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늦은 밤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다음날 아침에는 점점 더 빗줄기가 굵어졌으며,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거세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 일 나가기는 걸러 먹었어. 어이! 명학아. 오늘도 공치것다. 아침 대충 챙겨 먹고 마리아치 행님들 보러 가야것다."
"그러게요. 며칠 계속 일을 못하니, 이러다가는 밥줄 끊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설마 굶어 죽겄어? 모진게 우리 목숨 아니것냐? 근데, 어제 밤에 계단 올라 오다가 집주인 아저씨와 마주쳤는데, 편지가 와 있다고 말했던 거 같다. 그때는 너무 피곤해서 내일 가지러 가겠다고 했는데 말이여."
"우리한테 편지 올 곳은 메디아에 있는 조선인들 말고 없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여. 그 형님들이것제?"
"제가 내려가서 편지 가져 올게요."
잠시 후에 명학은 편지를 가져와서 뜯어보았다.
"어. 봉수형. 조선이 망했다고 하네요. 일본 놈들이 조선을 뺏었다고 해요."
"뭐여? 우리가 떠나 올 때도 심상치는 않았지. 그 놈들이 이제는 나라까지 뺏들었다냐? 이거 이제 돌아갈 조선도 없는 거여? 뭐여?"
"외국에 나와 있는 조선인들에게 일본 영사관에서 일본 국민으로 등록하라고 하면 협조하지 말자고 적혀 있네요."
"말이 되는 거? 이놈들이 나라까지 뺏어 먹고도 모자라서 앞으로는 우리까지 일본 놈으로 만들겠다는 거여? 뭐여?"
"돈 모아서 배 타고 조선으로 가도 일본 놈들 밑에서 살아 야겠네요.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지?"
둘은 마음이 무거워져 왔다. 멕시코에 온 이후로 모진 고생을 하고도 참아 왔었던 것은 언젠가는 돈을 벌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었다. 빼앗긴 조국으로 돌아가리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
"돌아가도 저 놈들이 땅주인으로 변해서 조선에 득실득실거릴텐데 말이여. 우리가 여기 농장에서 멕시코 놈들 밑에서 일했던 것과 똑 같은 것 아니여?"
"조선에 있을 때도 양반들 밑에서 일하고 겨우 밥 먹고 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나라를 뺏긴 거라면, 일본 놈들은 우리를 더 막 대할 거 아녜요? 이제 겨우 멕시코 지주들한테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야. 명학아. 머리 아프다. 밥이나 챙겨 먹고 밖에 나가 보자."
찢어진 우산을 나란히 쓴 채로 명학과 봉수는 저 멀리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하려고 모자를 눌러 쓰고 다녔던 길이었지만,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오히려 햇볕이 그리워졌다. 뜨겁더라도 실컷 그 열기를 느끼고 싶었고, 그러면 이 서글픈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둘은 항구 끝까지 걸어가면서도 서로 말이 없었다. 거리의 틈새에 자리 잡고 비를 피하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그들을 관심 어리게 바로 볼 뿐이었다. 항구에 도착하자, 그들은 마치 집으로 들어 가 듯이 자연스럽게 어느 허름한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따. 비구경이 하고 싶기는 했는데.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니, 맘이 좀 껄쩍지근허다. 아이고. 참 사는 게 뭐 거시기 해! 근데, 이것이 뭔 소리당가?"
봉수는 뒤 따라 들어오는 명학을 보며 말했다.
"글쎄요. 오늘 다른 형님들은 안 오신 모양이네요. 하긴 비가 와서 연습하러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는 않죠. 나중에 비 그치면 오실지도 모르죠."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멕시코에 와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느린 곡이었다. 하지만, 노래 한 가닥 한 가닥 소리들이 가슴에 스며 들어오듯 명학과 봉수의 마음을 울리게 하였다.
둘은 자리에 앉아서 이어서 계속 흘러나오는 노래와 기타소리를 듣고 있었다. 창고 밖의 빗소리는 음악과 어우러져 잔잔한 분위기를 더해 가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명학은 마음속으로 흐르고 있던 감동의 여운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있었다. 말이 많은 봉수도 이 순간만큼은 침묵을 하고 있었다.
"호세! 정말 아름답네요. 멕시코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그런 소리인 것 같아요. 노래 이름이 뭐죠?"
명학은 먼저 입을 열었다.
"어! 너희들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저희들은 얼마 전에 왔는데, 호세가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조용히 듣고 있었어요."
"아. 그래? 고마워. 이 노래는 제목이 '뜨리스떼싸스'(슬픔)라고 해. 쿠바 노래지. 너희들 쿠바가 어디 있는지 알아?"
"쿠바는 바다 저 건너편에 있다고 듣기는 했어요. 그러고 보니까 어쩐지 평소 듣던 소리와는 다르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가 빠르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부드럽네요. 그런 노래는 뭐라고 불러요?"
"우리 쿠바인들은 '볼레로'라고 불러."
"그럼. 호세는 멕시코 사람이 아니라, 쿠바 사람이었어요?"
"그래. 나는 쿠바에서 왔어. 내 스페인어 억양이 약간 달랐을 텐데, 너희들은 몰랐구나."
"그려. 우리는 호세가 멕시코 사람인 줄 알았지."
봉수는 뒤 늦게 둘의 대화에 끼었다.
"호세는 멕시코에 언제 왔어요?"
"글쎄.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 우리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난 뒤였으니까 십년은 훨씬 넘었을 거야."
"왜 쿠바에서 멕시코로 왔어요?"
호세는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너희들은 왜 멕시코로 왔니?"
"얘기하자면 길어요."
"나도 말하자면 얘기가 길어진단다. 누구든 다 사연이 있는 거야."
호세는 기타를 내려놓으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내어 담배를 말아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연기를 길게 뿜었다. 흰색의 구름들은 창고 천정으로 올라가다 다시 아래로 내려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쿠바의 산티아고 지방 출신이야. 거기서 뜨로바도르였어. 너희 그것이 뭔지 모르지? 뜨로바도르는 나처럼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데, 이 마을 저 마을을 방랑하며 돌아다니는 가수 겸 시인들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주로 사랑에 대해서 노래하는데, 때로는 노래와 가사를 우리가 만들어 내기도 하지. 뜨로바도르가 부르는 노래를 '뜨로바'라고 말하지. 주로 사랑을 노래하며 기타로 반주하며 부드럽게 부르는 편이야. 이제는 쿠바인들이 이런 노래 종류를 '볼레로'라고 부른다고 들었어. 볼레로는 더 이상 뜨로바도르의 노래가 아니고 쿠바에서는 인기 있는 노래 종류가 되어 버렸어."
"멕시코에서 빠른 소리만 듣다가 이렇게 조용한 노래 들으니 좋네요."
"너희 둘은 너희 나라에서 어떤 음악을 했었니?"
"저는 노래를 배웠고요. 저기 봉수형은 손으로 치는 악기를 오래 했어요. 그때 제가 봉수형과 같이 악기를 같이 연주했었을 때도 있었죠."
"손으로 치는 악기가 너희들에게 익숙하겠구나. 그러면, 언젠가 기회가 되면 쿠바로 가거라. 그런 악기와 노래들의 천국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쿠바일 거야.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의 후손들이 손으로 치는 악기를 정말 잘 다루지. 그런 리듬들이 유럽의 현악기, 관악기들과 어울러져서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었지. 아까 내가 쳤던 음악을 흑인들의 리듬을 가미하여 다시 쳐줄게. 잘 들어 봐!"
호세는 다시 기타를 잡고 나서는 연주를 시작하였다. 같은 노래였지만 소리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와. 이번 것은 완전히 맛깔이 있게 되어 버렸어라."
봉수는 즐거워하며 소리쳤다. 그의 어깨가 소리에 맞춰 들썩들썩 움직여졌다.
"하하하. 봉수! 너는 쿠바로 가서 악기를 배우면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방금 내가 연주한 것은 똑 같은 음악에 아프리카 리듬을 가미해서 다시 쳤던 거야. 소리에 흥이 생기고 맛깔이 더해졌지."
"그럼 내한테도 좀 가르쳐 주소!"
"아니야. 내가 기타로 연주하는 것은 그러한 맛을 내는 데에 한계가 있어. 그러한 리듬을 살려주는 쿠바 악기들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지. 여기 멕시코에서는 좀 어렵 단다."
명학은 그 이후로 호세에게 틈틈이 볼레로 노래들을 배웠고, 기타를 연주하는 방법도 익혀 나갔다. 봉수도 마리아치들에게 아코디언과 트럼펫, 기타들을 조금씩 익혀 나갔다.
몇 년이 흐르자, 멕시코는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독재를 해오던 대통령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자, 반대세력들이 저항하여 권력을 잡았지만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다시 그 세력에 반대하여 멕시코 곳곳에서 혁명세력들이 생겨나서 혼란의 시대를 겪게 되었던 것이다. 명학과 봉수가 있던 베라끄루쓰 항구에는 이러한 멕시코 혁명에 개입하려는 의도에서 미국 해군 군함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둘은 끈질기게 살아남았으나 그들을 절망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멕시코 혁명 기간 동안 생겨난 세력들은 자기들이 장악한 지방에서 자기들만의 화폐를 만들어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베라끄루쓰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힘들게 모았던 둘의 피같은 돈은 어느 순간에 가치를 잃어 벼렸던 것이었다. 그나마, 지폐 대신에 금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많은 조선인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들은 장사나 사업을 하겠다며 모았던 돈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자 다시 농장을 옮겨 다니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시간이 흐르자 멕시코의 농민들과 근로자들 단체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자기들의 일자리가 뺏기고 있다며 정치인들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인들은 일자리를 점점 구하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언년이가 시집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명학은 봉수와 함께 멀리 메디아까지 가서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결혼식에 모였던 조선인들은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언년이가 언제 저렇게 컸어요? 하긴 멕시코 도착한지도 이제는 십오 년이 되었네요. 그래도 같은 조선인 남자를 만나서 다행이에요."
"그러게. 신랑이 언년이를 무척 좋아하고 있어. 잘 살 거야. 이제 우리도 어느새 늙어 버렸군. 자네는 잘 지냈나?"
"뭐. 요즘은 사는 게 다 힘들지 않습니까? 모아 두었던 돈들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고요. 이제 또 먹고 살 길을 찾아 봐야죠."
옆에 있던 조선인 하객들이 끼여 들었다.
"이제는 혁명이 거의 끝났으니까, 안정이 될 거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렌지농장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수가 있다고 하더군."
"미국이면 여기서 너무 멀지 않나? 미국에 들어가기도 힘든 모양이던데. 멕시코인 들도 미국으로 많이 넘어 가려고 해서 미국국경에서 단속이 심한 모양이야."
"그래도 미국으로 무사히 건너간 조선인들 소식도 들리지 않소? 하지만, 잡히면 그 쪽 감옥에 갇혔다가 추방당할 텐데."
"미국으로 혹시 갈 생각이면 내가 알아 봐 주겠소. 일단 오래 이동을 해야 하니까 돈을 좀 마련해야 될 거요."
"최근에 조선인 몇 명이 주축이 되어서 쿠바로 일하러 떠날 조선인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쿠바라면 오히려 미국보다 가기는 수월하겠구먼."
"세계대전 끝나고 설탕 값이 많이 올랐잖아요? 그래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손이 많이 모자란다고 그러네요."
"여기 에네켄 농장은 이제 거의 죽어가는 분위기니까, 오히려 쿠바 사탕수수 농장이 나을 수도 있겠네 그려."
"돈은 많이 준다고 하던가?"
"여기보다 몇 배는 더 받을 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으면 거기 사탕수수 농장은 오히려 일하기 수월할 거야."
"그래도, 미국이 전쟁에서도 이겼으니, 미국으로 가는 게 나중에 애들을 위해서라도 더 낫지 않을까요?
"뭐. 여기 멕시코에 남아 있지 않는다면, 미국이냐, 쿠바냐 둘 중 하나는 선택을 해야 되겠군."
"네. 그러면 쿠바 사탕수수 농장으로 일하러 가는 것은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그래. 앞으로 우리가 힘을 합하여 얻은 정보들을 내가 정리를 해서 편지로 전부 보내도록 할 테니까, 다들 알아서 잘 판단들 하시게."
"저희들은 여기 유카탄에 남아 있으렵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기도 하였고요."
결혼식장에 모인 조선인들은 저마다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그들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었다.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메디아를 포함한 유카탄 지역에 남아 있을 것 같았지만,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미국으로, 그리고 쿠바로 떠나갈 분위기였다.
"돈 벌러 다시 떠나자. 빈손으로 멕시코 와서 다시 거의 빈손이 되어서 떠나게 되었어 버려. 공수래공수거. 이거 우리한테 딱 맞는 말이다. 지금의 우리한테 말이여."
"쿠바가 멕시코처럼 스페인어를 쓰니까, 쿠바로 가시죠."
"미국까지 갈 돈도 없잖냐? 여기보다 돈 더 많이 준다니까, 쿠바 가서 몇 년 일해서 돈 많이 벌자."
"그래요. 쿠바로 갈 조선인들 모으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방법을 알아 봐야겠네요."
"그려. 그러자. 저기 바다 너머가 쿠바라고 했지?"
둘은 해가 지고 있는 석양의 베라끄루쓰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 꾸까라차
"오늘도 일은 공쳤다. 조만간 멕시코인 들이 대놓고 우리에게 일을 나오지 말라고 하겠다. 이러다간 굶어 뒤지는거 아녀?"
봉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그의 얼굴빛은 어두워져 있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오늘도 일을 못 주겠다고 하는가요?"
"몰라. 뭐 자꾸 자리가 다 찼다고만 말을 해 버리고 있는데. 근디 우리보다 늦게 와 있던 멕시코인 들은 조금 전에 보니까, 저기 일하는 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만."
"외국인에게 일거리 안 주겠다는 뜻이네요."
"그래도, 저 놈이 우리하고 같이 일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말이여. 오늘은 아예 모르는 사람 대하는 것처럼 겁나게 차가워져 버렸어라."
"우리에게 일 못 주도록 다른 사람에게 압력을 받았겠죠. 뭐. 오늘은 여기 더 있어도 일 못 찾을 것 같으니, 돌아가죠. 봉수형."
"우리가 멕시코 와서 뭐 공짜로 밥 먹었어? 죽도록 저기 에네켄 밭에서 일하고, 여기 항구에서도 멕시코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잖혀?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무심하게 대할 수 있당가?"
봉수는 걸어가며 열변을 토하고는 홧김에 길에 침을 뱉었다. 명학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 왔지만, 길게 한숨을 내 쉬며 화를 안으로 삼켜 버렸다. 둘은 한참을 걸어서 시내의 한 구석에 있는 조선인이 운영하는 구멍가게로 찾아 갔다.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요즘 저희가 뜸했죠? 가게는 잘 되시죠?"
"응. 자네들 소식도 궁금했는데, 때 마침 여기 찾아 왔군 그래."
"저희야. 뭐 딸린 식구들 있는 것도 아니고. 일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일 못하고. 뭐 그렇게 살지요. 하하!"
"그려. 요즘 돈 벌기가 쉽지가 않지. 근데, 쿠바로 돈 벌러 갈 조선인들 모으러 다니는 사람이 다녀갔는데, 혹시 봤어? 안 그래도 내가 자네들 만나면 말해 주려고 하던 참이었어."
"아. 그려요? 쿠바로 일하러 가는 길이 있다고는 들었는디. 누구한테 물어 봐야 되는지 궁금했지요. 메디아에서 소식 알려 준다고 했는데. 아직 깜깜 무소식이네요."
"저기 건너편 호텔에 묵고 있을 거야.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조선인들을 만나서 쿠바에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어. 나중에 한번 찾아 가봐!"
둘은 가게에 좀 더 머물다가 그 호텔로 가 보았지만 그 조선인은 밖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당장 만날 수는 없었다. 몇 시간을 입구에서 그가 돌아 올 때까지 기다렸고, 해가 저물자 한 동양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저기요! 혹시 조선인이세요?"
"맞습니다. 두 분도 조선인들이군요. 어떤 용무로 나를 찾아 오셨소?
"쿠바로 가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서 나를 찾아 오셨군요. 일단 올라가서 제 방에서 얘기를 나눕시다."
둘은 그를 따라 방으로 올라갔고, 그는 방안 탁자 위에 놓인 데낄라 병을 들고 둘에게 따라 주었다.
"우선 한잔들 합시다. 얼마나 밖에서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많이 피곤들 해 보이는군요."
"고맙습니다."
"나는 이해영이라고 합니다. 스페인어 이름은 호세 레 몬떼스입니다."
"저는 봉수라고 합니다."
"저는 명학이라고 합니다."
"아직 스페인어 이름은 없으시오?"
"아직 없습니다."
"그럼 쿠바로 가기 전에는 스페인어 이름을 지어야겠군요."
"선생님은 쿠바에 가 보셨어요?"
"나는 멕시코 혁명정부가 쿠데타로 무너졌을 때, 쿠바로 떠나 버렸어요. 그 이후로 거기서 계속 살았으니까, 벌써 칠년 정도 되었네요."
"거기는 살기가 좀 나아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는 미국 사업가들이 많이 들어와서 사탕수수 산업이 많이 발전했어요. 몇 년 전에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는 국제 설탕가격이 몇 배로 올랐어요. 그래서 쿠바 사탕수수농장에는 일손이 부족하고 거기서 일하면 돈도 많이 벌수 있기 때문에 내가 조선인들을 모아서 데려 가려고 하는거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저희도 갈 수 있는가요?"
"내가 쿠바의 마나띠에 있는 미국인 소유의 사탕수수 농장들과 계약을 맺고 조선인들을 데려가려고 진행 중에 있소. 일단 여기에 이름과 사는 곳을 적고 가시오. 내가 자세한 것을 이후에 편지로 적어서 보내겠소."
"네. 고맙습니다. 그러면, 저희들은 선생님만 믿고 쿠바로 갈 테니까, 이후 일정을 알려 주세요."
둘은 여관을 나왔다.
"야. 명학아! 저 양반은 어떻게 저래 출세를 했다냐? 우리는 맨날 이 모양인데 말이여. 옷 입은 것도 양복을 말쑥하게 빼 입은 것이 돈도 많이 벌은 것 같아."
"사람이 똑똑해 보이네요. 에네켄 농장에서 사년 계약 노동을 마치고 나서는 조선인들 사는 모습은 지금 뭐 천차만별이죠. 대부분은 어렵게 살지만, 잘 된 사람도 더러 있더라고요. 저 사람도 그 중 한 명이겠죠."
"우리도 한번 겁나게 돈 좀 벌어서, 저렇게 양복도 입고 잘 살아 보고 싶다. 쿠바에 가면 여기보다 훨씬 돈 많이 준다고 하니께. 잘 살아 보자."
"매끼마다 꼬박꼬박 챙겨서 먹을 수 있어도 저는 좋겠어요."
"꿈이 어찌 그리 소박하냐? 더 잘 되어야제!"
"멕시코 올 때도 돈 많이 벌게 해 준다고 왔는데, 그게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저는 그리 욕심이 없어졌어요. 여기 멕시코에서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일구하기가 힘들어져 가니까, 지금으로서는 쿠바가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같은 조선 사람끼리 뭐 속이겠냐? 저렇게 멀쑥하게 생긴 양반이 말이여."
"그건 모르죠. 뭐. 일단 쿠바라는 곳에 가서 살아 봐야 잘 알겠죠."
"명학이도 이제는 사람을 잘 안 믿게 되었네 버려. 하긴, 너나 나나 여기서 고생 많이 했으니까, 우리도 모르게 많이 변했을 거여."
"저는 사실 음악 때문에 버티는 거예요. 여기서 마리아치 형님들도 알게 되었고, 그 분들이 우리에게 여기 음악을 정말 잘 가르쳐 주셨잖아요. 아무런 사심이 없이요."
"그려. 너 말이 맞다."
달빛에 물들어 있는 잔잔한 바다를 보며 그들은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걷다가 갑자기 명학은 봉수를 쳐다보고 말했다.
"그런데, 무엇 보다요. 봉수형이 계속 저와 같이 있어 줘서 정말 좋아요. 형이 없었으면 이 험한 타국에서 어떻게 버텨 왔을까 생각이 든단 말이에요."
"어따. 이놈이 말을 거시기하게 해버리네. 눈물이 날려 한다. 나도 마찬가지여. 보기에는 내가 어디에 내 놓아도 살아남을 것 같아도 말이여. 알고 보면 억수로 여린 놈이여. 나도 명학이 네가 계속 있어 줘서 좋다."
명학은 봉수의 대답에 눈물이 나려 하였고, 많이 늦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속에 있던 말을 봉수에게 해 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다. 어느 날, 관중들이 사라져 버린 조그만 광장에서 마리아치들은 연주를 다시 시작하였다. 멕시코의 전통 민요부터 시작하여 흥겨운 음악으로 이어지더니, 마지막에는 귀에 익은 노래를 불렀다. 멕시코 혁명 기간이었던 지난 십년 동안 많이 들었던 것이었다.
"병사들이 나아간다. 이 마을과 저 마을을 거쳐
....
라. 꾸까라차. 라 꾸까라차, 아름답구나 그 얼굴~
라. 꾸까라차. 라 꾸까라차, 그립구나 그 얼굴~"
명학과 봉수도 마리아치들의 틈에 끼여서 기타를 연주하며 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해 시작된 멕시코 혁명은 십년 정도 진행되었고, 멕시코 북부의 판초 비야와 같은 산적 출신의 사나이를 혁명세력의 영웅으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시간들이었다. 농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에서 토지의 재분배 등과 같은 그들을 한때 들뜨게 했던 혁명적 구호는 이제 저 멀리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세상이 바꾸어지길 원했던 멕시코인 들의 마음속에서 이 노래는 그들에게 영원히 불리고 있었다. 어느 덧 노래는 잦아 들기 시작하였으며 어느 순간에 멈추었다.
명학은 춘향가 중에서 쑥대머리 부분을 구슬프게 불러 주었다. 마리아치들은 조용히 들어 주었다. 소리가 계속 이어지자 누군가 어느 시점부터 기타로 느리게 연주를 하며 소리에 같이 들어왔다. 점점 더 마리아치들의 악기들이 더 명학의 소리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명학의 소리가 돋보일 수 있도록 연주하는 악기들의 소리를 될 수 있는 대로 낮추어 주었다. 몇 십분 동안 명학의 소리와 마리아치들의 즉흥 연주들은 계속 이어져 나갔다.
"부라보! 너무 아름다워! 대단해! 좀 더 일찍 너의 소리를 들어 봤어야 하는데 말이야."
조금 있다가 그들은 다시 멕시코의 빠른 노래로 분위기를 이어 갔고, 봉수는 들고 왔던 꽹과리를 치면서 그들의 흥겨운 음악에 맛깔을 더해 주고 있었다. 밤늦도록 조선의 소리와 멕시코의 소리가 어우러져 가고 있었다.
1921년 3월초에 프로그레소 항구로 조선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가족들의 손을 잡고 저마다의 부푼 꿈과 멕시코에서의 응어리진 한을 안은 채, 따마올리빠스호라는 배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일부는 현지인과 결혼을 했는지, 멕시코인 부인과 그 사이에 혼혈로 태어난 아이들을 데리고 타는 모습도 보였다. 29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두 배에 타자, 배는 이윽고 천천히 움직이며 항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기 시작하였다. 조선을 떠나온 이후 16년의 세월을 보냈던 유카탄 반도의 땅덩어리는 쿠바로 떠나가는 조선인들을 무심하게 흘려보내듯이 웅장한 대륙의 모습을 보여 주다가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희뿌연 대기 속으로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태양빛은 멕시코 만의 물위를 찬란하게 수놓아 주고 있었고, 쿠바로 가는 바닷길을 축복하듯이 보였다. 카리브 해에 놓여 있는 섬나라인 쿠바를 향해 배는 여유롭게 순항하였다. 며칠 뒤에 쿠바의 라수뚜나스 지방의 마나띠 항에 도착하였지만 입국을 거절당하였다. 입국을 승인하기 위한 서류를 정식으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할 수 없이 배를 다시 출발시켜서 쿠바의 서쪽 끝에 위치한 삐나르 데 리오 지방의 마리엘에 가서 겨우 입국에 필요한 허가를 받아서 다시 마나띠 항에 1921년 3월말이 다 되어서야 배가 들어 올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밟아 본 쿠바 땅이었다.
하지만, 쿠바에 도착한 조선인들에게 처음부터 상황은 좋지 않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말에 끝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설탕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고, 1920년 2월경에는 설탕이 파운드 당 22.5센트에 국제시장에서 거래될 정도로 국제 설탕가격이 폭등하였다. 그래서 사탕수수농장을 운영하여 설탕을 수출하고 있던 쿠바로서는 호황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멕시코의 조선인들을 쿠바로 이주시키고자 사업계획이 세워졌던 것이었다. 그러나, 국제 설탕 가격은 점점 더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고, 1920년 12월에는 파운드 당 3센트로 폭락하게 되었다. 그 동안 호항을 누렸던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의 소유자들과 제당업자들은 사업에 타격을 받게 되었고, 관련 노동자들도 실업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마나띠 슈거 컴퍼니'라는 회사의 사장도 이러한 사정으로 인한 경영악화로 조선인들을 고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알려 왔다. 쿠바 땅에 어렵게 도착하였지만, 처음부터 차질이 생겨버린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다시 살아남기 위해 마나띠 인근지역에서 일자리를 급하게 찾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