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까_14편. 또 다른 고향, 종전(終戰)

음악장편소설

by 김주영

또 다른 고향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미국의 태평양함대 전초기지였던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습하였다. 1939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유럽전쟁에는 어떤 편에도 참전하지 않겠다고 외쳤던 미국도 드디어 일본에 대한 전쟁과 더불어 유럽에 미군을 파병하는 정부의 결정을 미국 의회가 신속하게 승인하자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에 승리하였던 미국은 그 대가로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등의 카리브 해 섬들 및 필리핀, 괌을 차자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만 미국의 영향력을 국한시키고 유럽대륙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외교정책인 먼로주의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에 대한 전쟁포고 및 유럽전쟁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러한 먼로주의 정책을 포기하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초강대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을 하게 되었다.


쿠바는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 결과로 스페인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에 미군정 기간을 거치고 1899년에 독립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쿠바혁명이 일어난 1959년까지 약 60년의 세월 속에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었으며 1933년에 집권한 바띠스따 정권도 친미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이 일본과 태평양에서 전쟁을 시작하자, 쿠바도 미국의 편에 서게 되었으며, 일본에 대하여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문제는 쿠바내 거주하고 있던 몇 백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인으로 간주되어 쿠바 정부 및 국민들로부터 탄압을 받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바나에 있던 미주한인회 쿠바지회에서는 쿠바 정부를 상대로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강제로 나라가 합병되어 조국 독립을 위하여 일본과 대결중인 민족이라는 점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쿠바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돈을 모아서 미주한인회 쿠바지회에 보내 주었고, 이렇게 모아진 돈의 일부를 쿠바지회는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냈고, 쿠바정부를 상대로 조선인들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 등을 홍보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쿠바지회의 독립자금에 대해서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김구 선생은 쿠바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금을 보낸 것에 감동과 함께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쿠바의 바띠스따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하나바에서 귀국 퍼레이드를 벌였는데, 미주한인회 쿠바지회에서는 자동차를 마련하여 그 퍼레이드에 조선인의 이름으로 참여하였고 정치적 성금도 기부하는 등 쿠바 내에서도 조선인으로서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학과 봉수도 마딴사스 및 까르데나스 지방의 농장들에 일하고 있던 조선인들과 함께 하바나에 있는 쿠바지회의 활동을 돕기 위해서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돈을 보내는 일에 동참하고 있었다.


몇 주 동안 명학은 부에나비스타 클럽에서 새로운 음악 밴드와의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라곤이라고 하는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규모의 쿠바 음악 밴드였다. 쿠바에 와서 동부 오리엔테 지방에서 유래된 손 음악과 볼레로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워왔던 명학으로서는 몇 년 전부터 변화되고 있는 쿠바음악의 경향에 적응해야만 하였다. 전통 손 음악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는 듯이 보였고, 약 100년 전부터 존재하였던 콘트라단사라고 하는 유럽의 멜로디 현악기들과 아프리카 리듬을 곁들여 연주하는 음악형식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연주에 첨가하여 차랑가라고 하는 밴드형식을 만들어 내었고, 이러한 밴드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단손이라고 불렀다. 또한 손 음악 밴드들도 피아노, 콩가, 관악기 등의 다른 악기들을 더 보강하여 밴드의 몸집을 더 키워 갔으며 콘훈토라는 새로운 연주형태의 구성을 만들어 갔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재즈와 더불어 미국 관광객들이 하바나로 점점 더 몰려들며 관광업으로서 하바나가 호황을 누리는 상황에서 외국인들을 겨냥한 음악적 변신일 수도 있었다. 재즈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는 쿠바의 전통적인 악기들로 주로 구성된 손 음악 보다는 재즈와 같이 음악적으로 보강되고 증폭된 차랑가와 콘훈토와 같은 악단의 형식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악기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명학도 첨가되는 새로운 악기들의 멜로디에 익숙해져야 했고, 한 곡을 구성하는 음악형태가 다소 복잡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전체적 윤곽과 흐름을 파악해야만 했다. 가수의 코러스 숫자도 증가하면서 하모니도 중요해졌다. 이렇게 음악이 변화되는 시기에 마리아는 명학이 그 흐름을 잘 파악하고 따라 갈 수 있도록 많이 도움을 주었다. 봉수는 콘훈토 밴드의 대규모 악단에서 젊은 쿠바 음악인들과 타악기 분야에서 경쟁을 해야만 했다. 악기소리의 깊이는 젊은 연주자들이 쉽게 따라 오기가 어려웠지만, 빠르게 변화되며 새롭게 쏟아지는 수많은 곡들에 적응하는 속도는 봉수가 그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새로 생긴 가족들을 생각하며 적응에 따르는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라곤 오케스트라는 '빠레 꼬체로'(마부를 멈추게 하다)라는 단손 음악을 연습하고 있었다. 명학과 다른 가수들이 부르는 코러스 가사는 단순한 구성이었지만 전체적인 곡의 흐름에서 어우러지게 부르려면 집중력이 필요한 곡이었다. 플루트의 전주곡으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다른 악기들이 하나씩 들어오며 합주가 이어져 갔다. 명학 및 다른 코러스 가수들은 연주소리와 어우러지며 노래를 불렀다. 쿠바에 온 이후로 배워 온 전통 손 음악에 비하면 확실히 음악적으로 화려해졌다고 명학은 느껴졌다. 빠르게 흘러가는 멜로디와 리듬 속에 플루트, 바이올린 등의 소리가 들려오며 충분히 귀를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7분 넘게 이어지던 한 곡이 끝나면서 그 날의 연습은 끝났다.


https://youtu.be/BHDqDnsWrBg


클럽 밖으로 나와서 명학과 봉수는 잠시 밤거리를 걸으며 띵해진 머리를 맑게 하려고 하였다.


"음악이 엄청 화려해지고 있는 거 같아. 우리가 쿠바 와서 배웠던 음악들은 앞으로는 소박한 쿠바 민속음악으로 남게 되는 거 아니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명학아!"


봉수의 질문을 듣고 명학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하였다.


"그렇게 쉽게 없어지기는 힘들 것 같아요. 사실 오늘 연주했던 음악들도 손 음악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는걸요. 우리가 지금 쿠바에 살고 있지만, 봉수형이나 저나 원래는 조선인이잖아요? 그것과 똑 같다고 생각해요. 악기들이 더 보강되고 멜로디가 더 풍성해졌지만 그것은 마치 같은 사람이 옷을 더 화려하게 갈아입고 나온 것이고, 사람이 달라졌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그것과 같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너 말은 음악이 변화지 않았단 말이여?"


"아.. 제 말은 음악은 시간이 흐르며 그 시대에 유행하는 흐름이 있으니까 변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음악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대신에 새로운 장르의 음악들이 탄생하도록 도와주죠. 전통을 토대로 다른 종류의 음악들과 섞이며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이 들어요. "


"명학이, 너 말이 이해가 될 듯 하다가 다시 애매해지네. 근데, 무슨 말 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쿠바의 동부지역 손 음악은 충분히 보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리죠. 지금은 음악들이 엄청 복잡하지고 화려해지지만 기본적 틀은 손 음악에서 아주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조선을 떠난 지 몇 십 년이 되었는데, 우리가 배웠던 소리들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조선 떠날 때만 해도 한양에는 온갖 외국 음악소리들이 많이 들리던데 말이여. 조선도 지금쯤이면 새로운 음악들이 라디오에서 많이 흘러나오고 있겠다. 그러면 말이여. 우리가 배운 소리 장단이나 네가 배운 소리가락들은 이제 완전히 구닥다리 음악으로 밀려 날 수도 있는 거 아녀?"


"지금쯤이면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조선에서도 흘러나오는 음악이 우리가 조선을 떠났을 때와는 다를 수가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가 배운 소리들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거에요. 누군가는 계속 배우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면서 이어져 나갈거에요."


"그러나 저러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일본이 이기면 조선은 이제 영영 저 놈들 밑에서 살아야 하것다."


"그러게요.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힘이 있다고 하지만, 미국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잠자고 있던 거인을 깨운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고 있어요. 일본이 이기는 것은 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냐? 일본이 지면 어쩌면 조선이 독립 될 수도 있것다. 여기 쿠바도 미국이 스페인하고 전쟁하여 이겨 버려서 독립했다고 하더라. 조선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쿠바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은 되었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잖아요. 미국이 전쟁에 이겨서 조선이 독립되면 쿠바처럼 어쩌면 똑같이 될 수도 있겠네요."


둘은 가로등이 비추어 주고 있는 늦은 밤거리를 얘기를 나누면서 걸어가다가 각자의 집으로 향하게 되는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명학은 1943년 봄에 마리아와 결혼을 하였다. 오랜 동거 생활을 정리하고 정식으로 부부가 된 것이었다. 그는 마리아와 결혼을 함으로서 쿠바국적을 정식으로 취득하였다. 쿠바에 온 이후로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는 멕시코 국적이 필요했기 때문에 멕시코를 떠나서 쿠바에 도착한 이후에 뒤늦게 멕시코 국적을 취득한 조선인들이 많았다. 봉수와 명학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멕시코 국적을 가지고 쿠바에 머무르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싶었던 것은 없어진 나라였던 조선의 국적이었다. 몇몇 조선인들은 조선에서 멕시코에 올 때 임시로 사용했던 조선국적의 여권을 아직까지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멕시코와 쿠바에서의 생활이 길어지고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국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멕시코나 쿠바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듬해에 봉수도 쎌리아와 결혼하고 그녀의 아들도 그들의 자식으로 정식으로 등록시켰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머나먼 땅인 쿠바의 시민이 되었고, 그들의 여생을 그 땅에서 마치려고 결심하였다. 그들에게는 쿠바가 이제는 제2의 고향이 된 것이었다.



종전(終戰)


봉수는 이른 아침에 갈증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물병을 찾아서 컵에 물을 부었다. 입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벌컥벌컥 물을 마셔서 갈증을 해소하였다. 정신이 들면서 눈에는 쎌리아의 자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아침잠이 많아서 그런지 세상모르게 잠이 들어 있었다. 옆방에 들어가니 아들인 안토니오가 몸을 쭉 뻗은 채 역시 잠을 자고 있었다. 봉수의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핏덩어리였을 때부터 쎌리아와 같이 키웠던 아이였고 그를 진짜 아버지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안토니오에게 언제나 친아버지 이상으로서의 사랑을 베풀고 있었다.


명학이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 간 이후에 적적했던 봉수는 몇 년 동안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 처음으로 가족을 가져 보았다. 노래에 소질이 있어서 가수의 꿈을 키우며 시골에서 하바나로 왔던 쎌리아는 비록 그녀의 꿈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시골의 순박한 정서를 가지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키우며 지금은 살고 있었다. 루벤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임신이 되었으나 그는 그녀의 임신소식을 듣고는 책임지지 않았고 절실한 카톡릭 신자였던 쎌리아는 낙태를 하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구도 그들을 돌보아 주지 않았지만, 봉수는 그들을 측은하게 여겨서 그들에게 자신이 사는 집에 같이 살게 해 주었다. 그리고는 쎌리아와 안토니오를 위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을 벌어와 새로 생긴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명학은 그러는 봉수가 걱정이 되어서 그의 진심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아이를 데리고 살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클럽에서 생활하며 쎌리아를 여동생처럼 생각했던 봉수는 갈 곳 없는 그들을 거두어 주었고, 루벤이라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찾아 가지도 않았다.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봉수로서는 두 생명을 보살피는 것이 마치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어느덧 여기게 되었다. 이후 쎌리아도 봉수에게 감사하는 마음 이상으로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안토니오도 커가면서 그를 아빠라고 생각하게 되자, 어느새 그 세 명은 가족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봉수는 어제 밤에 클럽에서 밤늦게까지 연주를 해 주고 받았던 돈을 호주머니에 넣고 집 밖으로 나왔다. 동쪽 하늘은 불그스런 기운으로 새벽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밤과 새벽 사이에 식어진 공기를 맞으며 그는 거리를 따라 내려갔다. 한참 걸어가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평소처럼 동네 빵가게는 열려 있었고, 이른 새벽부터 구운 빵냄새가 기분 좋게 퍼지는 중이었다. 두세 명이 벌써 가게 앞에 줄을 서 있었으므로 그는 순서를 기다린 후 따뜻한 빵을 들고 집으로 향했고, 도중에 식품점에 들려서 달걀, 베이컨, 과일, 채소 등을 추가로 사서 집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어제 밤에 힘들게 번 돈으로 사온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그의 가족을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이 항복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라디오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럽에서 우연히 라디오를 듣고 있던 지배인인 곤잘레스는 마당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명학에게 말했다.


"안드레아! 전쟁이 끝났다고 해요! 오늘 일본 국왕이 방송을 통해 전쟁에 항복한다고 발표했어요. 방금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명학은 곤잘레스 지배인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평양 전쟁 초반에 기세가 등등하던 일본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 최근까지는 미국이 태평양에서 일본 해군을 거의 전멸시켰고 미 해병대가 일본 본토에 진격하기 위해 일본 남부의 섬들을 차례로 점령하고 있을 정도로 전세는 변화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본이 쉽게 항복하리라고는 그는 예상을 못하였다. 일본본토가 전쟁터로 변화면서 전쟁이 더 길어질 거라고 생각을 하였으므로 일본의 항복소식을 들으니 다소 허무한 느낌마저 들었다.


소련군대가 만주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오는 것은 일본으로서는 최악의 패전 시나리오였다. 어쩌면 독일처럼 일본이 소련군과 미군에 의하여 둘로 나눠질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으므로 일본은 항복상대로 미국을 선택하면서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었다. 대신에, 조선이 소련과 미국에 의하여 둘로 나뉘어져 통치를 받을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소련은 공산주의를 확산하기 위하여 공산주의 정권이 많이 세워질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많이 지원을 하고 있었으므로 소련이 차지한 조선의 북쪽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길을 걷게 되었고,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된 남쪽은 미국식의 민주주의 제도와 시장경제의 길을 가게 될 운명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국제정세를 예상할 수가 없었던 명학은 일본의 패전은 곧 조선의 독립이라고 순간적으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 이겨서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가 독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쿠바 스스로가 독립을 위한 운동을 하였지만 스페인에게 무력으로 진압 당하였고, 이후에 있는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결국은 스페인이 쿠바에서 물러났다. 이후 일 년 정도의 미국 군정기간을 거친 후 정식으로 쿠바는 독립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도 쿠바처럼 미국이 일본에게 승리하였으므로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될 것이라고 명학은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흘러 나왔다. 멕시코의 유카탄에 있는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4년 동안의 계약 노동이 끝난 후 돈을 모아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여 돌아갈 나라가 없어져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을 떠 올렸다. 당시 망국의 설움을 달래려고 봉수와 같이 비를 맞으며 항구까지 힘없이 우울하게 걸어갔던 기억이 났다. 나라가 다시 해방될 때까지 36년 동안 그들은 멕시코에서 떠 돌았고 다시 쿠바로 건너와 지금까지 생활을 하였다. 어느덧 쿠바에 정착하여 가족이 생겨서 조선으로 돌아 가려고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게 되었다는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봉수형! 소식 들었어요?"


"일본이 전쟁에 항복했다는 거 말이여?"


"네. 오늘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그려. 오늘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그 뉴스가 자꾸 나와서 안들을 수가 없었지. 잘 된 일이지. 눈물이 나오더라. 지금도 눈물이 또 나려 한다."


"네. 조선이 이제 일본에서 해방되겠죠?"


"맞아. 일본 놈들이 전쟁에서 졌으니까. 저희들이 뺏은 나라는 이제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해 왔긴 했는데, 조선이 해방되는 것은 미국과 소련이 일본에 전쟁을 이긴 게 더 큰 거 같아요."


"그러게 말이여. 일본이 그 동안 워낙 세긴 했잖냐? 괜히 미국 건드려서 지금은 쪽박을 차게 되었지."


"아무튼, 조선이 일본에게 해방되게 되어서 기분이 좋네요."


"명학이 너는 조선에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냐?"


"지금은 마리아와 가정을 이루어서 조선에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아요. 봉수형은요?"


"나도 쎌리아와 안토니오가 있으니까 쉽지가 않지. 세 명이 같이 조선에 가면 모르겠는데, 두 명은 여기 쿠바가 더 낫지, 조선에 가면 어디 편하겠냐?"


"우리도 이제는 늙었죠? 기억나요? 멕시코에 있을 때만 해도 우리 목표는 돈을 벌어서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잖아요? 이렇게 쿠바에 와서 가족이 생길 줄이야 생각을 못했죠."


"허지만,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조선 땅을 밟아 보았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어."


"저도 한 번씩 꿈에 고향의 모습이 나와요. 어머니 얼굴, 형제들, 아버지.. 부모님들은 돌아 가셨을 테고, 형제들은 어쩌면 아직 살아 있겠네요."


"고향 얘기는 이제 그만 하자. 마음이 너무 울적해진다. 나는 이제 쿠바에서 죽기 전까지 쎌리아와 안토니오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되는 거여.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저도 마리아와 여생을 쿠바에서 잘 마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마리아는 산디아고에서 돌아 왔냐? 거기 음악학교 선생님 하러 몇 달 전에 갔잖냐?"


"네. 음악학교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마리아가 도와주러 내려갔어요. 반년 정도 있다가 돌아오기로 했으니까, 몇 달 더 남았네요. 편지를 자주 주고받고 있어요. 거기 일이 재미가 있는가 봐요. 마리아가 가르치는 일에 적성이 있거든요. 클럽 뜨로삐까에서도 처음 일 년 동안 저를 가르쳤잖아요. 덕분에 쿠바음악에 완전히 적응하게 되었죠."


"그려. 그런데, 네가 마리아 많이 보고 싶겠다. 마리아도 마찬가지고.. 몇 달만 좀 참아라. 마리아가 산티아고에 좋은 일 하러 간 거니까, 네가 이해를 좀 하구."


"네. 오늘은 마리아가 더 보고 싶네요."


"그러면, 나중에 공연 마칠 때 관중들이 앙코르 요청하면 네가 하고 싶은 노래 한곡 해라. 미리 알고 있어야 우리가 연주를 잘 해 주지. 무슨 노래하고 싶냐?"


그는 단원들에게 앙코르를 대비하여 공연 전에 한곡을 추가로 더 연습하자고 요청하였다. 몇 시간이 지나자,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인지 오늘따라 부에나비스타 클럽에는 관객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처음부터 경쾌하고 빠른 곡으로 분위기를 살려 나갔고,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 있는 볼레로 음악으로 바꾸어 나갔다. 예상대로 관객들의 앙코르 박수가 나오자, 명학은 단원들에게 신호를 하고 '멀리서도 그대와 함께'(Contigo en la distancia)를 불렀다.


"오늘의 날이란 없어

​나에게서 널 떨어뜨릴 그런 날


​​세상은 달라보여

​네가 나와 함께 하지 않을 때


​​아름다운 멜로디는 없어

​네가 떠오르지 않는


​​난 그런 멜로디를 듣고 싶지 않아

​만약 네가 듣지 않는다면


​​왜냐면 넌 변했어

​내 영혼의 일부에서


​​이미 아무것도 날 위로하지 않아

​​만약 네가 없다면 역시


​​너의 입술 넘어

​태양과 별로부터


​​너와 함께 멀리서도

​사랑하며 난 있어

....."


https://youtu.be/lLiPh6kmFoU


명학은 눈을 지그시 뜬 채로 마리아를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고 관객들은 조용히 그의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하루 종일 들떠 있었던 모두의 마음들은 그의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노래를 들으며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카리브 해의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은 이제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