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까_8편. 꽌따라메라, 룸바

음악장편소설

by 김주영

꽌따나메라


"이 사람아! 쿠바에 오면 일거리가 넘쳐나고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임금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 모두 자네 말 한마디만 믿고 쿠바까지 왔는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

사람들은 이해영의 주위에 모여 들어 따지기 시작하였다.


"자. 모두 진정들 해 주세요. 사탕수수 경기가 이렇게 안 좋아질 거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설탕가격이 폭락을 해 버려서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 점에 대해서는 제가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저도 이렇게 일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쿠바에 오기 전부터 설탕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자네의 쿠바 이주계획을 멕시코 한인회에서 경고했다는 얘기도 사실 들었네. 그런데, 이렇게 상황이 나빠질 줄이야."


"설탕 가격은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되풀이 하는 편입니다. 쿠바의 설탕산업은 미국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고, 미국이 워낙 강대국이어서 설탕가격을 중간에 조정하여 다시 회복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떡할 텐가?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 줘야 되지 않겠나?"


"네. 저도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 마나띠에 당분간은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으니, 임시적으로 일 할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일단 당분간은 그걸로 버텨 주시고, 제가 마딴사스 지방에 에네켄 농장이 있다고 최근 들었으니 거기로 나중에 옮기도록 연결해 보겠습니다."


"뭐야? 여기 쿠바에 와서도 에네켄 자르는 일을 하라는 거야?"


"쿠바는 미국인들이 에네켄 농장을 경영하고 있으니 조건이 멕시코보다 더 나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탕수수 농장일은 당초에도 처음 하는 일이었을 테니까, 에네켄 농장일이 더 수월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일단은 자네가 우리보다는 쿠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테니, 그렇게 일을 해 보게. 이번에도 우리를 또 속이는 거면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걸세."


"감사합니다. 이번은 제발 저의 말을 믿어 주세요. 저도 나름 생각하고 한 일인데, 일이 이 지경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처럼 멕시코까지 와서 저 에네켄 농장에서 고생했던 사람 아니겠습니까? 우리 동포들이 조선을 떠나서 그 동안 고생하셨던 것을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쿠바에 와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시도록 좋은 뜻에서 일을 벌였는데, 하늘이 무심하군요."


"일이 이제 이렇게 된 마당에 자네만 잡고 따지는 것도 방법이 아닌 줄 우리도 알아. 여기서는 제대로 한번 살아 봐야 될 것 아닌가?"


쿠바로 온 조선인들은 그 후에 마딴사스 지방에 대형 에네켄 농장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정보가 맞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조선인 몇 명을 대표로 선출하여 마딴사스로 보내었다. 대표로 간 사람들은 마딴사스 밧줄회사라는 대농장의 관리자들과 협의를 하였고, 그 결과로 조선인들을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얻어 내었다. 그 이후에 조선인들은 조금씩 마나띠에서 마딴사스로 이동하였다. 마나띠에 남고자 했던 몇 십 명의 조선인들을 제외하고는 쿠바에 도착한지 몇 달 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딴사스의 에네켄 농장의 일자리를 찾아 마나띠를 떠났다. 마딴사스의 쿠바 현지 노동자들은 에네켄 농장 일을 그다지 잘 하지 못했던 까닭에 조선인들은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도착해서 에네켄 창고에 머물렀지만, 이후 마딴사스의 남동부에 위치한 '엘 볼로' 농장에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마련이 되었다.


"쿠바에 와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조선인들이 모여 사니까 좋네요."


"그러게 말이여. 우리가 들었던 것보다 돈은 그리 많이 받는 것은 아닌데, 조선인들이 다시 이렇게 모여 사는 것이 어디냐?"


"유카탄에서 보낸 4년 동안만 동포들이 모여 살았잖아요? 그 이후로 봉수형과 저는 베라끄루쓰에서 10년 정도를 보냈는데, 그때는 많이 울적한 적이 많았잖아요?"


"우리도 이제 여기서 잘 정착해서 예쁜 색시도 만나서 애들도 낳고 살아야 하는데 말이여? 조선 처녀들이 귀하니까, 여기 쿠바 처자들이라도 만나야겄다."


"하하. 봉수형은 늦장가라도 가고 싶은 모양이네요. 그런데, 에네켄 일이야 더 새로울 것도 없으니, 앞으로는 나쁜 일은 좀 없었으면 좋겠어요."


"나쁜 일? 암. 없어야제. 설사 만에 하나 또 안 좋은 일 생겨도 뭐 어쩔 것이여? 다시 산을 올라가면 되는 거제. 우리가 뭐 그렇게 살아 온 거 아녀?"


"고향 떠나서 항상 일들이 생기긴 생겼네요. 조선 떠나서는 멕시코 와서 저 에네켄 농장에서도 살아남았고, 먹고 살기 힘들었던 멕시코 혁명시기에도 우리는 또 살아남았으니까요. 봉수 형 말이 맞네요."


둘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며 시간이 남을 때는 조선인들에게 꽹과리, 장구, 북 등의 조선 악기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였다. 마을의 잔치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둘을 서로 모셔가려고 하는 편이었다. 멕시코에서 태어나 쿠바로 부모를 따라 온 2세들에게는 그들의 노랫소리와 악기들이 생소하였지만, 자주 그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음악에 익숙해져 갔고 틈이 날 때 마다 봉수와 명학에게 악기 연주하는 법이며 노래 부르는 법을 배웠다. 둘에게는 고향을 떠난 지 오랜만에 가져 보는 행복이었고 외국에서 태어난 조선인 아이들에게 조선의 소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 더 없이 즐거웠다.


어느 날, 명학과 봉수는 조선인 마을을 잠시 떠나 인근의 현지인 마을로 가서 며칠을 보내게 되었다. 마을은 부활절 축제를 벌이는 중이었다. 흥겨운 노래와 악기소리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탁 탁 탁 탁. 띵 띵띵~ "


기타에 맞춰 흘러나오는 타악기의 소리들은 둘의 귀를 사로잡았다. 흑인들은 북을 이용하여 음악에 규칙적인 간격과 매력적인 소리를 더해 주고 있었다.


"어. 여기는 기타도 있긴 하지만 조선처럼 손으로 때리는 악기들이 많네요."


"그려, 장단이 조선하고는 좀 다르긴 한데. 계속 들으니까, 저 놈들 치는 장단이 들린다. 나도 북이나 꽹과리 가져 왔으면 같이 어울리며 소리에 들어 갈 수 있겠는디."


명학은 음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북을 연주하던 사람에게 다가 갔다.


"연주 잘 들었어요? 정말 멋지군요! 혹시 이 북은 쿠바에서 연주하는 악기인가요? 이름이 뭐죠?"


"아. 이거요? 네. 쿠바 악기죠. 북 두개가 연결된 악기는 봉고라고 해요. 앉아서 무릎 사이에 끼운 후에 북을 때리며 연주를 하죠. 그리고 바닥에 세워 놓고 치는 저 기다란 북은 콩가라고 해요."


"그리고, 저 손에 들고 흔들며 소리 내는 악기는 뭐죠?"


"마라카스라고 해요. 양 손에 하나씩 들고 흔들어 소리를 내죠. 동그란 박 안에는 열매의 씨들이 들어 있죠. 손으로 마라카스를 앞으로 내밀면서 흔들면 안에서 씨앗들이 벽면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죠. 이 소리가 음악을 제법 맛깔스럽게 하죠."


"조그만 회초리 같은 막대기로 끍으면서 소리 내는 저 악기는요?"


"아. 저건 '귀이로'라고 해요. 저 것도 음악을 맛깔스럽게 하죠."


"네. 아까부터 악기들이 소리가 나오는 것을 다 하나씩 듣고 있었어요. 듣는 사람도 연주하는 사람도 모두 신이 나도록 음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양 손에 쥐고 한번 씩 두개를 서로 부딪쳐 내는 저 막대기 악기는 뭔가요?"


"그건 "끌라베"라고 하죠. 우리 쿠바 음악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악기죠. 음악 전체의 흐름을 일정하게 만들어 주죠. 악기들은 저마다 연주되지만, 연주자들은 저 끌라베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악기를 연주해요."


"이 모든 타악기들이 음악 전체를 풍성하게 해 주네요. 기타로만 연주해도 괜찮을 것 같지만, 이 타악기들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이 맛깔스러운 느낌이 절대 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렇죠. 쿠바 음악의 중요한 악기들이예요. 그런데, 여기 쿠바 말씨는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왔어요?"


"저희는 멕시코에서 왔어요. 원래는 조선 사람이에요."


"아. 멕시코에서 왔군요. 쿠바에 와서 음악을 듣는 순간부터 이제는 우리 음악에 빠져 들게 될 거예요. 저희 할아버지는 산티아고 지방에서 왔어요. 쿠바의 남서쪽에 있죠. 저희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들었어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리듬을 우리는 계속 지켜오고 있죠."


"우리도 우리나라에서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리듬과 소리를 배웠던 사람이에요. 저희도 타악기가 많이 발전했죠. 쿠바와 비슷하네요. 그리고 멕시코에서도 멕시코 음악을 현지인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그러면, 쿠바 악기들을 한번 배워 봐요. 매력이 있어요. 저도 일하면서 틈틈이 음악을 해요. 이런 축제를 할 때면 오래 전부터 연습해서 사람들과 같이 연주를 해 주죠."


"그러면, 저희가 시간이 날 때는 이 마을에 한 번씩 찾아오겠습니다. 귀찮으시겠지만, 저희에게 쿠바 악기를 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어요?"


"좋아요. 저는 이 마을에 살고 있으니까, 저를 찾아오시면 되요. 쿠바 음악을 외국인에게 가르쳐 줄 수 있으니 저도 즐거울 것 같아요. 제 이름은 뻬드로입니다."


"저는 안드레아고, 제 옆에 있는 사람은 미구엘이예요."


명학은 쿠바에 오기 전에 만들었던 자신과 봉수의 스페인어 이름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쿠바 음악을 소개해 드릴 테니, 나중에 멕시코 음악과 조선의 음악도 저에게 들려주세요."


명학과 봉수는 현지인 마을에서 구입한 물건들과 채소, 과일들을 마차에 싣고 조선인 마을로 돌아 왔다. 그 이후로 그들은 그 마을로 보름에 한 번씩 찾아 갔고, 조선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오면서 하루 정도를 뻬드로의 집에서 묵으며 쿠바 악기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 나가기 시작하였다. 조선에서 그들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시작하였지만, 멕시코에서 보낸 16년 동안 멕시코의 음악을 접하면서, 외국의 새로운 소리와 악기를 배우는 속도는 그들이 음악을 한 세월에 비례하여 엄청 빨라졌다. 쿠바 음악의 묘미는 타악기의 맛깔스러운 리듬에 있었고, 그 리듬과 악기를 배우는 그들의 감각은 때로는 뻬드로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콩가 리듬을 지난 번 올 적에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잊어버리지 않고 정확히 연주하네요. 우와. 대단해!"


"우리는 귀에 한번 들은 리듬과 멜로디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 거든. 그래서 다시 연주하기가 어렵지 않아. 그리고 우리 마을로 돌아가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선의 북으로 연습을 해. 물론 악기가 달라서 소리가 다르긴 한데. 뻬드로가 들려 준 소리는 우리 머리에 정확히 남아 있지."


"지난번에 봉고를 배울 때와 똑 같이 금방 따라 하는 것 같네요. 악기를 칠 때 나는 소리만 더 정확하면 제가 치는 소리와 똑 같을 것 같아요."


"정확히 소리를 내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지. 우리도 그 점은 잘 알아. 오랜 시간 이 악기들을 쳐 온 뻬드로의 소리와는 우리가 아직 비교가 안 되지."


"안드레아도 악기를 잘 다루지만, 미구엘이 악기는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미구엘을 더 칭찬해서 안드레아가 혹시 기분 상하지는 않았죠?"


"하하. 걱정 마. 빼드로. 나도 미구엘이 더 잘 하는 거 알고 있어. 우리나라에 있을 적부터 미구엘은 타악기를 오래 친 사람이야. 물론 쿠바 타악기와는 조금 다르지만, 기본부터 잘 배웠으니 다른 나라 타악기도 빨리 배우는 편이지. 안 그래요? 봉수형?"


"내가 악기는 조금 안드레아 보다 낫제. 하지만 빼드로야. 안드레아는 쉽게 말하면 깐딴떼(가수)란 말이여. 우리나라에서도 노래를 유명한 분한테서 배웠어. 멕시코에 있을 때도 거기 창법을 오랫동안 익혔지. 아마 여기 쿠바 노래도 배우면 잘 할거여."


"아! 안드레아는 가수였구나. 악기도 잘 다루지만 노래를 더 잘 하겠군요. 그러면 우리 노래를 배워 보세요."


"사실 노래에 관심이 있어서, 말은 안했지만 여기 사람들 노래하는 것을 평소에 유심히 듣고 있었어."


"여기 마을 사람들이 산티아고와 같은 오리엔테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요. 거기 음악을 '손'이라고 해요. 저희 할아버지가 젊을 적에 쿠바에서는 노예해방이 있었죠. 그 이후로 흑인들이 쿠바 남동부에서 출발하여 쿠바 전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죠. 저희 할아버지도 그 중 한 명이었죠. 그래서 저는 마딴사스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에게 쿠바 동부지역의 손 음악을 많이 들으며 자라났어요."


"뻬드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배웠겠구나."


"저는 음악을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덕분에 연주하고 노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죠. 쿠바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해요.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음악과 같이 지내죠."


"우리도 음악을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았단다. 조선에서도, 멕시코에서도, 그리고 솔직히 쿠바에서도 힘들었지. 그럴 때마다 우리를 버티게 해 준 것 중 하나가 음악이었어."


"이해할 수 있어요. 아참. 그리고 언제 기회가 되면 쿠바의 수도인 하바나로 가 보세요. 거기는 쿠바의 많은 다양한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거든요. 그래서 쿠바 각지의 손 음악들이 집결된 곳이죠. 언젠가 한번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음악들이 서로 합쳐질 거예요."


"서로 다른 색깔의 음악들이 한 곳에서 만나서 서서히 합쳐진단 말이구나. 그런데 그런 생각은 쉽게 하기 어려운데, 뻬드로가 생각해 낸 거니?"


"아니오. 누구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마딴사스에 있는 밧줄공장 사장들이 하바나에 인맥이 많아요. 그래서 한 번씩 하바나에서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음악가들도 있거든요. 파티가 있을 때 제가 거기서 일을 하는데, 하바나에서 온 음악가들이 가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죠."


그 이후에 빼드로는 자기 마을에서 노래를 잘 하는 쿠바인을 명학에게 소개해 주었다.


"안드레아. 이 분은 '빼르난도'씨예요."


"안녕하세요. 뻬르난도씨. 노래하시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굉장했어요. 선생님께 노래를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우선 반갑네.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었군. 사실은 나도 자네가 쿠바 악기 배우는 것을 봤어. 아주 많이 늘었더군. 그리고 내가 주로 부르는 노래는 쿠바 시골에서 생겨난 쿠바 전통 음악이야. '손'이라고 하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손 과히라'라고 부르지. 농부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하면 돼!"


"쿠바에서는 농부들이 부르는 노래도 맛깔스럽네요."


"하하. 그런가? 우리는 쿠바라는 이 섬을 사랑한다네. 물론 우리가 잘 살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래도 매일매일 산다는 것이 힘들지만 노래와 음악을 연주하고 춤추며 쿠바인들은 살고 있지. 여기는 시골이지만, 하바나로 가면 마딴사스보다 음악이 더 다양해진다네. 그래도 우리 같은 시골에서는 아직도 음악에 쿠바의 전통적 성격이 많이 남아 있어. 좀 투박한 맛은 있지만 말이야."


명학은 빼르난도씨에게 노래를 배워가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래 목소리는 솔직히 아름다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교는 적은 반면, 소리의 담백함과 진솔함이 풍부하게 묻어 나왔다. 목의 뒤쪽 어딘가에서 나오는 듯 한 노래 소리는 색다른 맛이 있었고, 기타와 쿠바 타악기의 연주소리에 아주 적절히 녹아들어 가기에 안성맞춤인 노래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때면 꼭 빠지지 않고 하는 노래가 있었다. 사람들은 '호세 마르띠니'라는 쿠바의 혁명가이자 시인이었던 사람의 시를 노래로 부른다고 하였다. '꽌따나메라'(콴타나모의 시골 여인이여!)라는 곡이었다. 그 노래는 유명해서인지 듣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들 따라 부를 정도였다.


"나는 진실한 사람


야자수 무성한 고장 출신이지


죽기 전에 이 가슴에 맺힌 시를 노래하리라


꽌따나메라 과히라 꽌따나메라


관따나메라 과히라 꽌따나메라


내 시는 화창한 초록색


내 시는 불타는 선홍색


내 시는 상처 입은 사슴


산 속 보금자리를 찾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이 한 몸 바치리라


골짜기에서 흐르는 시냇물이


나는 바다보다 더 좋아


꽌따나메라 과히라 꽌따나메라


꽌따나메라 과히라 꽌따나메라~"


https://youtu.be/gdYIpvnzoW8

* 위에 나오는 쿠바 타악기 별 솔로연주 들어 보시려면 아래 유튜브 동영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콩가

https://youtu.be/gvk9emKdy08

2. 봉고

https://youtu.be/a-G1OrKujks

3. 마라카스

https://youtu.be/JqvXJj9pO4A

4. 귀이로

https://youtu.be/gPdsZ22Dv8o

5. 끌라베

https://youtu.be/vOpl7rY_Abg


룸바


그 동안 오랜만에 안정을 누리던 마딴사스의 조선인들에게도 다시 변화의 구름이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몇 십 년 동안 호황을 누리던 선박용 밧줄산업의 경기가 불황으로 접어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밧줄 공장이 직원들을 하나둘씩 해고를 하면서 나중에는 문을 닫는 곳도 생겨났다. 에네켄 줄기에서 나오는 섬유는 선박용 밧줄에 필요한 원료였기 때문에 에네켄 농장주들에게 이러한 경제의 움직임은 악영향으로 다가 왔으므로 그들은 조금씩 에네켄 농장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까르떼나스 지역의 에네켄 농장주들만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정도였다. 마딴사스의 조선인들은 다시 그들에게 드리워진 불운의 구름 밑에서 앞날을 모색하여야 했다.


"우리 농장주도 겨우 버텨 나가고 있지만, 여기 농장이 문 닫을 날도 멀지 않았을 거야."


"에네켄 자르는 것 말고는 달리 해 본 일들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까르떼나스 지역의 에네켄 농장은 그나마 계속 유지되고 있으니 그 쪽으로 모두 옮기는 것이 어때요?"


"거기로 옮기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방법인데, 문제는 거기도 그리 일자리가 많지가 않아서 여기 조선인들이 모두 옮기는 것은 어려울 거야."


"일부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겠다고 하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마딴사스에 계속 남아 있겠다고 하구요"


"그러면, 원하는 사람들을 파악해서 까르떼나스 지방으로 옮기자고! 마딴사스에 있는 에네켄 농장들이 얼마나 오래 더 버틸 줄은 알 수 없지만, 까르떼나스 쪽이 더 오래 견딜 거야."


"알겠습니다. 앞으로 몇 달을 두고 일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몇 명을 까르떼나스로 보내어 거기에 있는 에네켄 농장의 일자리를 알아보도록 시키겠습니다. 그리고는 까르떼나스로 이주할 조선인들을 모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인 마을의 원로들은 앞으로의 일에 대하여 얘기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명학과 봉수는 뻬드로의 마을에서 그들에게 음악을 배우고 있었다. 쿠바의 멜로디와 리듬은 스페인과 서아프리카 지역의 것이 복합되어 생겨난 것이었으므로 둘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멕시코를 거치면서 다른 문화의 음악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웠고 또한 조선에서 소리와 악기를 오랫동안 배웠던 까닭에 시간이 지나자 거의 쿠바 현지인 음악가 수준으로 따라 갈 수 있었다.


"안드레아. 그리고 미구엘! 다음에 올 때는 시간을 내어서 도시로 가 보시겠어요? 제가 보름 후에 도시로 갈 일이 있거든요. 비슷할 수도 있지만 거기 음악은 조금 달라요. 여기는 시골지역이구요. 도시는 도시 나름의 음악스타일이 있어요. 여기 마을 사람들은 쿠바 동부의 오리엔테 지방 출신들이 많아서 동부 산악지역, 산티아고 지역의 음악들이예요. 원래 마딴사스나 하바나는 '룸바'라는 음악이 생겨난 곳이에요."


"룸바? 들어 보긴 했어. 요즘 하바나에서 방송하는 라디오 음악에서 룸바 음악이 나오는 거 들어 봤거든. 쿠바 동부의 손 음악이 더 많이 나오는 거 같기는 하던데."


"라디오에서 나오는 룸바와는 조금 다를거에요. 룸바는 원래 거리의 음악이자 춤이 예요. 직접 연주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보면 더 신나요. 룸바가 매력이 있어요. 들뜨게 하죠."


"그려. 나도 한번 보고 싶었어. 내가 원래 타악기를 조선에서도 오랫동안 쳤잖냐? 룸바 음악을 라디오에서 들어보니까, 나는 그 놈의 룸바 장단이 귀에 착착 들리더라."


"봉수형. 그랬어요? 형은 룸바 쪽이 더 맞으셨구나. 저는 쿠바 동부 지역음악인 손이 더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제가 조선에서 배운 소리하고도 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구요."


"다음에 올 때는 저하고 같이 갈 거죠?"


"그려. 뻬드로. 우리야 너무 고맙지. 너 덕분에 쿠바 음악에 대해 많이 배운다."


몇 주후에 명학과 봉수는 빼드로를 따라서 마딴사스시로 가게 되었다. 멕시코에서 거의 10년을 보냈던 베라끄루쓰보다는 훨씬 작은 아담한 항구도시였지만, 쿠바에 온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둘은 도시를 구경해 보았다. 빼드로는 일을 마치고 나서는 둘을 데리고 어떤 동네로 들어갔다. 거기는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고, 아이티와 같은 쿠바의 인근 섬나라에서 온 흑인들도 같이 섞여 살고 있는 가난한 동네였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서 골목의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자 시원한 그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곳에서 대여섯 명의 흑인들이 쉬고 있었으며 여자도 한두 명 섞여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오! 빼드로. 오랜만이야. 잘 지내? 여기는 어떤 일로?"


"저야 뭐 잘 지내요. 도시에 왔다가 형들과 누나들이 보고 싶어서 왔죠."


"그래. 잘 왔어. 고마워. 근데, 이 사람들은 중국인들인가?"


"아니오. 멕시코에서 왔어요. 안드레아와 미구엘 씨라고 하는데, 원래 나라는 꼬레아라고 해요."


"아. 멕시코에서 왔군."


"이 분들이 쿠바에 오기 전부터 음악을 오랫동안 하셨던 분이예요. 꼬레아에서도 그리고 멕시코에서도 모두 현지 음악을 배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쿠바에서 저와 마을 사람들에게 쿠바 음악을 배우고 있어요."


"아. 그래? 빼드로 너희 마을은 전통 손 음악 쪽이잖아? 요즘 라디오에서 손 음악이 인기를 많이 끌고 있으니까 제대로 배우고 있겠네."


"그래서 진짜 룸바가 뭔지를 이 분들께 보여 드리고 싶어서 여기에 같이 왔어요. 오랜만에 한번 실력 좀 보여 주세요."


"우리야 뭐 거리의 음악인데.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쉬고 있던 참이었는데 때 맞춰서 잘 왔다. 애들아. 멕시코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룸바가 뭔지를 한번 보여 주자!"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길게 늘어져 있던 그들은 자리에서 하나둘씩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몇 명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악기를 가지고 나왔다. 이십분 정도 뜸을 들이다가 서서히 타악기의 소리들이 빈 공간을 울리며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콩가를 두드리는 이가 끌라베 연주자와 함께 먼저 분위기를 흥겹게 깔아 주었다. 어느새 카혼이라는 나무상자를 두드리는 이도 가세하였다. 어떤 이는 어느 시점에서 뜨레스라는 기타를 연주하며 타악기의 리듬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구슬 그물이 달린 항아리를 들고 있는 이는 규칙적으로 그것을 흔들어 음악의 맛깔을 더해 주었다. 여자의 노래가 먼저 나오더니 조금 있다가 남자가 노래를 이어 받았고, 서로 번갈아 가며 얘기를 하 듯이 노랫말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노래를 계속 하였다. 흥이 계속 고조되어 가자, 한 여자가 모퉁이에서 춤을 추며 나타나 연주자들을 뒤로 한 채 한껏 멋지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깨, 골반, 엉덩이, 손을 모두 이용하여 가능한 매력을 뽐내며 빠른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반대편 모퉁이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여자의 춤에 합류를 하였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기나 서로 엇갈리며 교차를 하는 듯 하고 어떤 때는 여자가 엉덩이 부분을 심하게 흔들며 남자 무용수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는 다소 성적인 표현도 섞여 있었다. 남자도 한껏 멋을 부리며 춤을 췄고, 여자에게 자신의 남성적 매력을 뽐내려는 듯이 보였다. 남자가 여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자, 여자는 스카프를 꺼내어 양끝을 잡고 남자의 앞에 방어막을 치며 계속 춤을 췄다.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듯이 춤을 췄지만 남자가 더 다가오면 여자는 스카프를 이리저리 양손으로 잡은 채 흔들며 남자가 자신에게 더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이런 동작은 여러 번 되풀이 되었고 빠르고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은 음악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룸바는 춤을 위한 음악이구나."


"쿠바에서는 음악과 춤이 따로 떨어질 수가 없어요. 룸바는 그런 면이 더 강하죠."


"지금 보신 것은 '와왕코'라고 하는 춤이죠. 룸바에 맞춰 추는 춤 가운데 하나에요."


"룸바가 춤은 좀 거시기 하긴 한데, 리듬이 매력적이다. 진짜 빼드로 너 말대로 바로 눈앞에서 보니까 라디오에서 듣는 거 하고 많이 다르다. 더 좋다는 말이여."


룸바를 연주하며 춤을 추는 이들은 이어서 다른 곡으로 연주와 춤을 이어 나갔고, 음악 소리를 듣고 골목의 건물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씩 구경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췄으며 혼자서 추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녀가 서로 교차하며 짝을 바꿔서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하였다. 몇 명이 시작한 골목의 연주는 어느 순간부터는 그 동네의 축제 현장으로 변해 버렸다.


"안드레아! 미구엘! 같이 춤을 춰요!"


"룸바춤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몸을 움직이며 음악에 맞춰서 춤추면 되요."


"오. 이거 완전히 내가 꿈꾸던 곳인데..."


봉수는 분위기에 흥이 나서 먼저 현지인들의 룸바 축제현장으로 들어갔다. 룸바춤을 한 번도 배워 본적이 없는 봉수였지만 음악에 맞춰서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에서는 춤을 배웠건, 춤을 얼마나 잘 추느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춤을 같이 추며 어울릴 줄 알면 되는 것이었다. 봉수와 뻬드로도 사람들과 같이 춤을 추었고, 골목안의 룸바 축제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이어져 갔다.

https://youtu.be/gJVT_5swkhA


"자네들은 어떻게 할겨? 여기에 남을 건가? 아니면 까르떼나스로 옮겨 가는 사람들과 같이 갈 건가?"


"저희들은 아직 결정을 못 내렸어요. 머리가 아프네요. 여기 계시는 분들과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또 헤어지기 시작하네요."


"여기도 문 닫는 것은 시간문제여. 까르떼나스도 백 명 정도만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거기 에네켄 농장은 앞으로 몇 년은 더 버틸 거라고 다들 생각해."


"저희는 베라끄루쓰에서도 에네켄 농장일 말고 항구에서 막일도 십년 했어라. 그래서 어디로 가든 뭐든 하며 살아남을 수는 있을 것 같단 말이지라이."


"그러면 자네들은 까르떼나스로 안 갈겨?"


"차라리 여기에 남던가 아니면 하바나 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하바나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지 않는가?"


"동포들과 같이 못 있게 되는 게 제일 슬프긴 한데, 저희야 뭐 딸린 식구도 없고 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것지요."


"다들 앞날에 대해서 걱정하는 판에 자네들은 천하태평들일세. 하긴 소리하는 게 원래 자네들 일이었다고 하니까. 아무튼, 어딜 가든 몸 건강하고 잘 되길 빌께."


"저희야 소리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어요."


"소리하는 게 뭔 밥 먹여 주는가?"


"밥은 저희가 벌어서 먹는 거구요. 소리하는 거는 뭐랄까, 저희가 계속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거든요."


"나는 자네가 무슨 말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명학은 동네 어른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에 빙그레 웃기만 하였고, 봉수는 실없이 껄껄 웃어 대었다.


"명학아! 기분도 껄쩍지근헌데, 저기 언덕에 올라가서 바람이나 쐬자."


"그래요. 봉수형! 오늘은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어서 언덕 위에 올라가면 시원할 것 같아요. 언덕에 앉아서 밤하늘에 있는 별도 보고 싶네요."


그들은 마을을 나와서 언덕위로 걸어가 정상에 앉았다. 언덕 반대편을 바라보니, 농장주인의 저택에는 하바나에서 음악가들이 왔는지 경쾌한 음악과 웃음소리가 나오는 것이 저 멀리서 들려왔다.


"명학아. 내가 너를 만난 게 언제여? 한참 되었제?"


"언제였죠? 이십년도 넘은 거 같은데요."


"우리도 이제는 나이를 억수로 먹어 버렸다. 근데, 너 그거 아냐?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언덕에서 막 내려 왔을 때여. 그때는 네가 큰 결심하고 너희 고향을 떠나 왔을 때였지."


"아! 그랬죠. 그때 봉수형 만나지 않았으면 아마 제 인생도 달라졌을 거에요. 아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지 싶어요."


"그랬겠제. 그래서 잘 한 거 같냐? 지금 이렇게 쿠바까지 와 있는 것이? 조선은 여기에서 억수로 멀겠제?"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 거기서 봉수형 만난 것이 저에게는 행운이었어요."


"그려. 나도 그렇게 생각헌다. 옛날 생각하니 기분이 거시기하게 울적해지네 버려. 명학이 너 아직도 조선의 소리들 할 줄 알겄냐? 기억나는 거 있으면 한번 소리 좀 뽑아 봐라! 쿠바도 멕시코도 음악이 좋긴 한데, 조선의 소리가 오늘은 억수로 그립다."


명학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판소리 적벽가 중에서 전쟁에 끌려 나온 군사들의 신세타령 부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고향에 계신 늙은 부모님을 이별한 지가 벌써 몇 날이나 되며,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신 그 은덕에 보답하고자 하나, 그 은혜가 너무나 크고 끝이 없네 그려. 화목하던 일가친척과 집안의 젊은 아내 어린 자식이 천리 밖 싸움터에 나를 보내고, 오늘이나 소식이 올까 내일이나 기별이 올까 하며 기다리다가, 서산에 해가 기울어지니 문밖에서 기다린 것이 그 몇 번이나 될 것이며 바람 불고 궂은 비 내리는데 대문에 기대어 기다린 것이 그 몇 번이나 될 것인가, 한나라 소무는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보냈다지만 나는 누구 편에 편지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임을 그리는 단장의 마음으로 항상 수심에 잠겨 지내고 있다네. 칼과 활을 둘러메고 육지와 물 위에서 적과 싸워야 할 테이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아닌가. 만일 객사를 하게 되면 누가 내 시체를 묻어 줄 것이며, 벌판에서 참혹하게 죽은 내 몸이 까마귀와 매의 밥이 된다고 한들 누가 손뼉을 쳐 후여 하고 날려 주리. 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부모님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네 그려..."


명학의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에 봉수는 무릎을 치기도 하거나 자신의 소리를 사이사이에 넣어서 추임을 만들어 주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씻겨 지나가고 있었고, 그들의 소리도 쿠바의 하늘 아래에서 애절하게 울려 퍼져 가고 있었다.


https://youtu.be/UPDiIvK9P0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