹을 것도 남겨서 너 몇 개 더 줄께."


한창 클 나이였던 언년이를 보면서 명학은 고향집에 있었던 여동생을 생각하였다. 항상 배가 고파하던 동생의 모습을 떠올렸고, 고향을 떠나온 이후로 챙겨주지 못했던 동생 대신에 지금 같이 있게 된 언년이를 챙겨 주고 싶었다. 배에서 엄마가 죽은 이후에 말수가 줄어 들었다는 것을 또 떠올리니 이전의 언년이의 모습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메시아에서 헤어지게 된 봉수형이 어느 농장으로 갔을까 궁금해 왔다. 유카탄의 대농장 중 한 곳에 분명히 있을 것이므로 그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 보았다. 좀 지나고 나면 자신이 봉수형이 있는 농장으로 한번 가보든지, 아니면 어디에서 가끔씩은 만나서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움막 안에 들어 온 모기들을 몇 마리 잡아 보다가, 피곤과 함께 쏟아지는 잠을 이겨 내지 못하여 어느덧 잠이 들어 버렸다.


"휙~ 휙~휙~"


날카롭게 울려대는 소리들이 움막 밖에서 들려왔다. 귀에 거슬리도록 계속 나고 있었지만, 명학은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서성 거렸다. 그러는 그를 언년이 아버지는 흔들어 깨웠다. 눈을 비비며 그는 일어났지만 이곳이 어디인지를 잠깐 동안 분간하고 있었다.


"자네. 이제 일어나게. 오늘부터 일을 시키는 것일 거야."


"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죠? 이렇게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는 걸까요?"


"여기는 원래 날씨가 뜨겁고 더운 지방인 것 같아. 그러면 해가 뜨기 전부터 일할 준비를 하지."


고이 잠들어 있는 언년이도 마저 깨워서 모두 움막 밖으로 나왔다. 감독관은 말을 타고 움막이 모여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입에 뭔가를 문채, 계속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소리에 못 이겨서 조선인들은 움막 밖으로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하였다. 따라온 마야인 들은 조선인 남자들에게 일하는 도구들을 나누어 주었다. 둔탁하게 생긴 낫을 받아 든 언년이 아버지는 연장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이거 무디게 생겼어도 무거워. 날도 살아 있는 것을 보니까 우리가 베게 될 것이 꽤나 질긴 놈인가 보군."


밖은 아직 캄캄하였으나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감독관과 마야인들은 이른 새벽을 깨워오는 중이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마을에 남겨 두고 남자들은 농장으로 서서히 이동을 시작하였다. 혼자 남게 된 언년이가 걱정이 되어 옆집 움막에 거처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맡겨 두었다.


처음으로 도착한 농장에서 그들은 에네켄이라는 식물을 보게 되었다. 가시가 썸득하게 박혀 있는 것이었는데, 완전히 자란 놈은 어른 키보다 더 컸고, 나무둥지 주위로 힘차게 뻗어 나온 줄기는 그들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다. 마야인 들이 조선인들에게 우선 시범을 보여 주었고, 그들은 그 모습을 따라서 낫질을 해 보았다. 농사일을 해 보지 않은 이들은 일하는 모습이 서투르기 짝이 없었다.


"이거 너무 질긴 놈이군. 도끼로 베기에는 그리 단단하지가 않아서 무리이고 낫질을 해도 엄청 질기군."


마야인 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일을 시작한 언년이 아버지는 일을 잠시 멈춘 후에 다시 마야인 들이 일하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기를 되풀이 하였다. 명학도 에네켄 줄기에 낫질을 해 보았지만 줄기에 상처만 내고, 하나도 자르지 못하였다. 아버지와 형들을 따라 다니며 힘든 일을 해 보았지만, 이런 일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것이었다. 그를 비롯하여 농사일을 해 보지 않은 조선인들은 에네켄의 가시에 찔리고 낫질을 잘 못하여 몸에 가벼운 상처를 입기를 반복하였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그들에게 모자가 지급되었다. 유카탄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하여 창이 넓은 모자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첫 날 일하면서 그들은 충분히 이해를 하게 되었다. 어렵게 잘라낸 에네켄 줄기들을 묶으면 무게가 제법 나갔는데, 그것들을 등에 지고 공장까지 운반하는 일도 무척 힘들었다. 조선인들이 생각보다 일을 잘 못하는 모습을 보자, 감독관인 사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감독관의 욕을 먹으며 허둥거리고 있는 조선인들을 보면서 마야인 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마야인 들도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고달픈 노동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밤이 되자, 강도 높았던 노동에 지쳤던 남자들이 마을로 돌아 왔다. 걱정이 되었던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들의 남편, 아버지, 아들, 오빠들에게 달려 들어 얼굴을 만지며 부둥켜안아 주었다. 언년이도 오늘 같이 놀던 또래 아이들과 헤어진 채, 움막으로 돌아 왔다.


"자네. 오늘 힘들였지? 농사일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일하는 것이 많이 서툴러 보이더군. 여기서 얼마 동안은 고생 좀 하겠어."


"제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미장일을 많이 해봐서 몸을 쓰는 것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일해 보니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걱정입니다."


"요령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네. 아까 농장에서 본 에네켄인가 뭔가 하는 나무줄기에 낫질을 시작하면서, 조선에서 본 놈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네. 한참을 낫질을 하다가 멈추고 여기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좀 지켜보았어."


그리고는 명학에게 낫을 잡는 방법이며 어떻게 힘을 주고 어디를 쳐야지 보다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흘러갔다. 조선인들도 일의 요령을 익히기 시작하자 점차 속도가 붙어 갔다. 이런 모습을 감독관은 보고 만족한 듯 하였지만, 문제는 사 년 후에 과연 돈을 벌어 조선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그들 사이에서 서서히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에네켄 줄기를 베어와 묶어서 공장이 있는 건물로 가져 오면 멕시코인이 개수를 세어서 종이를 주었고, 그 종이는 농장 안에서는 돈처럼 사용되었다. 그 종이를 들고 가족들은 농장 안의 매점으로 가서 필요한 옷, 음식 들을 살 수가 있었는데, 사고 나면 수중에 돈이 남기는커녕, 모자라서 외상으로 물건과 음식재료들을 가져와야 할 지경이었다. 그럴수록 농장 안에서 그들의 빚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 빚은 농장주인에게 갚아야 하는 것이므로 사년이 지나도 빚만 남게 되었지 수중에 가지고 돌아 갈 돈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짐작이 되었다. 그럴수록 더 일하여 생산량을 늘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매점의 물건과 음식재료 값은 턱없이 비쌌다. 농장 밖에서 그런 것들을 얼마에 파는지도 알 수가 없었고, 농장 밖으로는 나가서 물건을 사 온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시 농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착취였던 것이었다. 문서상으로 4년 계약을 맺은 노동자 신분이었지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실상 노예와 같은 현실이었다. 보다 나은 내일이 없을 것 같은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유카탄에 흩어진 대농장인 아시엔다에 조선인들은 당시에 살고 있었다. 똑 같은 현실 속에서 같은 농장의 마야인 들은 조상대대로 그 숙명을 체념한 채 받아들이며 살아오고 있었다.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아시엔다라는 대농장 주인들은 마야인 들과 조선인들이 잘라온 에네켄 줄기를 이용해 선박용 밧줄을 만들어 시장에 비싸게 내다 팔았다. 강대국들의 식민지 쟁탈과 함께 에네켄을 사용하여 만든 선박용 밧줄 시장은 대호황이었고, 조선인들과 마야인 들을 착취하는 농장의 불합리한 구조를 배경으로 아시엔다 농장주들은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치유의 소리


새벽 별을 보며 마을을 나와서 하루 종일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에서 농장일을 하고 밤에는 또 다시 마을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누이는 하루하루가 조선인들에게 되풀이 되고 있었다. 유카탄의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야인 들에게는 그 곳이 그들의 고향이었지만, 조선인들은 몇 년 후에 돌아 갈 고향을 생각하며 하루의 생산량을 점점 더 늘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마을에 머물러 지내던 부인들과 아이들까지도 남자들을 따라 가서 농장의 일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어서 빨리 빚을 갚아서 농장 생활을 벗어나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히 에네켄을 잘라 나르고 있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고 마야인 들은 왜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지 궁금해 하곤 하였다.


그 날도 일을 마치고 명학은 사람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그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몇 명의 조선인들과 같이 그 쪽으로 걸어가 보았다. 농장주의 저택에 화려한 빛깔의 마차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리는 남자들 중에서 몇 명은 이전에 메디아에서 봤던 얼굴도 있었다. 유칸탄의 아시엔다 주인들이 오늘 밤에 이 저택에서 열리는 음악회 겸 저녁만찬에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음악을 유달리 좋아하는 농장주는 멕시코시티에서 교향악단을 불러 자기 저택에서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악단의 여행비용과 공연료를 농장주가 모두 지불해야 하므로 부담이 컸지만, 그는 대대로 내려온 엄청난 재산 때문에 음악회에 소요되는 비용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그의 타고난 열정이 큰 것이 더 작용을 하였다.


명학은 저택의 외부 담벼락에 달려 있는 쇠창살을 잡은 채 멀리서 그 음악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선에서 듣던 소리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소리가 끊김이 없이 계속 전개되고 소리 사이사이가 아주 촘촘하게 짜져 있는 듯 했다. 줄이 달린 악기가 많은 것도 특이하였고, 줄 악기들이 빈 공간 안을 소리로 촘촘히 채우는 듯 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은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자리에 앉은 채 꿈적도 하지 않고 아주 오래 연주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몇몇 농장주들은 자리에 앉은 채 잠이 들어 버린 모습도 보였으나, 그 이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경건한 자세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이 왜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저렇게 오래 듣고 있는 거지? 연주하는 사람들이 지위가 더 높은 사람들인가? 아니면, 저렇게 조용히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게 예의에 맞는 것인가?'


명학은 소리가 너무 길게 연주되기는 했지만, 이어짐이 부드럽고, 높낮이가 다른 소리들이 한꺼번에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하지만,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조용히 앉아만 있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군가, 기침을 계속하기라도 하거나, 어린아이가 앉아만 있는 것에 싫증이 나서 투정을 부리기라도 하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눈치를 주거나 한마디 말을 하였다. 청중보다는 연주자들이 훨씬 높아 보이게 만드는 이런 분위기는 너무 어색하였다. 흥이 나올 법한 구간들도 소리에 있었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 흥에 맞춰 추임새를 넣거나 춤을 추지 않았다. 소리는 아름다웠으나 흥을 죽여 버리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소리는 듣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은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 살고 있는 세상을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세계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사람들은 그 다른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서 잠시나마 이 속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들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들어보는 아름답고 신기한 소리였지만, 실제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녹아 들지 못하는 것이 그에게는 아쉬웠다. 한참을 구경하던 중에, 저택의 하인들이 다가와 그들을 쫓아내자, 할 수 없이 자리를 떠나야 했다.


조선인들과 마야인 들의 마을은 언덕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었고,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서로 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언덕에 올라가면 같이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횟수가 잦아져 갔다. 하지만, 두 인종간의 접촉이 많아지게 되면서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조선인 총각들은 같은 농장에 있는 조선인 처녀들이 부족하였던 탓에 마야인 여자들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끓어오르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마야인 여자들을 건드리는 일이 발생하면, 마야인 남자들이 한꺼번에 조선인 마을로 쳐들어와서 난리를 피우며 그 조선인을 찾으러 다니곤 하였다. 농장에서도 일을 하다가도 사소한 일로 시비가 붙어 낫을 든 채 서로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많아져 갔다.


사고는 어느 날 또 발생하였다. 조선인 아이들은 마야인 아이들과 어울리며 쉽게 마야어를 배울 수가 있었고, 그 나이는 또래의 아이들과 놀면서 크는 시간이기 때문에 두 인종의 아이들은 쉽게 친해졌다. 한 조선 아이가 마야인들 마을까지 놀러가게 되었고, 한 집안에서 놀다가 그 집에 있는 음식을 훔쳐 먹어 버린 것이었다. 한참 먹을 나이였기 때문에 이해가 될 수도 있었지만, 삶이 넉넉지 않은 마야인 부모는 조선인 아이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의 멍든 얼굴을 보자 부모들은 분을 참지 못했고, 평소에 농장에서 마야인 들과 쌓였던 감정이 자신의 아이를 보자 폭발하였다. 이웃에도 소문이 퍼지자 조선인들은 무리를 지어 마야인 들의 마을로 쳐들어갔다. 주먹다짐이 이어갔고, 시간이 가자 낫을 들고 나오는 마야인 들도 보이기 시작하자 조만간 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다. 결국, 조선인 세 명과 마야인 다섯 명이 상처를 입었고, 농장주 저택에서 총을 든 멕시코 감독관과 부하들이 출동하자 싸움이 그쳤다. 이러한 유혈 충돌이 있은 후에는 조선인과 마야인 사이에는 노골적인 다툼은 없어졌지만 감정의 골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 농장에 도착한지 거의 일 년이 흘러갔고, 빚만 늘어가고 있는 조선인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는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명학은 농장에서 마무리 일을 하고 밤늦게 마을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피곤에 지쳐 감겨져 가고 있는 눈을 간신히 뜨고 천근만근 같은 몸을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점차 커져서 그의 귀를 채웠고, 그의 주목을 끌었다. 마야인 들의 마을 방향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였다.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 가보니, 마을 입구에서 마야인 한명이 자신들의 전통 피리를 혼자 불고 있었다. 지구상의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다우며 또한 슬픈 가락이었다. 먀야인들이 살면서 지니고 있을 애달픈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명학이 그에게 다가가자, 마야인은 놀라서 불고 있던 피리소리를 멈추었다. 명학은 그에게 스페인어로 말하며 안심을 시켜 주었다.


"소리가 아름다워. 계속해 줘."


그의 눈은 겁에 질린 듯 했으나, 명학의 말과 태도에 자기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고 긴장을 풀기 시작하였다.


"혹시 배고프니? 내가 감자 가지고 있는데, 너한테 줄께."


점심 먹을 때 남겼던 삶은 감자 두 개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 중에 하나를 받았다. 둘은 약간의 어색한 긴장을 유지한 채 감자를 먹으며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피리를 잘 부르는구나. 감자 다 먹고 나면, 혹시 한 번 더 불어 줄래?"


"감자 잘 먹었어. 내가 답례로 불러 주지."


청명하면서 구슬픈 가락들이 밤하늘을 조용히 가로지르기 시작하였다. 명학은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조선에서 들었던 대금보다는 소리의 흐름이 빨랐지만, 길고 쳐지는 듯 한 부분이 많아서 기쁨보다는 슬픔과 애환을 담아내고 있는 듯 했다. 그의 피리소리는 오랫동안 빈 공간을 메워 주다가 조금씩 잦아 들며 마침내 멈추었다. 그 날 이후로 그 둘은 자주 그 언덕에서 만날 수가 있었고, 서로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마야인은 알고 있는 많은 노래들을 피리로 불어 주었고, 명학도 그 동안 불러보지 못했던 판소리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판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신기해하였고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명학의 소리에 그의 피리를 맞추지 못하다가 조금 지나자 추임새처럼 소리 사이사이 마다 아름다운 곡조를 넣어 주었다. 명학도 마야인의 피리소리의 장단에 맞추어 판소리를 불러 주기도 하고 금속이나 통가죽을 막대로 두들겨서 리듬을 만들어 주었다.


"너 이름은 뭐니? 나는 명학이야. 그냥 학이라고 불러."


"학도 소리를 잘 하는구나. 아참. 내 이름은 파비오. 콩을 키우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파비오. 이름이 듣기에 좋네.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소리야. 내 이름은 소리를 배운다는 뜻이야."


"학은 소리를 배운 것 같아. 네가 부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멕시코에서 듣는 소리와는 너무 달라서 조금 어려웠는데 말이야. 계속 들으니 소리가 맛이 있어. 우리는 춤과 노래에서 맛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듣고 보기 좋아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이야."


"고마워. 나도 악기와 노래를 오랜 시간 배웠지. 이제는 소리와도 인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파비오 덕분에 소리와 다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어."


"언제 한번 우리 마을에 와서 같이 연주 해 볼래?"


파비오의 제안에 명학은 망설였다. 그러다가 대답했다.


"그래. 좋아. 너의 마을에 가서 함께 해 보자."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에 명학은 파비오와 함께 마야인의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파비오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조선인은 싸우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저희들과 같이 음악을 연주하려고 왔습니다. 조선에서 음악을 오랫동안 배운 전문 음악가입니다. 우리 마야인 음악인들과 같이 연주하면 우리도 그에게서 많이 배울 수 있고, 이 조선인도 우리 음악에 대해 더 배워 갈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파비오의 말에 크게 저항을 하지 않았고 명학은 그 날 마야인 들과 같이 흥겹게 연주를 할 수가 있었다. 그 이후로 계속 마야인 들의 마을에 음악을 하러 갔었고, 조선인들 사이에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되자, 명학은 드디어 마야인 들을 조선인 마을로 초대하여 음악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한가위 추석을 보내는 의미에서 조선인 마을에서 간단한 잔치가 있었고, 명학은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겨우 구하고 마야인 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같이 즐겼다. 마야인 들은 먹을 것을 만들어 와서 조선인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다. 그 와중에서 명학과 마야인 들이 같이 연주하는 농악소리와 멕시코의 흥겨운 리듬은 조선인들과 마야인 들을 조금씩 춤추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동안의 싸움에서 천천히 치유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